평양 오디세이 (Pyongyang Odyssey) 9788928517459

도시 연구는 살아 움직이는 ‘도시’를 만나며 시작된다. 북한의 도시를 연구하는데 그곳에 갈 수 없다면 이것보다 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연구는 포기할 수 없는 북한 연구의 과제이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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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오디세이 (Pyongyang Odyssey)
 9788928517459

Table of contents :
발간사

Prologue


Ⅰ. 평양의 공간

정일영 |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1. 김정은이 꿈꾸는 평양으로
2. 북한의 도시, 파괴로부터 사회주의 개조로
3. 김정은 시대의 평양, ‘건설의 대부흥’ 선언
4. 평양,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꿈
5. 코로나 시대, 평양은 안녕한가요

오창은 |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1. 파괴와 건설, 평양의 도시 재건축
2. 미래과학자거리의 이중성
3. 평양과 농촌, 공간의 충돌
4. 노동계급의 공간에 대한 욕망과 평양중심주의
5. 평양공간과 사회적 불평등


Ⅱ. 평양의 경제

채수란 |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1. 북한판 ‘기생충’? 북한의 계층별 삶
2. 평양 종합시장의 이모저모
3. 평양시민의 계층별 월 소득
4. 평양시민의 소비가 궁금하다.
5. 과연 북한판 ‘기생충’의 삶은 지속될까?

정은이 |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1. 부동산을 통해 평양을 보자
2. 평양에도 부동산 바람이?
3. 부동산 건설과 동인
4. 부동산을 통해 본 평양의 미래


Ⅲ. 평양의 문화

허선혜 |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1. 북한 이데올로기의 투영체, 평양
2.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와 문화재
3. 북한이 바라본 평양의 역사적 정체성
4. 평양은 민족의 성지일까, 성지화된 도시일까?

박소혜 |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1. 평양의 자본주의적 이미지, 그 실체는?
2. 평양의 주거공간과 소비문화의 전개
3. 김정은 시기 평양의 주거공간
4. 평양 초고층살림집 주거소비문화의 특징
5. 변화의 잠재력과 가능성


Ⅳ. 서울 - 평양 교류

이민규 |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1. 다시 찾아온 서울 - 평양 교류의 기회
2. 서울과 평양이 맺어온 과거의 흔적
3. 서울 - 평양 교류 재개의 냉혹한 현실
4. 서울 - 평양 교류의 미래 징검다리 놓기


참고문헌

Citation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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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丁一榮,正01=11401X0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오창은 吳利銀, 090싸0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및 다빈치교양대학 교수 채 수란 蔡洙 I둬, 0^5: 501=1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경제전략 연구본부 북방극지 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정은이 鄭恩伊, )01水0 쁘 I正2

통일연구원 인도협 력 연구실 연구위원 허선혜 許善忠, I正081水 "

전북대학교 국제 융복합연구소 연구교수 박소혜 朴索窓, 으아狀 80 데

국회도서관 관장실 비서관 이민규 李頭規 I표 — 070

서울연구원 도시외 교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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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획 |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평양학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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폄먆 모디세01 서울시립 대학교 서울학연구소 평양학연구센터 엮음

발간사 서울시 립대학교는 지난 2018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남북대학 간 교류협 력 비

전’을 발표하고 중국, 몽골 등 제3국의 대학을 통한 남북학술교류 기반조성에 힘써 왔습니다. 아쉽게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남북관계가 답보상태로 전환되면서 학술 분야의 교류사업에 대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본교는 국내 유일의 공립대학으로서 남북관계의 변동상황에 임기응변식의 단기

적 대응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중장기적 학술교류역량을 강화해 나가고자 합니다. “ 역사는 얼마나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지를 가지고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멀리 보고, 길게 호흡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서울이 잠재적 교류 도시로 보고 있는 평양과의 실효적인

교류를 위해 ‘도시 평양과 평양인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서울학연구소는 평양학연구센터를 설치하고 지역학의 관점에서

도시 평양을 특정하고 학제 간 연구를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평양학”을 새로이 정립해 가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평양학연구센터는 남과 북이 아니라 한반도에 토대를 두고 살아 온 한민족의

정체성을 근거로 상호 소통하고 공감하며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학문적 소임 을 다하겠습니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평양학 신진학자 7명이 ‘평양의 공 간, 경제, 문화 그리고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평양 오

디세0'心를 내놓습니다. 이 책을 통해 평양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첫발을 내딛는 ‘평양학’ 연구에 선도적으로 참여해 주신 집필진의 노 고에 감사드리며, 단행본으로 출간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주신 민속 원 관계자 여러분과 평양학연구센터 조유현센터장님 이하 직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책의 간행으로, 독자 여러분의 ‘평양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2022년 8월

서울학연구소장 양승우

?1’010呂116 도시는 수 많은 의미와 이야기를담고 있는 공간이다. 우선 도시에는 사람들 이 살고 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도시라는 공간의 특징 을 함께 만들어 간다. 그런 의미 에서 도시는 물질적 실체 이자 문화를 공유하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그렇게 도시는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이 런 이유로 도시는 연구자들에게 엘도라도묘 00*0와 같은 낙원이

라 할 수 있다.

도시를 연구한다는 것은 설레는 선택의 과정이다.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너 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도시는 어떨까? 갑자기 숨이 막혀올 것이

다. 도시 연구에 대한 흥분은 사라지고 머 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북한? 무언

가 벽 에 부딪힌 듯한 막막함이 밀려온다. 왜 일까? 우리는 왜 북한, 그리고 그곳 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 연구를 망설일까? 도시 연구는 살아 움직 이는 ‘도시 ’를 만나며 시작된다. 북한의 도시를 연구하

는데 그곳에 갈 수 없다면 이것보다 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도시 연구는 포기할 수 없는 북한 연구의 과제이다. 특히 평양 연구는 우리가 반드시 정복해야 할 연구 분야이다.

평양은 단순히 북한의 수도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평양은 북한이 마지 막까지 지켜야 할 ‘사회주의 혁명의 심장’이며 북한 사회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

는 실험실이다. 평양을 안다는 것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과거와 현 재, 미 래를 볼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열려 있지만 닫혀 있고, 멈춰 있지만 변하고 있는 평양을 7개의 시선

으로 바라본 평양 연구이자, 평양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크

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은 평양의 공간, 경제, 문화, 그리고 서울과 평양 교류라는 시각에서 7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평양의 공간을 탐험한다. 정일영은 ‘먼저 온 사회주의 선경 ’으

로서 평양의 공간을 재조명하였다. 그는 김정은 시대에 벌어진 건설 붐이 전대 에 못 이룬 강성대국의 꿈을 평양이란 공간에 구현한 모델하우스와 같다고 말한 다. 오창은은 북한소설 세 편을 통해 평양이 만들어내는 공간적 위계가 계급적

소외를 확대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평양의 특별함은 평양에 대한 민중의 욕망

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국가는 이 러한 특권적 위계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장은 평양의 경제상을 살펴본다. 채수란은 평양 출신 탈북자와 해외 여행자 인터뷰를 통해 평양시민의 가계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시

장은 평양시민들에게 필수적인 수입원이자 소비의 공간이 되었으며 그곳% 부터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정은이는사회주의 혁명의 심장, 평양에서

불고 있는 아파트 붐을 소개한다. 그녀는 부동산이 평양시민의 새로운 자산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세 번째 장은 평양이 담고 있는 문화에 대해 알아본다. 허선혜는 평양의 문화 유산을 통해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평양의 정체성을 분석하였다. 북한은 김일

성 시대부터 추진된 역사유적 발굴과 재평가를 통해 평양을 고조선으로부터 내 려온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로 성지화하였다. 박소혜는 북한 드라마 속에 나타난 평양, 그들이 영위하는 일상의 생활문화를 소개한다. 그녀는 주거공간의 분리로

부터 탄생한사적 공간의 변화를 알아보고 잠재되어 있던 소비 욕망이 어떤 모

습으로 나타나는지 분석하였다. 마지막 장은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관점에

서 서술한다. 이민규는 2000년 6.15 공동선언을 통해 시작된 서울과 평양의 교 류를 꼼꼼하게 되짚어본다. 이 과정에서 서울이 평양과의 만남을 위해 어떤 계

획을 세우고 제도를 마련하였는지, 그리고 그 만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한계에 부딪혔는지 알아본다. 그는 서울 - 평양 교류협 력 프로젝트를 재가동하기 위해 지자 체의 사업추진 역량을 강화하고 우호적인 국제환경을 조

성하기 위한‘평화’도시외교를제안한다. 이 책은 평양 연구, 나아가 평양학의 지평을 열기 위한, 작지만 그 마음만큼

은 야심찬 첫걸음이다. 집필진들은 단순히 다양한 시각에서 평양을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평양 연구, 평양학이라는 학술적 공감대를 서로 나누며 발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여전히 작은 발걸음이지만 그 걸음걸음이 길이 되고 더 큰 학문

의 줄기가 되길 기원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출간되는데 도움을 주신 어려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

고 싶다. 먼저, 이 책의 출간을 기획하고 1년여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서

울시립대 학교 서울학연구소 양승우 소장님과 평양학연구센터 조유현 센터장님

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평양 연구 총서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맡아주신 민속원

홍종화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정성을 다해 디자인과 편집을 진행해주신 민속원 식구들에게도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자, 이제 평양, 그 미지의 도시로 여행을 떠나보자.

정일영-오창은-채수란 우 정은이

허선혜 우 박소혜-이민규 드림 2022년 8월

차 례

발간사

3

?1010卽6

4

참고문헌

292

I

평양의 공간

정일영 I

김정은시대의도시, 평양을 읽다—14

1. 김정은이 꿈꾸는 평양으로 15

么 북한의 도시, 파괴로부터 사회주의 개조로

19

3, 김정은 시대의 평양, ‘건설의 대부흥’선언

28

4, 평양,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꿈37

5, 코로나 시대, 평양은 안녕한가요49

오창은 I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50 1, 파괴와 건설, 평양의 도시 재건축51 2, 미래과학자거리의 이중성58 3, 평양과 농촌, 공간의 충돌66

4, 노동계급의 공간에 대한 욕망과 평양중심주의75

5, 평양공간과人)회적 불평등84

II

평양의 경제

채수란 I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그 92

1. 북한판‘기생충’? 북한의 계층별 삶93

么 평양종합시장‘의 이모저모

98

3, 평양시민의 계층별 월 소득105

4, 평양시민의 소비가 궁금하다.112

5, 과연 북한판‘기생충’의 삶은 지속될까?

123

정은이

I 평 양의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느 126

1. 부동산을 통해 평양을 보자127

么 평양에도 부동산 바람이?130 江 부동산 건설과동인

138

4 부동산을 통해 본 평양의 미 래156

III 평양의 문화

허선혜 I 문화재를통해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162

1, 북한 이데올로기의 투영체, 평양163

2,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오]‘문화재 167 3, 북한이 바라본 평양의 역사적 정체성

4 평양은 민족의 성지일까, 성지화된 도시일까?

173 194

박소혜 I 드라마속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196

1,평양의 자본주의적 이미지, 그 실체는?

197

2, 평양의 주거공간과 소비문화의 전개

201

3, 김정은 시기 평양의 주거공간 206

4 평양 초고층살림집 주거소비문화의 특징 5, 변화의 잠재력과 가능성

216 228

IV 서울-평양 교류

이민규 I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 래 — 234

1, 다시 찾아온 서울 - 평양 교류의 기회235 2, 서울과 평양이 맺어온 과거의 흔적237

3, 서울 - 평양 교류 재개의 냉혹한 현실254

4 서울 - 평양 교류의 미래 징 검다리 놓기269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정일영.「북한에서 전시展示적 도시 의 건설과 한계에 관한 연구」(『현대북한연구4 제19권 제1

호, 2016)를 수정 .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정일영

1. 김정은이 꿈꾸는 평양으로

평양에는 여느 국가의 수도와 다른 특별함이 있다. 평양은 ‘혁명의 수도’이

자 아무나 살 수도 없고 방문하는 것조차 제한된 도시 이다. 평양은 또한 북한

체제의 ‘심장’으로 가장 충성도가 높은 ‘성분’ 좋은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성 역 에 가깝다고나 할까? 북한은 도시의 팽창을 자본주의적 폐해로 비난하며 ‘작

은 도시 ’를 추구해 왔지만 평양만은 국제도시로 ‘거창하게 ’ 건설해 왔다. 하지만 평양도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를 비켜 가지 못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김일성 주석의 죽음과 함께 식량난은 북한의 모든 것을 바꿔나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신음하던 평양은 새롭게 정

권을 이양받은 김정은 시대에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바로 ‘사회주의 선경’으로 평양을 재건하는 거창한 사업이다.

김정은 시대의 평양은 건설의 붐과 함께 시작됐다. 여전히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건설 붐이 일어났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김정 은 시대의 평양은 ‘공사중’이다. 연일 계속되는 평양의 건설 붐은 아버지 김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 정일영

15

정일 국방위원장의 약속, ‘강성대국’ 건설의 약속과 무관하지 않다. 김정일

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2012)에 강성대국 건설, 특히 ‘경제강국’ 건설을 굶 주린 북한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그 약속의 해를 보지 못하고 2011년 12월 사망하게 된다. 새롭게 북한의 지도자로 등장한 김정은은 강성대국 건설 이라는 아버 지 의 약속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경제강국’ 건설은 말 그대로 꿈과 같은 구호였다. 그렇게 김정은은 평양을 ‘먼저 온’사회주의 강성대국, 사회주의 선경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이 글은 김정은 위원장이 꿈꾸는 ‘사회주의 선경’이 평양을 전시展示적 도

시로 건설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어떤 한계에 부딪히고 있 는지 분석하였다. 특히, 김정은 시대 에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설 붐’과 함께 유희오락시설1을 중심으로 김정은 시대에 도시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

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북한은 2012년 김정은 시대의 국토건설전략을 담은 노작을 발표하고 국 토건설의 새로운 부흥을 강조해 왔다.1 2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2012년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대단위 주택건설과 유희시설의 건설이 추진되었으며 도시 의 공원화와 산림복구사업이 강조되었다. 평양뿐만 아니라 도소재지를 중

심으로 빌딩 외관을 현대화하고 도로와 그 주변에 대한 미화사업을 확대하

1

북한에서는 “근로자들의 휴식과 오락을 위한 놀이시설이 모여있는 곳’’을 유희장이라 한

다. 유희장은 큰 공원의 유희구와 소공원, 아동공원들로 이루어진다.『조선말사전』, 평 양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0, 1629쪽.

이 연구에서 ‘유희오락시설’은 북한이 도시의 공원을 중심으로 건설한 유희오락시설뿐 만 아니라 ‘휴양시설 ’과 ‘체육시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2

김정은,「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丄, ''로동신문』, 2012년 5월 9일자, 1~4면.

16 평양오디세이

고 있으며 유희장과 롤러스케 이트장을 신설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평양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단위 건설사업은 사회주의 강성 국가 건설의 징표로 선전되고 있으며 2012년 이후 김정은이 수행하는 현지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로 강조되고 있다. 북한에서 건설된 도시의 성격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 김정은 시대 에 평양을 중심으로 건

설되고 있는 유희오락시설의 정치 우 사회적 목적은 무엇이며 그 한계는 무

엇인가? 이것이 필자가 이 글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의 도시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크게 세 가지 관점에

서 진행되어 왔다. 첫째, 북한의 공간(도시)구조와 사회(구성원)의 관계 에 관 한 분석,3 둘째,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도시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4 셋

3

북한의 공간(도시)구조와 사회(구성원)의 관계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임형백,「사회 주의 북한 공간구조의 자본주의 공간구조로의 변화 전망-^한내부요인과 동북아공간 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丄『한국정책 연구』제10권 1호, 2010, 이와 관련한 연구로는 전상인 외, ''국가 권력과 공간一북한의 수도계획」『국토계획』제 50권 1호, 2015; 정창무,「북한의 도시, 인구와주택」『대한토목학회지』제60권 3호, 2012

등이 있다. 4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도시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고유환 외, 厂함흥 과 평성一공간 우 일상 우 정치의 도시사규 파주 : 한울아카데미, 2014; 고유환 오],『사회주 의 도시와 북한一도시사연구방법 山 파주 : 한울아카데미, 2013; 최완규(편),『북한 도시 의 형성과 발전% 파주 : 한울아카데미, 2004; 최완규(편),『북한 도시의 위기와 변화』, 파

주 : 한울아카데미, 2006; 최완규(편),『북한 ‘도시정치’의 발전과 체제 변화% 파주 : 한울

아카데미, 2007, 이 외에도 북한의 도시연구로는 최봉대,「북한의 도시 연구一미시적 비교의 문제틀 모 색과 방법적 보완 문제丄『현대북한연구』제16권 1호, 2013; 임동우,「평양의 도시계획」 『환경논총』제52권, 2013; 김기혁,「도로 지명을 통해 본 평양시의 도시 구조 변화 연

구」,『문화역사지리』제26권 3호, 2014; 박희진,「함흥시 도시공간의 지배구조와 탈주체 의 삶느『북한연구학회보』제17권 2호, 2013; 박희진,「북한 평성시의 공간전략과 도시 성 변화一위 성도시 에서 개방도시 에로」『북한연구학회 동계 학술발표논문집 으 2013 등이

있다.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정일영

17

평양 중심부의 김일성 공서장 전경 @010(=510010

째, 북한의 도시개발과 한반도적 개발협력에 관한 연구5가 그것이다. 북한 의 도시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시각에서 꾸준히 진행되어온 반면,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이후 북한의 도시에 관한 연구, 특히 최근 평양에서 진행되 고 있는 도시 건설 의 특징 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 글은 김정은 시대에 추진되고 있는 도시건설의 성격을 분석함에 있어

5

북한의 도시개발 및 한반도적 시각에서의 개발협력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이상준 외,『통일기반 강화를 위한 북한 거점도시 발전모형과 남북협력 실천전략 연구』, 안양: 국토연구원, 2014; 이상준 외,「통일 한반도 시대에 대비한 북한 주요 거점의 개발잠재 력과 정책과제 II丄『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소 2012; 국토연구원,「통일 한반도 시대에 대비한 북한 주요 거점의 개발잠재력과 정책과제 I」『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 소 2011; 이 석기 외,「북한의 산업 발전 잠재력과 남북협력 과제一경제특구, 경공업 및 II' 산업을 중 심으로丄『산업연구원 연구보고서丄 2013; 조영진,『한반도 통일토지정책丄 서울 : (주) 중앙경제, 1999; 박희진,「김정은 체제의 도시와 도시건설一개방, 관광, 상품화」,『평화 학연구』제16권 1호, 2015 등이 있다.

18 평양 오디세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적용하였다. 첫째, 이 연구는 ‘전시展示적 공간’의 개념 을 활용하여 북한의 국토건설전략의 특징과 한계를 분석하였다. 여기서 도

시공간의 전시展示적 성격이란 북한이 도시를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주민들 에게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함을 의미한다.6 둘째, 북한의 문헌

자료를 활용하였다. 특히 평양에서 ‘ 건설 붐’이 일어난 2010년부터 2015년 까지 북한의 신년사와「로동신문丄「조선중앙년감丄「조선건축」등 공간자

료를 분석하고 김정일정권 말기로부터 김정은 정권의 등장 이후 도시건설 전략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셋째, 평양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대단위 건설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 사회의 반응, 즉 북한 주민의 인식을

분석하기 위해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우리는 종종 북한의 경제위기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의 소식과 평양의 고층 아파트 거리, 그리고 놀이시설들을 이용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을 함

께 접하게 된다. 김정은 시대 평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본 모습은 어 떤 것일까? 이제 북한의 도시로 여행을 떠나보자.

2, 북한의 도시, 파괴로부터 사회주의 개조로

1) 한국전쟁, 파괴와 창조의 변곡점

북한의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도시로부

6

임형백,「사회주의 북한 공간구조의 자본주의 공간구조로의 변화 전망一북한내부요인 과 동북아공간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丄『한국정책 연구』제10권 1호, 2010, 285~286쪽.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정일영

19

터 시작해야 한다. 전쟁은 파괴로부터 새로운 도시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전국토를 파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북한의 국토는 미공군의 폭격에 그대로 노 출되어 있었다. 아래는 당시 소련의 군사 보고로, 북한지 역에서 미공군의

공중폭격이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조선에서 활동하는 미 제5공군은 다양한 기종의 비행기 2,437대를 보유

하고 있습니다. … 비행기들은 집단이나 부대 전체 단위 혹은 단독으로 활 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북조선의 78개 도시를 대규모 공습하라는 클라크의

명령과 관련하여, 미 공군은 작전수행시 30대, 50대 심지어는 100대의 비행 기를 동시에 출격시켜 공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폭탄투하 밀도는 도로

0.50당 20발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부1분의 폭탄은 4501組, 2501아, 1001組 입니다.7

북한은 전쟁 기간 8,700여 개의 공장, 기업소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보고하였다. 북한은 구체적으로 2,800만示에 준하는 60여만 호의 살림집, 5,000여 개소의 학교, 1,000여 개소의 병원과 진료소, 260여 개소의 극장 및 영화관, 670여 개소의 과학연구기관 및 도서관, 그리고 수천개소의 문화후

생시설들이 파괴되었다고 주장하였다. 8 한국전쟁 당시 미공군의 공중폭격은 북한의 주요 도시와 시설을 붕괴시

7

국사편찬위원회(편역),『중국인민해방군 총군사고문이 소련군 총참모부 부참모장에게 보낸 조선에서의 전투정보 보고서, 140, 1/00737, 1952년 10월 20일자」,『한국전쟁, 문서 와 자료, 1950년~53년나 과천 : 국사편찬위원히, 2006, 603~610쪽.

8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조선전사』27, 평양 :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1981,175쪽.

20 평양오디세이

켰다. 그러나 매우 역설적으로 미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국토는 일본의 식 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그 위에 북한식 사회주의 도시화를 진행하는 길을 터 주었다., 김일성은 한반도 통일을 가정하여 미루어온 사회주의적 개조작업

을 전후복구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 하였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적 개조 과정을 일본제국주의시대의 비문명으로부터 현대적 문명으로 대치 시키고 있다.

이제 야만들의 폭격에 의하여 파괴된 도시와읍 및 공장지대들을 복구 건 설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과거 일본제국주의시대의 비문명적 이며 특권계급

의 이기적 목적에 부합되였던 퇴폐한 도시건설방식을 배격하고 근로인민의 생활에 편리하며 현대적 문명생활에 적합하도록 도시와 읍들을 건설하여야

하겠습니다.9 1011

이와 같이 북한에서 전후복구사업은 사회주의적 개조라는 거시적 관점

에서 진행되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평양을 비롯한 도시들을 ‘문명한'현대 적 도시’로 건설하는 사업에 착수하게 된다.11

9

차문석,「문헌자료를 통해서 본 북한의 도시 역사」,『사회주의 도시와 북한一도시사연 구방법』, 파주 : 한울아카데미, 2013, 262쪽.

10

김일성, 厂모든 것을 전후 인민경제복구 발전을 위하여(1953년 8월 5일자)」,『김일성 선 집』제4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60, 25쪽.

11

김일성, 厂형제국가 인민들의 고귀한 국제주의적 원조(1953년 12월 20일자)」, 丁김일성 선 집』제4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60, 63쪽.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평양을 읽다-정일영 21

2) 사회주의 계획도시의 건설

우리는 종종 역사 깊은 도시의 개발이 어 렵다고 말한다. 왜 일까?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 에서 오랜 시간 도시를 지켜 온 흔적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

다. 반대로 한국전쟁은 파괴된 북한의 도시에서 새로운 설계, 즉 사회주의 적 개조를 가능케 하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도시건설의 이념은 무엇일까? 첫째, 사회주의적 도시 건설은 기본적으로 도시와 농촌의 통합내지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마르

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도시와 농촌을 대립개념으로 보고 도시 의 자본가들이 농촌의 농민과 노동자들을 착취한다고 비판했다. 도시와 농

촌은 종속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인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 도시는 반反 대도시적 이념을 추구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자 본주의 도시악惡의 구조적 모순이 무계획적인 도시의 성장 속에서 자본가

들의 이기심만충족시킨 결과라 비판하였다소그 이와 같이 사회주의 도시의 성격은 자본주의 도시화의 문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산업화가 고도화될수록 도시는 농촌의 노동력을 착

취하게 되고 도시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간의 갈등구조가 확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에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 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으며 이는 도시의 규모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이행되

었다.12 13 그렇다면 전후 북한에서 국토건설, 특히 파괴된 도시의 재건은 어떻

게 진행되었을까?

12

김원,『사회주의 도시계획 丄 서울 : 보성각, 2004, 32~34쪽.

13

임동우,「사회주의 도시의 교훈」, 임동우 - 라파엘 루나(편),『북한 도시 읽기丄 서울 : 담 디, 2014, 202~203쪽.

22 평양 오디세이

전후 북한은 도시와 농촌 간의 균형발전이라는 국토개발의 원칙 아래 도

시화를 억제하는 개발정책을 추진했다. 도시가 지나치게 팽창하면서 상하

수도를 놓기 힘들고 교통이 번잡해지는 등 불편과 결함이 발생한다는 것이 다. 북한은 소도시 형태의 도시를 여러 곳에 건설함으로써 지역적 차이, 도

시와 농촌의 차이를 해소할 뿐 아니라 지방의 모든 경제적 잠재력을 합리적 으로 동원, 이용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하였다.14

도시 규모를 크게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도시 규모를 크게하며 도

시에 인구를 집중시키는 것은 18~19세기에 하던 낡은 자본주의적 방법입니 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으며 도시에 비하여 농

촌이 매우 뒤떨어졌습니다. 지금 일부 일꾼들은 도시의 규모를 될수록 크게 흐]려고하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도시의 규모가크면 여러 가

지 면에서 불편합니다. 상하수도를 놓기도 힘들고 공급사업을 하기도 어려 우며 교통도 매우 번잡하여집니다.1516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도시와 마을은 중앙에 위치한 정치행정기관을 중

심으로 도로와 철도를 따라 도시공간이 확장되는 단핵 구조를 형 성하였 다. 16 북한의 도시는 한발 더 나아가 사회주의 도시의 전형으로부터 심화된

자생구조를 갖추도록 계획되었다. 북한의 도시는 단순히 주민들이 생활권

이나 소비시설만이 아니라 생산영역, 즉 산업지대와 농경 지역도 함께 존재

14

리화선, 丁조선건축사丄 III,서울 : 발언, 1993, 49쪽.

15

김일성,「국토관리사업을 강화할데 대하여(1964년 2월 10일자)」,「김일성 저작집』18권,

16

8&1161나7116呂6,V,(가131건(艾6丘511仁5 (9/’^05(-50^3115( 沙/方07 #/757乞!/777才/7;9/7 111 乃35( 0=1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173쪽. 日』!'0^6, 060)0111*031,761.49 1^0.1,1999,

8,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23

하는 하나의 자생 단위, 독립적인 세포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 의 도시는 도시 영역과 농촌영 역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 에서 특징적 이다. 농

촌은 단순히 도시의 식생활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화를 억제하는 역 할 또한 담당하는 것이다.17

북한의 도시는 자기 완결적 체계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단핵의 구 조하에 내적 통합력과 응집력을 도모하기 위한 공간전략을 구사하고 있다.1819 20

이와 같이 사회주의적 이념이 추구하는 단핵 구조를 넘어선 도시의 자생적

구조는 휴전체제의 특성, 즉 군사적 전략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1970년대를 전후하여 김일성을 우상화한 상징공간 을 도시와 마을의 중앙에 배치하는 ‘주체형의 도시’를 건설하였다.1’ 이는

사회주의적 일반성에, 한반도 분단체제의 구조, 그리고 김 일성의 우상화라 는 북한의 특수성이 종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3) 도시건설의 ‘전시展示적 ’상징체계

모든 권력은 자체의 존속을 위해 근거를 마련하고 물질적, 감정적, 이상 적인 동기 에 호소하게 된다. 특히 정치권력의 정당성 강화를 위해 수행되는

상징과 의례는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전통이나 정통이념, 즉 이데 올로기로 구성된다 끼 북한의 정치, 사상, 군사 등 국가구성의 모든 부분에

17

임동우,『사회주의 도시의 교훈」, 임동우 - 라파엘 루나(편),『북한 도시 읽기』, 서울 : 담 디, 2014, 199~202쪽.

18

박희진,「북한 평성시의 공간전략과 도시성 변화一위성도시에서 개방도시에로」,『북한 연구학회 동계학술발표논문집그 2013, 229쪽.

19

리화선,『조선건축사』III,서울 : 발언, 1993, 29쪽.

20

조은희,「북한의 상징적 공간과 국가의례」, 임동우 . 라파엘 루나(편),『북한 도시 읽기,

24 평양 오디세이

서 그 기원은 항일혁명의 전통으로부터 시작되며 김일성에 의해 완성되었 다. 북한은 전후 한반도 휴전체제하에서 항일, 항미의 역사와 김일성의 우

상화를 도시 건설 에 투영한 ‘전시展示적 ’ 상징 체 계를 구축하게 된다.

북한 도시의 상징공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광장의 방향성으로 나

타나는 도시의 축, 공공건물 등으로 나타나는 대규모 상징 건축, 그리고 김 일성동상이나 체제의 선전을 위한 조형물 등이다.21 도시의 입구와 중심을

연결하는 가로를 도시의 구성축으로 하며, 이 축을 근거로 상업 및 서비스 기능, 문화기능, 사상교양기능을 도시의 핵심지역에 배치하였다.22 북한에서 김일성 동상은 “도시중심의 가장 경치 아름다운 높은 언덕 위

서울 : 담디, 2014, 94쪽. 21

임동우 우 I기유00,「북한 주요 도시의 공간 구조와 다이어그램」,『함흥과 평성一공간 우 일상 우 정치의 도시사』, 파주 : 한울아카데미, 2014, 21쪽.

22

김원,『사회주의 도시계획』, 서울 : 보성각, 2004, 241쪽.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25

에 혹은 중심광장”에 세워졌다.23 김일성 동상과 함께 사회주의 도시를 상

징하는 도시공간은 광장이다. 광장의 주변은 사회주의 성격이 가미된 공공

건물이 들어서 구성원들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 교양의 공간으로 활용 되었다.24

도시중심부에는 해당 사회의 지도사상과 지도이념, 계급적 성격이 집중

적으로 반영된다. 사회의 계급적 성격이 달라지지 않는 한 도시중심부의 중 심주제는 바뀌 여질 수 없으며 바뀌 여져서는 안된다.25 평양시 도시중심부의

건축미학적 특징은 …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과 대원수님

들의 품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존엄 높고 긍지로운 인민으로 부러움 없이 살 며 일하는 우리 인민의 행복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26

이와 같이 수령을 둘러싼 ‘인민의 행복상’은 도시의 전시展示적 성격의 핵

심을 차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평양의 중심부인 김일성 광장에서 중요 경 축일에 맞춰 진행되는 대규모의 국가행사를 통해 인민들은 이러한 상징적

행사 속에 주인공 혹은 관객으로 참여하게 된다. 북한은 이러한 상징적 국 가의 례를 통해 사회공동체를 수령과 국가(당), 인민들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믿음체계로 재생산하였다.27

23

리화선,『조선건축사』III,서울 : 발언, 1993, 37쪽.

24

김일성, ''건설사업에서의 혁신을 위하여(1956년 1월 30일자)」,『김일성 선집』제4권, 평 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60, 365~367쪽.

25

김정일,『건축예술론丄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117쪽.

26

김혜선,「사회주의문명도시의 본보기 평양시중심부의 건축미학적 특징」,『조선건축』 2014년 3호, 2014, 10~11쪽.

27

전상인 외,「국가권력과공간一북한의 수도계획」,『국토계획』제50권 1호, 2015,34쪽. 탈북자 인터뷰 2(청진출신).

26 평양 오디세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북한 주민들《X연합으

전후 북한의 도시에 건설된 유희오락시설은 ‘로동계급’의 휴식터, 그리고

교양의 장으로 선전되었다. 이 시기 건설된 유희오락시설은 오락적 성격 보 다는 휴식공간으로서 공원, 동 우 식물원이 주를 이루었다. 도시의 공원과 동 - 식물원 등은 청소년들에게 자연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을 주며 그들에게

자기 조국과 향토를 사랑하는 정신을 길러주는 학교로도 강조되었다.

공원과 유원지는 근로자들의 좋은 휴식터 일 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자 연에 대한 산 지식을 주며 그들에게 자기 조국과 향토를 사랑하는 정신을 길

러주는 훌륭한 학교로도 됩니다. 인민들은 잘 꾸려진 공원과 동물원, 식물원 에서 흥겹게 휴식하면서 우리나라에 어떤 동물들과 식물들이 있는가를 실물

을 통하여 배울 수 있으며 그 과정 에서 자기 나라의 자연과 향토를 사랑하는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27

마음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2829

전후 북한에서 건설된 도시는 수령체제의 상징 공간이자 ‘인민의 행복상’ 이 형상화된 전시展示적 공간이었다. 다만 1990년대 경제위기 속에서 도시

는 또 다른 전시展示적 상징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1994년 김 일성의 사

망 이후 북한의 도시는 소위 ‘수령영생위업 ’의 상징 건축물들이 들어섰으며, 김정일 또한 2011년 사망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

신다’는 구호건축물이 각 도시에 건설되었다. 북한은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과정 에서 두 전대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통치 기제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2,

3, 김정은 시대의 평양, ‘건설의 대부흥’ 선언

1) 주체 100년대 ‘건설의 대부흥기’로

이제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이야기해보자. 선대인 김정일 시대의 평양은 어떤 모습이었나? 시멘트를 그대로 드러낸 건물들, 밤이 되면 무거 운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한 어둠이 도시를 감쌌다. 그랬던 평양이 김정은

시대 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28

김일성, 厂도시경영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1962년 9월 5일자)」, ''김일성 저작집丄 16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338쪽.

29

황재평,「수령영생위업실현에 이바지하는 건축의 세계적모범을 창조한 위대한 업적」, 『조선건축』2006년 1호, 2006, 4~5쪽.

28 평양 오디세이

2이5년 완공된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의 모습 @느연합으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29

김정은 시대의 시작과 함께 북한은 2012년과 2013년 국토건설전략을 담 은 노작과 서한을 발표하게 된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27일 ‘당, 국가경제

기관, 근로단체 책임 일군들과의 담화’ 형식으로 노작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데 대하여”를

발표하였다.30 북한은 또한 건국 이후 처음으로 2013년 12월 8일부터 14일 까지 ‘건설부문일군대강습’을 진행하였다. 김정은은 건설부문 일군 대강습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2012년 발표한 노작에서 강조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에서 건설 부문의 역할을 재차 강조하게 된다. 31

김정은은 건설부문 일군 대강습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에 있어 건설부문이 ‘혁신의 봉화’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김정은은 국토건설사업을 “사회주의 강성국가, 인민의

낙원을 일떠세우는 만년대계의 애국위업”이며 “나라의 경제적 위력과 문명

수준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건설을 통 해 인민들이 날로 변모되는 부강하고 문명한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크나큰

긍지’와 ‘혁명적 자부심’을 느끼게 되며 ‘애국의 마음’을 더 깊이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32

건설에서 오늘의 전성기를 대번영기로 더욱 고조시켜 선군 조선의 새로

운 건설력사를 창조하고 건설부문에서의 혁신의 봉화가 사회주의 건설의 모

30

이 노작은 동년 5월 8일 ‘국토관리총동원운동열성자대회 ’ 참가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김 정은,「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데 대하여」,『로동신문으 2012년 5월 9일자, 1~4면

31

김정은,「당의 주체적건축사상을 철저히 구현하여 건설에서 대번영기를 열어나가자」, 「로동신문心 2013년 12월 9일자, 3~4면

32

위의 책, 3~4면

30 평양오디세이

든 전선에서 대비약의 불길로 세차게 타번지게 하여 조국번영의 새시대를 펼쳐나가려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33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아 연이어 발표된 김정은의 노작과

서한은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과 국토건설 사업를 결부시킴으로써 향후 전개될 대규모 건설사업의 의미를 강조한 사전 포석이었다. 건설부문을 봉

화로 ‘주체 1새0년대 ’에 ‘건설의 최전성기, 대번영기’를 열어가자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 주요 거 리(고층아파트) 건설 현황

건설시기

거리(고층아파트) 건설 현황

2012년

창전거리(6월)

2013년

은하과학자거리(야월), 체육인살림집(10월), 김일성대 교육자살림집(10월)

2014년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로동자합숙(5월), 위성과학자주택지구(1아월), 김책공대 교육자 살림집 (10월)

2015년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 살림집(7월), 미래과학자거리(10월)

2017년

여명거리(4월)

북한『로동신문」, 2012년~2017년에서 정리.

김정은 시대에 일어난 건설의 붐은 평양에 집중되어 있다. 평양은 이 건

설 붐의 주체이자 상징 이라 할 수 있다.

평양시를 주체 조선의 수도, 선군 문화의 중심지답게 더욱, 웅장하고 풍 치 수려한 도시로 만들며 모든 도시, 시, 군들에서 거리와 마을, 조국산천을 사회주의 선경으로 꾸리고 인민들을 위한 현대 적 인 문화후생시설과 공원,

33

앞의 책, 3~4면.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 정일영 31

유원지들을 더 많이 건설하여 우리 인민들이 새시대의 문명한 생활을 마음 껏 누리도록 하여야 합니다.34

김정은은 “평양시를 본보기로 잘 꾸리고 지방 도시들도 그렇게 꾸려 나

라의 면모를 일신시켜나가면 온 나라를 사회주의 선경으로 전변”시킬 것을 강조하였다.35 평양시를 사회주의 선경의 모델로 건설하고 이를 지방으로 전파시킴으로써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2) 유희오락시설의 건설

김정은 체제에서 평양을 ‘사회주의 선경’의 모델로 형상화하는 일은 대단 위 거리와 고층아파트를 건설하는 작업과 함께 유희오락시설의 건설로 귀

결되었다. 이렇게 김정은 시대는 가히 유희오락시설, 즉 놀이시설 건설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김정 일과 김정은의 현지지도 현 황을 보면 2010년 이후, 특히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유희시설에 대한 현 지지도가 확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부터 2013년간 진행 된 현지 지 도의 현황을 정 리하면 아래와 같다.

34

최웅술,『선편리성, 후미학성이 훌륭히 구현된 문수물놀이장丄, ''조선건축丄 2014년 1호, 2014, 8쪽, 재인용.

35

김정은,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 丄, 匕로동신문』2012년 5월 9일자, 1~4면.

32 평양오디세이

2010년~2013년 현지지도 현황

义— \



군부대

유희 시설

농수축산 시설

기타

총 방문지

1

10

14

91

3

3

14

18

86

1

5

13

1

18

75

12

9

25

6

23

129

산업 시설

군사

산업

2010년

37

12

5

12

2011년

32

15

4

2012년

5

32

2013년

18

36

건설

북한『조선중앙년감』, 2011년~2014년에서 정리.

김정일 시기와 김정은 시기의 현지 지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

나는 유희오락시설에 관한 현지 지도라 할 수 있다. 김정일 정권말기 유희 오락시설에 대한 현지 지도는 2010년 1건과 2011년 3건뿐이었으나,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이후 2012년 13건, 2013년 25건으로 증가하였다.

북한은 새롭게 재건된 유희오락시설을 ‘사회주의 선경’에서 누리는 ‘문명 한 생활’로 형상화하고 있다. 평양은 사회주의 선경의 모델, 즉 김정은 시대 를 대표하는 전시展示적 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유희

오락시설들이 건설되었을까?

북한은 2012년 이후 개선청년공원유희장(5월), 릉라인민유원지(7월), 평양 민속공원(9월), 만경대유희장과 대성산유희장(10월), 류경원, 통일거리운동쎈 터(10월), 인민야외빙상장(11월), 로라스케트장(11월) 등 유희오락시설을 대규

모로 개건 및 준공함으로써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징표’로 선전선동하였다.

2013년에는 대동강호, 해당화관을 개업(4월)하고 금수산 태양궁전광장 공 원화(5월), 릉라인민체육공원(5월), 릉라립체률동영화관(9월), 평양체육관(10

월), 문수물놀이장(10월), 미 림승마구락부(10월)를 준공하였다. 2014년에는 소위 ‘마식령 속도’로 강조된 마식령 스키장(1월), 메아리사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정일영 33

2013년 건설된 문수물놀이장의 모습 @느다11此61310(:10

격관(3월), 청춘거리 체육촌(3월), 5월1일경기장(10월)을 개건 및 준공하였다.

2016년에는 중앙동물원 개 건하고 자연박물관을 새롭게 건설하였다. 북한 은 평양과 함께 전국의 주요 도시 에 유희장과 몰놀이장, ‘로라스케트장’을

개건하고 있다. 북한의 유희오락시설 중 김정은 시대에 건설된 시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34 평양오디세이

김정은 시대 주요 유희오락시설의 건설 현황

기타 휴양시설

건설시기

유희오락시설

2012년

개선 청년공원유희장(5월), 릉라인민유원 지(7월), 평양민속공원(야월), 만경대유회장 과 대성산유희장(10월), 류경원, 통일거리 운동쎈터(10월), 인민야외빙상장(11월), 로 라스케트장(11 월)

2013년

대동강호, 해당화관(4월),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공원화(5월), 릉라인민체육공원(5월), 릉라립체률동영화관(9월), 평양체육관(10월), 문수물놀이장(10월), 미 림승마구락(10월)

2014년

마식령 스키장(1월), 메아라사격관(3월), 청 춘거리 체육촌(3월), 5월1일경기장 개건 (10월)

송도원국제소년야 영소 (5월 ), 연풍과학자 휴양소(10월), 평양육。1원, 애육원(10월)

2015년

-

원산육아원, 애육원(6월), 평양국제비행장 역사(7월), 평양양로원(8월)

2016년

중앙동물원 개건 및 자연박물관 건설(7월)

-

북한1'노동신문』, 2012년~2016년에서 정리.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2012년 이후 현재까지 유희오락시설에 관한『로동

신문』의 연도별 보도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 유희오락시설에 관한 기사는 총 54건으로 이 중 20건이 평양에 새롭게 건설, 혹은 개건 중에

있는 유희오락시설에 대한 기사이며 2건은 지방의 건설사업에 관한 내용 의 기사이었으며 수림화, 원림화 사업은 7건이 보도되었다. 2012년부터 유 희오락시설의 건설과 개건 사업이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36

36

「숭고한 인민사랑에 떠받들려 솟아난 선군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一류경원과 인민야외

빙상장, 로라스케트장 준공식 진행」,「로동신문으 2012년 11월 10일자, 1면. 「전국각지에서 체육시설 개건 및 건설공사 적극 추진」,『로동신문心 2012년 9월 20일자,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 —정일영 35

2013년 유희오락시설에 관한「로동신문!의 기사는 총 102건으로 이중 28

건이 마식령스키장 건설에 관한 기사였으며 미림승마구락부 건설에 관한 기사가 11건이었다. 2014년 유희오락시설에 관한 로동신문의 기사는 총 79

건이었다. 2014년에는 유희오락시설 뿐만 아니라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관 한 기사가 21건으로 관심 사항으로 떠올랐던 시기 였다. 2015년 유희오락시 설에 관한 로동신문의 기사는 총 47건이었으며 특히 이 시기 육아원과 애육

원, 그리고 양로원의 건설에 관한 기사가 11건으로 강조되었다.37

이와 같이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북한은 유희오락시설을 ‘속도전’으로 건

설하며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평양에서 먼저 건설되었다고, ‘사회주의 부귀 영화’를 누릴 날이 멀지 않았다고 인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다.38 그렇다면 대

규모로 건설된 유희오락시설이 북한 도시의 전시展示적 성격을 어떻게 변화 시키고 있을까? 이러한 북한 당국의 선전선동이 실제로 북한 주민들에게 어

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4면

「많은 문화휴식터 건설, 개건보수一전국각지에서」,「로동신문유 2012년 11월 4일자, 4면 37

「모든 도시와 마을, 거리들이 사철푸른 잔디로 뒤덮이게 하자」,『로동신문개 2013년 5월 20일자, 4면.

38

1^01*63 70(137, “ 미3仁0 05 2乂0广유!'0=111융 I가63801*6, ” /石9아% 7*3乂, 2012~7,砂아. 43; “1116

日1日8 旧6引 (2011168 丁1116,” 7^9*3 7*3호, 2014“8, 目砂. 28으

36 평양오디세이

4, 평양,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꿈

1)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하자!

김정은 시대에 강조된 ‘건설의 대부흥’은 평양을 ‘사회주의 선경’, ‘사회주

의 지상낙원’의 모델로 건설하는 작업이었다. 북한은 평양을 혁명적 수령관 이 선 도시,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의 모델로 제시하고 이를 선전선동의 공

간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3’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한평생 가꾸어오신 아름다운 조국 산천을 훌륭하

고 문명한 사회주의 선경으로, 인민의 리상과 행복이 참답게 꽃펴나는 사회 주의 지상락원으로 전변시키려는 것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결심이고

의지이다. …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국토건설의 새 력사가 펼쳐지고 사회주의 문명국건설의 활로가 열려지게 되 었다. 창전거리와 릉라인민유원지, 류경원, 인민야외빙상장을 비롯한 기념 비적 창조물들이 일떠서고 만경대유희장과 대성산유회장을 비롯하여 평양

시안의 공원과 유원지들, 보통강과 합장강이 일신됨으로써 수도 평양이 선

군 문화의 중심지답게 더욱 변모된 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대담한 구상과

발기, 정력적인 령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39 40

39

40

김정은,「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로동신문』, 2012년 5월 9일자, 1~4면

「온 나라를 선군문화가 구현된 사회주의선경으로 전변시키자』『로동신문』, 2013년 4

월 8일자, 1면.

평양의 공간

김정은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37

김정은 시대에 평양을 중심으로 건설된 유희오락시설들은 사회주의 부

귀 영화가 현실에 반영된 현장으로 선전되었다. 김정은은 2012년 7월 능라 인민유원지 준공식 에 참석해 직접 놀이기구를 타며 현지지도 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부귀 영화를 누리는 우리 인민의 행복상이 한껏 비낀 릉라곱등

어관은 위대한 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인민 사랑이 떠올린 고귀 한 재부이다. … 롱라곱등어관은 절세위인들의 인민 사랑의 고귀한 결정체

이다! 바로 이것이 절세위인들의 은정속에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

리는 우리 인민이 릉라곱등어관에서 누구나 심장에 세 기는 숭고한 사상감정

이다.41

북한은 또한 국가적 성과를 얻은 집단을 평양으로 초청하여 유희오락시 설을 즐기도록 하고 사회주의 부귀 영화를 먼저 맛보았다고 선전하였다. 일

례로 ‘인공지구위성 ’의 발사에 기 여한 과학자 등을 평양으로 초청해 이들이

평양의 유희오락시설을 즐기며 즐거워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식이다.41 42

당의 현명한 령도 밑에 오늘 우리나라에는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이 문화정서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온갖 조건이 마련되여 있다. 우리나라

41

「우리 인민에게 사회주의부귀 영화를 안겨주시려고」,『로동신문』, 2012년 8월 16일자, 2면

42

「인공지구위성발사성공에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 로동자, 일군들一류경원과 인민야외 빙상장 참관」,『로동신문』, 2012년 12월 28일자, 1면;「인공지구위성발사성공에 기여 한 과학자, 기술자, 로동자, 일군들一릉라곱등어관 참관, 경희극〈사랑〉관람」,『로동신 문유 2012년 12월 29일자, 1면;「인공지구위성발사성공에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 로동

자, 일군들一통일거 리운동쎈터 참관」,『로동신문유 2012년 12월 31일자, 3면.

38 평양오디세이

는 이르는 곳 마다에 극장, 영화관, 체육관, 야영소, 휴양소, 정양소오 공원, 유

원지, 유희장을 비롯한 문화시설이 꾸려져 있다.4344

김정은 시대에 진행된 유희오락시설의 건설은 2015년에 평양에 육아원 과 애육원, 그리고 양로원을 건설하는 등 사회봉사 시설의 개건으로 확장되

었다 “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 주민들은 유희오락시설을 즐기는 주체라기

보다 동원과 거부할 수 없는 모금의 대상이었다.

규모가 큰 유희오락시설을 건설할 때, 국가 - 도 - 시로 내려오면서 개 인들 이 부담하게 된다. 주거지의 시설(도로등)을 새롭게 공사할 경우 주변 지역,

아파트 주민들이 나누어 낸다. 이런 나누기가 많다보니 ‘간부들이 나누기 할

줄만 안다’는 말을 했다. 직장에서도 내고, 학교, 인민반 별로 겹 쳐서 내는 경 우가 있어 불만이 있다.45

실제로 유희장에 가본 적은 없다. 국정 가격% 입장권이 배당되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런 사업을 하는데 국가가 돈을 쓰기보다는 주민들에게 쌀

을 공급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했었다.46

43

「문화적인 생활환경과 문명수준」,『로동신문』, 2013년 4월 8일자, 2면.

44

「우리 당의 인민사랑, 년로자보호정책이 빛나게 구현된 희한한 건축물一평양양로원 준 공식 진행, 보양생들 새 집으로 이사」, ''로동신문, 2015년 8월 8일자, 1면;「육아원, 애

육원건설 빠른 속도로 진척一평안북도에서, 황해북도에서」,『로동신문丄 2015년 5월 20 일자, 1면. 45

탈북자 인터뷰 人(함흥출신).

46

탈북자 인터뷰 0(평양출신).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39

원산시 해안 유희장(놀이공원)의 모습 @스연합구

이와 같이 자신들이 이용하지도 못하는 시설에 대한 원호 사업 이나 모금

이 탐탁지 않으리라. 특히나 경제위기 이후 국가적인 동원이나 원호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한 것으로 평가된다.

2)

평양으로부터의 낙수 효과?

그렇다면 평양의 건설 붐, 사회주의 선경의 모델은 지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평양의 건설 붐은 일부 지방에서도 나타났지만, 평양의 그

40 평양오디세이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지방에서 도시재건 노력은 각 도 소재지와 같이 중 간규모의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마저도 기존의 건물을 보수하거

나 소규모 공원과 놀이터를 개건하는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47

강원도 원산시의 풍치수려한 해변가에 지난9월 우주비행선, 비행판, 진 동회전반, 회전그네 등과 편의봉사망을 갖춘 해안유희장이 건설되 였다. …

강계시에서는 짧은 기간에 역전공원, 강서아동공원을 건설하였으며 강계청 년공원의 유희장, 동물원, 뽀트장의 면모를 일신시키고 휴식에 필요한 시설

들을 더 갖추어놓았다. … 개성시의 선죽공원, 청년공원 등 10여 개의 공원

들에 문화후생시설들이 건설되고 시내 곳곳에 휴식장소들이 잘 꾸려졌다.4849

주요 도시에 새롭게 개건된 유희장의 경우도 평양의 노후시설을 청진, 함

흥, 원산 등에 이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제대로된 유희장은 평양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희장들이 도마다 큰 도시

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원산에도 2013년에 들어섰다. 청진, 함흥, 원산 정 도로 알고 있다. 롤러코스터, 자유로드롭은 평양밖에 없다. 평양에 있던 놀 이기구들을 해체하면서 지방으로 이전시켰다. 당시에 입장료는 인민들이

사용하기 수월한 정도였다.‘, 2013년 전국에 도 마다 수영장 건설 등 의무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함흥

47

『 더욱 아름답고 문화적 인 도시로一자강도에서」, ''로동신문丄 2012년 9월 20일자, 1 면.

48

『많은문화휴식터 건설, 개건보수一전국각지에서丄, 厂로동신문丄 2012년 11월 4일자, 4면

49

탈북자 인터뷰 3(원산출신).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41

도 실내수영장을 건설했다.50

주요 도시의 유희오락시설들은 기존의 시설들을 개건 우 보수하는 작업들 이 주를 이루었으며 특색 있는 것은 주요 도시 에 새롭게 롤러스케 이트장을

확산시켜 나갔다는 점이다.

남포시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거리와 마을, 공원과 유원지 꾸리기 사업

을 힘있게 다그치 면서 시의 곳곳에 로라스케트장들을 건설하였다. 천리마 구역과 항구구역, 와우도구역의 넓은 면적에 훌륭하게 꾸려진 로라스케트장 들에서는 어 린이들과 학생소년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 원산시

의 해안유희장에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로라스케트장이 새로 건설되 였다.51

지방의 유희오락시설은 원산의 해안유희 장과 신의주의 압록강유원지와 같이 해변과 강변을 활용하여 개건 우 보수를 통해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52

유희오락시설의 건설 또한 평양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방의 건설에 재정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방에서 유희오락시설은 ‘도시미화’사업53의 차원에 도시를

50

탈북자 인터뷰 人(함흥출신).

51

'‘ 곳곳에 로라스케트장을 건설 丄, 心로동신문丄 2013년 5월 7일자, 5면.

52

박정국,「새로 건설 된 압록강유원지」, 匕조선건축丄 2014년 3호, 2014, 53쪽.

53

북한에서 ‘도시미화’는 “도시를 아름답고 조화있게 꾸리며 깨끗이 거두는 일’’을 말한다. 과학백과사전출판사, 厂 조선말사전 丄 평양 :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0, 352쪽.

〈도시경영법〉은 도시미화사업을 도시의 “거리와 마을을 아름답게 꾸리고 거두는 사업” 으로 규정하고 있다.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 도시경영법, 2006, 110113V,80,이

42 평양오디세이

II둔퍼양초도, 건설신화를 창조하자!

흥釋만세대 살림집 건설 선전화

정돈하고 수림화, 원림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살던 곳은 온성에서도 외곽에 있는 농촌지역이었다. 그 곳에 규모가 큰 미화사업은 없었다. 단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아 비가 오면 훼손된 도

로를 정 리하는 일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했다. 그 외 엔 가로수에

회칠을 하거나 집주변을 정 리하는 정도였다.54 청진에서는 현지지도가 종종 있기 때문에 1호 도로를 가꾸는 일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55

이와 관련하여 김정은은 2015년 신년사를 통해 수림화, 원림화, 과수원화

연구에서 ‘도시미화사업 ’은 주택 건설을 포함하는 거 리조성사업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

용하도록 한다. 54

탈북자인터뷰 ?(온성출신).

55

탈북자인터뷰0(청진출신).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43

를 강조한 바 있다.56 김정은은 “나무를 많이 심고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전 당적, 전국가적 인 대책 ”을 요구하고 “10년안에 벌거숭이 산들을 모두 수림 화”할 것을 지시하였다.57 이와 같은 산림복구사업은 주로 봄, 가을철 국토

관리총동원 기간을 중심오 울타리건설, 물도랑정리, 꽃나무와 잔디심기 등 거 리와 마을을 가꾸는 사업 이 강조되 었다.58

3) 고단한 ‘사회주의 낙원’ 건설의 길

김정은 위원장이 꿈꾸는 ‘사회주의 낙원’은 북한 주민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어쩌면 그들에게 ‘사회주의 낙원’은 고단한 군중 동원의 부산물 에 지나지 않을까?

김정은 시대 북한에서 진행된 국토건설사업은 사회적 동원의 결과였다. 유희오락시설의 건설 또한 여타의 건설사업과 같이 그 상징적 가치를 혁명

적 수령관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평양민속공원은 이러한 이념적 가치가

투영된 대표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평양민속공원은 우리나라의 원시로부터 고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 조선 봉건왕조, 현대 시기까지를 순차성있게 시기별로 명백히 구분하고 매 시기

의 역사유적유물을 통하여 당대이 시대상, 생활상을 실지로 체험할 수 있도 록 계획하였다. … 특히 공원 중심축 가운데 부분에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

56

김정은,「신년사」, 머로동신문丄 2015년 1월 1일자, 1면.

57

김정은,「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로동신문으 2012년 5월 9일자, 1~4면.

58

「가을철 국토관리총동원사업 활발히 전개」,『로동신문山 2012년 10월 15일자, 5면.

44 평양 오디세이

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고 그 주위에 위대

한 대원수님들의 불멸의 영도업적이 더욱 두드러지도록 건물, 시설물, 탑들 로 현대구를 새롭게 계획함으로써 위대한 김일성 민족, 김정일 조선의 위상

이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여지도록 하였다.5,

2012년 이후 진행된 대단위 거리조성사업과 함께 유희오락시설의 건설 또 한 인민군 건설부대에 의해 진행되었다. 김정은 시대에 선군혁명의 주력군

으로서 인민군대에 인민의 문화생활을 보장하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것 이다.하 특히 평양에서 2012년 10월 한 달 동안 인민군이 동원되어 도시의

공원들과 체육시설들을 건설하거나 개건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인민군 장병들은 한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수많은 공원들에 아름다운

록지가 생겨나고 배구장, 롱구장, 바드민톤장과 로라스케트장들이 꾸려졌으 며 각종 유희 및 운동기구들로 설치되였다.59 6162 60

완전히 개건하고 있는 공원들과 새로 건설하는 큰 공원들은 무려 10여개, 그 부지는 수백만示로서 방대한 면적이다. 현대적인 롱구장과 배구장, 바드 민톤장, 로라스케트장, 미니골프장들을 수십 개나 건설해야하며 근 1만유에

달하는 면적에 잔디를 심어야 한다. 수백 개의 체육 및 유희기구 설치와 많 은 야외의자 제작, 울타리 쌓기와 보도블로크 깔기도 해야 한다.4그

59

박창식, 厂평양민속공원총계획설계의 기본특징」, 心조선건축丄 2013년 1호, 2013, 10쪽.

60

厂 인민군대의 투쟁기풍을 따라배워」,『로동신문丄 2013년 4월 8일자, 2면.

61

『우리 당의 숭고한 인민사랑의 뜻을 새기고 도시와 마을, 공원과 유원지를 더욱 아름답

게 꾸리고 관리하자一인민에 대한 관점과 립장이 기본이다」,『로동신문丄 2013년 4월 8 일자, 2면. 62

「군민의 단합된 힘에 의해 평양시 공원들이 훌륭히 꾸려진다一인민의 락원을 가꾸어가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45

평양 대동강변의 평화로운 어느 하루 @丄쌔110丄

유희오락시설의 건설에 있어 인민군 건설부대는 놀이시설을 직접 개발 하는 작업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63 이와 함께 김정은은 군민협 동 작전을 강조하고 건설사업장에 각 단위 대중들이 원호사업을 추동할 것

을 강조하였다.

는 행복의 창조자들丄,『로동신문丄 2012년 10월 31일자, 4면 63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인민군대에서 새로 제작한 급강하물미끄럼대를 보시 였다」, 『로동신문』, 2014년 6월 2일자, 3면.

46 평양 오디세이

군민협동 작전의 위력을 높이 발휘하여 대상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

야 합니다. 군인건설자들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면 산도 떠욺기고 바다 도 메우는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 천지개벽을 안아온 것처럼 건설의 대번영기를 펼치는 성스러운투쟁의 선봉에서 계속 영웅적

위훈을 세워나감으로써 당군의 자랑스러운 모습, 인민의 행복의 창조자로서 의 위 력을 남김 없이 과시하여야 합니다.64

64

김정은,「당의 주체적건축사상을 철저히 구현하여 건설에서 대번영기를 열어나가자丄,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도시, 평양을 읽다 - 정일영 47

일례로 2013년 북한에서 ‘마식령 속도’로 강조되는 마식 령스키장의 건설

은 전국가적인 원호사업 속에 진행되었다.

원산고등예술전문학교 학생 류근정은 올해에 여러차례에 걸쳐 마식령스 키장건설장을 찾아 군인건설자들을 위해 성의를 다하였다. … 체육과학원 과학방법 연구원 김해 영 동무는 지난 5월 마식령스키장건설에 참가한 녀성

군인들의 생활을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줄 마음으로 많은 원호물자들을 마

련하여 그들에게 안겨주었다. … 이밖에도 옥류관 원산분소 소장 유용남, 송 도원려관 지배인 조춘옥, 전자공업성 아랫 단위에서 일하고 있는 설계원 김 영철, 어느 한 단위에서 일하고 있는 로동자 신상호를 비롯한 각지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마식령스키장 건설에 뜨거운 지성을 바쳐가고 있다.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큰 사업, 예를 들면 능라물놀이장, 곱등어관, 마식

령 스키장 등의 건설은 해당사업에 대한 지원사업이란 형식으로 모금이 진 행되었다.65 이와 같은 원호사업은 애국심을 평가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정

치적으로 명예가 필요한 인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일반주민들은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匕로동신문』, 2013년 12월 9일자, 3~4면 65

탈북자 인터뷰 6(혜산출신).

48 평양오디세이

5, 코로나 시대, 평양은 안녕한가요.

이 글은 김정은 시대에 평양을 중심으로 진행된 유희오락시설의 건설이 갖는 특징과 그 한계를 분석하였다. 북한은 평양을 중심으로 대단위 건설을 통해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이상향을 주민들에게 ‘살짝’ 보여주려 한

것일까? 다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주민들 은 이러한 건설이 자신의 삶과 이완되어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크게 세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로, 북

한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단위 건설사업을 통한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 에 대한 전시展示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의도와는 달리 북한주민, 특히 지방의 주민들은 이와 같은 건설사업 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두 번째로, 북한은 주요 건설사업을 평양에 집중시키고 이를 지방으로 확

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재정의 한계로 인하여 평양과 평양

이외의 지방(도시)이라는 이원적 구조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로, 북한은 도시건설에 있어 사회동원의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 다. 이들 사업에 대한 참여를 애국심의 척도로 강조하며 원호사업을 추동하 고 있다. 그러나 건설사업에 다수의 주민이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혜는 일부 집권층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층부 주민들에게 귀속됨에 따라 사회

적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과 달리 북한은 이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드는 듯하다. 연일 북한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언론에 회자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코로나 시대 에

평양은 안녕한가? 2010년대에 김정은이 꿈꾸었던 사회주의 선경, 평양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에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지 궁금하다.

평양의 공간

김정은 시대의 도시, 평양을 읽다-정일영 49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이 글은 필자의 논문 오창은,「김정은 시대 북한 소설에 나타난 평양 공간 재현 양상 연구一사회주의 평등과 사적 욕망의 갈등」(『한민족문화연구』71, 2020)을 수정 . 보완 한 것임을 밝힌다.

오창은

1. 파괴와 건설, 평양의 도시 재건축

도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축물이다. 도시에는 그 시대 삶의 양식이

들어가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주체의 욕망도 도시공간에 새겨져 있다. 시

대에 따라 도시도 변화한다. 사회적 격변인 전쟁, 혁명, 폭동으로 파괴되기도 하고, 폐허 위에 새롭게

생성되기도 한다.1 전쟁이나 혁명적 격변으로 새로운 사회체제가 형성되면,

이전의 도시는 파괴되곤 한다. 바로 그곳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는 경우도

많다. 자연재해인 지진, 홍수, 전염병 등도 도시의 변화에 급격한 영향을 미 친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과 19세기에 유행한 콜레라는 유럽 도시의 형태1

1

厂세계 도시시‘』에서 ‘도시를 역사적 창조물’이라고 했다. “도시는 특별히 역사적 창조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진전이 있 을 때 착수된 것이며 종말이 올 수도 있고 또한 다른 계기에 의해 급격하게 변화할 수도

16001거6 36!히己는

있는 것이다. ” 16001거6 360=01(1 윤재희 우 지연순 . 전지희 옮김,『세계 도시사유 서울 :

세진사’, 2003, 5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 오창은 51

멀리 류경호텔이 보이는 평양 시가지의 모습 0아니하아“心

를 바꾸었다.2 도시 설계에서 도로와 건물의 배치가 바뀌었고, 역병을 예방

하기 위한 도시 공중위생의 중요성도 강조되었다. 방사선 도로망의 형성이

2

“1830년 경에 콜레라가 아시아나 유럽에 만연하고 대도시에서 전염병이 유행하자, 위정

자들은 다른 것은 그만 두고라도 위생상의 결정을 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19

세기 전반에 이론적으로 선언되어 강력하게 실천에 옮겨진 개발 자유의 원리와 상충하

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 앞의 책, 755쪽.

52 평양오디세이

나, 도시의 상하수도 시설도 전염병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 많은 도시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새로운 도 시들이 건축되 었다. 새로운 공간에 재구축된 도시는 또 다른 시간의 퇴 적을 견디며 도시 공간의 역사를 형성하고 있다. 사회주의 도시 평양도 건축과 재건축의 공간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현대도시인 평양은 대동강과 보통강을 통해 구획되어 있다. 대동강 강변의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 오창은 53

‘주체사상탑’은 김일성 광장, 인민대학습당과 어우러져 상징적 질서를 구축

한다. 보통강에서는 삼각뿔 형태의 1이층 건물인 ‘류경호텔’이 도시 어디에

서나 보이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평양이 자랑하는 현대적인 여명거리는 화 려한 최신 건축물과 야경으로 평양을 돋보이게 한다. 방문자나 외부인이 보

기에 평양은 ‘동양에서도 돋보이는 유럽적 외양의 지닌 도시’이다. 북한 주

민의 관점에서는 ‘거주하여 살고 싶은 도시’이다. 삶의 공간으로서 평양은 ‘욕망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민중들에게 평양에 거주하려는 욕망과 사회주의적 평등은 상호 대

립하며 함께하는 감각이다. 평양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사회주의 문명 의 본보기 ’ 공간이 되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시

대에 평양의 도시 재건축이 눈에 띄게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에 창전거 리,3 2013년에 은하과학자거 리,4 2014년에 위 성과학자 주

3

창전거리는 김정일의 평양 재건축 의지에 따라 기획되었으며, 그의 사후인 2012년 6월 20일에 준공식이 거행되었다.『로동신문』은 창전거리에 대해 “만수대언덕으로부터 대동

강기슭을 따라 형성된 창전거리에는 우리 당의 주체적인 건축미학사상을 구현한 인민극

장과 초고층, 고층살림집들, 각종 봉사시설들이 희한하게 솟아올랐으며 조형화, 예술화, 공원화가 훌륭히 실현되었다. ”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인민사랑, 애국충정 이 펼친 천지개벽 창전거리 준공식 성대히 진행」,『로동신문, 2012년 6월 21 일자, 1면. 4

은하과학자거리는 김정은이 과학자, 기술자의 생활조건 개선을 위해 기획하여 조성했 다. 김정은의 적극적 의지에 따라 수행된 도시재건축 사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로동신

문虎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문명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살림집건설을 발기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건설계획과 설계를 보아주시고 인민군대와 사회의 강 력한 건설력량을 보내주시였을뿐 아니라 건설현장에 여러차례 나오시여 공사를 최상의 수준으로 다그치기 위한 가르치심을 주시 였다. ”고 보도했다.「당의 과학기술중시사상

이 펼친 선군시대의 선경, 은하과학자거리 준공식 진행」,『로동신문, 2013년 9월 12일 자, 3면.

54 평양오디세이

택지구,5 2015년에 미래과학자거리,6 2017년에 여명거리7가 조성되었다. ‘창 전거리’는 만수대 언덕 아래에 현대식 고층 빌딩, 초고층 아파트들로 조성

되었다. 은하과학자거리는 1,000여 세대의 21개 동 아파트 지구이고, 위성 과학자주택지구는 24개동 아파트단지 이다.89미 래과학자거리는 53층의 초 고층살림집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으며, 여명거리는 70층 초고층살림집

을 비롯한 초고층, 고층, 다층살림집들이 조화롭게 조성되었다. 북한 국가관광국은 평양을 ‘공원 속의 도시, 오랜 력사의 도시, 청춘도시 ’ 라고 홍보한다. 평양의 변화에 대해서는 “산천도, 거리도, 살림집도, 천지개

벽하였으며 평양사람들의 정신세계, 문화 수준, 생활 모습은 몰라보게 달라

졌다”고 했다.’ 2018년에 평양을 방문하고 취재해『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5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2014년 초에 김정은이 국가과학원을 현지지도하면서 “과학자 주

택지구를 건설할 것을 직접 발기’’하여 “건설부지도 정’’하면서 조성되었다.『로동신문丄 은 “과학자, 기술자들은 아무런 불편도 없이 연구사업에 전념하면서 사회주의문명을 마 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했다.『우리 당의 과학중시, 인재중시사상이 안아온 자 랑찬 창조물, 위성과학자주택지구 준공식 진행」,『로동신문, 2014년 10월 18일자, 1면. 6

미래과학자거리는 교육자 과학자들을 위해 조성되었다. 김정은의 뜻에 따라 “웅대한 수 도건설구상과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창조물로 웅장화려"하게 조 성되었다고 한다.「우리 당의 과학 중시, 인재중시사상과 사회주의 조선의 위 력을 과시하 는 기념비적 창조물, 주체건축의 본보기, 로동당시대의 선경으로 훌륭히 일떠선 미 래과학 자거 리 준공식 진행」,『로동신문% 2015년 11월 4일자, 1면.

7

여명 거리는 금수산태양궁전과 룡남산지구를 현대적으로 재개발한 것으로, 평양재건축 의 중요한 성과라고 한다. 여명거리도 교육자, 과학자들과 인민들을 위한 “만복의 별천 지 ”라고 한다.『로동신문』은 “아담한 다층건축군, 웅장화려한 초고층건축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조형화, 예술화, 록색화가 최상의 수준에서 실현되여 주체건축예술의 미 래와 사회주의 문명의 높이를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본사정치보도반,「자력자강의 사 회주의강국건설대전에서 쟁취한 자랑스러운 대승리, 전인민적인 대경사, 경애하는 최 고령동자 김정은동지를 모시고 려명거리 준공식 성대히 진행」,『로동신문노 2017년 4월 14일자, 1면.

8

김준혁,『평양개관노 평양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국문출판사, 2014, 27쪽.

9

국가관광국,『평양丄 평양 : 국가관광국, 1999, 18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55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간행한 진천규는 “고층 아파트 거리는 평양의 새로

운 풍경”이라고 했다. 그는 “기존 아파트들이 10층 내외의 단순한 디자인과 단조로운 색조였던 반면 최근 건설된 아파트들은 30~70층의 고층, 컬러풀 한 색채,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 ”이라고 했다.10

현대적 도시 디자인과 설계를 통해 세련되게 기획된 평양의 새로운 거리 에는 북한 인민 누구나가 평등하게 거주할 수는 없다. 평양 인구는 2017년

기준 288만 명으로, 북한 전체 인구(2,500만 명)의 12%가 평양에 거주한다. 북

한에서도 공간에 대한 평등한 권리와 지 역 격차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이 다. 북한의 국가 정책에 따라, 새로 조성된 도시 에는 과학자와 교육자, 기술

자들을 먼저 살게 하고 있어 평양 내 에서도 공간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공간의 차이는 민중의 공간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평양과 지 역의 격차, 평양 내에서의 공간 격차는 북한 사회에도 있는 사회적 모순이다. 큰

틀에서 ‘평양중심주의 ’라고 명명할 수 있는 공간의 차이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변화를 의미한다. 북한소설은 실제 텍스트에서도 공간 격차를 다양 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북한의 중요 사회문제로 부각하고 있는 ‘평양

공간의 재현 양상’ 연구는 북한 사회의 특이성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논 점이다. 김정은 시대에 과학자를 우대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평양 도시 재건 축이 민중의 공간 욕망에 미친 파장은 크다.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의 생산’과 관련해 “생산양식은 사회적 관계를 조 직하고 생산하는 동시 에 자신의 공간(자신의 시간)도 조직하고 생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간의 생산(시간의 생산)’을 통해 생산양식이 완성된다고 보

10

진천규,『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서울 : 타키스, 2018, 58~60쪽.

56 평양오디세이

평양에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의 모습 @스IV血0丄

았다.11 그의 핵심 명제 중 하나는 “(사회적) 공간의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것

이다.

북한의 중요 문학 매체로는『조선문학』과『 청년문학』。] 꼽힌다. 이 두 문 학 매체 에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에 발표된 소설 에는 ‘평양’과 관련한 주 목할 작품들이 실려 있다. 필자는『조선문학』과『청년문학』에 실린 소설 중

에서 ‘평양’을 재현하거나, 평양의 상징적 질서를 드러내고, 평양 공간을 욕

망하는 작품들을 추려보았다. 이 글은 북한의 소설작품들을 통해 평양이라 는 공간이 북한 민중의 내면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11

앙리 르페브르, 양영란 옮김, 厂공간의 생산』, 서울 : 에코리브르, 2011,33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오창은 57

2, 미래과학자거리의 이중성

1) ‘과학중시, 인재중시’와 미래과학자거리

주체건축의 본보기, 로동당시대의 선경으로 훌륭히 일떠선 미래과학자거

리 준공식 진행12

2015년 11월 4일자『로동신문丄 1면의 제목이다. ‘미 래과학자거 리 ’는 김정 은 통치체제 아래에서 조성된 평양 안의 신도시이다. 미래과학자거리에 들

어선 53층의 초고층살림집은 평양에서 류경호텔(101층)과 여명거리의 70층 의 초고층살림집 다음으로 높다. 김정은 정권은 평양의 공간 변화를 지속 적으로 주도하고 정책적으로 홍보한다. 2014년 10월 17일에는 은정과학지 구에 현대 적 인 위 성과학자주택 지구를 준공했다. 24개동의 다층살립 집들과

학교, 병원, 탁아소, 유치원이 들어선 종합적 주택지구이다.13

‘미 래과학자거 리 ’도 초고층살림집들과 창광상점, 탁아소, 유치 원, 학교를 비롯한 공공건물들, 휴식터, 체육공원 등을 갖춘 종합주택지구이다. 위성

과학자주택지구와 미 래과학자거 리는 독자적 인 생활체계를 갖춤으로써, 평

양에서도 특화된 지역이다. 미래과학자거리는 위성과학자지 구를 뛰어넘는 ‘주체건축’의 성과로 칭송되고 있다.『로동신문丄 보도에 의하면 미래과학자

12

조선중앙통신,「우리 당의 과학중시, 인재중시 사상과 사회주의 조선의 위력을 과시하 는 기념비적 창조물, 주체건축의 본보기, 로동당시대의 선경으로 훌륭히 일떠선 미래과 학자거리 준공식 진행」,『로동신문』, 2015년 11월 4일자, 1면.

13

조선중앙통신,「우리 당의 과학중시, 인재중시사상이 안아온 자랑찬 창조물, 위성과학 자주택지구 준공식 진행」,『로동신문』, 2015년 10월 18일자, 1면.

58 평양오디세이

거리는 2014년 5월 김정은이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건설장을 현 지지도”하면서 “대동강 기슭에 현대적인 과학자거리”를 조성하는 구상을

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미래과학자거리 ’라는 이름도 붙였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나 ‘미래과학자거리’는 김정은 통치체제 아래에서 ‘과학중시, 인재증시’를 공간을 통해 구현하기 위해 조성되었다.『로동신문』

기사는 “과학에는 국경 이 없지만, 우리 과학자들에게는 사회주의 조국, 어

머니 당의 품이 있다는 드팀없는 신념과 과학기술로 세계를 디디고 올라서 겠다는 야심만만한 배짱을 지니고 두뇌전, 실력전을 힘있게 벌려 나라의 경

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큼직큼직한 연구성과물을 끊임 없이 창조”하여야 한다고 했다.14 북한의 ‘과학중시, 인재중시’는 2016년 2월 7일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

성 4호’ 발사 성공과 2017년 9월 3일에 있었던 풍계리 일대에서 제6차 핵실 험 등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대형수력발전소인 단천발전소 건 설과 김책제철연합기업소의 ‘주체철 생산’도 과학자의 공로로 칭송하고 있

다. 그러나 과학자들을 위한 공간인 ‘위성과학자주택지구’와 ‘미래과학자거 리’는 북한의 성공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곤란을 재현한다. 북한은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을 ‘미래를 향한 꿈’을 통해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공간의 창조, 현대적 마천루의 건축이라는 방법

을 택했다. 미래과학자거리를 그린 북한소설은 이를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14

조선중앙통신,「우리 당의 과학중시, 인재중시 사상과 사회주의 조선의 위력을 과시하 는 기념비적 창조물, 주체건축의 본보기, 로동당시대의 선경으로 훌륭히 일떠선 미래과

학자거리 준공식 진행」,『로동신문』, 2015년 11월 4일자, 3면.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 오창은 59

평양 미래과학자거리 살림집의 내부 전경 @스연합丄

2) 평양의 일상과 내밀한 세계의 형상화

주홍건의 “우리 집 노래”15는 미래과학자거리의 초고층살림집에 거주하 는 젊은 부부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 속 화자인 로은하는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이고, 남편은 수리공학연구소에서 일한 다. 부부는 박사원까지 같이 공부한 대학 동창이다. 이들의 성공한 삶의 상 징 이 바로 미 래과학자거 리 거주이다. 로은하는 “현대문명의 별천지로 훌륭

하게 꾸려진 미 래과학자거리의 초고층살림집에 두 사람을 위한 햇빛 밝은

창문 하나를 정히 내” 준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소설은 미래과학자거리의 초고층 살림집이 얼마나 현대적인지를 보여주

기 위해 공간의 내부도 상세하게 보여준다. 초고층살림집에는 ‘부엌과 전 실, 부부방, 종합살림방, 세면장’을 갖춰져 있다. 로은아가 임신한 상태이기

15

주홍건,「우리 집 노래」,『청년문학』제714호,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18,

60 평양오디세이

는 하지만, 부부가 거주하는 곳의 방들이 기능별로 구획되어 있다. 미래과

학자거 리가 조성된 곳도 평양에서는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평양역과 양각 도 사이의 대동강변으로 전통적인 평양 도심이라고 할 수 있다. 구도심을

재개발하여 대동강반에 웅장하고 화려한 초고층살림집들이 조성되었다. 소

설 에서 미 래과학자거 리는 별들도 ‘부러운 눈길로 엿보고 있는 듯’할 정도로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내부 공간을 갖춘 곳으로 그려진다.

소설 속 화자인 로은하는 새 벽 5시 에 단천발전소로 출장을 떠나는 남편 을 위해 ‘도중식사(도시락)’를 챙기고, 소지품 배낭을 꾸리면서도 행복한 마

음에 들떠 있다. 마침 오늘은 화자인 은하의 생일이지만, 남편은 출장에 정

신이 팔려 축하도 제대로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은하는 마음에 거리낌 이 없다. 이 소설은 은하와 남편이 맡은 일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음을 상세하 게 보여준다. 남편은 ‘청천강 계단식 발전소 건설 ’과 ‘단천발전소 건설’에 큰

기여를 한 ‘수리학’분야의 과학자다. 남편의 업적은『평양신문」에 실려 은 하의 동료 대학교수들과 아파트 주민들까지 칭찬할 정도다. 은하 또한, 대

학 교수로서 학생들의 외국어시험 지도를 탁월하게 해내고, ‘새 교수방법에

대한 교수안’이 심의 에 통과할 수 있도록 이끄는 능력자이다.

은하와 남편의 업적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이 부부가 미래과학자거리에 살 자격이 있는 부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서사적 의도로 보인다. 남편 은 농촌 출신이고, 로은하도 아버지가 산림 감독원이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시골 출신이다. 로은하는 아버지의 헌신 속에, 남편은 어머니의 엄격한 지 도 아래 뛰어난 학업 성취를 이뤄 평양으로 올라와 박사원까지 마쳤다. 은 하 부부는 시골 출신임에도 평양시민의 자격을 얻어 미 래과학자거 리 중에

서도 ‘제 일 높은 돛모양의 고층아빠트’에서 살고 있다. 이 소설은 사회주의 체제가 강조하는 ‘기회의 보장’을 서사화함으로써, 평양에 거주하기 위해서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 오창은 61

는 납득할 만한 자격을 갖춰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주흥건의 “우리 집 노래”는 공식적 의도와는 별도로, 풍부한 화자의 내적

목소리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북한소설은 일반적으로 공적 영역이 우위 에 있고, 사적 영역은 내적으로 갈무리되어 있다. 대학 러시아어 교수인 화

자 ‘은하’는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느끼는 행복감을 적극적으로 기술한다. 소설의 공간은 아파트 신혼살림집으로 국한되어 있다. 외부와의 연결은 ‘손

전화’(휴대전화)를 통해서만 이뤄지기에 현대적이다. 시간적으로도 아침 5시

즈음부터 모든 일과가 끝난 저녁까지로 한정되어 있다. 일과 시간에 발생한 일들은 회고적으로 회상하는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 집 노래”는 사적 영역인 아파트 살림집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북한소설로서는 드물게 일상적 이고도 개인적인 사건들 속에서 느끼는 행복

감 전달에 치중한다. 북한은 노동 중심의 사회이다. 사적 세계는 노동에 부

과되어 있는 주변적 요소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북한소설의 주류적 흐

름에 비해 “우리 집 노래”는 노동을 주변화하고, 북한 대학 교수의 사적 세

계를 중심에 놓고 있기 에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은하의 ‘생일’과 관련한 이야기는 사적이고 내밀한 세계의 형상화라는 특

징을 잘 보여준다. 은하는 임신 중인 상태에서 ‘결혼 후 첫 생일’을 맞이한 다. 하필 그날 남편은 새벽 출장으로 분주해 변변한 축하도 못하고 떠났다.

어린 시절에도 은하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수호전’에 충실하느라 번번이 생

일을 챙겨주지 못했다. 과거의 상황이 결혼 후에도 반복된다. 게다가 대학 강좌장은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며칠 후로 예정되어 있던 ‘새로운 교수방 법 최종심의 ’가 급하게 오늘 오후에 열린다고 알려온다. 은하는 지질학부 3

학년 학기말 시험 지도도 흐!!야 하고, 동시에 교수법 최종심의도 준비해야 하 는 상황에 처한다. 생일날인데도 공적 업무로 정신 없는 하루가 된 셈이다.

62 평양오디세이

소설은 일과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건너 뛰고, 저녁 아파트 살림 집 풍경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반전의 연속이다. 교외에 있는 딸네 집에 서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송편을 빚어 와서 은하의 생일을 축하해준다. 연

이어 대학 제자들도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아파트를 방문해 꽃다발을 안기 고, 건강음료를 선물하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든다. 시어머니와 학생들이 돌아간 후에는 남편이 멀리 발전소건설현장에서 손전화로 아침에 못한 생

일 축하를 해 오자 은하는 행복감에 젖는다. 하루 동안의 일상이 남편의 출

장, 학생 지도와 교안 심의, 시어머니와 지도 학생들의 방문, 그리고 남편의 생 일 축하 전화로 채워 진다. 소설의 의도는 분명하다. 평양에 새롭게 들어선 ‘사회주의 문명의 본보 기 ’인 ‘미 래과학자거 리 ’의 행복한 하루를 은하의 생 일과 관련한 소소한 사

건들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우리 집 노래”에서 노래 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1961)”16를 지칭한다. 소설 속에 그려진 유토피아의

세계는 ‘사회주의 대가정’이다. 소설의 결말에는 직접적으로“그지없이 깨

끗하고 강직한 이 나라의 수천만 아들딸들이 자기들의 운명도 미 래도 다 맡 기고 안겨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회주의 대가정 에 드리는 다함 없는 송

가”라는 표현도 나온다.

16

“세상의 부럼 없어라”는 1961년에 발표된 가사 집단 창작, 작곡 김혁의 노래이다. 가사 는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 소리 울려라 /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 우리는 모두다 친형 제 세상에 부럼 없어라”이다. 이 노래는‘사회주의 대가정’의 행복을 표현한 어린이 노래

로 널리 불리고 있다.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오창은 63

3) 사적 세계와 긴장하는 사회주의 대가정

‘사회주의 대가정’은 ‘국가가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이다. 1990년 제정

된 북한 가족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어버이 수령과 어머니 당의

품속에서 모두가 한 식구와 친형제로 혈육의 정을 나누며 사는 화목한 가

정”이라고 했다. 자녀를 돌보는 수령, 어머니로서의 당, 자녀로서의 인민이 사회정치적 혈연관계를 맺어 ‘사회주의 대가정’을 이룬다.17 평양의 삶, 아

파트의 삶이 보편화될수록 ‘사회주의 대가정’의 의미는 각별해진다. 인간은 독립적인 사적 공간을 갈구하는 보편적 욕망을 갖고 있다. 사적 공간에 대

한 욕망은 집단성 이 강한 사회 일수록 더욱 강렬할 수 있다.18

집단주의를 중시하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 에서 사적 영역은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와 충돌이 발생한다. 은하는 생 일 축하를 위해 방문한 학생들과 시어머니가 떠난 이후 아파트에서 ‘행복의 여운’을 되새긴다. 은하는 사적 세

계를 향유하면서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폐쇄 적인 아파트 공간에 은하가 혼자 있더라도, 지배체제는 개인이 세계의 일부

임을 망각하지 않도록 강제한다. 이는 사적 세계를 끊임없이 열린 개방성으 로 이끄는 것과 같다. 그 개방성은 아파트 인민반장이 방문하고, 지도 학생

들의 찾아오면서 아파트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사적 세계 에 대한 공적 관심으로써, 은하 남편의 ‘발전소 건설장’의 활동과 출장 소식

17

이의진 - 박솔지, ''북한이탈주민의 초점집단면접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부모-자녀관 연 구」,『통일인문학』79, 2019, 45~46쪽.

18

미셸 페로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문명과 시간을 관통”한다고 했 다. 특히 “집단성이 강요될수록 더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병영, 병원, 기숙학 교, 감옥 등에서 사람들은 강박관념 처 럼 숨을 곳을 찾는다”고 했다. 미셸 페로, 이 영 림 .

이은주 옮김,『방의 역사, 서울 : 글항아리, 2013, 140쪽.

64 평양오디세이

을 주변 인물들이 모두 알고 은하에게 안부를 묻는 것으로 표현되 기도 한다. 앙리 르페브르는 ‘바다고동’에 비유해 공간과 관련한 흥미로운 상상력을

유발하는 논의를 펼쳤다. ‘바다고동’은 “모든 집안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흙

속의 딱딱한 돌멩이를 섬세하고 구조화된 어떤 것 - 가정 - 으로 변형”시킨 다. 이 동물은 “느릿하고 끈적거리는 자취”를 남기는 것처 럼, 모든 집은 자

신만의 “특별한 외양”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1, ‘미래과학자거리’나 국가사 회주의의 계획에 의해 구성된 평양은 주체에게 부여된 공간처럼 보인다. 권 력이 조직한 공간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 거주하는 주체는 내부를 채워나 가는 방식으로 공간을 생산해낸다. 새로 조성된 평양의 신도시들은 사회주 의 유토피아를 표상한다. 반면, 독립적 공간인 아파트는 집단주의와 충돌하

는 사적 세계를 내부로부터 구축한다.

“우리 집 노래”는‘미래과학자거리’의 유토피아적 세계를그리려는 분명

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가 추구하는 집단주의와 개 인주의의 충돌

현장을 불가피하게 드러낸다. 세련된 현대도시의 일반적 속성인 사적 세계 의 구축은 평양의 세련된 생활공간 속에서도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를 국가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사회주의 대가정’ 담론을 더욱 강조할 것으

로 보인다. 더불어, 아파트의 폐쇄적 특징을 인민반장의 방문과 같은 개방

성을 통해 완화하려는 노력도 지속될 것이다. 주흥건의 “우리 집 노래”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충돌이 평양의 현대 식 초고층살림집 에서도 발생하고 있음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미 래과학자거 리 ’의 행복한 삶을 표현하려는 분명한 주제 의식으로 인해,

19

앙리 르페브르,「어떤 신도시에 대한 메모」, 김종민 옮김,『'모더니티 입문』, 서울 : 동문

선, 1999, 174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 오창은 65

과학자와 교수 신혼부부의 사적 세계를 그리는 것이 허용되었다. 소설 속에

표현된 사적 세계는 평양시민의 일상과 내밀한 공간 욕망이 담겨 있다.

3,

평양과 농촌, 공간의 충돌

1) 농촌으로 이사한 평양내기 가족들

공간에 위계가 발생하면,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이 만들어진다. 자본주의 와 사회주의를 포괄하는 근대성은 공간의 평등화하는 방식이 아닌, 공간적 위계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공간의 위계화는 근대 사회의 모순 이고, 권력과 민중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해방된 근대는

공간의 위계화를 통한 노동의 착취를 철폐하고, 주체의 공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런 의미 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근대가 동일하게 공간 의 위계를 조장했다면, 두 체제는 모두 ‘근대 사회의 모순’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소설에 도시와 시골의 관계, 평양과 평양 이외 지역의 관계가 어떻 게 그려지고 있는가는 중요하다. 공간적 위계의 발현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북한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구체화할 수 있다. 북한 소설은 실제 삶을 기반으로 창작되고 발표되기에, 북한 민중의 생활상을 추론적으로 재

구성할 수 있다. 김계숙 작품, “ 평양사람”“의 공간적 배경은 “중부지대의 깊은 산골농장

20

김계숙,「평양사람」,『청년문학』제689호,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16.

66 평양오디세이

‘농촌 지원’을 독려하는 북한의 선전화《X연합느

인 수연군 철산리”이다. 철산리에서도 제일 마지막 골짜기인 11작업반에 평양에서 살던 ‘리평의 가족’。] 이사온다. 처음 철산리 작업반 청년들은 평 양사람들의 이삿짐이 많지 않은 것을 보고, 이곳을“중간정류소”로 삼아 “다시 올라가려고”한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리평은 태어나서

줄곧 평양에서 자라 대학까지 마친 평양내기 이다. 그에게 농촌은 낯선 세계 일 수밖에 없다. 철산리의 11작업반은 평양에서 자동차로 아침부터 저녁까

지 꼬박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사방 산으로 둘러막혀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마치 현실세계와 격리된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

는 곳이기도 하다. 리평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철산리 11작업반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일까?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67

리평의 아버지는 평양에서 농업성의 부처장으로 일하던 책임있는 당간

부였다. 아버지는 ‘과학기술항목’을 맡아 일하면서 연구과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능력자이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가 ‘이상기후 현상’으로 ‘적지 않은 논 들이 밭으로 전환’되는 것에 책임 의식을 느꼈다. 아버지는 모두가 떠나지

않으려는 평양을 버 리고 “량심에 저촉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 으로, 군복무하던 시절의 오지인 철산리로 내려와 ‘갱신된 벼종자’를 만들 기 위해 헌신한다. 이 소설은 ‘평양사람들’인 리평의 가족이 6년간 철산리에 서 보내면서 겪는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평양사람”은 북한 젊은이들의 발랄한 삶의 감각이 생동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서사도 진솔하고 거침이 없다. 그렇기에 북한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평양과 농촌’에 관한 ‘공간 이데올로기 감각’을 흥미롭게 도출해낼 수 있다. 북한소설의 일반적 흐름에서 보자면, 소설은 농업성 부처장이었던 리평 아 버 지가 ‘갱신된 벼종자’ 생산을 위한 헌신하는 모습에 초점 이 맞춰져야 한

다. 당일꾼이었던 농업성 부처장이 인민을 향한 ‘양심’ 때문에 6년여의 헌 신 끝에 ‘벼종자’ 갱신에 성공하는 이야기가 중심 주제로 부각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난과 극복서사가 핵심 서사인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농업성 부처장’의 헌신을 주변화하고, 그의 젊은 아들 리평이 느 끼는 농촌 생활의 곤란함을 오히려 부각시켰다. 그뿐 아니라 평양내기의 농

촌생활 부적응으로 작업반 반원들과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적나라하게 그려

낸다. 리평은 이사를 와서 처음에는 작업반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리평은“하루종일 가야말 한마디 없는 벙어리”처럼 굴기도 하고, “오전 한

겻이 지나도록 풀 한단도 베지 못하고 어정쩡해” 있기도 한다. 그런 리평에 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적응을 도와준 인물이 초순이다. ‘작업반기술혁신

68 평양오디세이

조 1분조’ 선동원인 초순은 리평 가족이 ‘작업반건물의 빈방’에서 기거하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초순은 작업반장을 설득하여 “덩실한 집 한 채”를 지 어 제공하도록 한다.

또한, 초순은 ‘갱신된 벼종자’ 생산을 위해 리평의 아버지가 일궈낸 ‘달맞 이골시험포전’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기도 한다. ‘공화국창건일’을 맞아 농장

경축야회가 벌어질 때, 리평이 컴퓨터를 활용해 ‘장식조명프로그램’을 만들 도록 도와준 이도 초순이다. 천신만고 끝에 텔레비전 화면에 “경축”이라는 장식을 하게 되자 철산리 사람들은 “ 이 산골에 작은 평양이 생겼구나! ”라고 감탄을 했다.

2) 평양과 평양 바깥의 격차

김계숙의 “평양사람”에는 북한 농촌이 전력 문제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 는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른 불편보다도 “산간지대 생활에서 제 일 걸

리는 것이 전기문제”이다. 평상시에는 골짜기의 크고 작은 물원천을 이용

해 “소형발전소”를 건설해 전기문제를 해결하지만, 겨울철만 되면 물원천

이 줄어들어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에 청년들의 불만이 커진다. 초순이 조차도 “나도 번쩍거리는 도시에 나가 좀 문명한 생활을 해보자”고 할 정도 다. 리평은 농촌의 겨울철 전력문제를 해결흐]기 위해 “태양전지”를 자체 개

발하는 작업 에 착수한다. 이 작업 또한 초순이의 조력으로 가능해 진다. 사 람들은 리평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평가를 한다.

“ 철산리농장원이 해빛을 잡아 전길 일으킨다면서?” “철산리에 그런 인재가 다 있었나?”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 오창은 69

“웬걸, 그전에 평양서 살다왔다니까 본래야 평양사람이지. ” “쳇, 그 사람 평양에 있었다면 태양전질 만들 것 같애?” “맞았어. 여기 와서 초불맛이랑 보니까 그런걸 만들 궁냥을 한거야. 그러

니까우리 철산리가 인잴 낳은 거지. 안그래?”21

중부 지 역의 산간벽지지만, 철산리에서도 컴퓨터를 비롯해 손전화 등 첨

단기기를 활용한다. 특히 젊은이들은 문명생활에 대한 갈구가 높다. 겨울에 는 전력 수급 문제로 고통을 받는데, 이 문제를 리평이 부분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리평은 평양의 문명화된 세계에서 오지인 철산리로 온 인물이고,

초순은 오지인 철산리에서 평양의 문명을 구현하려는 인물이다. 리평과 초 순의 상징적 배치는 북한 청년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들은 농촌에

있으면서도 손전화, 컴퓨터, 휴대용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 다. 혹은, 리평처럼 그런 역량을 갖춘 젊은이들이 주변에 존재한다.

하지만, 공간적 위계로 인해 주체의 역량과는 별도로 첨단 문명의 혜택 을 누리는 것은 제한적이다. 소설에는 리평이 평양에 두고 온 애인인 혜영 과 통화하기 위해, 전파가 터지는 곳을 찾아 배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러한 장면은 철산리가 오지임으로 보여주는 장치 이지만, 상대적으로 공간

적 위계에 따라 현대 문명의 혜택이 미치는 곳이 제한되어 있음을 드러낸 다. 그렇기에 리평은 철산리에서도 끊임없이 평양으로의 복귀를 열망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소설의 서사에서 리평의 평양 이주 열망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 친 인물로 초순이 등장한다. 다음 인용문에 등장하는 초순 의 계몽적 언술은 ‘평양중심주의의 일면’을 오히려 잘 보여준다.

21

앞의 책, 35쪽.

70 평양오디세이

“도대체 평양사람이 맞긴 ※,요?" 리평은 그만 급소라도 찔린 듯 굳어지고 말았다.

“그럼 내가 어디 사람 같소?” 하며 리평은 허리를 폈다. “음 … 우선 평양사람이긴 평양사람인데 평양사람냄새가 안 나요. 전혀 안나요/

냄새?! 리평은 잘못 듣지 않았나 하여 그만에야 초순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말하자면 사람마다 특성이 있어 그가 어디 태생이며, 어떤 성격에 말씨

는 어떤가. 어떤 생활과 어떤 취미를 가지고 무엇을 지향하는가 하는것들이

몸에 배여있는데 거기선 아무것도 느낄수가 없어요. 내가 농촌지원을 나온 군인들과 일하면서 보니까 저 동문 북쪽 사람, 이 동문 평안도 사람, 저기 저

동문 평양사람하고 가려볼 수 있었단 말이 에요. ” “그러니 난 … 아무 특성도 없다는 거지. ” (중략)

초순이는 성이 났다. 그 도전적인 어조에 리평은 아연해지고 말았다. “ 언제부터 동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요- 평양사람으로 불리우는 동

무에게서 우린 수도 시민의 정신과 풍모를 느끼고 배우려고 해요. 동물 볼때

마다 우리가 찾아보았던 만경대고향집 이며 개선문, 김 일성광장과 주체사상

탑 그리고 불빛 아름다운 수도의 밤거 리를 거닐던 그날들을 추억하군해요 몸은 비록 여기 있어도 수도 시민의 자격을 가슴에 안고살면 그런 사람은 계

속 평양사람, 수도 시민으로 남아있지 않을가요?” 이 것은 농장의 한 선동원 처녀로부터 받은 하나의 철학 강의나 다름없었

다. 22

22

앞의 책, 33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오창은 71

황해북도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에서 농민들이 일하는 모습 @三연합丄

초순의 말은 외면적으로는 ‘수도 시민’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다.

공민 중의 으뜸 공민인 ‘수도 시민’의 품격에 대한 강조이기도 하다. 초순의 말 이면에는 북한이 ‘평양과 평양 바깥’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격차는 통상 적으로 넘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평양의 외부인

에게 평양은 직접 방문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추억의 공

간이지, 누구나 이주가 가능한 곳이 아니다. 북한 사회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평양시관리법 ”이 있다. 이 법 은 1998년 11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 제286호로 채택 ’되었다. “평양시관리법 ”은 ‘평양시의 환경을 개선하고 인구집중을 막’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그 근거로서 “평양은 주체의 성지이고 조선 인민의 심장이며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의 수도”라고 제시한다. 제32조에 따르면, “평양시에

72 평양오디세이

거주한 17살 이상의 공민에게는 평양시민증을 수여한다”고 되어 있다. 평

양시민만이 공민증과는 별도로 ‘평양시민증’을 소지하는 특권이 부여된 것

이다. ‘평양시민증’은 “국가의 법질서를 엄중하게 어겼을 경우”에는“회수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23 이는 특권적 신분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초순이는 리평에게 ‘수도 시

민의 정신과 풍모’를 이야기한 것도 바로 이 ‘평양시민증’의 특별함을 환기 하는 것이다. 북한사회는 ‘평양’이라는 특수공간으로 인해 사회주의 이데올 로기의 균열을 극심하게 경험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 실상을 ‘평양사람’이

라는 특별한 지칭 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공간의 위계화와 인민의 소외

“평양사람”은 ‘수도 시민’이었던 리평과 ‘수도 시민의 자격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는 초순을 대비시켰다. 그럼으로써 리평의 변화와 초순의 고상한 품격을 그려냈다. 이 소설은 북한 사회에 실재하는 사회적 불평등을 평양

과 농촌의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리평의 이름에서 ‘평’자는 평양에서 따왔

다고 소설에서 나온다. 리평의 부모는 심심산골에 있더라도 ‘공민중의 참된

공민 ’인 평양사람의 정신과 풍모를 리평 이 유지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리

평은 철산리 에 들어온 상실감은 너무 커서 작업반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 반면, 초순은 리평과 대비되어 ‘어디에 있건 당의 뜻대로 사는’ 인물

이기에 ‘진짜 평양사람’으로 지칭된다.

이 소설의 표면적 서사는 당과 자신을 일치시킬 때, 그 어디에 있든 평양

23

국가정보원, ''북한법령집』상, 서울 : 국가정보원, 2017, 92~93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73

사람의 ‘정신과 풍모’를 지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소설의 이면적 서사는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평양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공 간 욕망이 강한가를 보여준다. 초순은 불완전한 전기 공급에 대한 불평, 이

로 인한 전자기기 사용의 곤란, 그리고 평양사람이라는 상징적이고 특권적 지위에 대한 흠모를 소설 속에서 표현한다. 그럼에도 초순은 평양 출신이

아니기에, 평양으로의 이주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은 ‘계급 철폐’에 입각한 인간의 평등 한 권리가 보장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평양은 특별한 공간으로 북한 민 중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평양과 시골의 위계적 격차도 크다. 북한

사회는 계급적 불평등을 철폐한 사회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공간의 위계로 인해 차별적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마이크 새비지와 알랜 와드는 “사회적 불평등은 공간적으로 표현된다. ” 고 했다.24 인민의 평등적 지위를 강조하는 사회주의 사회 에서, 인민 스스로 가 평양과 같은 공간의 선택을 포기하는 상황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공간

적 위계화는 인민을 소외시킨다. 그 소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다는 좌절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24

마이크 새비지 우 알랜 와드, 김왕배 우 박세훈 옮김,『자본주의 도시와 근대성느 서울 : 한 울, 1996, 88쪽.

74 평양오디세이

4,

노동계급의 공간에 대한 욕망과 평양중심주의

1) 평양내기의 평양 떠나기

『로동신문丄 2018년 9월 28일자 1면에는 ‘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주체 화대상’준공식 거행 기사가 크게 보도되었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는 북

한의 대표적인 철강 생산기업으로 함경북도 청진시에 위치해 있는 “북방 의 대야금기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 기사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서

“100% 우리의 기술과 연呈 원료에 의한 주체철 생산공정”을 확립하는 공

사를 완료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감사문’이 전달되었다는 내용을 담 고 있다.25 제철, 제강기술은 국가 경제의 주축인 기간산업이다. 북한은 경 제 봉쇄로 곤란을 겪으면서, ‘자력갱생 ’을 내세우고 있다. 주체철 생산은 주

체비료와 주체비날론과 함께 북한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성과라고 한다.

한은희의 “김철녀인”26은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서 벌어진 ‘김철 로동계 급’의 투쟁을 인상적으로 형상화했다. 2019년 북한문학계는 이 작품의 예술 성을 높게 평가했다. 북한의 문학평론가 림창덕은 “김철녀인”이 “김책제철

련합기 업소의 주체철생산투쟁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참된 삶의 보람과 인 생의 가치에 대한 의의 있는 인간 문제를 제기하고 예술적으로 해명하였다” 고 높이 평가했다.27 문학적 표현기법 측면에서 보았을 때, 비유적 언어 표

25

「김책제철련합기업소 주체화대상 준공식 진행,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감사문 전달」,

『로동신문으 2018년 9월 26일자, 1면.

26

27

한은희,「김 철녀 인」,『조선문학』제857호,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19. 림창덕, “《평양연인》의 의미에 대한 인상깊은 형상,”『조선문학』제864호 평양 : 문학예술 출판사, 2019, 32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오창은 75

현과 상징의 효과적 활용, 주변부적 시선을 통해 중심적 사건의 재구성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북한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인 ‘평양과 청진’의 공간적 불균등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어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김철녀인”의 화자인 리혜영은 평양내기이다. 평양의 아파트에서 자라 성장했고,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신발공장에서 일했으며, 원격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혜 영은 “농촌동원을 가느라고 평양에서 한 100여리 벗어나”

본 것이 제일 멀리 가본 경험이었다. 그 때에도 혜영은 “지나가는 평양차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날 제발 평양으로 데려다달라”고 할 정도였다. 그

런 리혜영이 사랑하는 남편 김효석을 따라 평양을 떠나 ‘김책제철련합기업 소’가 있는 청진으로 이주하게 된다. 효석은 중학교 때 ‘전국알아맞추기 경 연’에서 1등을 한 수재인데, 공교롭게 혜 영과 같은 아파트에 살아 서로 알게

되었다. 효석은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와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 하여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효석이 졸업반일 때 혜영이 일하던 신발공장으 로 실습을 나오면서 둘의 인연은 사랑의 결실로 이어졌다. 효석은 신발공장

에서 ‘운동신 생산을 위한 가열로를 현대적으로 개조’하는데 큰 도움을 주

었고, 혜 영은 ‘새형〈제비〉표 신발 도안을 발명 ’하여 해설원으로서 큰 활약 을 하였다. 그 때부터 효석은 혜 영을 “사랑과 정을 담아 붙인 애칭”인 ‘나의

제비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효석은 김정일이 “주체철 생산을 위해 그리도 마음 쓰시다가 렬차에서

순직 ”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28 그는 잠자면서도 강박적으로 “…난 꼭 가

28

김정일과 ‘주체철생산공정 확립’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로동신문』에서는 “굴지의 대 야금기지에 우리 식의 주체철생산공정이 훌륭히 확립됨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평생념원을 풀어드리게 되었으며 나라의 제철제강공업이 상승의 궤도우에 확

76 평양 오디세이

야겠습니다. 김철에…”라고 잠꼬대를 한다. ‘김철’은 ‘김책제철련합기 업소’ 를 일컫는 말이다. 효석은 혜영이 평양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배

치받기 전에 결혼한 것을…후회 ”하면서도 김 철로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 고 있었다. 혜 영은 평양을 떠나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혜 영

의 심정은 다음 인용문에 잘 표현되어 있다.

서 럽고 불안했다. 혜 영은 가슴속에 꼴깍 차오르는 불안과 긴장감에 싸여

남편을 지켜보느라 무진 애를 썼다. 그랬더니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도 혜영에게 터놓지 못하는 아픔과 괴로움을 안고 모대겼고 혜영이도 숨이 막히는 듯 두려움과 괴로움을 혼자서만 안고 애를 태웠다. 그것은 정녕

서로가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워하는 문제였다. 오랜 기간의 괴로움과 모대 김 끝에 먼저 마음을 결정한 것은 뜻밖에도 혜 영이 였다.

자기의 생활에 견디여내기 힘든사변적인 일들이 닥치면 녀인들은 언제 나 사랑쪽으로 저울추를 놓으며 바로 그 힘으로 하여 남자들도 하기 힘든 결 심과 행동을 해내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은 녀인들에게 있어서 약한 고리이

기도 하지만 가장 큰 힘이 기도 하다.2’

혜영의 복잡한 내적 고뇌가 잘 표현되어 있다. 혜영이 느끼는 ‘불안과 긴

장감’을 평양을 떠나 청진의 김철로 가야할 지도 모르는 상황 때문에 발생 한다. 평양내기인 혜영은 효석을 설득하기 위해 “시부모님의 힘을 빌어 설29

고히 올라서게’’되었다고 했다(''김책제철련합기업소 주체화대상 준공식 진행,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감사문 전달」,『로동신문丄 2018년 9월 26일자, 1면). 위대한 수령님은 김일성 을, 위대한 장군님은 김정일을, 그리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는 김정은을 지칭한다.

29

한은희, 앞의 책, 34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77

복”할 생각도 하고, “죽자하고 막아설 생각”도 했으며, “내 몸안에서 자라 고 있는 새 생명을 빌어서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막아”서 려고도 했었다. 하

지만, 사랑의 힘으로 남편 효석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떳떳했던 공민으로서의 당원으로서의 숭고한 감정을 나 때

문에 손상당하”고 그것이 또한 “사랑을 싸늘하게 식혀줄” 것 같은 것에 두 려움을 느낀다.

혜영의 선택은 “안해의 진정한 고향은 남편의 심장 속”이라는 사랑의 감 정에 이끌린다. 평양을 떠나는 두려움보다, 사랑이 식는두려움이 더 컸기 에 혜영은 청진의 김철로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젠더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혜영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제한된 선택을 한 것

이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적 불균형이 여성의 사랑에 이끌리는 선택, 영리 한 선택을 합리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 사회 에 내재해 있는 가부장적 질서

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2) ‘평양녀인’의 ‘김철녀인’되기

혜영은 새 생명을 임신한 상태에서 김철로 와서 쌍둥이를 출산했다. 여섯

해 동안 김철에서 아이를 키우다가 드디어 평양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 다는 소식을 남편으로부터 듣게 된다. 이때부터 소설의 서사는 시작된다. 이 소설은 평양내기 혜 영이 북방의 청진 땅에 적응해나가는 험난했던 과정

에 대한 회고이자, ‘김철녀인’으로 거듭남으로써 진정한 ‘평양녀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혜영의 김철 적응 과정은 감나무 묘 목과 신발수리소 열쇠라는 두 개의 상징을 통해 문학적으로 표현된다. 첫 번째는 감나무모를 둘러싼 이야기인데, 비유적이면서도 은근하여 인

78 평양 오디세이

상적이다. 평양의 같은 아파트 아래위층에서 중학교 동창생으로 함께 자란

단짝 미화는 ‘과수총국 산하 연구소’에서 일을 한다. 미화는 혜영이 김철로 이사 할 때 연구소에서 ‘새롭게 육종한 감나무모’를 선물한다. 북부 지방에

서는 해안가에 더러 감나무가 자랄 뿐 흔치 않기에 ‘청진 땅에도 희한한 감 나무 풍경’이 펼쳐지기를 염원하면서 선물해 주었다. 더 깊은 뜻으로는 혜 영이 “북방의 추위 속에서도 굳세게 뿌리를 내리고 행복을 주렁지우기를 바 라는 벗의 믿음이고 축복”이 담겨 있기도 했다.

하지만, 감나무모는 번번히 엄혹한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그

때마다 미화는 두 번, 세 번 감나무를 보내주었다. 혜 영은 미화가 보내준 감 나무모를 심지 못한 채로 평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죄스러운 마

음을 갖게 된다. 소설의 결말에서는“김철에 억세게 뿌리를 내”릴 것을 기 대하며 다시 감나무모를 길가에 심는다. 며칠 후 그 감나무에는 혜영이 그

렇게 염원하던 ‘녀성과외지원대 대원 리혜영’이라는 명찰이 달려 있는 것으

로 서사가 마무리 된다. 혜영의 변화와 감나무모의 상황을 일치시킴으로써, 미래로 열린 희망을 그려낸 서사적 기법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는 신발수리소 열쇠에 상징적 의미가 기입되어 서사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혜영은 청진으로 이주한 후 가사일에만 전념했기에 청진 사람들 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평양내기 혜영은 청진의 신발수리소 ‘박아바이’

를 만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신발수리공인 박아바이는 국가에서 ‘사

회주의 애국공로자’로 내세우는 특별한 인물이다. 박아바이의 품성은 “신

발이란 그저 신구 걷는데만 필요한 물건이 아니 ”라 “자기 몸차림과 외모에

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것이기에 “대충 수리해” 놓을 수 없다는 태도에 서 잘 드러난다. 박아바이는 민중의 성실함과 진실함을 보여준다. 박아바이

에 감화되어 혜 영은 신발수리소을 일을 맡게 되고, 더 나아가 김철 사람들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 오창은 79

‘김철’로 불리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풍경

연합으

을 대하는 태도와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하게 된다.

혜영은 처음에는 신발수리소 일을 하다가, 김철에서 명성이 높은 ‘녀성과

외지원대 ’의 일원으로 참여하려는 계산을 세웠었다. 혜영은 신발 수선 일보 다는‘녀성과외지원대’에 더 관심이 쏠렸고, 그 과정에서 한 처녀로부터 ‘신 발 수선’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항의를 듣게 된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혜영은 그 처녀에게 ‘결혼식날 신었던 고운 신발’을 주고는, 집에 있는 모든

신발을 뜯어서 살펴보고 다시 만드는 훈련을 스스로 하게 된다. 이 과정에

서 혜영은 “내 남편의 신발, 내 부모의 신발이라면 더럽다고 장갑을 두 개, 세 개 끼고 일했을까”라는 각성을 한다. 혜 영은 자신이 평양의 신발공장 공정검사원으로 일할 때는 “새 제품이

나오면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살펴보고서 야 합격 도장”을 찍 어주었지

만, 김철에 와서 신발을 수선하는 현재를 되돌아보면 “자기자신의 됨됨이는

불합격짜리 였다”고 자각한다. 신발수리소를 찾은 제철소 당위원회 책임일 꾼은 혜 영을 위로하며 “인간의 가치는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에 있

80 평양 오디세이

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안고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데 있는거요”라는 말을 한다. 혜영은 박아바이를 통해 김철 사람들, 민중의 모습에 동화하고, 당 책임일꾼의 말로 인해 자신을 특별한 사람인 ‘평양녀인’으로만 생각했던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혜영이 평양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자기도 모르 게 가져왔던 ‘신발수리소 열쇠’를 보고 ‘죄의식’을 느끼는 것도, 평양으로 떠

나는 것이 수년 세월을 함께 해 왔던 청진 민중에 대한 외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아바이의 모습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인의 풍모이며,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민중의 형상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빛나는 부분은 혜영이 박아바이의 모습을 통해 신발 장인으로

자신의 변모시키는 대목이다. 삶의 진실성은 당 정책을 수행하는 노동일꾼 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진실되게 최선을 다하

는 박아바이와 같은 장인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은 평양에서 온

여인인 혜영은 ‘녀성과외지원대 대원’0] 된 것을‘김철녀인’이 된 것으로 그 리지만 실제로는 혜영이 성심성의껏 신발 수선을하게 된 순간에 이미 ‘김

철녀인’이 되었고, 민중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3) 평양 공간을 향한 강렬한 욕망

“김철녀인”에서 후반부에서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서 벌어진 건설 투쟁 을 전면화한 것은 오히려 부가적인 서사처럼 읽힌다. 효석은 ‘산소열법용

광로’의 마지막 설비 조립을 위해 필요한 대형기중기 이동 전투를 주도적으 로 벌려나간다. 효석은 수백여 톤에 달하는 대형기중기를 “땅층이 무르고 또 경사마저 묘하게 져 ”있는 곳을 통과하도록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낸

다. 그 과정 에서 혜 영도 기중기 이동을 도와 그토록 꿈꾸던 ‘녀성괴외지원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81

대 대원’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고, 효석으로부터도“김철에 억세게 뿌리내 린 당신”이라는 평가를 얻어낸다. “김철녀인”의 공식서사는 ‘김책제철련합

기업소’에서 벌어진 ‘주체화대상건설투쟁 ’을 그리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진‘대형기중기 이동전투’와‘녀성과외지원대’활동도

실제 벌어진 사건을 담아냈다.『로동신문』보도에 따르면 “탑식기중기를 22 시간만에 통째로 수백III나 이동시켜 난문제로 제기되던 제진설비의 설치를

일정계획대로 내미는 혁신을 창조하였다”30고 한다. 바로 이 사업이 소설 속에서는 효석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그려져 있다. 혜영이 ‘녀성과외지원

대 ’에 대해서는 “김철이 자랑하는 녀성과외지원대와 후방부문종업원들”이 라는 헌사가『로동신문』에 실려 있다.3132 혜 영은 효석을 도와 대형기중기 이 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여보, 난 그저 우리 가정을 아름답게 꾸며나가는 착실한 안해로만 살고싶

었어요, 화목한 가정과 아름다운 우리 인생… 그것은 나라를 위한 순결한 보

답의 자욱을 새겨갈 때만이 더더욱 빛난다는걸 인제야… 난… 다 알아요. 평 양을 떠날… 때는 평양사람으로 떠나서 평양사람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여기서는… 여기서는… 진정한 김철의 녀인이 되는 길이 평양의 녀인이 되

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후략)32

30

「자력갱생의 혁명정신, 과학기술의 위력이 안아온 주체적 금속공업발전의 튼튼한 토대,

김책제철 련합기 업소 주체화대상건설투쟁에 관한 조선중앙통신사 상보」,『로동신문,

2018년 9월 26일자, 3면

31

「주체화실현을 위한 대상공사 빠른 속도로 진척, 김책제철련합기업소 류동층가스발생 로건설장에서」, ''로동신문丄, 2018년 5월 16일자, 3면.

32

한은희, '‘ 김철녀 인」, 厂조선문학丄 제857호,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19, 45쪽.

82 평양오디세이

혜영은 효석 때문에 평양을 떠나야만 했던 시기에 극도의 불안과 긴장감

을 느꼈었다. 평양을 떠나지 않기 위해 효석을 설득할 다양한 방법을 모색 했으며, “ 평양을 떠난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꺽 막히는 것 같다”고 직

접 적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존중하기

위해, 그존중으로 통해 사랑을 지키기 위해 김철로 이주해 왔다. 혜영의 내 면에는 여전히 ‘평양사람으로 떠나서 평양사람으로 돌아가자’는 욕망이 있

었다. 혜영은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주체화대상 공사’과정에서 ‘김철의 녀인’이 되는 길이 ‘평양의 녀인’이 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된다. 혜 영의 변화는 ‘감나무모’의 적응 실패와 신발수리소의 박아바이로 인한

감화, 그리고 ‘김책제철련합기 업소의 기중기 이동전투라는 사건을 통해 문 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북한 문학계에서는 “김철녀인”이 “진정한 김철 녀인이 되는 길이 평양녀 인이 되는 길이라는 참신한 종자를 탐구하고 풍만

한 화폭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시대 인간들의 참된 인생관을 형상화하는 데서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높이 평가했다.33 이러한 북한문학 내부의 평가

는 ‘김책제철련합기 업소’의 노동계급의 성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 에 초점을 맞췄을 때 이뤄지는 것이다. 혜영의 평양에 대한 욕망에 초점을 맞춰 이 작품을 해석하면 또 문학적 긴장의 맥락을 도출해낼 수 있다.

“김철녀인”이라는 소설 제목은‘평양녀인’이라는 제목으로 변경해도 될 만큼,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어가 바로 ‘평양’이다. 혜영은 평양 이주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혜 영의 눈에는 철새들의 무리도 “평양 쪽으로 날아가

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감나무 묘목을 보고도 “아무래도 나와 함께 평양으

33

림창덕, ''《평양연인》의 의미에 대한 인상깊은 형상」,『조선문학』제864호, 평양 : 문학

예술출판사, 2019, 34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오창은 83

로 도로 가야 할가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가는 남 편이 ‘대형기중기’를 옮기는 현장에서 고뇌에 차 있는 순간에조차 “ 여보, 평

양으로는 언제?…”라고 강박적으로 질문을 던질 정도다.

북한 소설에서 이렇듯 강렬하게 ‘평양 공간’에 대한 욕망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경우도 드물 뿐만 아니라, 그 욕망이 문학적 표현을 통해 평양이 상

징공간으로 변화하는데 성공한 사례도 드물다. 혜영은‘김철녀인’이 됨으로써 ‘평양녀인’이 되는 길을선택했다. 혜영은 자신의 고향인 평양에서, 노동의 공간인 김철로 이주했고, 신발수선공으로

서 김철 민중의 삶을 선택했다. 이 소설은 혜영의 변화를‘김철녀인’이 됨으로써 진정한‘평양녀인’이 되 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혜 영의 관점에서 보자면, 평양이라는 상징

공간으로 수용함으로써, 평양 공간으로 실질적 이주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평양녀인에서 김철녀인으로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자신의 내적 분열없이 김철과 평양을 통합한 것으로 적극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

5-

평양공간과 사회적 불평등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수도 평양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념에 따라 근대

적으로 구성된 공간이었다. 평양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파괴 이후 폐 허에서 혁명적으로 건축되었다. 평양은‘지도에서 표기할만한 건물이 사라

진 도시 ’였었다. 평양의 폐허 상황에 대해 북한의 문헌은 다음과 같이 기록 하고 있다.

84 평양 오디세이

미제는 전쟁 기간 평양에 1,400여 회에 걸쳐 무려 42만 8,000여 개의 폭탄 을 떨구어 중앙기관을 비롯하여 공장, 기업소, 교육, 보건 시설들과 살림집

들을 모두 파괴하였다. 평양은 말그대로 잿더미로 되었다. 하여 미제는 평 양은 지도에서 없어졌다고, 100년이 걸려도 일떠서지 못할 것이라고 떠벌였

다. 34

한국전쟁 시기에 평양 인구는 40여 만명이었다. 투하된 폭탄은 42만

8,000여 개 였다. 평양 인구보다 더 많은 폭탄이 미 공군에 의해 평양 상공 에서 쏟아졌다. 미 공군은 1950년 6월 29일 평양비행장을 처음 폭격한 이

후 1950년 7월 22일에는 13-29기 15대가 나남의 창고 병참집 적소, 6대가 평

양조차장, 1대가 원산정유소를 공격했다. 당시, 평양은 만주의 심양 병기창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병기창이 있는 곳이었기에 집중 공격을 당했다.34 35 한국전쟁 중 8-29기는 ‘평양초토화계획 ’을 실행하는 공포의 상징

이었다. 미 공군은 한국전쟁 초기 에는 군사 목표만을 제한적으로 공격하는

‘정밀폭격쯔心%!!

을 했지만, 점차 민간인 거주지 역까지 공격하는

‘전략폭격8=0: 3010%’으로 전환했다. 북한에서는 8-29기를 ‘미제공중비 적들’이라고 불렀다.

폐허 이후에는 전면적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북한 1951년에 ‘평양시복구 를 위한 현지 조사와 총계획작성사업’을 진행했고, 1952년 5월에는 ‘평양시

복구 건설에 대한 내각결정’을 발표했다.36 일제강점기부터 근대도시로 성

34 35

강근조 - 리경혜, ''평양의 어제와 오늘丄 평양 : 사회과학출판사, 1986, 105쪽.

김태우,『한국전쟁기 미 공군의 공중폭격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 문, 2008, 93~94쪽 - 100~110쪽.

36

김준혁, 厂평양개관丄 평양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국문출판사, 2014, 18~1?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85

장한 평양은 ‘비문화적이고 기형적’인 형태였다. 그런데, 폭격으로 인해 잿 더미로 변한 평양에 ‘새로운 평양, 문명하고 아름다운 대도시’를 만든다는 원대한 계획이 실행된 것이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인민대학습당이 들어섰고, 모란봉에서 대동강을 따

라 1953년 즈음에 ‘승리거리’가 조성되었으며, 1970년부터 천리마거리, 영 웅거리, 하신거리가 건설되었다.37 1982년에는 동평양에 있던 비행장을 옮

기고 평양의 대표아파트단지인 ‘문수거리 ’를 만들었다. 이후 평양의 변화는 정체되었다.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과 구소련의 해체로 세계사적 격

랑에 휩싸였고,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봉쇄로 체제의 위기 국면을 맞기도 했 다. 북한 체제의 최대위기는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2000

년대까지 북한 도시를 재정비할 여유가 없었다.

사회주의 혁 명은 새로운 공간의 생산을 통해, 주체의 삶을 재구성함으로 써 완결된다. 이는 공간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공산주의 혁명’은 ‘기성공 간의 정형성을 재편하여 노동자들의 존재가 공간적으로 보장되는 방식으

로 재배 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연결된다.3839 한국전쟁 이후 북한 사회는

폐허 위 에 새로운 평양의 공간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북한 사회는 ‘평양

속도’39라는 속도전으로 ‘계 획도시, 현대도시 평양’으로 새롭게 건설 되 었다. 노동자들의 결집된 힘이 새로운 공간 생산으로 이어졌다. 주체가 공간을 생

산하지만, 공간은 주체를 구성한다. 평양의 새로운 공간은 노동계급의 자부

37

강성산 - 서윤석 - 강희원, 弓수령님과 평양』,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6, 12~13쪽.

38

로브 쉴즈 우 조명래,「앙리 르페브르一일상생활의 철학」,「공간과 사회』14, 서울 : 한국

39

‘평양속도’는 조립식방법을 채택하여 살림집 한 세대를 14분만에 완성하고, 7천세대분의

공간환경학회, 2000, 23쪽.

자재와 자금, 노력으로 1958년 한해 동안에 2만여 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한 건설속도를 말 한다. 강성산 우 서윤석 우 강희원,「수령님과 평양유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6, 31쪽.

86 평양오디세이

심이자, 견고한 북한 체제의 상징적 질서 구축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고난 의 행군’을 거치면서 평양은 낡은 공간으로 변모했고, 퇴락한 도시가 되어

갔다. 김정은은 새로운 평양의 공간 생산을 통해 체제의 안정성을 재구축하려

고 시도하고 있다. 김정은은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 주택지구, 미래

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평양 재건축 사업을 통해 기술자, 과학자, 교육자 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과학중시, 인재증시’의 국가 정책을 공간을

통해 구체화하려 했다. 사회주의 현대도시 평양의 변화는 북한 인민의 공간 욕망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인 평등의 긴장 관계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필 요가 있다.411 평양은 김정은 시대의 도시 재건축과정에서 평양과 지역의 불균형이 심

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평양은 상징화와 미학화 과정을 통해 특권적 공간이 되었다. 주흥건의 “우리 집 노래”는‘미래과학자거리’라는 현대적 주거 공

간이 사적 생활 영역을 확보하도록 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주의 대가정 ’의 분열 양상을 보여준다. 공적 영역을 중시하는 북한 사회에서 공간 변화로

인해 사적 세계가 확대되고 있다. 북한 정치권력은 ‘사회주의 대가정’을 강 조하는 당정책을 통해 사적 영역을 공적으로 관리하려 하고 있다.

김계숙의 “평양사람”은 평양과 농촌의 공간적 위계가 젊은 세대의 감수 성 속에서는 어떻게 포착되고 표현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젊은 세대

에게 ‘평양과 평양 바깥 지역’의 분리가 계급적 불평등 철폐라는 사회주의

40

이진경은 르페브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회주의 혁명이 새로운 종류 의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하

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혁명이라는 말에 충분하게 값하지 못했다는 르페브르의 비판은 지극히 적절하다. ” 이진경,『근대적 시 우 공간의 탄생으 서울 : 푸른 숲, 2002, 168쪽.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87

의 이상과 충돌하는 양상을 핍진하게 보여주기에 인상적이다. 문제적인 작

품은 한은희의 “김철녀인”이다. 북한 문학계에서도 수준 높은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평양에 대한 거주 욕망이 사실적이면서도 직접

적으로 그려져있는 예외적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 혜영은 평양에 거주

하고 싶은 공간 욕망을 ‘김철녀인’ 되기라는 이데올로기적 상징으로 변형해

해소했다. ‘평양시민증’이라는 특권적 신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북한 사

회는 민중의 평양을 향한 욕망을 계몽적 이 데올로기로 통제하려 하고 있다.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생산이론’에서 “삶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새로운 공

간을 창조해야 한다”고 했다.41 공간의 변화는 주체의 변화를 이끈다. 새로운 공간에 이주한 주체들은 기존의 사회적 생산양식과 질서, 이데올로기에 부

응하면서도, 공간과 주체의 관계를 재설정하려 한다. 북한 정치권력은 북한

민중의 강렬한 평양 거주 욕망을 ‘평양공간의 상징화’를 통해 해소하려 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권력은 인민들이 평양의 상징성과 공간의 특권적 위계를

받아들이기를 요청한다. 이를 위해 평양과 평양 이외의 지역의 위계적 질서

를 인민의 수락하도록 호명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포괄하는 근대사회의 모순은 공간의 위계 속에서 확대된다. 노동계급에 의해 생산된

공간을, 노동계급이 향유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소외가 발생하게 된다.

공간적 위계는 계급적 소외를 생산한다. 김정은은 평양의 재건축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공간의 생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공간의

향유 주체는 ‘과학중시, 인재중시’ 정책에 따라 과학자, 기술자, 교육자로 한 정 되었다. 평양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는 노동자들과 민중에게는 제한되는

41

노대영,『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생산이론’에 대한 고찰」,『공간과 사회』14, 서울 : 한국

공간환경학회, 2000, 47쪽.

88 평양오디세이

특권적인 것이 되었다. 북한사회가 직면한 공간적 위계로 인한 곤란은 주흥 건의 “우리 집 노래”, 김계숙의 “평양사람”, 한은희의 “김철녀인”에 잘드러 나 있다. 평양에 거주하고자하는 민중의 강렬한 욕망은, ‘평양을 이 데올로

기적 상징공간화’함으로써 평양 이외의 지역에 평양과 같은 상징성을 부여

하고 있음을 이들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평양의 공간

현대 평양은 북한소설에서어떻게 그려지고 있나-오창은 89

II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 민의 생활수준

이 글은 필자의 논문 채수란,「북한이탈주민 면접조사를 통해 본 평양시민의 가처분소득과 소비행태一종합시장 경

제활동을 중심으로」(『통일인문학』제77권. 2이9)를 수정 우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더불어 조사대상자의 인적사항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가명을 사용하였다.

채수란

1.

북한판 ‘기생충’? 북한의 계층별 삶

봉준호 감독의 영화〈기생충으은 2019년 5월 개봉된 후 ‘사회 양극화’, ‘빈 부격차’, ‘ 계급 갈등’을 주제로 자본주의의 고질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생충은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40회 청룡영화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 등 200여 개의 상을 휩쓸며 영화계 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 켰다. 이 영화가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던 원인은 뛰어난 연출력, 유머와 해

학을 갖춘 스토리 전개 등은 물론이고 그만큼 빈부격차라는 소재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공감대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는 상류층과 하류층을 대변하는 두 가족이 있다. 송강호(기택), 최우식(기우), 박소담(기정), 장혜진(충숙) 이렇게 넷은 전원 백수로 하류층이

다. 이들 가족은 반지하에 살면서 피자 박스를 접는 등 간단한 소일거 리를 하며 알콩달콩 살아간다. 이 에 반해 유명 건축가가 지은 최고의 저택에 사

는 이선균(동익), 조여정(연교) 가족은 상류증이다. 이선균(동익) 가족은 운전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채수란 93

북한이 "에너지절약형 .녹색형거리”로 선전하는 여명거리

연합으

사, 가정부, 과외교사 등을 두며 여유 있는 삶을 산다. 송강호의 가족은 이

선균의 집안에 운전사와 과외교사로 고용되기 위해 계략을 꾸미며 상류층 에 기생충처럼 붙어살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사회에

만 있는 현상일까?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 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한다. 평등주 의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도 상류층과 하류층이 있다. 북한에 서 상류층은 대체로 평양사람들을 말한다.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에 대한

전시효과를 극대화한 수도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부 모님 대부터 빨간 혁 명의 피가 흐른다는 우수한 출신성분을 가졌다. 선대부 터 검증받은 평양시민들은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김정은의 핵심 지지

층이라 할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상류층이라고 하는 평양사람들은 북한에서 어느 정도 의 생활 수준을 보이며 살고 있을까? 평양인들이 한 달에 손에 쥐는 월 소득

은 현금으로 어느 정도 수준이며 소비생활은 의식주 부문에서 각각 어느 정

94 평양오디세이

도 수준일까? 또 월 소득은 어떤 직업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물음 을 가지고 필자는 북한이탈주민들은 만나보았다. 이 글에서는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평양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알아보기로 한다. 이 글을

읽고 평양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체감하였다면 평양 이외 지역에 사는 사람 들의 생활수준은 분명 그 아래라는 것을 여러분이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평양시민들의 정확한 소득을 알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통계치가 있어야 하나 북한 당국이 공개하는 통계나 경험자료가 없으므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북한 연구의 중요한 방법론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한 개 인의 삶을 밀도 있게 관찰하는 심층면접은 질적 연구방법으로써 연구대상

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해 소득형성과 소비생활과 같은 경제생활에 대해 소중한 경험적 자료를 제공해준다.

필자가 인터뷰한 대상자는 북한이탈주민 13명과 2018년 연구 당시 북 우 중 접경지역에서 만났던 평양 거주민 3명 등 총 16명이었다. 북한이탈주민

지원단체의 실무자로부터 추천받은 북한이탈주민 중 성별, 연령, 탈북 이전 의 소득수준을 고려해 다양한 계층을 대상자로 선정하였고 실무자를 통해

먼저 접촉하여 면접 허락을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인터뷰를 시행하였다. 질 적 연구의 경우 연구자와 면접 대상자 간의 신뢰 형성이 면접의 내용과 심

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최근에 탈북한 면접 대상자일수록 신변 안전 의 문제 에 예민한 특성을 보여 소개자에 대한 신뢰 여부가 면접 자료의 질

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필자는 가능한 북한의 최근 자료를 얻기 위해 면접 대상을 “김정은 시대 탈북한 평양 출신자’’로 삼았다. 또한 중국에 사사여행1 나온 3명의 면접자1

1

평양시민은 중국에 있는 친척방문을 목적으로 당국에 허가를 받아 여권을 소지하고 두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95

로부터 당시 평양의 최신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심층 면접조사는 한 사람 당 2~3시간에 걸쳐 심층적으로 시행했으며 2018년 9월부터 12월까지 넉 달

간 이루어졌다. 이 글은 북한이탈주민의 재북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입국 시기가 아닌 탈북 시기를 적어두었다. 조금 더 자세한 인적 사

항은 인터뷰 대상자들의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각주 에 공개하기로 한다. 이 글에서 소득수준은 소득형성에 기여하는 공식 - 비공식 수입원과 저축

으로 나눠 조사하였고 소비 부문은 크게 의 . 식 - 주와 그 밖의 항목으로 나

눠 질문하였다. 특히 실제적인 소득이 발생하는 비공식 소득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종합시장에서의 장사 경험에 대해 주목하였다. 장사 경험이 있는 연구대상자에게는 월수입뿐만 아니라 장사했던 품목과 그 품목의 유

통경로, 해당 지역의 종합시장 현황, 매대 가격, 매일 혹은 매월 내야 하는 자릿세, 어떤 화폐로 물건을 거래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추가 질문하였다. 또 의 . 식 . 주에 관한 소비지출 비용 외에도 한국 상품에 대한 인식과 유

통현황, 브랜드 선호도, 평양과 다른 지역의 생활수준 차이, 휴가 및 여가활 동, 평양의 백화점 우 외화상점 이용 여부, 선물은 어떤 것들을 주고받는지

등도 추가 질문하여 평양시민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생활하는지 자세히 들 여다보았다. 전체적인 한 가정의 소득과 소비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인

2012년부터 탈북하기 직전까지 모두 파악한 뒤 탈북하기 직전의 일 년을 평 균하여 월 소득으로 계산하였다. 필자의 연구는 연구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였

다. 먼저 연구 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 현재 한국에 3만 명이 넘는 새터민

달간 중국에 머물 수 있다.

96 평양오디세이

이 살아가고 있지만, 평양시민은 북한의 로열층으로 이탈률이 높지 않아 그 수가 매우 적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탈북한 평양 출신자”로 기간

제한을 두어 조건에 만족하는 면접 대상자를 찾기는 더 어려웠다. 게다가 김정은 시대에 경제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는 전제조건이 더 붙었다. 필자가

만난 평양의 상류층과 중류층은 해외를 다닐 수 있는 사람들로 여권을 가지 고 있어 탈북이 상대적으로 쉬웠으나(사실 쉬운 탈북은 없다. 탈북은 정말 목숨을 건

매우 위험한 여정이다), 하류층은 평양내륙에서 이탈하기가 어려워 그 숫자가

더적었다.

내용 면에서는 여성의 경우 한 가정을 꾸려본 경험이 있어 비목별로 자세

한 지출비와 지출처를 알고 있었으나 남성은 안사람이 소비생활을 했기 때 문에 자세한 물가와 소비 우 지출내 역을 모른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또 탈

북 시기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다양하여 소득 연도를 획일적으로 지정 해 산정할 수 있다는 점 에서 한계가 있으며 상세한 소비 물가를 반영하지 못한 점도 부족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2013년도부터 2018년도까지 물가는 비교적 안정된 수준을 보였으므로 이 글의 자료는 평양시민의 경제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유용한 자료임은 틀림없다.

참고로 이 글은 2018년 가을까지 북에서 경제 생활을 해보고 온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2019년 겨울에 집필하였다. 2022년 오늘

날 북한은 누적된 대북제재와 자연재해가 겹친 데다가 코로나19로 국경까 지 봉쇄하여 경제가 악화되었다. 글을 집필하던 당시와 현재의 경제 상황이

꽤 다르다는 점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드린다.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생활수준 - 채수란 97

북한이탈주민 심층면접 내용

범주

심층 면접 내용

소득수준

흐 주관적 경제적 지위 2

조사

- 직업에 따른 공식수입 - 비공식 수입 - 종합시장에서의 장사경험 유무 - 도매원산지

- 매대가격, 자릿세 - 그 밖의 소득원(친척의 도움, 뇌물수수, 외화벌이 등) - 공식, 비공식 합산 가족의 월평균 수입 - 저축유무 - 거래하는 화폐종류

소비생활 의식주 실태 (계절별)

’ 식비 - 고기 우 생선, 남새, 과일, 그밖에 간식, 외식비용 ‘의복구입비 -계절별로 의류. 신발구입비용

- 주거비 - 살림집 장만경로

- 살림집 구입비용

" 살림 집 관리비용(냉 . 난방비 포함) ,그 외 - 통신네, 교육비, 동원비용, 서비스비용 등

오 월 평균 총 지출비용 - 한국상품 인식 및 유통현황

- 브랜드 선호도 - 휴가 및 여가활동 - 군 복무기간 -뇌물마련비용 등

2,

평양 종합시장의 이모저모2 3

1) 경제활동의 중요 영역

1990년대 중반 경제난 이후 북한에 국가 공급제도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주민들은 농민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다. 국가가 배정

2

인터뷰 대상자에게 탈북 전 평양에 거주당시 스스로 생각하는 경제적 지위를 질문하였다. 상류층, 중류층, 서민층 중 어디에 해당되었는지 질문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분류하여 가

처분소득부분에서 후술하였다.

98 평양 오디세이

해준 직업에 종사하며 근로소득을 취득하지만, 공식적 노임은 한 달에 1달

러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추가 수입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다. 비공식적

인 부수입을 얻기 위해 주민들은 농민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농민 시장은 경제난 이후 북한의 통제 속에 비공식적 영역에서 확산하다가, 2002 년 7 우 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2003년 3월, 북한 정부의 시장포용 정책으

로 지붕이 덮인 종합시장이 공식적으로 운영되면서 활기를 띤다. 이후 북한

에서 시장은 크게 확산하였고 경제활동의 중심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뷰 대상자 김씨, 최씨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종합시장에서 장사

를 하기 위해서는 처음 들어갈 때 60011 크기의 매대를 150~200달러 주고 구

매해야 한다. 또한 장사하기 위해 매일 당국에 내는 자릿세場稅가 북한 돈으 로 5천 원-1만 원 정도이다. 중구역에 위치한 한 시장은 한 줄에 매대가 600

개씩 석 줄이 있다고 했다. 총 1,900개 매대가 있으니 국가가 한 개의 시장에 서 거두는 매대 값만 36만 달러(한화4억 원가량)이며, 매일 거두는 자릿세가 북

한 돈으로 9천만 원(10,832달러)이다. 평양에 한 구역 당 크고 작은 종합시장이

평균 1~2개 정도 있어 2개 군과 18개 구역의 종합시장에서 거두는 장세는 매 우 큰 금액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이 장사행위를 인정하고

의지 우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3

장마당은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됨에 따라 기존의 농민시장이 확대되면서 불법적 시장으 로 그 성격이 변화된 1990년대 북한 시장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2003년 북한은 이 같은

불법적 장마당을 종합시장으로 합법화하였다. 내용적으로 북한의 농민시장, 장마당, 종 합시장은 경계와 구분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북한주민들에게는 시장을 지칭하는 광

의의 개념으로 사용된다(통일부 북한정보포털). 그러나 합법, 비합법 구분 없이 장마당

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혼돈을 가져온다. 따라서 공식 시장은 종합시장을 비롯하여 당국이 상행위를 허가한 공식 장소 및 상행위 활동을, 비공식 시장은 ‘장마당’으로 통칭

되는 골목이나 길거리 등 공식적으로 허가되지 않은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장사 행위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홍민 - 차문석 - 정은이 - 김혁,『북한 전국 시장 정보一공식

시장 현황을 중심으로뇨 서울 : 통일연구원, 2016, 11쪽.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채수란 99

평양의 시장 현황 개수

시 으 군

시장 위치

시장명

평양

구역

사동구역 송신동

송신시장



대성구역 능라2동, 용흥시장

능라2동시장, 용흥시장

34개

역포구역 장진동

역포시장

평천구역 안산2동, 봉학동

평천시장, 봉학동시장

만경대구역 당상동, 칠골동

당상시장, 칠골시장

모란봉구역 인홍1동

인홍시장

서성구역 중신동. 남교동

하신시장, 남교동시장

중구역 오탄동

중구시장

시장

낙랑구역 관문동, 원암동,

낙랑시장, 원암동시장,

통일거리동

통일거리시장, 통일거리새시 장

보통강구역 붉은거리2동

붉은거리2동시장

용성구역 용궁2동

용궁2동시장

형제산구역 신간2동, 서포2동

신간2동시장, 서포2동시장

선교구역 대흥동

대흥동시장

동대원구역 문신1동

문신 1동시장

대동강구역 소룡1동,능라동

소룡1 동시장,능라시장

순안구역 석박동

석박동시 장

은정구역 배산동, 과학1,2동

비1산동시장,과학1,2동시장

삼석구역

-

강남군

강남읍

강남시장

강동군

강동읍

강동시장

고비노동자구

고비구시장

송가리노동자구

송가리구시장

상리노동자구

상리구시장

대리노동자구

대리구시장

홍민 외(2016)의145쪽과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재구성.

100 평양오디세이

시장은 북한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경제활동의 중심이므로 실질적인 주

민의 소득과 소비는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화 현상은 평양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의 수도 평양은 행정구역상 2개 군 18개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강동 군과 강남군을 비롯해 대동강구역, 대성구역, 동대원구역, 낙랑구역, 역포

구역, 용성구역, 만경대구역, 모란봉구역, 보통강구역, 사동구역, 삼석구역, 형제산구역, 서성구역, 선교구역, 순안구역, 은정구역, 중구역, 평천구역이 다. 2군 18구역에 거주하는 평양 도시인구는 288만 명이다. 2위 청진 64만

명, 3위 함흥 57만 명과 비교해 평양의 인구수는 5~6배 많다.4

북한의 전체 인구 2,490만 명 가운데 약 10%인 288만 명이 평양에 거주 하고 있어 타 도시보다 인구밀집도가 가장 높다. 종합시장의 경우 평양의

시장 개수는 34개로 도 단위 에서 7번째이지만, 시장 1개당 이용하는 인구로 환산했을 때 이용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99,982명이다. 평양은 소비 력이 가장 큰 도시인 셈이다. 평양에 있는 종합시장은 2018년 말 기준 34개로 현

황은 앞의 평양 시장 현황표에 표기해놓았다. 인터뷰 대상자들에 따르면, 평양에서 남성들은 기 업소나 공장 등으로 일

을 하러 나가지만 국가로부터 받는 한 달 봉급은 1달러 미만요 매우 적다. 놀랍지 않은가? 한 달 내내 직장을 나가는데 버는 돈이 거의 없는 셈이다.

평양은 지금도 명절, 태양절, 광명성절 등 특별한 날에 배급을 주지만 배급 에만 의존할 수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주부들이 종합시장에 나가 장사를 한 다. 만약 직업소(직장)에 나가야 하는 남성이 장사하면 단속대상이 되기 때문 에 종합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인터뷰대상자 중 주

4

통계청, “2018 북한의 주요 통계 지표”, 1'따://1《0818』丁/6내하必11/10(:16\)813(검색일 : 2018, 12,

24)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01

평양에 건설된 통일거리시장의 모습 @느연합〉

102 평양오디세이

부 모두가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고 대답했다. 여성들이 모두 시장에 매달리 다 보니 가정 대부분은 맞벌이 가정이고 종합시장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의 돈벌이가 좋아 심지어 공식적인 직업이 있는 사람들도 직업

소에 뇌물을 주어 출근한 것으로 해달라고 하고는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하 는 실정 이다. 시장 활동을 위해 결근한 대가로 주는 뇌물은 직업소에 중요

한 수익으로, 이 수입은 다른 직원에게 월급으로 지급되기도 한다.5 당국이 2007, 2008년 종합시장 단속을 본격화했고 2009, 2010년은 종합시장을 폐

쇄하려 했지만, 주민의 반발로 무산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 다.6 시장경제가 20년 이상 장기화하여 북한을 지탱하는 필수 불가결한 존

재가 된 것이다. 평양의 시장은 평양시민의 실질적인 소득과 소비의 경제활 동이 벌어지는 중심지이다.

2) 종합시장의 하루

유통상황을 보면 평양의 장사꾼들은 대체로 혜산, 신의주, 평성, 숙천의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받아와 평양의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 소매판매 업자는 도매시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물건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처 음 장사를 시작할 때 계약을 위해 방문할 뿐 이후부터는 전화 통화를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평양의 종합시장 바로 앞까지 도매 물품을 가져다주는 운 송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하고 있다. 시장 상인들은 초기 시장 진입 시 물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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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양문수,『북한경제의 시장화, 서울 : 한울, 2010, 100쪽.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03

을 진열하는 매대를 사게 되는데 보통 601100111로 폭이 좁아 물건을 진열

하기 어려우면 매대를 2개 구매하기도 하고, 옆자리의 장사꾼이 나오지 않 는 날은 옆자리도 사용하면서 탄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또 가격을 결

정할 때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게 되는데 요즘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진을 많이 붙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핸드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져 각 지 역의 장사꾼들끼 리 수시로 통화해 시장별로 마진을 얼마나 붙여서 판매하는지 에 관한 정보를 시시각각 나눈다고 했다. 수요와 공급법 칙이 작

용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시장의 개장 시간이나 폐장 시간은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장사꾼

들은 점심시간 이후부터 해질 무렵까지 계속 장에 나가 머문다. 겨울은 해 가 빨리 지므로 오후 6시 정도까지 장사를 하지만 여름은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밤 9~10시까지도 장사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없이 365일 매일매 일 장사를 호)]야 해 장사꾼에게 휴가란 있을 수 없다. 장사는 계절에 따라 혹 은 시기에 따라 수익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5~6월 모내기 등 사람들이 동원

되는 시기에는 손님이 줄어 장사수익이 현격히 줄어든다. 또 명절 전에는 보안원 단속이 심해져 이들에게 뇌물을 주어야해 적자가 난다. 품목에 따라 계절을 타는 시기가 다르겠지만 의류의 경우 환절기에 장사가 잘 되며 모든 물품이 공통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많이 받아 달러가 오를 때 장사가 잘되고

달러가 내릴 때 장사가 덜 된다고 했다. 장사꾼들이 거 래하는 화폐는 달러, 위안화, 유로화, 엔화, 북한 돈 등 다

양했다(2021년

현재는 당국이 외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장사꾼들은 북한

돈(국돈)을 휴지보다 못하다고 했으며 평양시민들은 달러를 선호해 뇌물도 달러로 주고 거 래도 달러로 하고 저축도 달러로 하고 있었다다 만, 필자가 인터뷰했던 당시 2018년에 탈북한 사람들은 “요즘은 북 . 중 접

104 평양오디세이

경지역뿐만 아니라 평양에서도 위안화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답

변했다. 2009년 화폐개혁 이후로 안정된 가치의 경화 사용은 더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단, 잔돈의 경우 외화를 아끼기 위해 북한 돈인 국돈을 쓰고

있었다. 장사경험이 있는 인터뷰대상자들에 따르면 평양시장에서 메뚜기 장사7 를 뛰어도 한 달에 20~30달러 정도는 벌 수 있으며 2015년 기준, 종합시장

에서 잘 버는 사람은 매달 300달러를 벌고 더 잘 버는 사람은 500달러를 번

다고 대답했다. 또 2018년 종합시장에서 장사꾼들이 “하루에 10달러를 벌 어보자! ”를 구호처 럼 외쳤다고 전했다. 결국 보통의 중산층 장사꾼들은 한

달에 300달러 벌이를 목표로 세우고 있어 이들의 한 달 소득은 300달러 미

만의 소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 가정의 한 달 소 득은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3,

평양시민의 계층별 월 소득

1) 뇌물 없이 못사는 평양 상류층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질문하였다. 권력을 가진 자 는 자신이 상류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부를 축적한 자도 상류층으로 생

각하고 있었다. 인터뷰대상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지위 에 따라

7

당국이 허가한 공식적인 종합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속을 피해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 다니 며 장사하는 것을 일컫는다.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05

상류층, 중산층, 서민층으로 분류하고 이들 수입원의 특징 에 따라 유형을

다음과 같이 세분화하였다. 상류층은 크게 권력층 간부, 해외 외화벌이, 종합시장 돈주로 나눠진다.

상류층의 소득구조를 보면, 전형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인 정치와 경제 가 밀접히 연계된 구조@1*21 하0001끼로, 권력층이 사회를 통제 - 단속하며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당 일꾼, 보안원, 보위원, 검찰 기관, 군 간부, 조직지도부 등의 권력층들은 주민의 모든 생활에서 단계마 다 허가를 내주면서 뇌물을 받고 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가 매우

심해 그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심하다.

권력층 간부의 경우 매월 안정적으로 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에 이르기까

지 상당한 금액의 뇌물을 꾸준히 받으며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부와 권 력을 모두 가져 정권에 대한 충성도도 강하다. 권력층이 권력을 갖기까지는

집안 대대로 출신성분이 매우 중요하다. 항일 투사 유가족, 빨치산 출신자 등의 후손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권력과 부가 그대로 세습된다. 이들 후손이 모두 잘사는 것은 아니지만 40대 이상

에서는 부모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이씨와 노씨는 부모의 출신성분이 좋아 계급의 세습으로 인해 상류층에 속하게 되었고 현재의 부를 축적한 사례에 해당한다. 이씨의 경우 자신이 특수기관에 종사하고 있어서 뇌물을 받으며 살았다고 응답했다. 여기서 특

수기관이란 무기회사에 속해있거나 중앙당 우 군 간부급을 말한다. 북에서 뇌물수수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공공연히 받을 정도로 사회에 부정부패 가 만연해 있다고 했다.

이씨의 부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집, 오메가 시계, 위스키 등 하사받은 물품이 상당하였다. 정씨도 부모의 출신성분이 좋다고 했으며 자

106 평양오디세이

신이 건설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당 비서 여서 러시아에서 노동자 관리만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정씨의 경우 부모가 북송 재 일교포여서 부가 세습된 케이스에 해당한

다. 1960년대 초반 북송 재일교포들이 평양으로 많이 이주해왔으며 이들 은 평양의 중심인 모란봉구역 안상택거리에 많이 살았다. 당시 노동임금이

50~70원일 때 귀국자들이 일본에서 가져온 세이코 시계가 1,000~2,000원 했는데 이 시계가 당시 부의 상징 이었다고 했다. 여씨는 아버지가 군 간부 여서 뇌물로 최고위층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김미 0 의 가정은 해외에서 외화벌이를 통해 큰돈을 번 케이스였다. 그녀 의 남편이 앙골라에서 의사로 있으면서 자녀와 함께 아프리카와 평양을 오

갔다고 응답했다. [짜제재가 있기 전 의사들은 탄자니아, 앙골라, 우간다 등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 활동을 통해 외화를 벌어오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벌어온 돈을 다 쓰면 당국에 뇌물을 바친 뒤 다시 아프 리카로 나갔다. 해외일꾼은 통상 5명이 한 개 조를 이루는데 한 명이 벌어

오면 나머지 4명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해외일꾼 1명당 보위부원, 당 비서, 종합지도원, 재정지도원이 단위책임자들로 구성

되어 있다.

김미 0 가정의 소득액은 남편이 앙골라에서 3년간 벌어온 30~40만 달러 이며 보위부원, 당 비서, 종합지도원, 재정지도원 사람들과 각각 나누고 남

은 돈(약 40%)으로 평양에 와서 2012~2015년까지 생활했다고 전했다. 북한 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45개 국가에 10만 명 정도의 일꾼을 파견했다고

했다. 김영0, 김미 0, 이씨는 평양에 이런 식으로 외화를 만지는 수가 평양 시 인구의 10%는 될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입을 모았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 들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인해 따 제재를 받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07

평양의 한 귀금속매장 @느연합으

으면서 외화 조달이 되지 않아 평양시가 타 도시보다 어려워지는 실정이라 고답변했다.

한씨와 김한0는 종합시장에서 도매업을 하면서 상류층으로 거듭난 경

우였다. 한씨는 군부대 에 뇌물을 주고 와크(사업

허가증)8를

얻어 장진호반 근

처 땅을 몇 정보(1정보그3,000평) 사들여 그 땅에서 잣, 개암9, 버섯 등의 농토

산물을 수확한 뒤 신의주에서 중국으로 내다 파는 전문장사꾼이었다. 한씨

의 가정은 부모님이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어 부모님의 노동임금은 매우 적

8

북한의 대외무역체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와크제도이다. 와크, 라이선스(수출

입허가권)와 쿼터(취급품목, 수량포함)가 결합한 개념이다. 국가에 의한 무역 독점이 폐 기되고 무역의 분권화가 이루어진 이후. 수출입을 할 수 있는 권리인 와크는 사실상의 특권이다. 무역회사의 설립 여부는 와크 획득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민영기,「북한의 경

제질서 재편과 관료적 시장의 형성一200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북한연구학회』제20 권 제1호, 2016, 190쪽.

9

북한에서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암이 마약 해독작용에 효과가 있어 잘 팔린 다고 전했다.

108 평양오디세이

다고 했다. 형은 군 복무 중이어서 한씨가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한씨에 따 르면 2015년 처음 도매업을 시작했을 때는 적자였던 이유가 뇌물 비용 마련

때문이라고 했다. 장진호반 산림 에서 농토산물을 수확해 30톤짜리 컨테 이

너 에 담아 나올 때마다 일종의 패스비용으로 군부대 초소에서 뇌물을 요구 했으며 초소에 후원 사업은 물론, 명절 때마다 뇌물을 줘야 했다. 이 금액 이

적게는 일 년에 3만 불에서 나중에는 5만 불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김한0는 종합시장 도매업으로 돈을 벌어 부동산 구입을 통해 큰돈을 벌 자 당국에서 단속을 나와 하루아침에 무일푼이 되었다고 통곡했다. 이렇듯 북한 사회는 철저한 통제와 감시 속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 뇌물을 주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권력과의 공생관계, 인맥 형성에 몰두하고 있었

다. 김미 0, 이씨, 한씨에 따르면 자녀들이 평양외국어대학에 입학할 수 있

었던 것도 뇌물 덕분이라고 말했다.

2) 한 달에 200~300달러는 만져야 평양 중산층이지

조사대상자의 중산층 가정들은 모두 종합시장에서 소매업 장사를 하는

경우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자생적으로 살아남아야했던 인민들은 시장에서 장사를 통해 실질적인 수입을 벌고 있다. 김 영 0, 최씨, 서씨 모두 맞벌이 가정이었으며 김영0 가정의 경우, 남편이 무역성 일꾼으 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나가있는 동안 군용 마일드세븐 담배를 수입해오면

人가 종합시장에 3배 비싸게 팔았다고 응답하였다. 한 달간 버는 수익이 500 달러 정도였으며 자신은 잘 버는 편에 속한다고 했다. 최씨의 경우는 남편이 러시아 벌목공 운전수로 10년간 나가 있는 동안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종합시장에 나가서 의류 장사를 했다. 역포 시장은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채수란 109

역포구역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사람이 늘 북적거리며 의류품의 경우 환절

기 에 수입이 좋을 때는 한 달에 300~400달러 번다고 대답했다. 역포구역은 평양의 시내 중심가가 아니어서 단속이 심하지 않아 돈을 벌기가 편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사사여행 나온 평양주민 서씨는 설계사업소 소장으로 자

신이 한 달에 300달러를 벌고 아내가 서성구역 하신 시장에서 옷장사를 해 400달러 정도를 벌었다고 했다. 현재 평양에서 700~800달러는 벌어야 중산

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3) 여전히 배고픈 평양 서민층

조사대상자의 서민층 가정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남성의 경우 중동, 러

시아, 동남아 등지에 건설노동자로 나가서 외화벌이를 했으며 여성의 경우 종합시장에서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든지 종합시장에 매대를 살 형편이 되 지 않아 메뚜기 장사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김명 0, 한성 0 의 경우는 러시

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한 예로 이들은 해외에 나가기 전에 심사를 받는데 매 단계마다 뇌물을 바쳐야만 하고 300~500달러를 빌려 뇌물비용으로 마련

했다고 했다. 심사를 통과해 해외에 나가게 되면 건설노동자의 경우 3년에 한번 휴가를 받아서 집에 돌아오는 실정이었다.

1인당 계획과제에 해당하는 금액을 헌납하고 나면 자신의 손에 돌아오는 돈은 한 달에 100달러 남짓 수준이다. 3년간 3만 3천 달러를 벌어 3만 달러

가량을 국가에 내고 3천 달러 정도를 집 에 들고 갈 수 있다. 한성 0은 국가 에 상납한 돈이 더 많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모스크바에서 일한 대가로

겨우 300달러를 집에 보낼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시 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서 해외에 노동자를 많이 내보냈다고 한다. 평양

110 평양 오디세이

은 지방보다 해외 일꾼 구성 비율이 높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김명 0, 한성 0 은 러 시아에 나가있는 동안 안사람들이 모두 종합시 장에서 장사하고 아 이를 키우면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종합시장에서 의류 및 잡화를 팔 아본 경험 이 있었으며, 채씨는 현재 채소장사를 하며 한 달에 100달러 남짓

수입이 있다고대답했다.

가정의 한 달 소득과 소득의 특징

구분

주관적 계층

소득원특징

유형

권력층

흐 허가과정에서 발생되는 안정

월소득 (달러)

저축

1,000 이상

X



1,0001 만달러

부정기적



1,000 이상

부정기적



3,000 이상

X

약 3,0004,000

X

800

X

1,000 이상

부정기적

500이상

부정기적



300-500

50달러



700-800

부정기적

100미만

10달러

100미만

상품으로





간부

외화

김미 0

적인 수입

’해외근무과정에서 발생

벌이 한

돈주

- 수출입 과정에서 이득발생 - 종합시장 도매업과정에서 발생

김한 0 김영 0



일반

’ 일 510 목표 수입

주민

김명 0



일반

주민



- 중동、러시아 건설 노동자 및 벌목공

- 장마당 메뚜기, 소매판매업

쌓아둠

종사 강

100-200

10만원 (12달러)

한성 0

30-50

X



100 미만

X



100 미만

X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11

조씨에 따르면 5, 6월에 동원이 많아 사람들이 시장에 나오질 못해 수익 이 매우 적으며, 명절 직전에는 보안원들이 명절 준비를 하느라 짐 수색을

많이 해 이때 뇌물을 마련하느라 수익이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강씨는 결혼 전 2011~2012년도에 연구사 부조수로 근무하면서 공식적인 월급을 5천 원 받았다고 대답했다. 남편의 월급도 자신과 비슷했으며 결혼한 뒤 장사에 나

서 2014~2017년까지 의류품목 도매장사를 하면서 한 달에 평균 100~200달

러의 수입을 벌었다고 했다. 장사하기 전 부부의 공식 월급 1만 원보다 종 합시장에서 장사로 버는 수입은 80배 이상 차이가 난다(1달러스북한 돈 8,300원).

조사대상자 대부분은 저축할 여유가 없어 저축하지 못하거나, 한다해도

비정기적으로 돈을 모아 놓는다고 응답했다. 은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므 로 개인 농 같은 곳에 돈을 달러로 모아두고 있었다. 조씨는 장사하는 사람

들은 돈으로 저축하는 것보다 상품을 많이 쌓아두는 것을 자산으로 여긴다 고 응답했다.

4 평양시민의

소비가 궁금하다.

1) 식생활 중심의 소비

평양시민들은 공통적으로 의 수 식 . 주 중 지출의 대부분을 먹는 것에 쓰 고 있어 엥겔지수가 높았다. 엥겔지수란 일정 기간 가계 소비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로, 가계의 생활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가계

112 평양오디세이

설 대목을 맞아 북적이는 평양 대성백화점 @느연합구

소득이 높아질수록 식료품비의 비중이 감소하는 특징&1明’8 1따10이 있다. 일반적으로 엥겔지수를 통해 생활 수준을 분류하자면, 지수가 25% 이하는

최상류, 25~30%는 상류, 30~50%는 중류, 50-70% 이하는 하류, 70% 이상은 극빈층으로 구분하고 있다.

평양의 상류층은 식비 비중이 40-60% 정도였다. 상류층은 하루에 3회 식 사를 하고 있으며 돼지고기, 오리고기, 양꼬치, 염소, 토끼고기 등을 비용에

상관없이 원하는 만큼 섭취하고 있었다. 평양은 수산물이 귀해 단백질을 육 고기 중심으로 섭취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 들어 수산물 상점이 생기면서

과거만큼 생선을 먹기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김미 0, 김영0에 따르면 식

비의 1/3가량은 고기 - 생선을 샀고 고기 전문상점이나 보통강 수산물 상점

10

두산백과,“엥겔지수”.

11타)://己00砂6(보기. 00,人厂/心0(기30(血1/01=1617111381:61; 己0?丄1161:110(卜\46\少及!\4』\8그 10乂그101013000754648(검색일 : 2018, 12, 24)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13

에서 생선을 구매했다. 해외에서 들어온 직후 1년 정도는 온실에서 생산된 비교적 좋은 유기농 채소를 사서 아이들에게 먹 였고 과일도 스위스에서 묘

목을 들여온 좋은 품종의 사과를 구해다가 아이들에게 주었다고 대답했다.

주스와 우유, 버터 빵은 외화상점에 가서 구매했고, 초콜릿의 경우 해외에 서 사 왔으며 불가피한 경우 싱가포르산 제품을 류경 전시관에 가서 샀다고 말했다. 상류층은 백화점과 외화상점 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상류층은 낙원, 대성백화점 물건을 선호했으며 김정은 생활보장조가 운 영하는 보통강 백화점의 물건을 구입하고는 했다고 증언했다. 외식은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하며 외식 종류로는 치킨, 양꼬치, 불고기 바비큐, 국수 등 다양하였다. 권력을 가진 상류층은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특수기

관 종사자들은 출근하면 책상에 담배가 놓여 있으며 물건을 중앙당 공급소 로부터 국정 가격에 받았다고 한다. 가령 종합시장에서는 돼지고기 11密에

12,000원을 주고 사야 하지만 중앙당 물품공급소는 돼지고기 1座에 국정가 격 100원에 살 수 있다. 중앙당 간부는 공급소에서 저 렴한 가격으로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어 당국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이다. 중산층은 전체 생활비 중 식비가 60% 내외를 차지해 엥겔지수가 상류층

보다 더 높았다. 고기, 생선, 채소, 과일, 공산품 등 모든 물품을 종합시장에 서 구매해 종합시장 생활에 거리낌이 없었다. 중산층은 거의 모든 소비가

종합시장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김영0, 최씨, 서씨 모두 종합시장 에 물건을 팔고 집 에 돌아오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 생활하는 방식 이 었다.

중산층은 일주일에 1~2회 정도 육류 - 생선을 구매했으며 육류는 주로 돼지 고기를, 생선은 멸치, 도루메기, 작은 명태, 임연수어, 청어 등 저렴한 메뉴 를 먹었다. 점심시간 즈음 장에 나가 해질녘까지 물건을 파는 생활을 반복

114 평양오디세이

해 주말, 휴일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전투적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한달식비(달러)의 구성 내용

주관적 구분



계층



식비

하루식사

(전체 지출비용 중

식비 비중%) 약 300(약 50%)

횟수

3회

일주일에

고기 우 생선

외식 횟수

섭취횟수 거의 매일

일주일에 1번

원하는만큼

3회

500(50%)



거의 매일.

일주일에

원하는만큼

1~2번



500(50%)

3회

2~3일에 한번

일주일에 1번



1,000(50%)

3회

-

-

김미 0

400(약 44%)이상

3회

거의 매일.

일주일에 1번

원하는만큼 한

200(약40%)

3회

김한 0

600(60%)

3회

-

-

거의 매일.

일주일에 1~2번

원하는만큼 약 300(60%)

3회

일주일에 1~2회

일주일에 1~2번



약 200(66%)

3회

일주일에 1~2회

2주일에 1번



300(60%)

3회

일주일에 1회

일주일에 1번

80-90(80%)

2회

-

-



40(40%)

3회

일주일에 1회

일 년에 4회



50(55%)

3회

일주일에 1회

한달에 1~2회

한성 0

40(80%)

1~2회

1년에 3~4회

X



80(80%)

3회

2~3개월에 1회

2~3개월에 1회



65(65%)

3회

한 달에 1~2회

한 달에 1번

김영 0

김명 0





김영 0의 경우 예비표가 필요 없는 광복백화점(광복지구상업중심)을 자주 다녔다고 설명했으며 이곳은 중국산 제품을 직거래하는 곳으로 물건이 다

양하며 음식 재료, 공산품 모두 종합시장과 시세가 비슷해 평양의 중류층들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15

이 많이 이용하는 마트라고 설명했다. 김영 0의 가족은 외식을 일주일에 한 두 번꼴로 했으며 식구들과 함께 광복백화점 맨 위층 고기뷔페를 자주 이용

했다고 전했다. 오리고기, 닭튀김 등 고기를 판매하는 음식점으로 이용가격

은 4인 가족 기준 50달러 정도였다. 최씨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외식을 하며 카레밥, 종합지짐(피자), 불고기, 냉면, 전골 등을 먹으면 2명이 북한 돈 5만 원(6달레 정도의 비용이 나온다고 했다.

서씨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좋은 물건은 대체로 배정표로만 살 수 있으므 로 평양 중산층들은 백화점에 거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종합시장에

다양한 물건들이 많아 종합시장을 더 선호했다.

서민층은 식비 비중이 80%에 달할 정도로 지출의 절대적인 부분이 먹을 거리였다. 다른 품목에 소비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조씨, 강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돼지고기를 섭취하고 생선도 사서 먹기도 했으나 한성 0, 맹

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으로 고기 우 생선류는 명절 때와 자녀

생 일 때나 먹는다고 답했다. 특히 한성 0 은 탈북진전에도 평양에서 주는 배 급에 의존했고 지출 대부분을 쌀을 사는 데 소비하였다. 서민층의 소비는 장마당에서 가장 저 렴한 중국산 제품을 구매하거나 국정가격 에 파는 물건 을 구매해 쓰고 있었다. 외식은 분기별로 하거나 아예 외식해본 적이 없다 고 답하기도 했다. 서민층의 외식 종류로는 저 렴한 두부초밥, 순대, ‘ 인조고

기밥(콩고기)’등이 있었다.

2) 의복비용

먹을거리는 평양의 상류층부터 서민층까지 삼시세끼 모두 먹으며 고기 우 생선을 얼마나 자주 먹느냐 혹은 외식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 식재료를 외

116 평양오디세이

화상점에서 사느냐 종합시장에서 사느냐의 차이가 있었으나 굶는 계층은 없었다. 먹는 수준은 외관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옷에서는 계층의 차이가 뚜

렷하게 나타난다. 상류층의 의생활 초점은 ‘멋’이라면 중산층은 ‘튼튼한 제 품’이었고 서 민층은 ‘저 렴함’이 었다. 또 상류층은 통상 의복비용으로 한 달 에 100~200달러 정도를 지출하고 있었고 중산층은 50~100달러, 서민층은

10달러 미만을 지출하고 있었다.

한씨와 여씨와 같은 상류층 자제들은 의복이나 가방을 살 때 브랜드와 유

행 에 민감한 경향을 보였는데 이들은 유행하는 브랜드를 입어줘야 상류층

태가 나고 고급스럽다고 생각해 해외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었다. 2010년대 초반 엘르 제품이 유행했으며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도 유행 이었다

고 한다. 명품브랜드로는 주로 한국산 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

아산 물건이거나 러시아산, 일본산을 꼽았다. 한국산은 국가에서 유통을 금

지하기 때문에 상표를 뗀 제품을 몰래

구매해 사용하고 있었다. 한씨는 김형 직 사범 대학 출신으로 200~300달러짜리 하복 맞춤 교복을

입었고 겨울에는 남학생들 사이 에서 목과 손목 부분에 털이 달린 천 달러하 는 러시아산 밍크가 유행 했다고 전했

다. 권력과 부를 가진 상류층 남성들

은 값비싼 천을 가져와 ‘맞춤 인민복’ 을 입었다. 중산층은 의복 구매비용으

평양의 경제

검은 코트에 모피 목도리한 현송월 (하: 연합으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17

로 겨울 솜옷(패딩)을 제외하고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북한 은 가내수공업 발달로 개 인들이 손재주가 좋아 옷을 집 에서 만들어 입는다 고 답했으며 유행하는 상품은 종합시장에 가보면 비슷하게 만들어서 내다 파는 옷들이 많다고 했다.

중산층들은 대체로 브랜드에 개의치 않았으며 제품이 튼튼하기만 하면

좋다고 말했다. 특히 종합시장에서 한국산 개성공단 제품이 인기가 있으나 한 벌에 몇십 달러 할 정도로 비싸서 쉽게 살 수 없다고 한다. 개성공단으로

부터 비밀리에 흘러나온 물건이 버젓이 종합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서 민층은 저렴한 중국산 제품 속옷, 의류를 구입하고 있었다. 조씨 에 따르면 중국산 속옷의 경우 레이스가 달리고 색깔이 알록달록해 겉만 화려할 뿐 품 질이 좋지 않아, 입으면 피부가 빨개지고 가려워 오래 입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 여력이 되지 않아 저렴한 중국산 제품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라고 말했다. 그마저도 살 수 없는 한성 0 의 가정은 특별한 날에만 2~3년에 한 번 정도 아이들의 옷을 사서 입혔으며 작은 아이는 큰아이 옷을 전부 물 려 입혔다고한다.

3) 주거비용

북한에서 살림집은 국가 소유이므로 원칙적으로 매매할 수 없으며 국가 로부터 살림집을 배정받고 일 년에 북한 돈 3만 원 정도의 집세를 내야 한 다. 그러나 인터뷰 결과 현재 주택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1980년대까지 국가에서 집을 배정해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국가로부터 직 접 배정을 받았거나 부모가 국가로부터 받은 집 에서 그대로 사는 경우가 5

명, 출신성분이 좋아 김정 일로부터 하사받은 경우가 2명, 남편의 직장에서

118 평양오디세이

지급 1명, 7명은 직접 집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자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택 크

기는 10평대가 2명, 20평대가 3명, 30평대 6명, 50평 이상이 3명, 무응답이 2 명으로 평양시민은 대체로 30평대 미만 아파트에서 사는 것으로 조사되었

다. 방의 개수를 묻는 말에는 1개 1명, 2개 8명, 3개 2명, 4개 2명, 3명은 무 응답으로 보통 2~3개 방이 있고 거실이 있는 구조에서 생활하고 있어 한국 의 아파트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양은 크게 대동강 서쪽과 보통강 사이 구도심인 본평양, 일본 강점기 때와 해방 뒤 본격적으로 개발된 대동강 동쪽 동평양, 1970년대 이후 개발

된 보통강 서쪽 서평양 세 구역으로 나뉜다. 상류층은 평양의 중심구역에 살고 있었는데 중심구역 중에서도 서평양 일대 아파트가 가장 비싸다고 알

려져 있다.11 2015년에 아파트를 매매했다는 정씨는 중구역 창광거 리 에 있 는 55평 아파트를 4만 달러 주고 샀다고 한다. 노씨는 2010년대 초반 대동

강구역 능라동에 있는 2만 5천 달러 집과 3만 5천 달러 집을 각각 구매해 붙

여서 넓게 살았다고 설명했다. 중산층들은 평양 주변 구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파트 비용도 중심구역

보다 조금 저 렴했다. 최씨의 경우 97년대 말 역포구역에 1만 달러 주고 35평

의 큰 아파트(큰방

개 작은방 1개, 욕실 1개, 화장실 1개)를

직접 구매했고, 당시가

고난의 행군 시기라서 큰 아파트를 비교적 저렴하게 샀다고 한다. 서민층도 주변 구역에 살면서 중산층보다 좁은 거주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주거시설의 인프라 실태를 알기 위해 냉 우 난방과 전기, 수돗물 공급에 대11

11

“ 서 울 에 는 강남, 북한에 는 서 평 양 아파트”, 11@//11161丄 011幻如/133용05/065川8/

116\少8\@6\仏目I지3?仁기:6呂017그11止)1100006&116\午8그86(丄^10=1812245(검색일 : 2018. 12. 24)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19

해서 질문하였다. 난방의 경우 평양에 동평양화력발전소와 평양화력발전소 에서 보내는 중앙난방을 한다는 설명이 있었고 평양 중심구역은 대기오염 때문에 난방을 못 하게 해 보통강구역, 중구역 사람들은 겨울이면 하얀 플

라스틱 통에 온수를 담아 안고 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석탄 보 일러(연탄보일러)’를 땐다고 응답했고 11월부터 4~5월까지 석탄 入에 30달러 (북한 돈 24~25만 원) 정도면 겨울을 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석탄 2(에 배달비

1~2달러까지 합쳐 32달러의 난방비용을 지출하고 있었다. 한성 0은 석탄을

땔 여유가 되지 않아 연탄 찌꺼기를 구해다 난방을 했다고 한다. 여름이면 대부분 사람이 충전한 선풍기를 틀고 지냈으며 선풍기가 없을 때면 찬물을

끼 얹어 더위를 쫓는다고 했다. 전기와 수돗물은 제한된 시간에만 공급이 되기 때문에 가장 심각한 만성 적인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계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먼저 상류층은 변전소에 뇌물을 준 다음 단독으로 전기를 따와서 쓴다고 했 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살았다고 표현했으며 중산층들은 150

달러 정도의 비용을 들여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해 선풍기나 간단한 가전제

품들은 충전해서 사용한다고 했다. 전기부족이 일상화되어 일본산, 한국산 같은 좋은 가전제품을 사봤자 무용지물이 었다. 다만 전기부족에 있어서 은정구역은 예외 였다. 은정구역은 과학자동네

로 국가과학원과 이과대학 등 여러 연구기관이 있어 연구 사업을 위해 24시 간 중 18시간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수돗물은 오전에 30분, 오후에 30분

정도 나오기 때문에, 수돗물이 나올 때 모든 용기를 다 동원해 물을 받아놓 아야 한다. 또 온수가 나오지 않아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가 목욕탕에 가는

것이 일상생활이었다.

120 평양오디세이

주거비용 및 내용

주관적

거주지역

형태

크기

방수

구매 여부 및 내용

대동강구역

아파트

30평대

2

김정일로부터 하사



대동강구역

아파트

100평대

4개

6만달러에구입



중구역

아파트

55평

3개

15년 4만 달러에 구입



평 천구역

아파트

220평

-

2006년구입

김미 0

중구역

아파트

30평대

2

김정일로부터 하사



대동강구역

아파트

-

-

-

김한 0

중구역

아파트

30평대

4

89년 국가로부터 배정

평천구역

아파트

-

-

X (시어머니집)



역포구역

아파트

35 평

3

97년 1만 달러에구입



서성구역

아파트

30평대

2개

X (부모님집)

선교구역

아파트

15평

2개

96년 2,000불에 구입

은정구역

아파트

35평

2개

2004년 2,000불에 구입

은정구역

아파트

20평대

2개

X (남편직장에서 지급)

한성 0

선교구 역

지하방

10평대

1

2008년 500달러에 구입



낙랑구역

아파트

25 평

2

국가로부터 배정



평천구역

아파트

20평

2

76년 국가로부터 배정

구분



김영 0

김명 0

계층 상





조 강



4) 높은 교육비 지줄

그 외 지출 품목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통신비, 교육비, 동원사업 에 지출

하는 비용, 서비스 비용 등 의식주를 제외한 그 밖의 지출항목 중 계층을 막

론하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교육비 에 들어가는 비중이 높았다. 상류층에서 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 기 위해 가정교사를 불러 개 인교습을 하고 있었

다. 김미 0는 자녀에게 혁명화 교육을 위해 한 달에 150달러씩 6개월을 지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채수란 121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실기교육을 받는 북한 학생들 @스연합느

출했다고 답했고, 자녀들이 동원되는 봄, 가을 모내기 철에 이를 준비해 주

기 위해 물부터 모든 용품을 다 사려면 200달러 정도 더 지출하게 된다고

응답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자녀들의 학원에 들어가는 교육비로 한 달에 100달러 이상을 꾸준히 지출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에 가서 선생님 에게 10~50

달러를 쥐 여주고 왔다고 한다. 북한 교원은 월급이 없어 학부모로부터 받은 촌지로 생활하고 있었다. 한씨의 경우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한 달에 수학,

문학, 영어, 물리 4과목에 500달러를 주고 개인교습을 받았으며 중국어만

100달러를 주고 배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북한에서도 한국과 마찬가 지로 교육열이 높아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교육비 에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많았다. 그밖에 통신비를 비롯해 이발, 목욕탕 이용비와 같은 서비스업에 4 인 가족 기준으로 적게는 한 달에 30달러에서 100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상

류층들은 창광원, 은덕원, 호텔부대시설 같은 곳에서는 얼굴 마사지, 어깨

122 평양오디세이

마사지, 머리 감겨주기와 이발,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스프레이로 뿌려주는 토탈 서비스를 이용할 때 10달러 비용이 든다고 했다.

중산층도 교육비 비중이 높았다. 최씨는 한 달에 20달러 정도를 학교 선 생님 에게 쥐 여주었고 기타 교습비로 한 달에 쌀 201密(북한 돈 10만 러 정도)

원꼴로 12달

가격을 지급했다고 대답했다. 또 아들이 모내기전투와 같이 동원사

업에 나갈 때에는 40일간 먹을거리와 내의를 준비해 주는데 70달러 정도가

든다고 했다. 북한 남학생들은 도로 건설장, 철길공사, 모내기 등에 자주 동 원되었다. 그 밖에 중산층이 지출하는 이발비용은 1달러 정도이고 목욕탕

이용비는 대중탕 기준 0.5달러, 개인탕은 3달러의 이용비가 들었으며 통신 비용은 4인 가족 기준 30달러면 충분했다. 무료로 지급해주는 시간을 다 쓰 고 나면 10달러에 150분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사서 더 쓰는 식

이었다. 서민층의 경우 이발관.목욕탕도 국정 가격(북한

돈 1,000원)에

운영되는 저

렴한 곳을 이용할 정도로 궁핍 했다. 서민층도 휴대전화기를 사용하고 있으 며 기본요금 내에서만 통화를 충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민층도 교육열 이 높아 한성 0의 경우 300달러 들여 엘리트 학교인 김성주 소학교에 자녀

를 입학시켰다고 전했다. 조씨는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교육하는데 매달

12~13달러를 지출해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5,

과연 북한판 ‘기생충’의 삶은 지속될까?

이 글은 김정은 시대를 경험했던 평양 출신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가정의 월 소득과 소비를 알아보고 평양시민들의 생활 수준을 가늠해보았다.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채수란 123

배급제가 시행되었을 때 인민 모두는 평등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1990년 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배급제가 무너지고 장사를 통한 개인의 힘 으로 생존하면서 소득의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국가가 배급을 보장

해주지 않자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각자도생의 길에 놓인 인 민들은 독해져야만 했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아사로 죽은 사람이 태

반이었다. 결국 자력갱생으로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그 중심에는 시장이 있

었다. 2000년 3월 당국이 시장을 종합시장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너도, 나도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평양에도 시장화 바람이 불면서 과거 에 비해 ‘돈주’라는 신흥부유층이 생

기고 간부와 같은 권력층은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뇌물을 받아 부를 축적했 다. 전반적인 주민들의 소득수준은 향상되었으나 하류층은 여전히 끼니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보인다. 수돗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평양에서 간부 와 돈주들의 집을 방문해 빨래를 해주는 ‘방문세탁서비스’ 여성이 등장했다 는 소식 이 들려온다. 간부와 돈주 여성들이 일솜씨가 깔끔한 여성들을 ‘손

빨래공’으로 전문 고용하고 해당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12 한마디로 사

회주의 국가에서 북한판 기생충이 재현되는 것이다.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

회주의 국가에서,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발전시키는 평 양에서, 이러한 빈부격차가 두드러진다는 것은 매우 아이 러니하다. 코로나 이전 시기 즉 2019년 겨울까지 북한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온 북

한이탈주민 몇몇을 만나 최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탈북자가 없는 요즘 매우 귀한 만남이었다. 근래 장세를 내지 않고 장

12

I산八 “ 평 양시 민 가운데 빈부격차 더 욱 두드러 져 ”, 11111-01102020092029.1111111 (검색일 : 2021. 10. 6)

124 평양오디세이

什① 01이/火000/伍才(X나8/116-

사하는 골목길 장마당은 당국의 엄격한 단속으로 없어지고, 개인상점은 늘 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종합시장 장세보다 개인상점의 장세가 훨씬 비싸

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개 인상점 이 확대 되는 이유는 국가와 상인 모두에게

윈윈%0-^(0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세수확보 차원에서 개인 상점을 통한 장세가 종합시장에서 거두는 장세보다 금액 이 더 커 이득이고,

상인의 입장에서는 매대에 진열할 물건을 옮기지 않는 편리함과 보안 측면 에서 안전해 개 인상점 운영을 선호한다. 그러나 장사는 해가 갈수록 신통치 않다고 했다. 국가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시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

으나 판매 업자들은 이득이 줄어 점점 불만이 쌓여가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가 북한의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요소를 갖고 있어 체

제 전환으로 이행되는 발화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 아 북.중 무역이 차단되면서 학자들은 북한경제가 심각할 정도의 위기에 빠

졌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 무역의 90% 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이므로 그러한 전망을 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시장을 중심으로 삶을 지탱하는 평양주

민들의 생활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어떻게 달라졌을까? 평양인들의 소득과 소비는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을지,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처 럼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평양의 경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과 평양시민의 생활수준 , 채수란 125

평양의 부동산 가치 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정은이,「북한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 발에 관한 연구一평양을 중심으로」(『동북아경제연구」제

30권 제4호 2이8)를 수정 .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정은이

1.

부동산을 통해 평양을 보자

이 글은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 및 개발실태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 주

민의 ‘자산오品이 증대되고 있음을 미시적 접근을 통해 밝히는데 목적이 있 다. 한국은행 에 따르면, 2020년 북한의 1인당 명목 0如는 1,168이이다.1 세

계은행의 기준에 따르면, 이는 북한이 여전히 최빈국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수치이다. 더욱이 2001년을 기점으로 북한 경제가 +성장률로 전환했 다고 하지만 2% 전후의 낮은 수준으로, 2017년 이후부터는 오히려 경제가

弓. 5 ~ ~4,5%라는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물론 북한은 대북제재, 자연재해 및 코로나19로 인해 이른바 현재 3중고

1

한편, 북한이 2021년 7월 유엔 총회에 제출한 VI푸(자발적 국별 보고서)에 따르면, 1300 달러 전후로 한국은행 보다 높은 수치 이다. 이 에 관해 서 는 7116 00\化#0#: 05 ±6 [나사사〈,“06010(X31:16 ?60^16 5 1《6目11611仁 05 尺00 \『01110(31*7 1^3(105131 1《6\46\杉 00

(116 1111^16111611131100 05 止10 2030 人용61X13,八1116, ” 7116 %/7오/ 1幻기:!0115、八1116,2021,, 〈1기1日5://8118(:3!112616心67610砂1116111.1111. 01'으/(201기:60(/己0(31111161118/28248202!그71幻尺그 尺6砂011그1〕?1《1〈4)(±?〉(人仁(:6886(1)111乂 10, 2021),邱). 30,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27

에 직면해 있으나 한편으로 지난 김정은 시대 10년간 경제가 호전되었다는

상반된 지표들도 적지 않다.2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근로소득 못지않게 주

민의 부동산자산뜨31 681316 3휴이 증대되고 있었다.3 1990년대 이후 주택은 식량과 함께 자체로 해결해야 할 상품으로 등장했으며, 가격상승이 이어지 고 있었다. 2014년 전후로는 ‘철거 ’와 함께 아파트를 건설하여 분양하는 ‘부 동산개발업자0610&’와 유사한 경제주체도 등장했으며, ‘재건축’붐이 일고

있다.4

주목할 점은 이러한 행위가 모두 불법이었으나 최근에는 ‘주민들 속에 사

장되어 있는 돈을 동원해 집을 지어줘라. ’, ‘돈의 출처를 묻지 말라’는 등 부 동산거래를 묵인에서 승인, 나아가 합법화하고자 하는 법적 우 제도적 변화

2

예를 들어, 아사자를 찾기 곤란하다는 탈북자증언을 비롯해 택시 보급, 국산품증대, 휴대 전화보급률 상승, 관광상품 우 수영장 - 헬스장을 비롯한 각종 여가시설이 증대되고 있다. 특히 가동되는 국영공장 - 기업소를 중심으로 종업원의 임금이 실질 생활비에 근접하게 상승하고 있다. 한편, 북한이 제출한 V凶尺 보고서 에 따르면, 2017년 15~49세 휴대전화 가

입자 중 남성이 55.7%,이성이 479%로 이는 인구 2500만명 중 700만명 정도가 후대전

화를 보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7116 00761111116111: 05 (116 01가사〈, “ 06171(^1-3(10

8

1《6砂1止)14仁 05 1^01*63 \4이1111다117 1^3(10031 1《6\46하 0:1 (116 101^16111601:31100 05 (116 2030 人호61X121,311116, ” 7110 %/7으/』%/70/75, 八106,2021,, 사11:1:1)8://51181:31113131001676101311161기:.

III丄 01앙/(1011161기:/己0仁1111160(5/2824820213/1\11三1《61)0113아가《1幻 ^65X^(1(168866 山」1乂 10,

2021),99- 24,

3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실시이후 공장단위에서 노동자 의 식량과 임금을 지급하는 체계가 구축되고 있다. 특히 가동되는 국영공장 우 기업소를

중심으로 종업원임금이 실질생활비에 근접하게 상승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평양시 315전 선공장은 광복거리상업중심에 생산품 판매가 가능해짐으로써 실질적 수익을 올리고 이 중 일부를 종업원 월급으로 사용한다. 대체로 종업원에게 1달 임금으로 40~70만원을 지

급한다. 따라서 약 50만원의 임금을 받고 맞벌이를 하면 평양에서 생활이 가능하다. 반 면에 지방공장은 가동이 어려워 임금보장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4

정은이,「중국 부동산개발업자의 등장과 함의에 관한 분석」,「幻이 북한경제리뷰』2016 년 9월호, 尺1)1,2016,

128 평양오디세이

가 김정은시대 들어 부각되고 있다.5 최근에는 국가가 주택을 비롯한 텃밭,

심지어 창고까지 면적을 조사하여 주택사용료를 차등하게 부과하고 있다.6 이는 기존에는 주민이 ‘식食’과 ‘의衣’라는 소소한 경제활동에만 화폐를 사용 하게 했다면, 이제는 ‘주住’라는 거대 경제공간에 거금을 사용할 기회가 조

성되는 한편, 국가는 부동산 붐을 일으켜 주민들의 장롱 속 돈을 공식 경 제 부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국가재정을 확보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시

도로도 볼 수 있다. 이 러한 측면에서 최근 북한 부동산 붐과 개발실태를 알아보고, 이를 통해

주민 자산가치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질적으로 밝히 려는 시도는 북한주민 의 생활수준, 나아가 개혁개방, 통일비용 등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이 글에서 연구대상은 ‘평양’으로 한정하여 부동산 가격 및 개발실태에

대해 조사하였다. 평양은 북한의 모든 정책과 변화를 읽는 척도라고 판단했 기 때문이다. 연구 기간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 최근 변화까지 포괄하

고 있다.

이 글의 연구 방법은 평양 출신 탈북자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 외 에 다음 과 같은 방법으로 자료의 수정 우 보완작업을 거쳤다. 첫째, 600이6 23% 및 그 지역 출신 탈북자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구역별 위치, 인프라 설비, 가격,

5

저금잔고의 비밀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이다. 저금잔고의 비밀을 지킬 데 대한 원칙은 사

회주의사회의 과도적 성격과 함께 근로자들의 개인소유를 보호할 데 대한 우리나라 헌 법의 요구이다. "은행은 발생초기부터 유휴화폐자금을 자기 수중에 집중시키고 그것을

대부공간을 통하여 리용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은 소유형태 여하

를 불문하고 형성된 유휴화폐자금을 최대한 자기 수중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김영남, 「현시기 유휴화폐자금과 그 동원리용」,『경제연구』2014년 저)4호, 2014, 45~48쪽.

6

뿐만 아니라 인민반장을 통해 집 안의 모든 가전제품 전수조사를 하여 전기사용료도 차

등하게 지급하고 있다(탈북자 )씨).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29

개발상황에 대해 구체화하였다.7 둘째, 본 연구에는 담지 않았으나 평양 외 에도 도시와 농촌, 중심과 주변, 내륙과 접경지역에 대한 부동산 거래 및 개

발실태에 대해 조사하여 연구의 형평성을 마련하고자 하였다.89즉 현재 부 동산 거래 및 개발이 단지 평양만의 현상이 아닌 매우 넓은 범위에서 이루 어지고 있다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단동, 연변, 훈춘 등 북 . 중 접경지대 현지조사를 통해 장기간 신의주, 무산, 회령 등 실제 주택 우 건설

에서의 외형적 변화 - 추이를살펴보았다.’ 넷째, 아울러 중국인에 대한 심 층 면접조사를 통해 중국의 개혁개방과정에서 부동산거래, 개발 과정에 대

해 조사하고, 이를 북한에 적용하여 비교 시각에서 북한 부동산시장의 수준 에 대해 재조명해보고자 하였다.

2,

평양에도 부동산 바람이?

1) 구역별 주택 가격의 차이

평양은 아래의 그림과 같이, 대동강을 중심으로 크게 ‘동東평양’0과 ‘서

西평양’(①, ②)으로 구분되지만, 서평양 중에서도 중심지역은 다시 본평양

7

예를 들어 탈북자 0 씨의 경우, 6차례 이상 면담을 가졌으며 그 외에도 2~3회 이상 면담

을 진행한 탈북자가 반 이상이다.

8

2009년 이후 청진, 남포, 순천, 사리원, 평성 등 내륙지역의 주택실태에 대해 조사를 지 속해오고 있음.

9

예를 들어 최근 2018. 8, 25~夕 3 단동에서 연변에 이르는 필자의 압록강과 두만강유역

국경지 역 답사결과, 최근 2~3년 사이 신축아파트가 상당히 증가했으며, 개발 붐이 불고 있었다.

130 평양 오디세이

평양의 주요 행정구역 000816 山배에 필자 작서 ①은 본평양, ②는 서평양, 3은 본평양

(①)으로 분류되 어 총 세 지 역으로 구분된다.

평양의 주택 가격은 본평양과 인접할수록 높다. 즉 본평양, 서평양, 동평 양의 순이다. 중심지일수록 지하철이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며, 병원 우 학교 - 관공서 등 각종 편의시설 외 에도 전기 수 난방 - 수도 등 인프라에 대한 접

근이 상대적으로 훌륭하다. 특히 평양은 중앙난방체계이므로 난방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지하철이 통과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전기사정 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 본평양 중에서 중구역은 정부의 주요 기관을 비롯한 선물

10

평양 지하철은 전시 방공호용으로 개발되어 깊이가 150-2001오에 달한다. 지하철이 필

요이상 깊다는 사실은 24시간 전기공급을 중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전이 되 어 물이라도 차면 복구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990년대 경제난에도 평양

지하철만은 전기공급이 중단되지 않았다. 이는 지하철이 입지한 본평양과 인접할수록

교통뿐 아니라 전기 우 난방사정이 상대적으로 양호함을 뒷받침한다.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31

아파트 등이 밀집해 있어 전기 수 난방 - 수도 공급이 가장 양호하여, 편의시 설에 대한 접근이 좋아 주택 가격이 가장 비싸다. 중구역 다음으로 평천구 역, 보통강구역, 모란봉 구역 순으로 가격이 높은데, 그 이유도 중구역과 얼

마나 인접해 있느냐에 따라 전기 우 난방 ’ 교통 등 그 지역의 편의가 결정되

기 때문이다. 그 다음 서성구역과 대성구역의 주택 가격이 높은데, 그 이유 는 서평양에 속하면서도 지하철이 통과하며 조금이나마 중구역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동평양에서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은 대동강구역인데, 이곳은 대동 강을 사이에 두고 외국인이 오면 각종 행사가 진행되는 김일성광장과 마주

하며 상대적으로 전기가 잘 들어오고, 대학가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최

근에는 문수물놀이장 등 각종 오락시설도 들어서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만경

대구역과 락랑구역인데 만경대구역은 서평양에 속하며 1980년대 말 최초 로 30~70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한때 북한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로 평가

받아 고가에 거래되었지만,거 전기부족으로 난방 등이 크게 문제가 되어 가

격이 저 렴하다. 그 다음 선교, 력포, 동대원, 사동, 형세산 구역 순인데, 갈수 록 교외와 인접한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같은 조건에서 설계 우 건축된 아파트라도 어느 지역에 입지하느냐 에 따라 가격 차이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최근 2010년 이후 동시대 에 건설

11

광복거리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혁명의 수도 평양에

서 진행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건설된 거리이다. 광복거리는 광복다리로

부터 력사적인 만경대갈림길에 이르는 아아 구간에 10111 너비로 된 직선도로를 따라 형 성되었다. 도로 량쪽에는 8~42층으로 된 덩치 큰 700~800세대, 최고 1,400세대, 건물의 길이가 300메터나 되는 살림집들과 려관, 문화기관 등 260여개의 축전대상건설물이 최

상의 수준에서 건설되었다. 교육도서출판사 편,『조선지리전서一평양 편』, 평양 : 교육 도서출판사, 1989, 741쪽.

132 평양오디세이

되고 규모 등 같은 조건이지만 중구역이라면 아파트 한 채에 최대 30만 달

러에 팔리는 반면, 모란봉구역이라면, 최대 7~8만 달러에 판매되어 같은 본 평양 내에서도 가격차가 상당했으며, 동평양이라면 가격차는 더욱 커졌다. 즉, 락랑구역이라면, 같은 조건의 아파트가 2~3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한편

동일 구역 내에서도 인파가 많은 도로변에 입지한다면 가격이 비쌌다. 예를 들어, 주택가에 둘러싸인 평천구역의 도로변 주택은 단층집도 1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평양의 구역별 인구 규모 및 주택 가격 순위

인구

구역

큰구역



작은 구역



총인구

주택 가격

면적

도시인구 비중

총면적

시면적

주민

인구

비중

지구

밀도

순위



중구역

21

131,333

100

11.49

0.44

45.05

11,430

1

(本 ) 평양

평천구역

15

181,142

100

8.74

0.33

34.55

20,725

2

보통강구역

16

105,180

100

7.14

0.27

69.89

14731

3

모란봉구역

17

143,404

100

5.78

0.22

76.99

24,810

4

서성구역

15

147,138

100

9.31

0.35

62.37

15,805

5

대성구역

15

115,739

100

41.15

1.74

37.19

2,812

6

만경대구역

18

321,690

98.2

98.58

3.74

17.89

3,263

7

대동강구역

24

207,081

100

14.23

0.55

58.75

14552

8

18

143,561

100

5.05

0.21

69.5

28,427

9

9

282,681

90.4

88.21

3.41

5.59

3,204

10

9.11

0.35

47.64

16,268

11

12



(非 ) 본 (本 )

평양

동(東) 평양

동대원구역

락랑구역 선교구역

21

148,209

100

력포구역

6

82,548

73.8

128.07

4.95

5.91

644

사동구역

10

140,867

71.9

118.81

461

4.69

1,185

13

형제산구역

11

160,032

91

80.88

3.12

12.35

1,978

14

구역별 주택 가격 순위는 탈북자 인터뷰 조사를 통해 필자가 작성, 그 외 통계자료.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정은이 133

2) 시기별 - 유형별 주택 가격의 차이

평양의 주택은 크게 단층주택과 아파트로 분류되며, 아파트는 다시 저층

과 고층 아파트로 분류되었다. 각각의 특징을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 의해 정 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유형별 주택 특징 유형

단층

아파트

대분류

땅집

저층 노후아파트

시기

50~60년

60~80년

건설주체

규모

형 태

외형

개인집

방1 칸

외랑식

국가

고층 아파트

1980년 이후

1990년 이후

2000년 이후

2010년 이후

국가,

국가,

국가,

국가,

기관기 업소

기관기 업소

기관기 업소

기관기 업소,

개인

개인

방 1칸

방 2칸

방2~3칸 초고층

탑식

탑식

외랑식 벽돌

벽돌 아파트

(러시아식설계)

(병렬식)

방3~4칸

대형평수 등장

화장실

공동

공동

공동/개별

1개

2개 이상

2개 이상

부엌

1칸

1칸

1칸

1칸

리빙룸

리빙룸

거실

없음

없음

작은 복도

전실

거실

거실

난방

아궁이

아궁이

중앙난방

중앙난방

중앙난방

중앙난방

탈북자 인터뷰 조사를 통해 필자가 작성.

즉, 단층집은 대체로 50~60년대 지은 가장 낡은 주택으로, 가로가 긴 하

모니카와 같은 병렬식 모양으로, 건물 한 동에 적게는 3세대世帶에서 많게는 10세대 이상 들어서 있다.12 규모는 1세대 당 방 1칸에 탄炭을 때는 부뚜막

형태의 부엌, 창고, 약간의 텃밭이 있으며 공동화장실을 이용한 매우 협소

12

예를 들어 1동에 5세대가 들어서 있으면 한 동 5세대라 한다.

134 평양오디세이

단층 주택으로 가득한 평양의 중심과 주변지역 500810 톄!'!에 필자 작성

하다. 건물소유 형태는 개 인소유가 많다. 북한에서 건국 이후 아파트를 많

이 건설했다고 하지만, 평양시의 단층집 비중은 600임6 531111 위성지도에 의하면 상당히 높다. 예를 들어 위의 그림과 같이 동대원 구역을 보면 대동

강변을 중심으로만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을 뿐 뒤쪽은 대부분 단층집으 로 둘러싸여 있다.

둘째, 저층아파트이다. 이는 대체로 60~70년대 지은 낡은 아파트로, 5층 전후로 구조가 단층집보다 약간 높을 뿐 별반 큰 차이가 없다. 한 층에 20

에서 많게는 100세대가 넘는 복도식으로, 이른바 ‘하모니커아파트’라 불린 다. 13 따라서 사생활 보장이 어려우며, 방도 1~2칸에 부엌 우 창고 하나가 딸 려 있으며,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는 매우 협소하고 불편한 구조다. 저층아파

13

이 당시 구소련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식으로 지었다. 다시 말하면, 추위를 막기 위해 최

대한 집을 붙여서 지었다.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35

시기별 북한 주택 유형 : 예) 평양 모란봉 구역 600816 山而에 필자 작성

①땅집 @60~70년대 건설 노후 저층 아파트, @90년대 기관 아파트, @)2000년 이후 건설 아파트, ⑤

2010년 이후 건설한 고급 고층 아파트

트는 대체로 국가가 건설했으며 위의 그림 ②와 같이 도로변에 입지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도시재건 당시 국가의 과시적 성과를 내놓기 위한 정책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최근 신축 고층아파트는 저층아파트 안쪽으로 건설할 수밖에 없다.

셋째, 고층아파트는 위의 그림과 같이 1980년, 1990년, 2000년, 2010년 이후 건설된 형태로 구분된다. 특히 40에서 70층에 이르는 고층아파트는 서 울올림픽과 세계평양청 연축전을 앞두고 80년대 중후반에 완공된 서西평양

의 광복거리아파트가 최초며, 그 외에 93년 전후 동평양의 통일거리에 건설 된 아파트가 대표적 이다.14

그 이후에 북한에서는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2014년에 완공된 과 학자거리 아파트(중구역), 2016년의 여명거리(대성구역)가 있다. 최근에 건설

14

교육도서출판사 편,『조선지리전서一평양 편』, 평양 : 교육도서출판사, 1989, 850쪽.

136 평양오디세이

된 아파트일수록 방이 4칸 이상, 화장실이 2개 이상으로 면적이 크며, 거실 과 부엌이 합쳐진 리빙룸 형태며, 베란다를 확장하고, 통유리로 전망을 중

시하고 있다. 특히 한 개 동이 독립된 형태로 탑식으로 지어져, 면적도 넓고 사생활 보장이 가능할 뿐 아니라 관리비 등 명목으로 돈을 거둬 자체 발전

기를 설치하여 엘리베이터 등 전력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평양의 시기별 주택 유형을 정 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형태별 주택 가격

-

그 -택 유형

땅집

저층

고층

노후아파트

아파트

시기

50-60년

60-80년

1980년이후

1990년이후

2000년이후

2010년이후

아파트

5천 달러

1만달러

3만달러

5만달러

5~8만 달러

10~20만

전후

전후

전후

가격

달러

탈북자 인터뷰 조사를 통해 필자가 작성.

첫째, 단층집인지 아파트인지 에 따라, 또는 최근에 건설된 아파트일수록

가격이 높았다. 단층집은 한 채에 평균 미화 5천 달러 선에서 거래되었다.15 아파트도, 60~70년대 에 건설된 낡은 아파트는 한 채 에 평균 1만-3만 달러

수준으로 거래되는 반면에, 최근 2010년 이후에 건설된 아파트는 10만~30 만 원 달러 수준의 고가로 판매되어 신축과 낡은 아파트 사이 가격 차이가

상당히 벌어졌다.

둘째, 넓은 평수일수록 고가에 팔렸다. 그런데 큰 평수의 아파트는 대체 로 최근에 건설된 아파트가 많았으며, 2010년을 전후로 대형 평수의 아파트

15

북한의 경우, 주택 가격은 평당 얼마라는 개념이 미약하다. 방의 칸 수에 따라 가격을 달

리하였으며, 최근에는 집 한 채에 얼마등의 기준으로 주택 가격이 책정된다.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37

가등장하였다.

3-

부동산 건설과 동인

1) 주택 가격 상승과 주택 건설 참여자 증대

북한의 주택 가격이 1990년을 전후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사실은 양

적 통계를 통해서는 뒷받침되기 어렵지만 질적인 근거는 적지 않다. 우선

필자의 다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 의하면, 대도시를 중심으로 특히 2000년 들어 매해 50%~100% 이상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16 이로 인해 기관 우 기업

소가 아파트를 건설하여 돈 있는 주민에게 일부를 판매하기 시작한 초창기

에는 완공 전보다 가격이 배 이상 올라 완공 전에 계약한 구매자와는 일방 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등 이중계약을 하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했다.1718 19

뿐만 아니라 거래금액이 커지면서 주택이 외화로만 거래되었는데, 그 시

기가 2005년 전후로 추정된다." 게다가 주택은 경기변동과 연동되어 등락 을 하지만 외화로 거래되는 만큼 환율과 연동되어 움직인다.1, 따라서 2009 년 화폐교환 때 원화에 대한 가치가 폭락하면서 화폐교환 직전 주택을 판매

16

예를 들어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평양은 1980년대 주택이 극도로 부족할 때 방 한 칸에

100달러씩 거래되었으나 1990년대 들어 천어대로 진입했다. 2000년대에는 만유, 2010년 이후에는 십만어 아파트가 등장했다.

17

수법으로는 시공사를 중도에 바꿔치기를 하는 것이다(탈북자 3씨).

18

그전까지는 예를 들어 러시아 등 해외파견을 다녀온 노동자가 벌어온 외화로 주택을 구

입하기 위해서는 북한 돈으로 환전한 후 내화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19

예를 들어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2009년 화폐교환 직전에는 주택 가격이 폭락했다.

138 평양오디세이

한 사람은 재산손실이 막대했으나 주택을 구입 또는 유지한 주민은 자산을 보전할수 있었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이유는 조사 결과, 다음과 같다. 첫째, 주택 수급의 극심한 불균형 에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인

구 절반을 차지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달하는 1980년대

주택문제가 극에 달한다.20 세를 주어 한 집에 공간을 분리하여 같이 사는 이른바 ‘동거세대 ’나 ‘뒤그루’세대가 적지 않다.거 또한 북한은 한 세대 당 거 주 면적이 작다 보니 월동준비를 위해 김칫독이나 석탄 또는 잡동사니를 보 관하기 위해 별도로 창고를 보유한다. 그런데 주택난이 심각하다 보니 이

창고를 집으로 개조하여 사는 이른바 ‘창고세대 ’가 등장했으며, 이 창고가 주택으로써 매매되기 시작했다.

결국 당국도 현실적으로 문제해결이 어려워 3년 전부터 ‘창고세대’에 한

해 입사증入舍證을 발급해주고 주택사용료를 거둬들이면서 거주를 인정하 는 수준에 도달했다. 더욱이 형편이 곤란한 주민들은 본인들의 거주 공간 을 분리하여 일부를 떼어 팔아 집 한 채에 주인이 여러 명이 되는 경우도 적

지 않게 존재한다. 1旧 토지주택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주택보급률을

60-80% 수준으로 추정하지만,20 22 현실적으로 북한의 주택보급률은 더 심각 21

20

1961년판『조선중앙년간』에 따르면 1949년 말 북한 총인구는 962만 2천 명에서 1953년

12월 849만 천명으로 112만 500명 감소한다.「조선중앙년간으 1961,321쪽. 한편, I水인구조사에 따르면, 1985년 1879만 2백 명이다. 가引#야(世, 1幻 - 1=61; 丄 7110

卜0砂11〉血011 0우!幻01건! 1〈01七2, 1九1巾61데乂 05 0^111011113, 1992, 21

砂砂. 21,

동거는 이미 주택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자기 집의 일부를 내어 다른 가족을 들이는 경 우이며, 뒤그루는 새로 지은 현대식 집은 돈과 권력있는 자들이 들고, 이들이 살던 집은

친척이 들고, 친척이 살던 낡은 집에는 철거 세대가 드는 것을 의미함. 최진희 편,『림진 강3 림진강출판사, 2008, 9~10쪽.

22

최상희 오),『북한 주택사업 중장기 전략 연구으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 연구원, 2018,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39

한 수준으로 추정 된다.

둘째, 신규주택에 대한 수요이다. 주택보급률 못지않게 심각한 일은 주택 의 노후화다. 최근 신규 아파트 건설이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600이6 & 에 의하면, 평양조차도 50~60년대 에 건설된 단층집 또는 1980년 이 전에 건

설된 저층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건국 이전에 건설된 개인주택도 존 재한다. 이는 주민들이 인내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생활 수준의 향상은 신규주택에 대한 잠재적 수요를 무한히 올리고 있다. 셋째, 지']人에 따르면, 북한의 대외 수입품목 중 건축과 관련된 자재가

2010년 이후 10위 안에 든다. 결국 수입 자재의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였으 며 이것이 주택 분양가격에 반영되었다.

이는 북한의 부동산 건설시장이 공급자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반

증한다. 실제로 북한에서 주택을 지어 판매하면 일반적으로 이윤이 곱이 된 다. 이는 주택건설시장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음에도 다음 표와 같이 국가,

기관기업소, 개인, 심지어 중국인까지 주택건설의 실질적인 참여자가 되며 시장이 확대되었다.

사실 북한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건설주(시행사)지만 시공은 전문 건설단 위에 맡기고 완공하면, 국가배정시스템을 통해 우선순위에 따라 무상으로

주택이 주민에게 배정된다?3 그러나 ‘국가주택배정체계’은 일찍부터 ‘기관 - 기업소 배정체계’로 변형되어 갔는데, 필자의 심층면접조사에 의하면 시

기가 김정일의 후계자 업적 쌓기가 본격화된 1975년 이후와 맞물린다. 국가

가 많은 재원을 대규모적 기념비사업에 집중하다 보니 주민용 주택건설은

44쪽. 23

법률출판사 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전나 평양 : 평양출판사, 2012, 743쪽.

140 평양오디세이

소홀히 하게 되었고, 이에 종업원 주택은 공장기업소 및 기관 등 직장단위 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했다.24

시기별 건설의 주체

시기

규모

국가

특권기관

기관기 업소

개인

중국인

건국초~현재

1975년 이후

1980년 이후

2000년대 중반

2010년 이후

대규모

중소규모

소규모

소규모 —

중소규모

프로젝트

중소규모

재원

대규모

외화

기관역량

독주

무역파트너와

조달

동원

벌이

동원

합작

합작

탈북자 인터뷰 조사를 통해 필자가 작성.

특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건설대상과 재원이 최고지도자의 선호 에 따라 선택 - 집중되어 여타 살림집 건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만성 공급부족에 직면한 주택난을 고려하면 서민을 위한 주

택도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 재원 부족은 역설적 으로 국가건설시스템을 약화시키는 한편 하부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요 인이 된다. 예를 들어, 1989년 13차 세계청년축전을 앞두고 당국은 광복거

리에 6만세대의 대규모 선수촌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한편, 일반인을 위 한 주택건설은 기관 우 기업소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따라서 당시 일반 주민

의 주택건설을 책임 지는 기관 우 기업소는 기중기조차 빌리기가 곤란했으며

결국, 나름의 생존방범을 모색하였다. 예를 들어 탈북자 ? 씨에 의하면, 철 거를 통해 주택을 건설하게 된 평양의 0 0단위는 다음과 같은 방식에 의해

24

건설비용이 투입되면서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명목으로 중앙당을 비롯한 특권기관의 외화벌이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주택건설도 시작되었다.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41

철거민을 선별하여 주택을 배정했다.25 첫째, 철거민 중 직장 우 거주지역 일치 원리로 새 입주자를 선별하여 새 아파트에 입주할 세대 수를 줄였다. 예를 들어, 거주지가 중구역이지만 직

장이 선교구역이라면 선교구역으로 이주시키고 집은 직장에서 자체로 해 결하게 했다. 둘째, 물질적 공헌도에 따라 입주세대를 선별했다. 예를 들어, 인발관(온수

철근 파이프)

60톤을 제공하거나 유리 30톤, 또는 목재 60립방을

제공하면 집 1채를, 혹은 자갈이나 모래를 제공하면 10톤 당 1점을 주어 총 10점이 되면 집 1채 분배했다. 한편 물질적 지원이 곤란한 철거 세대는 1세

대 당 노력 5명을 제공하면 집 1채를 배정했다. 그러므로 1989년에 완공된 김책공대 옆 중구역의 류성동 아파트는 건설

과정에서 철거 세대가 총 3000세대가 발생했지만 145세대에 한해서만 새

집을 제공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잉여’이다. 총 344세대의 아파트를 건 설했기 때문에 상기 선발 기준에 의해 선별된 철거민에게 집을 제공하고도 199채가 남았다. 이 199채는 대체로 좋은 층으로, 결국은 항일투사 유자녀

8명 및 간부 등에 총 50세대가 분배되어 아침이면 간부를 태우기 위한 승용 차로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였다(탈북자?씨).

나머지는 각종 편법을 동원한 개인에게 돌아가 한 세대당 1채 이상 아파

트를 배정받은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기중기 1대 및 운전공 2명을 제공하

면, 기관.기업소든 개인이든 신축 아파트 5채를 제공했다고 한다. 물론 개 인은 법적으로 1채만 소유할 수 있어 5채를 받은 개인은 편법을 동원하여 가족이나 친척 명의로 나누어주고 그러고도 남으면 재일조선인 귀국자와

같이 외화를 소지한 사람에게 한 채에 당시 3천 달러를 받고 판매했다.

25

탈북자 8,

142 평양오디세이

씨 증언.

따라서 이 당시에 탈북자 卜씨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건도 발생했다. 즉 한덕수의장이 김 일성위원장에게 “조총련의 자제들이 북한에서 집을 사

야한다고 일본에 있는 부모에 게 자꾸 돈을 보내라고 하는데 왜 사회주의 인데도 집을 사고 파느냐. ”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김일성이 대노하여 1991년 10월에 집을 판매한 사람을 잡아들여 인민대학습당에서 대사상투

쟁을 벌였고, 그중 5~6명 정도가 연행되었다. 그런데 이는 역설적으로 집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주민에게 환기시키는 효과를 초래했다. 특히 주택 가격 이 상승하자 특권기관을 중심으로 아파트를 건설하여 개인에게 분양하는

사례가나타났다.26

2000년대 들어서는 기관 우 기 업소가 주택을 건설하여 달러로 판매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당시 총정치국 산하 소속의 탈북자 0씨에 의

하면, 2005년에 총정치국 산하 8총국에서 대동강구역 00동에 건설한 아파 트는 각각 3만 달러와 5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8총국은 15층짜리 아파트 2

개 동을 건설하여 10%만 기관에 넘기고 나머지는 돈을 받고 분양했다.27 완 공 전에 주택 가격의 60%를 구매자에게서 선불로 받고, 완공 후 나머지를

받는 방식으로 판매했다. 8총국이 국가공권기관으로 신용이 되기 때문에 당시 하루에도 100명 넘 게 아파트를 구입하고자 줄을 섰다. 후에 더 큰 규

모로 아파트를 건설하여 판매했다. 특히 특권기관일수록 입지선정에 유리

하며, 평수도 넓고 구조도 좋게 지었다.

26

평양의 집은 80년대 방 한칸에 100달러씩 암암리에 팔렸으며, 최고가가 1990년대 들어 천 달러, 2000년대 들어 만 달러에 진입했으며, 2010년에는 10만달러, 2018년 현재는 35

만 달러이다. 즉 2000년 이후 주택 가격은 1년에 5천-만 달러씩 상승했다.

27

주택이 건설되기도 전에 하루에 100여 명 정도가 줄을 시서 더 좋은 층의 집을 분양받고자

하였다. 특히 무기 판매를 다루는 제2경제와 관련된 사람들이 집을 구입했다.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43

이와 같이 아파트 건설 권한이 기관에 이양되었지만, 기관별로도 격차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종업원을 많이 보유한 특급기업소나 외화획득이 가 능한 무역 기관 또는 검찰서나 평양역 등과 같이 자재에 대한 접근이 가능 한 특권기관은 건설이 용이하다. 개중에는 재원이 부족할 경우 기관 우 기업 소는 일부 돈주의 재원도 끌어들인다. 이는 점차 부동산 건설 부문에 개인

들이 참여할 여지를 확대시킨다. 사실 북한에서 주택건설 주체의 비중은 여 전히 국가가 높다.

시기별 국가 대형 주택 건설 프로젝트 거리명

승리거리

청년거리

천리마거리

락원거리

창광거리

문수거리

광복거리

완공년도

1950년대

1958년

1970

1975

1980, 85

1980년대

1989

거리명

통일거리

만수대

창전거리

은하과학

유성과학

마래과학

여명거리

자거리

자주택구

자거리

2013

2014

2015

거리 완공년도

1993

2009

2012

2017

金1=(2017)를 참고하여 필자 작성.

위의 표와 같이 국가는 대형 건설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벌리는데, 건설 은 가시적 효과가 뛰어나며 주민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정권의 훌륭한 선전

수단이기 때문이다. 28 이런 이유로 북한 당국은 향후에도 대형 건설프로젝트 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원 조달의 측면에서 보면 국가의 대형 건

설프로젝트라고 해서 반드시 국가에 의해 건설된다고 보기는 어 렵다. 예를 들어,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과학자거 리와 여명거 리에 대규모 아

28

최근 노동신문 기사 분석에 의하면 대내뿐만 아니라 대외 선전용으로도 삼고 있다. 즉

제재국면이지만 제재를 잘 극복하고 있다는 측면이다.

144 평양오디세이

파트단지를 조성할 당시 국가는 각 구역을 기관기 업소에 할당하여 짓게 하 였다. 29 그중에는 돈주의 자금을 동원하여 부족한 재원을 채웠으며, 그 반

대급부로 돈주에게는 부지를 제공하고 거기에 아파트를 건설하여 판매하도

록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탈북자 ]씨 에 의하면, 2010년 전후로 “누구든 돈 있는 사람은 국가에 와서 승인을 받고 집을 지어라. ”라는 공시가 장마당이 나 역전 등 인파가 많은 곳에 붙어 있었다. 바꿔 말하면 국가는 개인에게서

일정 세금형태로 대가를 받고 건설을 허용했다.29 30

건국이후 북한에서는 총 14개의 거 리가 조성되었으며 그중 김정은 시대 에 6개의 거리가 단기간에 조성되었다는 것은 국가가 부동산 붐을 의도적

으로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돈주는 여전히 개인 명의로 건설이 곤란 하여 기관명의를 빌리지만 이 원리에 의해 국가급 건설 프로젝트가 증대될

수록 개인의 참여공간은 확대되며 건설경기가 활성화된다. 게다가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중국인들도 아파트 건설에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31 그러므로 현재 북한에서 건설주(시행사)는 크게 국가, 기관기업소, 개인,

중국인 등 4개 주체로 분류되지만, 계획과 시장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공존하는 이중구조 속에 놓여있다.

29

예를 들어 과학자거리의 人구역은 평양역이, 13구역은 검찰소가, (3구역은 김책공대 등의

형태이다. 필자의 최근 접경지역 조사에 의하면, 최근 원산갈마지구, 삼지연등 개발에 국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곳이 건걸되는 원리도 위와 같다.

30

개인이 아파트를 짓는 형태는 크게 2가지이다. 시공은 전문 건설업체에 의뢰하는 경우 와 시공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개인이 지어서 분양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후자를 더 선

호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 짓고 건설할 경우 자재를 비롯한 모든 과정에 대한 관리 감독이 철저하기 때문에 튼튼한 아파트를 건설하기 때문이다.

31

필자가 2011년 8월 단동에서 실시한 대북업자와의 면담에 의하면,

2011년경 평양에 아

파트 투자 여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것이 승인되면 최초의 중국인 투자가 될 것이라 고했다.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정은이 145

평양화력발전소와 평천구역 500816 日바에 필자 작성

左 2000년 | 右 2017년 사진

2) 입지의 중요성과 철거, 그리고 재개발

부동산은 무엇보다 입지가 좋아야 판매가 가능하고, 더 신속하고 고가에

팔린다. 이 원리는 최근 북한의 부동산에도 적용된다. 특히, 시행사가 건설 단계에서 은행을 활용할 시스템 이 부재하다면, 입지는 곧 은행이 된다. 좋

은 입지에 기초만 잘 닦아놓아도 입주희망자가 몰려와 선先계약을 하고, 시

행사는 이 자금으로 나머지 층을 올리 면 된다. 즉 시행사는 주택 건설 초기 에 많은 투자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평양에 건설되는 국가급 대규모 건설프로젝트만 보아도 평양 외곽

에서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1987년의 광복거 리 및 1992년 통일거리아파 트는 모두 평양 외곽에 건설되었지만 김정은정권 이후 건설된 아파트는 여 명거리와 과학자거리 등 중심부에 입지한다. 600이6 比!1伍에 의하면, 기관 우

146 평양 오디세이

평양의 모란봉구역의 단층집들과 철거 匕008|6 血바1에 필자 작성 左 2000년은 단층집 | 右 2(〕18년으로 최근 아파트 건설단지 조성

기업소나 개인이 건설하는 아파트도 평양 외곽에 부지가 풍부함에도 본本

평양에 집중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00년을 기점으로 건설된 아파트는 본평양 중에서 도 특히 평천구역과 모란봉구역에 집중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평천구

역은 평양화력발전소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공장 - 기업소가 입지한 노동자 구역이며 32 평양시에서도 인구밀도가 높은 지 역으로 분류된다. 바꿔 말하 면, 전기공급이 용이하여 난방이 훌륭하며 단층집이 많다.

모란봉구역 또한 본本평양이지만 중심지인 중구역과 상대적으로 떨어져

32

평천구역은 산업구역의 특성으로부터 공업부문 노력이 50%를 차지하며 운수부문의 노

력도 11%를 차지한다. 로동자수 비율은 시안에서 선교구역 다음으로 높다. 1986년에 구 역별 주민 수에서 로동자가 차지하는 비률은 85.4%이다. 교육도서출판사 편,『조선지리

전서一평양山 평양 : 교육도서출판사, 1989, 576쪽.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 정은이 147

평양의 중구역 대동강변 아파트 200816 &바에 필자 작성 순서대로 2014, 10, 27, 2015, 5, 21, 2017, 10, 27,

있고, 산을 둘러싸고 지대가 약간 높아 1980년대 안상택 거 리를 제외하고는

개발이 덜 되었다. 특히 모란봉구역은 ‘긴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단층집으 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다. 반면에 중구역은 국가공공기관 및 선물아파트가

입지해 있으며, 광복거리나 통일거리는 1990년 전후로 고층아파트가 이미 들어서 있어 개발이 주춤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도 ‘부동산개발1(631 1131310 067610131116111’2)- 같은 유사현상이 나타

나고 있음을 반증한다. 첫째, ‘철거 ’를 동반한 재건축 붐이 일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단층집이 철거와 재건축대상 1순위다. 평천구역과 모란봉구

역에 신축아파트가 많이 들어선 이유도 이 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텃 밭을 많이 보유한 단층집이라면 철거 세대는 협상력을 더 높일 수 있다.

둘째, 재건축이 되면, 예를 들어 평양에서는 5천 달러 가치의 아파트가 10 만 달러 이상 상승하기 때문에 철거 직전의 아파트는투기대상이 되며, 이에

따라 정보를 가지고 장사하는 브로커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위의 그림의

148 평양오디세이

평천구역 아파트단지와 상가단지 형성 &008|0 瓦바에 필자 작성 左 2000년 사진 | 右 2017년 사진

첫 번째 사진에서 도로변에 세워진 아파트는 60~70년대 건설된 노후 아파트 로, 규모도 7~8평으로 방과 부엌 1칸에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복도식 소형

아파트다. 따라서 건물만 보면 거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입지로는 최고다. 좌측

으로는 김 일성광장과 인민대학습당 등이 있고, 정 면으로는 대동강이 보이 며, 채광도 좋고 동평양과 바로 연결되는 대동교도 있다. 바로 이 아파트가

2015년 5월 21일에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 2017년 10월 27일에 신축아파 트가 완공되었다. 탈북자 요씨에 의흐卜견 이 아파트가 2014년 12월 철거직전 한 채에 5~6천

에서 8천, 만 달러까지 상승했으며, 철거직전 대동강을 바라보는 집은 판매 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이 저층 아파트단지는 ‘ 白 ’자형으

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 중 철거는 ‘

’자로 절반만, 즉 강이 보이는 쪽만

진행되었다. 이는 강이 보이는 전망의 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즉 건설주가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정은이 149

이윤최대화를 위해서는 입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현재 이곳 신축 아파트는 30만 달러를 호가한다.

셋째, 비교적 큰 규모의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 주변에 상가가 들어서

지대가 동반 상승한다. 예를 들어, 앞의 그림은 평천구역의 륙교 1동(人구역) 과 2동(3구역)으로 2000년 6월 13일과 2017년 10월 27일을 비교하면, 그동안 고층아파트가 얼마나 많이 들어섰는지를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주목할

점은 각각 아파트단지 맞은편에 ‘ 림봉’, ‘ 민성 ’, ‘ 연봉’ 등 5층짜리 봉사센터 3동(0구역)이 나란히 세워졌다. 이 구역의 봉사센터는 중국인 투자도 적지

않다.33 이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 거주민의 구매력이 높아 주변 거 래를 활성

화시켜 자연스럽게 상업시설들이 집중된다. 반면에 과학자거리나 여명거리 등과 같이 선물아파트가 들어서면 대형아파트단지가 조성되었음에도 주변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탈북자 0씨에 의하면, 입주민이 국가

배정시스템에 의해 무상으로 분배받은, 즉 구매력이 낮은 국가 관료가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 선물아파트가 조성되면 오히려 주변의 전기 등 을 끌어오기 때문에 주변의 전기사정이 더욱 악화된다.

넷째, 평양에서 건설하는 아파트는‘주상복합형’이 대부분이다. 이는

2007년 또는 2010년 이후 급격히 많아졌다. 예를 들어, 다음의 그림과 같이

오탄동에 입지해 2014년에 완공된 천지센터아파트는 총 27층으로, 지하 1 층에서 지상 4층은 애초부터 상가로 지어져 분양되었다. 지하 1층은 주차장

이며, 지상 1층은 식당, 2층은 수영장, 3층은 헬스장, 4층은 사우나로 지어

33

건물인테리어 설비기구등다중국에서 들여옴, 운영만북한이 함, 림봉 민생 2년에 본전

을 다 뽑아서 중국인이 가져감.

150 평양오디세이

평양시 오탄동 천지 아파트

600回0 田라에 필자 작성 上 2000년 사진 下 2017년 사진

졌다. 사우나비는 평균 1인 1회 4불, 수영장은 10불, 헬스장은 3개월에 80불 정도로 가격이 책정되어 꽤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다. 따라서 이곳은 주로

시행사가 분양받아 운영을 하였다. 다섯째, 중국인 투자가의 등장이다. 600810 比!止 및 탈북자 인터뷰 조사

에 의하면, 시기는 2012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투자가는 주로 북한 즉 권 력 있는 무역회사의 사업파트너로, 투자를 권유받는다. 중국 측은 투자금만

지불하면 북측 무역회사가 부지확보부터 자재 조달 . 건설 . 분양에 이르기 까지 총괄하며, 이윤만 양측이 아파트를 분양한 후 나눈다. 따라서 주목할

점은 중국인 투자아파트는 자재 조달이 안정적이어서 시행사는 아파트 분 양을 한 후 시가時價에 따라 판매를 한다. 따라서 일반 아파트가 선투자를 받 아 완공 후 시가보다 많게는 50% 이상 저 렴하게 분양하^ 것을 방지한다.

평양의 경우, 중국인 투자로 지어진 아파트는 중구역, 평천, 모란봉, 보통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정은이 151

평양시 보통강구역 황금벌역 유리아파트 5008|6 山!#!에 필자 작성

왼쪽부터 2011.5(철거), 2013.5(완공), 2018.5(현재 모습)

강 등 많은 구역에서 발견되지만 대체로 중심부에 15만으에서 많게는 35만으 에 이르기까지 최고급 아파트를 지어 고가에 판다. 예를 들어 평양에서 가

장 비싼 아파트는 보통강구역 황금벌역 옆에 입지한 아파트로, 사면이 유리

로 둘러싸인 고급아파트여서 ‘유리아파트’라 불린다. 보안성에 의해 건설된 유리아파트는 주상복합 형태로 2012년 건설 전만 해도 20만 달러로 판매가

가 예측되었으나 2014년 완공 후 인기가 높아 결국 35만 달러에 판매가 이

루어졌다. 유리 아파트는 20층으로 1층에 1세대만 들어선 350示(약 100평)의

대형 평수의 고급 아파트이다.

152 평양오디세이

3) 상품방商品房과 ‘비非상품방’의 맹아

북한은 층수에 따라 아파트 분양가가 다르게 책정된다. 특히, 저층일수록 고가에 판매되며, 층간 가격차가 크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예를 들어, 지

하 1층에서 지상 12층 아파트라면,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는 대체로 주상복 합이므로,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식당 등 상업용으로 고가에 팔린다. 따라

서 2층부터 12층까지가 주거지가 되는데, 그중 5, 6, 7층이 로얄층으로 가장 비싸게 판매된다. 그 다음 4층과 8층, 3층, 9층과 2층, 11층 순이 며 12층이

가장 저렴하여 결국 로얄층과 최저가층과의 가격차는 3배 이상 벌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시행사가 아파트를 건설하면 일부는 국가에 세금 형 태로 바쳐야 하는데, 대체로 10%를 받치고 철거민에게도 무조건 1채씩 배 정해야 한다. 그런데 시행사는 국가 또는 철거민에게 배정하는 주택이라면 같은 면적에 세대수를 늘려 협소하게 짓는다. 예를 들어 시행사가 각 층에

3세대를 짓는다면 꼭대기 층에는 4세대를 짓는다. 값싼 층에 협소한 면적의 아파트를 철거민 또는 국가에 배정하기 위해서이다.34 즉 시행사가 철거민

과 국가에 내는 아파트는 평방수와 관계없이 수량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가 장 저렴한 층을 배정하여 이윤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아파트 완공 후 평양에서는 시행사와 철거민 간 분쟁이 끊이지 않 아 분쟁을 조정하는 ‘재판소중개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나올 정도이다.

예를 들어 평양 화교(2 씨에 의하면, 평양시의 중심구역은 더 이상 아파트 를 건설할 공간이 없어 철거해야 한다. 따라서 건설 전에 건설주는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개인 텃밭이 넓은 단층집에게 찾아가서 부지를

34

예를들어, 40채를 건설하면 10%에 해당되는 4채를 국가에 바쳐야 한다.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정은이 153

제공하면 완공 후 일전 한 푼 안 받고 원하는 층을 준다고 약속하고, 철거 세대가 요구하는 대로 쌍방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직인까지 찍는다. 그러나

막상 완공되면 좋은 층은 이미 비싼 가격 에 팔리고 꼭대기 층과 같이 좋지

않은 층만 남는다. 이와 같이 무상으로 입주한 철거 세대와 상품으로 주택을 구입한 세대 간

에 접근하는 주택 질의 격차가 상당한데, 비단 북한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철거 세대가 다른 곳으로 이주

한다는 의미로 ‘동차옌후幼辻戶’라 불리며, 이 중 다시 본래 있던 곳으로 돌

아와 새로 지은 집을 분배받는 철거 세대를 ‘후이치옌후回"’’라 불러 ‘동차 옌후헤戶’와 구분 짓는다. 또한 후이치 옌후가 거주하는 집은 ‘후이치옌팡0 辻房’이라 불러, 상품으로 분양하는 ‘샹핀팡商品房’과 구분 짓는다. 다시 말하

면 부동산개발업자라 불리는 ‘카이파샹汗投商’은 철거를 하면, 한쪽에는 철 거 세대를 위한 ‘휘이치옌0辻房’을, 다른 한쪽에는 시장에 고가에 판매할 ‘샹 핀팡商品房’을 건설한다.

형태별 주택 가격

동배치

밀집도

채광

엘리베

녹지

이터

조성

면적

구조

건축

관리 업체

자재

서비스

매매가

샹핀팡

양호



양호

많다

양호

넓다

양호

양호

양호



후이치

열악



열악

적다

열악

좁다

열악

열악

열악



옌팡

중국 단동 현지 조사를 통해 필자 작성.

그러므로 같은 철거자리 에 상품방과 비非상품방이 공존하지만, 내용상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필자의 중국 접경지역 단동의 부동산 조사에 따르 면, 둘의 차이는 위의 표와 같이 자재부터 관리, 채광, 편의시설에 대한 접

154 평양오디세이

근 등극명했다.3536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국가 계획경제시스템 에 의거하여 준공검사가 완료되면 배정 순위에 의해 집을 배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른바‘뼈다귀 아파트’라고 골조만 지어 내장이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분양

한다. 이 또한 중국과 매우 유사하다. 중국에서는 내장이 전혀 되지 않는 상 태에서 분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맑은 물에 빗대어 ‘칭수이팡情水房’

이라 부르며, 칭수이팡은 오히려 시간이 지난‘얼쇼우팡三手房’보다 저렴한

경우도 있다.34 이는 그만큼 입주하여 내장하는 비용이 집을 구입하는 비용 못지않게 비 싸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경우, 상당수의 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해야 하

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내장한 집은 가격이 2배로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철거민에게 내장 비용은 부담이다. 철거민이 신축아파트 에 입주하면 향후 집 가격이 2배, 3배 이상 상승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경우 기회비용이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철거

직전에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이유는 그만큼 내장비용이 큰 부 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철거 직전 시가보다 높게 집을 팔 아 그 돈으로 새로 이사하고 장사밑천을 마련하거나 자식을 분가시키는 효 용이 더 큰 것이다.

35

물론 비상품방도 재개발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상품방까지는 아니지만 초기 철거 이전보 다 아파트가격은 상승한다.

36

‘알쇼우팡(三手房)’.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개발의 다이나믹스 -정은이 155

4,

부동산을 통해 본 평양의 미래

이 글의 분석 결과,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부동산 가격은 꾸 준히 상승하였다. 주택공급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60년 이상의 노후주택

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북한에서는 최근 단층집을 중심으로 재건축 붐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건설된 신규주택은 최고입지에 최고가에

거래되고 있으며, 대규모 고급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 주변에 대규모 상가 도 형성되어 주택 가격을 한층 더 상승시킨다. 중국과 같이 개발업자나 비非상품방 우 상품방의 구분도 나타났다. 이는

고부가가치의 시장을 창출하여 높은 진입장벽 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참여자

를 유인하는 동인이 된다. 국가를 비롯한 기관기업소 및 개인뿐 아니라 중

국인 투자유치도 가능하다. 이는 과거와 비교해 상당한 변화이며 다음과 같 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관료의 시장 참여 확대이다. 부동산은 장마당과 달리 100% 외화로

거래되는 고부가가치상품이다. 따라서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으며, 관료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경제영역인 만큼 이는 관료의 시장 참여를 유인하는 강한 동인이 되었다. 실제로 2014년 평양 평천구역의 아파 트붕괴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준공검사도 마치기 전에 주민이 입주했다는 사실은 ‘분양’이 이루어졌으며, 고위 관료가 대중 앞에 나와 대대적으로 사

과를 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관료가 부동산시장의 이 익 배분에 참여하고 있 음을 반증한다. 즉 관료도 새로운 ‘돈주’ 대 열에 합류하고 있으며, 향후 이들 의 참여 및 확대 여부가 체제 이행에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의

미한다.

둘째, 북한에서 부동산시장의 맹아는 계획경제 체제가 자본주의체제로

156 평양 오디세이

이행하면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국가공급 능력의 위축에 따른 주택배정시스템의 기능이 축소되면서 시장과 개인이 그 틈새

를 메우고 있으며, 시장의 공간이 확대되면서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이 개선 - 대체하는 현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보편적인 현상은 국가정책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은 국가의 대형건설 목표수행을 위해 시장을 적극 활용했다. 즉

북한 부동산시장은 단순히 경제적 원리만이 아닌 정치경제적 원리가 동시 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 부동산시장의 확대는 개인 금융자산 증대를 의미한다. 새 로운 부가가치 창출은 00?,나아가 1인당 0如의 증대를 의미한다. 주택 가

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신규주택은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사금 융의 영역이지만 주택담보대출도 가능하며 집이 곧 신용이며 사업도 가능 하게 한다.

다섯째, 의식구조의 변화이다. 부동산은 빈부격차뿐 아니라 소유의식에

도 변화를 초래한다. 이는 ‘경쟁’을 유발하는 등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에 서 자본주의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을 생성한다. 그러므로 북한 부동산시장의 발달은 향후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로 이행

하는 주요 변수 중 하나로, 자산 매각을 통해 재정수입의 원천 및 경제개발 의 기초가 되는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주요 재원이 될 것이다.37 나아가

37

2018, 11월에 출판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요경제지대들』을 보면, 특구 및 개발 구에 대한 개요뿐 아니라 ‘부동산 관리운영규정 ’ 등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 루어 보아 북한이 향후 경제적 가치로써 토지활용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선옥 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요 경제지대들% 평양 : 조선민주주의공화 국 외국문출판사, 2018, 33쪽.

평양의 경제

평양의 부동산 가치변화와 개발의 다이나믹스 —정은이 157

국가가 경제주체로서 역할을 강화할 동인으로 체제 이행의 정도, 시장화 규

呈 사유화 정도나 빈부격차, 의식변화 등을 가능케 하는 사회경제적 지표 가 되며 통일비용의 추정지표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158 평양오디세이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이 글은 필자의 논문 허선혜,「평양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태도一「민족문화유산』에 나타난 평양 소재 문화재 기사를

중심으로」(''서울도시연구』제17권 제4호 2이6)를 수정 우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허선혜

1.

북한 이데올로기의 투영체, 평양

도시는 지표의 특정 장소에 위치하는 만큼 그 지 역의 문화재1와 결합되 어 나타나는 역사적 산물로서 독특한 지 역성을 가진다.1 2 문화재는 물리적 형 태로써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이자 도시 역사의 함축체라는 점 에서 인문

환경과 시대사의 결정체로서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일찍 이 도시 연구에서 문화재에 관한 관심은 고고학, 지리학, 역사학, 도

시사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표현되어 왔다. 특히 역사문화 도시의 관점 에

1

여기서 말하는 문화재는 현행 문화재보호법의 정의에 따라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 된 국가적 우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우 예술적 으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으로서 유형문화재 우무형문화재 우 기념물 우민속문화재로 분류된다. 그 중에서 건조물 - 전적 (典籍) - 서 적 (書積) - 고문서 우 회화 . 조각 . 공예품 등 유형 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

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 에 준하는 고고자료를 말하는 유형문화재와 절터, 옛무

덤, 조개무덤, 성터, 궁터, 가마터, 유물포함층 등의 사적지(史積地)와 특별히 기념이 될 만

한 시설물로서 역사적 우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일컫는 기념물로 범위를 국한한다(국가법령

센터 : 血砂://I시. ^0.^/1810^0^ 어0?181860厂169514&6凡6=201603280000),

2

고유환 우 홍민,『사회주의 도시와 북한유 서울 : 한울, 2013, 79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허선혜

163

서 문화재의 활용, 보존에 관하여 조명되어 왔고 그 외에도 도시 내 문화재 의 분포, 도시구조, 도시형태, 도시재생 전략의 차원에서도 접근되어 왔다.

그러나 북한 도시들의 경우 지리적 접근성의 제약과 자료획득의 한계 등

으로 인하여 타 국가의 도시 연구에 비해 아직 베일에 감추어진 부분이 많 다. 다만 국토개발 관점에서 북한 도시개발 분석, 건축과 도시경관, 도시계

획, 도시와 사회변화, 도시 내 일상생활, 남북도시 비교 등에 관련된 문제들

이 논의되어 왔고3 인문사회학적 차원에서의 접근도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 문화재 에 관해서는 문화재의 역사와 정보제공, 활용과 보존방안 및

관리, 법과 정책적 측면, 남북교류 등의 이슈들이 주로 다뤄져 왔다. 즉, 문화 재의 역사적 사실, 가치, 검증등을 기반으로 진행되어 왔다. 북한의 문화재는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가치 외에도, 북한 역사학의 목표 가 국가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체제 안정에 기여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4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 내에서 문화재가 정치적 목적성에 따라 조명될 수 있 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화재 자체에 대한 사학적 분석도 중요하지

만, 정치적, 이념사상적 맥락에서 도시 문화재의 선택적 발굴 - 해석과정에

드러난 도시 인식과 태도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도시 정체성을 성

찰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 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수도의 위상은 단순 히 행정적 중심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평양은‘조선인민의 심장이며, 사 회주의 조국의 수도이며, 혁명의 발원지’이자‘그 나라의 모든 것을특징짓

는 얼굴’5이다. 따라서 평양은 북한의 의도와 목적이 가장 짙게 반영된 이데

3

앞의 책, 111쪽.

4

이기동,「북한 역사학의 전개과정」,『한국사 시민강좌』제21집, 1997, 2쪽.

5

김일성,『김일성 저작집』36권,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1,622쪽.

164 평양 오디세이

평양 여명거리에 세워진 영생탑 @스와!@61310(=10

올로기의 투영체가 되는 도시 이다. 이 글은 북한이 정치적 목적에 맞게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시키는데 도시

내 문화재가 주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점 에 주목하여 평양의 문화재 발 굴, 복원, 개건, 해석 등의 과정 에 드러난 북한 당국의 평양에 대한 인식, 태 도, 도시 정체성 형성의 과정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북한 내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은 잡지, 학술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 의 역사학계는 1950년대 중반부터 고대사에 관한 연구를 본격화하고 1960

년대 초에 역사학 및 고고학 분야 학자 간에 치 열한 토의를 진행하여 그 결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허선혜

165

과를『력사과학나『문화유산』등의 학술잡지에 발표하였다.6 그 외에도 현

재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계간으로 발간하는 간행물인 斤민족문 화유산」〕에도 관련 논지가 다수 실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문헌자료는 북한 내부의 자긍심과 소속감을 고취시

켜서 통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시키는 기능과 동시에 외부에 북한을 미화 시키고 체제를 선전하려는 의도가 바탕이 되어 있다. 이 글은 역사적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북한 문헌에 묘사된 평양 문화재에

대한 북한의 해석과 역사체계를 통해 북한이 평양에 대해 어떠한 인식과 태 도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북한 당국이 평양의 도시 정체성을 어 떤 모습으로 설정하려 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목적 이다. 따라서 선전선동의

성격이 강한 북한의 문헌은 참고자료로서 적합하다. 따라서 이 글은 북한의 대표적 인 문화유산 관련 학술잡지 중의 하나인

『민족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하여, 평양의 문화재와 이와 관련된 역사 인식

에 관한 기사를 선별하여 분석하였다.7 이제부터 북한이 평양의 어떠한 문 화재에 강조점을 두고 발굴 및 개건 등을 해왔는지, 그 과정에 드러난 평양 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태도는 무엇인지, 북한 당국이 만들어낸 평양의 정

체성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6

김정배,『북한이 보는 우리 역사, 서울 : 을유문화사, 1990, 65쪽.

7

본 간행물은 잡지류로서 조선문화보존사에서 2001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하여 2004년 1

호 부터는 발행처가 평양에 있는 과학백과사전출판사로 이전되어 발행되고 있다. 2022 년 5월 기준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2002년 제1호부터 2019년 제3호까지 입수되어 있다.

166 평양오디세이

2,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와 문화재

1) 사회주의 도시에서 문화재의 의미

평양의 문화재에 대한 고찰에 앞서,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 에서 문화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중국은 물론이고 동유럽 의 크고 작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모두 이상적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나름의

구체적 이념과 방법을 가졌다.89 물론 사회주의 도시 전부가 공통적으로 정형화된 설계이념을 가진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는 체제유지를 위해 국

가가 단행하는 폐쇄적인 정치적 통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그로 인 한 영향이 도시 곳곳에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도시 구성요소 곳곳에 주입된 국가의 통치의도를 해석해 내는 작 업은 사회주의 도시를 이해하는 주요한 수단 중의 하나가 된다. 도시는 ‘구 축된 환경들, 공간들, 그리고 기술들’을 포함하는 물질성으로 구성되어 있

으며, 그것은 하나의 세 력으0X6으로서 행 위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

이다. 분명한 것은 계획적으로 건설된 수도일수록 국가 권력의 적나라한 상 징 이 된다는 점이다.10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는 민족의 정체성을 고취시키

8

김정후,도시’로서 평양에 다가서기一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임동우 저〈서평〉, ''황 해문화』72호, 2011,403쪽. 베를린, 일본의 근대국가 도쿄 등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건설과 관련된 예시는 조은희 - 김미영 우 전상인,「북한의 수도계획」(「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학술대회 자료집으

2013) 의 18~19쪽을 참고해볼 수 있다. 9

고유환 우 홍민,「사회주의 도시와 북한개 서울 : 한울, 2013, 46쪽.

10

80006,幻. 1《61라'686111:111呂 (116 8(3(6,(之日仕引 (게乂 0011117, 1\4니11!사1,I사681:이, 2003,

正1 ^6 匕3厂1乂 7\川01기:!이:11

29,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 허선혜

167

고 개인 혹은 국가의 정치적 목표 실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 내 문화재를 활용하여 도시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강조하면 국

가의 사상이나 이념 실현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도시는 역사적 흔적들이 주 는 관성 등 상호 이질적 인 사회-기술적 수행의 매우 복잡한 매트릭스 속에

서 구성되기11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정권 수립 초기부터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강조하는 분위

기에서 역사학과 고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주체성을 넘어선 고

립된 민족주의의 산물로서 통치 이념을 내세우기 위해 학문을 도구화했다.11 12

북한의 문화재는 단순히 역사적, 기술적 혹은 기록적인 가치를 넘어 체제홍 보와 주체성 강조 등 정치적 목적성을 내포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일찍이 문화재와 역사의 중요성에 주목한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

라 북한의 역사학계는 1950년대 중반부터 고대사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70년대 진행 된 고구려 유적조사 또한 이 러한 맥락에서 고구 려사의 강조를 통한 주체사상의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13 이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이 여러 북한 문헌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민족의 기원문제, 구석기시대와 노예사회의 존재문제 등을 단순히 학술

상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존엄과 영예, 자주성과 관련된 중요한 정치적문 제로 보시고 력사학자들이 주체적 립장에서 연구방법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

11

고유환 으 홍민,『사회주의 도시와 북한아 서울 : 한울, 2013, 39쪽.

12

장호수,『북녘의 고고학과 문화재관리 % 서울: 백산자료원, 2000, 16쪽.

13

백종오,「북한의 고구려 유적 연구 현황 및 성과」,『정신문화연구』제31권 제1호, 2008,

329쪽.

168 평양오디세이

평양민속공원에 위치한 조선민속박물관 @匕연합丄

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었다.1415

김일성 - 김정 일주의는 민족문화유산에 관한 문제가 단순히 문학예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자주 시대의 기본요구와 민족자주로선과 관련된 중 요한 정치적 문제로 된다는 것을 천명하고 민족문화유산 문제를 성과적으 로 풀어나가는데서 제기되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명을 주었

다. 15

14

박영해,「주체의 력사학발전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 1'민족문화유산』제14권 제2호,

2004, 10쪽. 15

박정실,「김일성 - 김정일주의가 밝힌 민족문화유산의 본질과 구성부분」,『김일성종합 대학 학보一철학 우 경제학」제59권 제1호, 2013, 25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 허선혜

169

민족의 력사를 주체적 립장에서 정립체계화하시고 나라의 귀중한 재보인

력사문화 유적들을 잘 보존 관리하여 후세에 길이 전해가도록 이끄신 어버

이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 (하략)16

력사박물관들과 력사유적지, 명승지들을 훌륭히 꾸리고 당원들과 근로자

들, 청년학생들을 애국주의 정신으로 교양하며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 한 문화를 널리 소개선전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중략) 민족유산 보호 사업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확립하며 우리 당의 민족유산 보호정책을 더욱 철저히 관철해 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17

즉, 북한에서 문화재는 주체성의 발현과 조선민족 제일주의 강조 등 북한

식 사회주의 이념을 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선택적으로 해석되고 발굴 되는 도구로서의 모습을 가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2) 평양 도시계획의 특수성

도시계획 관점에서 평양의 특수성을 분석하는 데 여러 가지 시각과 방법

이 존재하지만, 여기서는 수도首都 계획 관점과 도시사적 분석을 축으로 삼 아 평양의 특수성을 정 리해 보았다.

우선 수도계획 관점에서, 수도건설은 공공건물, 도로계획 등을 건설하는

16

박영해,「주체의 력사학발전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민족문화유산』제14권 제2호,

17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동명왕릉을 현지지도하신 60돓 기념보고

2004, 3쪽.

회 진행』,『민족문화유산』제52권 제4호, 2013, 12쪽.

170 평양 오디세이

건축, 조경 등 하드웨어 중심의 물리적 요소의 계획이 있고, 개별국가의 독 특한 정체성을 각인하고 과시하는 것이 목적으로 수행 되는 소프트웨 어 중 심의 수도계획이 있다.1819 이 중 소프트웨어 중심의 수도계획 시각에서 평양

의 특수성을 분석하는 관점 중에서 ‘극장국가’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흥미

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20세기 활동한 사회인류학자인 클리퍼드 기어츠 0血。日 (규6112는 1979년에 저서 尺네가라一19세기 발리의 극장국가/’3서 강제

적 수단에 의한 통제보다 왕이 온 우주의 중심임을 환기하는 의식 등을 통해

존재를 과시함으로써 정치적 권위를 세웠다는 권력이론을 전개한 바 있다. 이후 기어츠의 고전적 연구를 인용하여 일본의 역사학자 와다 하루끼는 북한의 정치구조에 관해 극장국가 개념을 소개했고, 다른 전문가들도 비슷

한 개념을 제시했다. 그 중 메들리코트"는' 국가적 의 례와 국가주도의

대규모 스펙터클이 현대 북한의 정치과정에서 핵심적 중요성을 띠게 되었 다고 주장했다. 이들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북한의 정치과정 에서 상징과 은

유가 무척 중요하다1,는 점에 주목했다. 즉, 북한에서는 영도예술이라는 이름의 “통치의 연극화, 통치의 예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 북한의 수도 평양이 있다. 북한은 극장국가이 며, 평양은‘극장국가의 무대공간’이 되는 것이다.20

평양이라는 무대 에서 펼쳐지는 연극은 정치지도자의 대중연설, 군사력 과시, 거창한 의식 등 의례화된 권력의 상징적 행위들이다. 1930년대 만주

18

전상인 - 김미영 - 조은희,『국가 권력과 공간一북한의 수도계획」,『대한국토계획학회

지」! 제50권 제1호, 2015, 23쪽.

19

권헌익 - 정병호,『극장국가 북한소 서울 : 창비, 2013, 64쪽.

20

조은희 - 김미영 우 전상인,「북한의 수도계획」,『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학술대회 자료집』, 2013, 19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허선혜

171

의 빨치산 투쟁이야기가 1970년대 강력한 드라마로 되살아났고, 혁명렬사

릉에서 탈식민적 역사 재구성이 물질적 기념문화에서 드러나는 등이 그것 이다.21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치적 목적에 따라 구축된 역사체계와 이를 뒷 받침하기 위한 증거로써 문화재의 선택적 발굴과 개건사업 역시 도시라는

무대를 꾸미는 효과적 장치가 된다고 판단해 볼 수 있다. 평양은 더욱이 북

한의 수도이고 ‘극장국가의 무대공간’이기에 그 특수성과 상징성에 대한 극 적 강조가 더욱 요구되는 장소적 특성을 가진다. 다음으로 평양이 고도古都21 2223 로서 가지는 도시사적 특이성을 몇 가지 살펴

보도록 하겠다. 도시사적으로 평양은 오래전부터 신격화, 신화화 등을 통한 숭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고려시대에 평양이 가지는 의미와 특징을 고문헌

자료 등을 통하여 분석한 김성환(1&)은 그 연구에서 과거 김부식이 평양을 선인仙人 왕검王險이라는 인간보다는 신에 가까운 신성한, 초월적인 존재가 자리하였던 특별한 장소라고 했던 점그 등을 예로 들어 평양이 독보적으로

큰 중요성을 가지는 지 역으로 조명되 어 왔음을 밝혔다. 우미 영 (2011)은 평양

이 시원적 공간 혹은 조선 상고사의 공간으로서 역사적 사실성보다는 신화 적 존재로 존재해왔다고 분석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한이 신화성 에 치

21

권헌익 우 정병호, ''극장국가 북한% 서울 : 창비, 2013, 185쪽.

22

세종실록 지리지 평안도 평양부에는 평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요(唐奏) 무

진년에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그를〉세워 임금을 삼

아 평양에 도읍하고, 이름을 단군(植君)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전조선(前朝鮮)이요, 주 (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이 땅에 봉하였으니, 이것이

후조선(後朝鮮)이며, 그의 41대 손(孫) 준(準) 때에 이르러,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 이 망명(亡命)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準)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王險 城)【곧 평양부(平壞府)이다.】에 도읍하니, 이것이 위만 조선(衛滿朝鮮)이었다. ”

23

김성환,「고려시대 평양의 단군전승」,『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제10호, 1998, 129쪽.

172 평양오디세이

중할 때 평양의 실체성은 큰 의미 작용을 하지 못한다가고 지적하였다. 즉, 도 시의 상징성과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체가 없는 신화와 전설

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실질적 인 대상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전쟁 이후 복구 시기부터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성을

고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평양을 포함한 국토 전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문 화재를 복구하고 개건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후 북한은 대내적으로 경제 상

황이 어려워져도 평양에서만큼은 그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 당국은 이 과정을 통해서 신화성과 전설에만 의지하기보다, 물리적 대상을 통해 신화 를 역사로 바꾸는 ‘현실화’ 작업을 수행하여 평양을 성역화聖域化 시키고자 한 것이다.

3,

북한이 바라본 평양의 역사적 정체성

1) 인류문명의 발상지

해방 이후 북한의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북한 땅에 구석기시대가 존재

했는가에 대하여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정 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의 존재 여부는 민족의 시원 및 형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인민의 자긍심 고취와 민족의 우수성 홍보를 위한 효과적 선전선동 의 수단으로서 이 문제에 집중했다.

북한 지도부는 북한지역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뒷*

24

우미 영,「억압된 자기와 고도 평양의 표상」,『동아시아 문화연구』제50집, 2011,52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허선혜

173

받침하기 위한 체계적 논거 정립에 집중하였다. 김일성은 1960년 9월 29일 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를 주체적 립장에서 고찰할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구석기 시대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되는 유적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발굴사업 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 구석 기시대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구석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론증하려면 반드시 구석 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많이 찾아내야 합니다. 앞으로 구석기시대 의 유물을 새로 찾아내자 면 유적발굴사업을 적극 내밀어야 하며 광범한 군중을 이 사업에 불러일으 켜야 합니다. 25

구석기시대 유적발굴사업이 전국적으로 강조된 이후, 1962년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털코끼 리 뼈화석 발굴, 1963년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에서 구 석기시대 후기 유적발굴이 차례로 보고된다. 이에 대하여 김일성은 해방 후

고고학계가 이룩한 성과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의 하나라고 평가하며 그 가치를 매우 높이 샀다.25 26

이후에도 구석기시대 유적유물발굴사업은 계속되었고 1%6년 평양시 상

원군 흑우리에서 검은모루유적이 발굴되면서 논의의 중심점이 평양으로 이 동되었다. 주민들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발표된 검은모루유적 에 대하여 북

25

최영숙,「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빛내여주시려」,『민족문화유산』제13권 제1호, 2004,

9~10쪽. 26

위의 글, 10쪽.

174 평양오디세이

한 역사학자들은 이 유적이 약 100만 년 전의 것으로 인류발생기의 가장 이 른 시기인 구석기 시대전기 유적이라고 주장했다. 평양에서 이러한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곧 평양이 인류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가 된다는 논리

로 자연스럽게 귀결되었다. 북한 학계는 이후 검은모루유적 발굴을 근거 삼

아 평양이 인류문화의 발상지라고 대내외적으로 홍보하였다.

인류발상지인 평양일대에서 세상 사람들을 놀래우는 검은모루유적을 발 굴고증하는 자랑찬 성과를 거두었다소”

검은모루유적은 최초의 사람인 원인단계의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서 이것

은 평양이 인류발상지의 하나이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27 28

1960년대 북한의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 날짜

유적

1960년대 초

구석기시대 존재문제에 대한 논의 진행

1960년 9월 29일

지역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존재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고찰할데 대하여〉담화

1962년 1월

털코끼리(맘모스) 뼈화석

함경북도 화대군

1963년 3월

구석기시대 후기 유적발굴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1966년 3월

검은모루유적

평양시 상원군

'민족문화유산」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 정리.

27

앞의 글, 10쪽.

28

허성철,「평양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 원시사회」,「민족문화유산』제 15권 제3호, 2004,

13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 허선혜

175

이와 같은 북한의 주장에 관하여 일부에서는 인류 발생의 첫 시기인 구석 기시대는 북한 지역에서 존재하지 않았으며 신석기시대에 와서야 다른 지

역의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았다는 견해를 들고 나왔었다. 그러나 북한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견해에 대하여 북

한은 과거 일제 어용학자들이 주창했던 ‘문화권이동론’을 되풀이한 것으로

써 역사발전의 합법칙성과 유구성을무시한 채 세계적으로‘공인’된 ‘인류

발상지 ’에 기원을 두고 해석하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도식화된 학설을 맹 목적으로 추종한 것이나 다름없는 궤변2930 이라며 강하게 반론하였다. 31 더 나아가 2010년 5월부터 2013년 8월까지 평양시 강동군 란산리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주현동유적에 대한 발굴작업이 있었다. 하나의 무덤 장소에 총 9개체분의 사람 뼈가 발굴되었고 북한은 이를 신석기시대 유골이라 주

장했다. 북한은 대동강유역에서 신석기시대 무덤유적이 발견30된 것을 계기 로 평양이 구석기시대뿐 아니라 신석기시대 문명의 발달이 이루어진 인류 문명 발원지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인류의 발상지, 조선사람의 발원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이었다. (중략) 인류문화의 발상지의 하나인 유서 깊은 평양에는

민족의 유구성을 보여주는 많은 력사유적들이 있다.31

우리 민족이 평양을 발상지로 하여 이 지역에서 먼저 기원하였으며 평양

29 30

최영숙, ''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빛내여주시려」, 1'민족문화유산』제 13권 제1호, 2004, 9쪽. 리빈,「주현동유적에서 새로 발굴된 조선옛류형 사람뼈에 대하여」,『민족문화유산』제

56권 제4호, 2014, 44쪽.

31

본사기자, ''동명왕릉」,『민족문화유산』제14권 제2호, 2004, 32쪽.

176 평양오디세이

을 중심으로 하여 민족의 단일성이 이루어졌다.32

2) 고조선의 중심지

(1) 단군릉의 발굴: ‘요동중심설’에서 ‘평양중심설’로

과거 고려시대 때 평양에서의 단군 숭배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신격으로

서의 숭배33였고 역사적인 존재보다는 평양지방의 지역신地域新에 가까운

존재로 이해되고 있었다.3435 즉, 고려 전 . 중기 에 단군은 민족의 원시조로써

역사성을 인정받았던 존재가 아니라 평양 고유의 신적인 존재로 인식되었 을뿐이었다.

북한 정권 수립 이후에는 1960년대 초반 고조선의 위치와 그 사회의 성 격 등에 관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시대 구분과

정치사의 흐름에 대한 북한학계 나름의 고대사 체계의 뼈대가 일단 정립을 보게 되었다.으므 이 당시에는단군의 실존 문제와 고조선의 위치문제에 관하

여 요동適束 중심으로 고조선을 파악하였던 리지린의 재요령설在避學說이 북 한학계에서 인정받는 정설로 30여 년 동안 굳어져 있었다. 그러던 중 1993년 9월에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 옛 단군릉 발굴사업을 진행하는 과정 에서 사람의 뼈와 금도금한 왕관 조각

이 나왔다. 북한은 이 유골이 단군의 것이라 주장하며 1993년을 기준으로

32

허성철,「평양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 원시사회」, 厂민족문화유산』제 15권 제3호, 2004,

14쪽.

33

김성환,「고려시대 평양의 단군전승」, 푸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제10호, 1998, 139쪽.

34

위의 글, 142쪽.

35

김정배,「북한이 보는 우리 역사개 서울 : 을유문화사, 1990, 65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허선혜

177

단군릉에서 발굴됐다는 남(&. 녀(左)의 유골

@三연합丄

5011년 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북한은 평양에서 단군릉발굴을 계기로 단군이 실존 인물인 것과 고조선

의 중심이 평양인 점을 새롭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종래에 북한학계가

30년 이상 고수해온 요동중심설을 단번에 부정하고 평양중심설로 바꾼 것 으로, 단군을 신화에서 역사로 현실화시킨 것이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던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큰 비용을 들여 단군릉을 성대하게 개건 했다. 단군릉 개

건의 배경에 관하여 권오영(2003)은 북한의 내부사정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 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이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난을 겪으면서 체제 정

통성과 우월성을 강조가 절실히 필요했고, 단군은 이를 위한 매력적 소재였

다조는 것이다. 신화의 해석은 사회가 처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36

한국역사연구회, 『북한의 역사 만들기, 서울 : 푸른역사, 2003, 99쪽.

178 평양오디세이

따라 좌우되는 면이 많으며, 그 결과 국가나 민족에 따라 다르고 같은 국가

나 민족이라 하더라도 시대 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37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당시 당면한 대내외적 위기 환경 속에서 체제 안정을 모색

할 방법의 하나로 신화의 해석과 현실화에 집중했다. 그에 따라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를 주축으로 하는 북한 고고학계는 중앙의 지원으로 단군과 단군조선에 관계되는 유적유물에 대한 대규모적인 조사발굴사업을 진행하

게 되었다.3839

인류문화의 발상지의 하나인 우리나라에는 력사문화유적과 유물이 많습

니다. 우리는 그것을 적극 발굴하여야 합니다. 특히 평양시주변에 있는 단군 과 관련한 유적들을 다 발굴하여야 합니다.3,

남한이나 일본학자들 중에는 이 단군릉이 학술적 뒷받침이 결여된 상태

에서 황당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40 그러나 북한 학계는 그 나름대로 여러 증거를 통하여 웅변하고 있다.41 김일성은 역사학자 및 관계부문 일꾼들과 협의회를 열어 전설로만 전해

37

서 영대,『신화 이해의 역사적 변천一북한의 경우를 중심으로」,『정신문화연구』제78권,

38

서일범,「북한고고학의 최근동향과《대동강문화론》」, 무백산학보대제53호, 1999, 交0쪽.

39

김정선,「백두산위인들의 손길아래 단군관계유적들을 발굴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한 사

40

일례로 이경섭(2015)은 1960년대 북한의 연구자들은 단군신화의 역사성을 민족주의적

2000, 28쪽.

업에서 이룩된 자랑찬 성과」,『민족문화유산』제43권 제3호, 2011,10쪽.

감성의 자각을 통하여 복원하였다고 보아도 좋고, 어쩌면 이렇게 복원된 단군신화의 해 석은 북한 역사학계의 내면에서 지속되다가 후일 ‘단군릉 발굴’이라는 희대의 민족사적 사기극에서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구축하는 자양분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고하였다.

41

임효재,「대동강문화와 한강문화」,『한국선사고고학보』제9권, 2002, 8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 허선혜

179

오던 단군이 반만년 전의 실재인물이고 3.0, 30세기 초에 장구한 원시시대

를 끝내고 문명시대 에 들어선 최초의 노예소유자 국가를 건국한 민족의 원 시조이며, 고조선은 민족의 성지聖地인 평양을 도읍지로 삼았던 국가42임을

강조했다. 이를 근거로 하여 북한이 동방에서 가장 먼저 국가문명 시대 에 들어선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동방의 선진문명국임 이 명백하다고 주 장하며 단군릉발굴사업을 통해 조선민족의 원시조는 단군이며 전 인민은 단군민족임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이야기했다.

이는 1989년 김정일이 제창했던 ‘조선민족 제일주의’에 근거한 정치적

목적을 역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가 되어, 북한은 민족의 원시조를 단군으로,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김일성으로 설정해 민족의 역사체계를 단군-김 일성으로 연결되는 인식체계로 구축하였다.43

단군릉 발굴을 통하여 단군이 고조선의 건국 시조로 확인되고 단군조선 이 민족사상 첫 국가로 인정됨으로써 배달민족으로서의 우리 민족이 지녀온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다름 아닌 동방에서 제일 먼저 나라를 창건하고 민

족 형성의 길을 마련해준 민족의 원시조 단군에 그 뿌리를 둔것이 였다는 것 이 뚜렷이 확증되었다.44

이후 북한은 단군릉 발굴을 국내외에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홍보하였다. 김정일은 해외 관광객들을 단군릉에 한 2일 동안 참관 시켜서 북한이 동방

42

최인철,『민족의 원시조 단군과《단군》명칭의 의미」,『민족문화유산』제37권 제1호,

2010, 16쪽.

43

조법종,「북한의 ‘大同江文化論’과 고조선인식 검토」,『선사와 고대』제43호, 2015, 42쪽.

44

공명성,「단군과 배달민족」,『민족문화유산』제 13권 제 1호, 2004, 43쪽.

180 평양 오디세이

단군릉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천절 행사 @스연합구

문화의 발원지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라45고 지시할 정도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여러 차례의 현지 지도와 담화 및 연설 등을 통해 단 군릉에 지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1993년 10월 20일 김일성은 릉형 식, 단군

부부의 유골영구보존 대책, 돌조각상들의 크기와 위치선정, 상돌문제, 단군 관련유적 관리 등 단군릉 개건방향 제시, 개건 공사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 에 관하여 연설하는 등 세심한 부분에까지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46 단군릉 은 노동당 시대 만년대계의 기념비적 건축물이자 국보47가 된 것이다.

45 46

허태선,「단군릉에 새겨 진 불멸의 자욱」, 厂민족문화유산丄 제8권 제4호, 2002, 9쪽. 김경숙,「민족문화유산을 통한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교양을 강화하자」,『민족문화유

산』제15권 제3호, 2004, 5쪽.

47

허태선,「단군릉에 새겨 진 불멸의 자욱」,『민족문화유산』제8권 제4호, 2002, 9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허선혜

181

이 과정에서 단군릉이 있는 평양은 민족의 단일성, 유구성, 문명성을 과 시하는 상징으로써의 장소성을 부여받게 되고 전 인민들의 시원이자 근간

이 되는 역사적 장소로 정체성이 부여받게 되었다. 평양이 민족의 성지로 묘사되는 부분을『민족문화유산』에서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 있다.

평양은 단군 민족의 반만년 력사가 개척되고줄기차게 이어져 온 유서 깊 은 도읍이며 (중략) 수수 천 년 우리 인민들 속에서 높은 민족적 긍지와 자부 심, 열렬한 애국애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민족의 성지로 간주되어왔다.48

북한의 문인 리수광은 시〈단군사당〉에서 원시조 단군이 평양에서 태어 나 최초의 고조선 국가를 세웠다는 점에서 평양이야말로 ‘조선 민족의 혈통 과 넋이 뿌리내린 발상지, 중심지이며 반만년민족사가 창조된 성스러운 곳’

이라고 격찬하였다.4950

강동에서 단군릉이 발굴되고 단군의 유골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북한은 단군이 태어나서 민족국가의 창업을 이룩하고 죽어 묻힌 곳이 평양이며 고

조선의 수도 왕검성도 평양이라는 것을 확증50하는 것이라며 평양의 정체성 을 부여한 것이다.

48

본사기자, 厂민족의 성지 평양을 노래한 민족고전시가유산丄, 厂민족문화유산丄 제 14권 제2 호, 2004, 24쪽.

49

50

위의 글, 25쪽. 최광호,「평양은 단군이 나라의 창업을 이룩한 민족의 성지」,『민족문화유산』제23권

제3호, 2006, 15쪽.

182 평양오디세이

북한의 단군룽 발굴 - 개건사업 과정 과정

날짜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에 위치한 옛 단군릉

1993년야월

발굴사업 도중 사람의 뼈와 왕관조각 발견

1993년

발견한 유골이 5011년 전의 것으로 확정 보고

1993년 야월 27일

김일성의 단군릉 현지방문

단군릉개 건관련 관계부문일군협의회 개최

1993년 10월 20일

〈단군릉개건방향에 대하여〉김일성의 연설

1994년 1아월 11일

단군릉준공식

1994년 10월 29일

김정일의 단군릉 현지지도

''민족문화유산」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 정리.

(2) 대동강문화론: 고대문명의 발상지 대동강

북한은 대동강 유역에서 원인 흔적이 발견되자 평양 일대가 인류문명의 발원지가 된다는 역사체계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평양에서 단군릉발굴을

계기로 ‘평양중심론’ 혹은 ‘평양성지론’에 더욱 힘을 싣게 되었고 평양을 중 심으로 집중적 인 유적조사 작업을 더욱 활발히 진행하였다.

북한 사회과학원 학자들은 1993년부터 1994년에 현지조사 사업을 시행

해 단군조선 시기의 성터, 제단, 부락터 유적 등에 대한 발굴을 진행했다. 발굴 내 역을 들어 북한은 3.0, 30세기 초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유역에

서 처음으로 고대국가인 단군조선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문 화를 이른바 '대동강문화,51라 이름 붙였다. ‘대동강문화’는 단군조선의 국가

51

북한의 역사학계, 고고학계 등은 이후 평양에서 발굴 혹은 출토된 여러 유적들을 근거로 들어 평양 대동강 유역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과거 행적들을 대동강 문화라 명명하고 이

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주창하고 있다. 리순진(1999)은 근거가 되는 주요 골자를 단군릉 과 고인돌무덤, 고대성곽, 단군조선 시기 대규모 부락터, 비파형단검, 도기류, 금제품 유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허선혜

183

적 성격을 보여주는 많은 역사유적과 유물들이 새로 발굴되고 그에 관한 연 구가 심화 되면서 1998년에 새로 명명* 52된 것이다.

‘대동강문화’론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유적유물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 표대 유적 등 대규모 고대 부락 터 이다. 이 발견은 도시를 이루었던 노예소유자 사회로의 문명발전의 단서가 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고대 부락 터의 분포밀도가 평양에서 가장 높다53는 것을 근 거로 하여 평양을 포함한 대동강유역을 세계 최초의 고대문명 발상지로 주

장했다.

둘째, 평양시 룡성구역 화성동에서 발굴된 제단 시설이다. 단군을 세계

최초 고대국가인 단군조선의 건국 시조로 숭배하며 제를 지내던 시설이었 다고 보고 있으며 이 에 대동강유역을 단군조선의 발상지로 판단하고 있다.

셋째,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청암동토성이다. 1995년부터 1997년에 김 일성종합대학의 교원과 연구사들이 평양 중심부 성곽과 고인돌 무덤 에 대 해 조사하여 발견한 것이다. 북한의 학자들은 이 토성이 단군조선 시기에

처음 쌓아진 수도성(왕검성)이라고 주장했다.54 그 외에도 평양 대성구역 강 동군 황대성, 성현리토성, 지탑리토성 등의 고대 성곽들을 또 다른 근거로 삼고 있다.

이처 럼 북한이 주장하는 ‘대동강문화’는 개념상으로는 대동강유역에서

물들, 농업, 별자리가 새겨진 고인돌무덤으로 정리하고 있다.

52

정봉찬,「대동강문화에 대하여」,『민족문화유산』제53권 제1호, 2014, 19쪽.

53

박창식,「대동강류역의 고대부락건축」,『민족문화유산』제6권 제2호, 2002, 43쪽.

54

김정선,「백두산위인들의 손길아래 단군관계유적들을 발굴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한 사

업에서 이룩된 자랑찬 성과」,『민족문화유산』, 제43권 제3호, 2011,11쪽.

184 평양오디세이

조선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평양시 삼석구역 광덕에서 발굴한 단군조선 시기의 토성 @느연합丄

개화 우 발전한 원시 문화와 고대문화를 포괄하나 그 본질과 핵심은 대동강 유역의 고대문명이 며 이는 바로 단군조선의 문화5556 를 말한다. 대동강문화

론의 핵심 내용은 1990년대까지 파악한 고고학적 유적 및 문화 인식을 평양 성지론聖地論과 연결 짓고 단군의 실재 확인을 통해 완성한 문명론이라는 것 이다. 56 즉,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유역이 조선 민족의 발상지, 단군조선의

중심지, 나아가 세계 최초 고대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라는 학계의 방향을 설

정한 뒤 북한학계는 그런 방향으로 힘차게 행진하고 있다.57

55

서일범,「북한고고학의 최근동향과《대동강문화론》」,『백산학보』제53호, 1999, 389쪽.

56

조법종, 厂북한의 ‘大同江文化論’과고조선인식 검토」, 丄선사와고대』제43호, 2015, 45쪽.

57

임효재,「대동강문화와 한강문화」,『한국선사고고학보, 제9권, 2002, 1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허선혜

185

대동강류역의 고대 부락(도시)들은 단군조선 이전 시기인 8.(;4000년기 후반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중략) 대동강류역에서의 고대 부락건축이 세

계 최초의 고대문명 도시들에 비해 훨씬 앞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5859

3.(; 7천년기에 다른 지역보다 먼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에서 신석기시대에 들어섰으며 8.0 4 천년기 후반기에는 청동기시대를 열어놓

았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계급사회로의 이행이 제일 먼저 진행된 것도 역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이었다. (중략) 우리 선조들은 평양을 중심으 로 한 넓은 지역에서 정착하여 살아오면서 구석기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

기시대의 문화를 독자적으로 창조하고 고대문명의 려명도 맨 처음으로 불

러왔다.5,

우리 조국의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전통은 세계 5대 문명

의 흐I나인 대동강 문화에 뿌리를두고 있다. (중략) 세계 5대 문명에는 우리나 라의 대동강 문화, 중국의 황하문화, 인디아의 인두쓰강 문화, 서남아시아의

량강문화, 에짚트의 닐강 문화가 속한다. 60

58

박창식,「대동강류역의 고대부락건축」,『민족문화유산』제6권 제2호, 2002, 43쪽.

59

허성철,「평양을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 원시사회」,『민족문화유산』제 15권 제3호, 2004,

14쪽. 60

정봉찬, 广대동강문화에 대하여」, ’’민족문화유산』제53권 제 1호, 2014, 18쪽.

186 평양 오디세이

(3) 고인돌무덤 떼 : 고조선의 수도 평양

김정 일의 지시에 따라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원과 연구사들은 2002년 5월

부터 2003년 10월까지 평양시 만경대구역 룡악산 일대를 전면적으로 발굴 조사하였다. 그 결과 고조선 시기 고인돌 무덤떼가 발굴 되었다. 이 발굴은 북한의 고조선 역사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룡악산지구에서 발견된 고인돌 무덤떼는 평양의 중심부가 고조선 의 중심지와 일치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룡악산지구 고인돌 무덤떼

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주로 고인돌이 평양의 중심부가 아닌 상원군, 강동 군, 황주군, 연탄군 일대 등 주변부에서 발견되었다. 평양 일대에 고인돌무덤 1만 4천여 기가 분포해 있다는 사실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평양이 됨을 뒷받

침하는 근거가 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평양의 중심지 역인 룡악산지구에서 백수십기의 고인돌무

덤떼가 발견되게 됨으로써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이며 고대문화의 발원지라 는 것을61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평양지방에 집중 분포되여 있는 대형고인돌 무덤은 평양이 고조선 문화

의 중심지 였던 사실을 확증하여주는 실물자료로서 (하략)62

룡악산 일대에서 백수십여기의 고인돌 무덤들과 함께 고구려의 전형적인

돌칸흙무덤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축조된 것은 고대에 이어 중세시기에도

61

김태웅,「룡악산일대의 력사문화 유적들을 길이 전해가기 위한 우리 인민들의 투쟁」,

62

서국태,『민족의 유구성을 보여주는 평양일대의 대형고인돌무덤」,『민족문화유산』제

『 민족문화유산丄 제40권 제4호, 2010, 10쪽.

36권 제4호, 2009, 38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허선혜

187

평양시 만경대구역 룡악산지구에

서 발굴된 고조선 시기의 고인돌 무덤 @스연합丄

평양이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발전의 발원지, 중심지라는 것을 다시 한번

과학적으로 립증하여 주고 있다.63

둘째, 그간 발견된 고인돌들이 평양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에 산발적으로 발견되어왔던 차에 평양 중심부에서 고인돌 무덤떼가 발견된 것은 북한학

자들 입장에서 고인돌무덤의 발원지가 평양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 어주었다. 평양 일대 에 분포하고 있는 대형 고인돌 무덤은 총 13기이다. 대표적으

로 상원군 장리1호, 2호, 5호 무덤, 강동군 문흥리 4호무덤, 룡강군 석천산 1

호무덤, 연탄군 오덕 리 1호 무덤, 은률군 관산리 1호 무덤, 안악군 로암리 1 호 무덤 등이 있다. 특히 상원군 장리2호와 안악군 로암리1호는 뚜껑돌이 9171이상이고 무게가 약 1001:인 특대형 고인돌이다. 북한은 이 러한 고인돌이*

63

박준호,『 력사의 발자취를 통해 본 단군민족문화의 발상지 ⑵『 민족문화유산』제 15권 제3호, 2004, 43쪽.

188 평양오디세이

평양일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바로 이 지역이 당시 통치 집단이 집중되어

있던 행정적 중심지라는 것을 의미한다6465 고 주장하고 있다.

3) 단일민족 계승의 중심지: 단군에서 김일성으로

건국 왕릉의 위치는 민족의 정통성 계승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높은 상징 성을 가진다. 북한도 이 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50년대 중반부터 고분유적 발굴조사를 활발하게 진행하였는

데 이때 평양을 중심오 한 평남 일대가 집중적으로 조사되었다. 김일성은 1953년 8월 26일에 현재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구려

의 시조 왕릉인 동명왕릉을 직접 방문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일성은

첫 현지 지도를 시작으로 고구려가 수도를 옮길 때 건국 시조인 고주몽의

무덤도 함께 평양으로 옮겨왔을 것이고 그것이 동명왕릉임을 주장하며 이 를 확증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 방향55을 제시했다.

전승의 축포가 오른지 한 달이 지난 주체42(1953)년 8월 26일 동명왕릉을

찾으신 그때로부터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동명왕룽 문제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권위와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라고 하시 면서 고구려의

시조릉답게 크게 개건하기 위한 사업을 발기하시고66

64

서국태, ''민족의 유구성을 보여주는 평양일대의 대형고인돌무덤』,『민족문화유산』제

36권 제4호, 2009, 32쪽.

65

리의호!' ' 최영식 - 오대영 - 위영철 - 오계근 우 김수용 - 리춘월, 厂동명왕릉과 더불어 길이

전할 이야기」,『민족문화유산』제10권 제2호, 2003, 23쪽.

66

최영숙,「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빛내여주시려」, ''민족문화유산』제13권 제1호, 2004, 7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허선혜

189

이후 이루어진 연구와 조사는 이 내용을 완성시키는데 온 힘을 다하게 된 다. 북한은 릉의 구조와 벽화장식 등을 들어 왕릉급 무덤 이라고 주장했고,

무덤의 축조 시기 등을 따져보았을 때 427년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 길 때 함께 옮긴 시조 왕의 무덤67이라고 내세웠다.

시조 왕릉의 안전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 릉을 정 히 보존관리해 온 고구 려가 고조선의 계승국으로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시조 왕을 더욱 내 세우기 위하여 동명왕릉도 이설하였던 것이다.68

1974년 1월 김일성은 김일성종합대학에 동명왕릉을 과학적으로 고증할 데 대한 과업을 지시했다. 이후 같은 해 에 진행 된 진파리 10호분의 조사는 정릉사지(1974)의 발굴조사와 더불어 그동안 전설로만 인식되었던 동명왕릉 의 실체를 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69

1989년에는 마침내 동명왕릉 개건공사가 발기되었다. 김일성은 동명왕 릉 개건을 위해서 10여 차례의 현지 지도와 100여 차례의 교시와 가르침을

내 렸다. 그는 룽형식, 기단의 높이, 릉 좌우 문무관돌 조각상들의 개수와 크 기, 릉문의 형식, 단청 등 릉 개건의 실무적 문제들에 직접 언급하는 등70 관

67

김경찬,『평양의 동명왕릉은고구려시조동명성왕의 무덤』,『민족문화유산」제36권 제4 호, 2009, 14쪽.

68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동명왕릉을 현지지도하신 60돓 기념보고 회 진행」, ''민족문화유산』제52권 제4호, 2013, 12쪽.

69

백종오, ''북한의 고구려 유적 연구 현황 및 성과」,『정신문화연구』제31권 제 1호, 2008,

328쪽. 70

김경숙,「민족문화유산을 통한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교양을 강화하자」, 1'민족문화유 산』제15권 제3호, 2004, 5쪽.

190 평양오디세이

심이 지대했다. 당시 북한은 대내외적 고립과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동명왕릉의

개건 사업을 우선시하였다. 넓은 교양마당, 2而의 직선도로 포장, 600示의 주차장 건설, 동명왕릉 일대를 녹음이 우거진 주민의 휴식 터로 조성, 해마

다 잣나무, 분홍꽃 아카시아나무 등 10여만 그루의 수종 좋은 나무와 꽃을 심는 것은71 막대한 예산과 노동력이 투입되는 사업이었지만 중단되거나 소 홀히 되지 않았다. 왕릉의 개건은 당이 제시한 문화보존정책의 일환으로서

북한이 대외적으로 역사적 정통성을 자랑하고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에게 민

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줄 수 있는 사업72이 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명왕의 생일 2,290돐이 되는 1993년 5월 14일에 마침내 동명

왕릉 개건식이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평양에 동명왕릉이 장대한 규모로 개 건 되면서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이의 계승국인 고구려의 핵심이

되는 시조 왕의 릉이 모두 평양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러한 문화유산은 북 한 주민들을 조선민족 제일주의 정신으로 교양하는73 역할을 하였다.

고조선 멸망 이후 단군에 대한 숭배 정신은 고조선의 전통 계승국인 고구

려의 주민들에게 전승되었다고 북한은 보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고구려 의 건국 시조인 주몽왕을 단군의 후손으로 생각했고 단군을 그들의 원조상 으로 받들어 단군릉을 크게 개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숭배하는 행위를 했

71

김철룡,「문화재보존관리에 뜨거운 애국의 마음을 바쳐가는 사람들」,『민족문화유산』

제14권 제2호, 2004, 28~29쪽.

72

김일성,「동명왕릉을 잘 꾸릴데 대하여(발취)一동명왕릉과 동명왕릉건설 총계획사판,

도면을 보고 일군들과 한 담화」,『민족문화유산』제 14권 제2호, 2004, 3쪽.

73

김경찬,「평양의 동명왕릉은 고구려시조 동명성왕의 무덤」,『민족문화유산』제36권 제4

호, 2009, 14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 허선혜

191

다는 것이다.74

고구려의 전신국인 구려가 고조선 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였다는것을 고려

해볼 때 고구려의 지반으로 된 령역 역시 고대 조선 민족의 거주지의 한부분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75

력사적 사실은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첫 국가인 고조선을 계승한 자주적

인 나라이며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허용하지 않은 존엄 높은 나라였다는 것

을 웅변으로 실증해주고 있다. ’’76

북한의 동명왕릉 발굴 우 개건사업 과정

날짜

과정

1953년 8월 26일

김일성의 동명왕릉 첫 현지지도

1974년 1월

김일성 종합대학에 동명왕릉을 과학적으로

고증할데 대한 과업 지시

1989년

동명왕릉개건공사 발기

1993년 5월 14일

동명왕룽 개건식

1993년 5월 16일

개건된 동명왕릉 현지 지도

''민족문화유산」에 나타난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 정리.

앞서 살펴봤듯이 동명왕릉이 개건되던 1993년에 단군릉이 발굴되었고

당시 북한은 고조선의 중심지로서 평양의 도시적 위계를 설정한 이후 역사

74

공명성, 厂단군과 배달민족」, ’’민족문화유산丄 제 13권 제 1호, 2004, 43쪽.

75

강세권,『조선민족의 당당한 주권국가 고구려」,『민족문화유산』제14권 제2호, 2004,

15쪽. 76

앞의 글, 16쪽.

192 평양오디세이

평양 력포구역 룡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동명왕릉 @느연합구

적 정통성을 이어가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데 주력하는 행보를 하던 차였

다. 따라서 자연스레 고구려 시조 왕릉인 동명왕릉은 단군릉의 발굴 이후

평양이 고조선 - 고구려로 이어지는 단일민족 계승의 역사적 중심지가 되었 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 이바지를 하게 되었다.

고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문화의 고대국가 성립 연구에 이어서 고 구려-고려로 이 어지는 연구 축을 중심으로 전 북한학계가 총력을 기울인 성

과가 이루어진 것이다.77

이렇게 평양을 중심으로 한 제반 전승들이 착종 상태를 보이는 원인으로 는 단군조선의 영역이 고구려에 흡수됨으로써 후대의 왕조들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전대의 전승을 이용한 면도 있을 수 있다

77

임효재, 1'대동강문화와 한강문화丄『한국선사고고학보』제9권, 2002, 10쪽.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허선혜

193

는분석도 있다.7879

나아가 조선시대 에 들어서도 ‘조선 ’이라는 국호를 계승하였다는 점, 1429 년에 평양에 단군사당을 세우고 20세기 초까지도 사당에서 국가적, 민간적

차원의 제사를 지냈다는 점7’ 등을 들어 평양을 민족혈통 계승의 구심점으 로 삼으려 하고 있다.

4,

평양은 민족의 성지일까, 성지화된 도시일까?

이 글은 북한의 학술지『민족문화유산』에 기술된 평양에 있는 문화재 기 사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평양에 대한 북한의 도시 인식과 태도를 살펴보

았다. 그 결과 크게 3가지 관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째, 평양을 인류발상지로써 구석기시대가 존재했던 곳으로 보고 있다.

김일성이 1960년에 구석기시대 유물 발굴사업을 지시하고 나서 얼마 지나 지 않은 1966년에 구석기 전기의 유적으로 판단되는 평양 상원군 혹우리 검

은모루 유적 이 발굴되면서 평양은 인류발상지 중의 하나라는 논리가 전개 되기 시작했다. 둘째, 평양을 과거 고조선의 중심지로 성 역화시켰다. 북한은 단군릉을 발 굴하면서 신화로 존재하던 조선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을 실재화시켰다. 그 리고 1988년 대동강문화론을 내세우면서 고조선의 중심지에 관해 재요령

설을 부정하고 평양중심론을 주장했다. 이후 거대 부락터, 제단, 고대 성곽

78

김성환,「고려시대 평양의 단군전승」,『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제10호, 1998, 141쪽.

79

공명성,「단군과 배달민족」,『민족문화유산』제13권 제1호, 2004, 42쪽.

194 평양오디세이

등을 발굴하면서 평양을 고조선의 수도이자 민족의 성지로 성지화시켰다.

또한 룡악산지구 고인돌무덤떼를 활용해 고대에 이어 중세시기에도 평양은

역사문화 중심지 였고 고인돌무덤의 발원지라고 주장했다.

셋째, 평양을 민족의 계승지로 보고 있다. 북한은 평양 력포구역 룡산리 에서 발굴된 릉을 고구려 시조 왕릉인 동명왕릉이라 주장하며 1993년에 웅

장하게 개건하였다. 이를 통해 고조선에서 고구려로 이어지는 단일혈통의 정통성을 주창하고 민족 계승의 중심지가 평양이 되도록 한 것이다. 종합해보면 북한은 평양에 있는 문화재 관련 기사들을 통해 평양이 인류

문명 발상지, 최초 고대국가 고조선의 발원지가 되는 논거를 강조해왔다.

그리고 고조선 이후 계승국들의 중심지도 평양이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유 적들을 선택적으로 발굴하고 북한식 주체적 역사관에 따라 해석하여 성대 하게 개 건함으로써 평양을 성지화시 켜 주체사상과 조선민족 제 일주의를 강

조하려는데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혁명의 발원지이자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우는 평양, 과연 평양은 북한이 주장하는 데로 정말 민족의 성지인가? 아니 면 만들어진 역사 속에 존재하는

성지화된 도시 인가.

평양의 문화

문화재를 통해 본 혁명국가의 성지, 평양-허선혜

195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이 글은 2020년 롯데장학재단의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된 필자의 논문. 박소혜「김정은 시기 북한의 주거공

간과 소비문화 연구一평양 초고층살림집 대상 드라마 분 석」(『북한연구학회보』제25권 제1호 2021)을 수정 .보완 한 것임을 밝힌다.

박소혜

1.

평양의 자본주의적 이미지, 그 실체는?

북한의 수도 평양이 달라졌다. 대중매체에서 보이는 평양은 열병식이 열 리는 넓은 김일성광장이나 김일성 동상, 170111 높이 주체사상탑만이 아니 다.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는 고층으로 올라섰고 평양의 밤은 야간조명으로

빛난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의 두 정상은 카퍼레이드하며 평양의 여명거리를 지났고, 그 배경으로 보이는 독특한 모

양의 고층 건물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7년 준공된 여명거 리는 왕 복 8차선 도로 양쪽으로 70층에 이르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평양시민들이 입주해 산다. 이처럼 높은 아파트는 여명거리에만 세워진 것이 아니다. 은하과학자거리 ,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미래과학자거 리 등으로 이어지는 거리가 평양을 입체적인 도시경관으로 만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평양의 초고층 건물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과 그 속 에서 이뤄지는 소비생활 등을 뉴욕 맨해튼에 비유해 ‘평해튼(평양맨해튼)’이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 박소혜 197

평양 창전거리의 고층아파트 ^5(10(1615^10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1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체제 북한에서 어 떻게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그림이 비치는 것일까?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특별대 우를 받는 것일까? 평양의 초고층아파트는 북한 정부가 어떤 계획으로 조성

한 것일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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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평양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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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평양 초고층아파트의 주거공간 변화와 그에 따른 소비문화를 살 펴본다. 여기서 소비문화는 주거 에 따른 소비문화이다. 주거공간이 사람들 의 의식과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한다. 평양이라는 도시는 국가

의 기획이지만 동시에 건축물과 생활양식에 따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

위하는 곳이다. 평양의 겉모습이 물리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경관은 주거 소비문화를 변화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평양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적

이미지’의 실체를 파악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과연 북한이 추구하 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전개인지, 혹은 자본주의적 변화의 징후인지를 확인

해 본다. 이는 2012년 시작된 김정은 시대의 사회적 징후 읽기의 하나로서 북한 주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확대 해석은 말아야 하지만, 김정은 시대

주거소비문화의 일부를 살펴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평양 초고층아파트의 주거소비문화는 어떻게 살펴볼 수 있을 까? 북한의 주택은 ‘살림집 ’이라고 한다. 우리가 평양을 직접 가보기도 어 렵 지만 설사 평양을 여행한다고 하더라도 평양의 초고층살림집을 찾아 자유

롭게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현재 북한 모습을 완전히 볼 수 없는 게 아니다. 대중매체는 단편적인 모습이더라도 평양을 살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드라마를 들여다볼 것이다. 평

양의 단면을 살짝 살펴보는 것으로써 북한의 오늘을 분석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김정은 시대 초기의 북한 드라마 2편을 선정했다. 평양 초고층 살림집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의 제목은 ‘기다리는 아버지’와 ‘우리 이웃

들’이다. 이 드라마는 모두 2013년에 제작되어 북한의 조선중앙'IV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각각 2부로 구성된 연속극이다. 북한에서는 ‘텔레비죤연속 극’이라고 부른다.

‘기다리는 아버지’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2년 두 차례 직접 찾아간 바 있

평양의 문화

드라마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고찰. 박소혜 199

는 평양 경상유치원을 배경으로 하는데, 평양 창전거리의 고층아파트 주거

공간을 함께 보여준다. ‘우리 이웃들’은 주인공이 ‘승강기 운전공’이다. 우리 말로 엘리베이터 안내원쯤 되는데, 북한의 고층아파트 엘리베이터 에는 승 강기 운전공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이 드라마는 ‘평양시 중구역인

민위원회 ’가 후원한 만큼 중구역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

쳐진다. 김정은 시대 초기 드라마이므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이 보여주려고 했던 평양의 이상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들과의 비교를 위해 평양 위성도시 살림집과 새집을 배 경으로 하는 북한 영화 ‘우리 집 이야기(2016)’와 김정일 시기 자강도 광산마

을의 주거공간 변화를 보여주는 연속극 ‘북방의 노을(2017)’의 장면들도 조

금씩 살펴볼 것이다. 북한에서 드라마는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이면서도 현실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다. 대중매체는 사람들을 교양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문제점은 등장인물들의 반성과 깨우

침 등을 통해 이상적 인 방향으로 결론을 맺는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점을 이상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과정 에서 ‘현실의 문제점 ’은 드러날 수밖에 없 다. 이 러한 특징을 북한식 사실주의, 즉 ‘사회주의 사실주의 ’에서 찾을 수 있

는데, 대외적으로는 북한이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기능도 하게 되는 것 이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의 드라마를 볼 때 그것은 현실이기도 하지만 현

실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을 기 억해야 할 것이다. 북한 당국은 문학예술을 통해 이상적 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므로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북한 정부의 방침, 당의 정책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이는 반드시 실제 주민들의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북한 정부의

생각은 보여주는 것이다. 영상자료는 구체적 이고 역동적 이지만 파편적 이고

200 평양오디세이

방대하다. 해석과 재해석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현실과 이상이 결합해 있

는 북한 드라마를 통해 평양의 주거소비문화를 한번 살펴보자.

2, 평양의

주거공간과 소비문화의 전개

1) 평양 건설과 주거공간의 변화

평양은 북한에서 ‘혁명의 수도’이자 ‘조선인민의 심장’으로 불린다. 사회 주의혁명을 상징하는 도시이면서 북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핵심 공간이 다. 평양이 북한의 의도대로 꾸며질 수 있었던 것은 6 - 25전쟁에서 폐허가

된 뒤 새롭게 다시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북한 당국은 평양에 사회주의 이념을 새겼다. 마르크스 01 1%뜨가 제기한 사회주의 도시건설은 자본주의 도시에서의 문제점을 없 애는 것이었다. 공간은 평등해야 했고, 지역공동체는 자체적인 완결성을 갖 도록 했다. 녹지공간과 인프라를 갖춘 소규모 단위 주거지를 이어붙인 다핵 화 구조를 계획했다. 도시와 농촌의 특성을 모두 담은 이상적 도시경관이었 으며 이는 도농 격차 해소의 방편이기도 했다.2 주택은 국가의 계획에 따라

직장과 가깝도록 ‘ 직주근접 ’의 원칙으로 공급되었다.

평양은 1967년 북한의 유일사상 체계가 확립된 이후에는 주체사상이 반 영된 ‘주체건축’ 양식을 추구했다. 자본주의 체제와 대비되면서도 소련식에

서 벗어나 북한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갔다. ‘인민의 낙원’을 꾸미겠다고

2

전상인,『북한, 도시로 읽다유 서울 : 통일부 통일교육원, 2015, 28쪽.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01

했지만, 평양은 주민들의 기능적인 효율성보다는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표

현하는 무대로 활용되었다.3 평양의 경관은 점차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 도

시의 사상과 ‘지도자’를 상징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이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김정일은 1980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승인을 받은 뒤 수령의 위대성

을 나타내는 도시의 경관을 만드는 데 더욱 집중했다. 김정일은 “수령의 영 상은 언제나 건축공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절대적 크기와

방대한 수의 양적 규모”에 의해 웅장성과 장엄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설명 이었다.4 북한의 대기념비적 건축물에 속하는 인민대학습당(1982년)과 만수 대의사당(1984년) 등이 이 시기 완공되었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개최 를 앞두고는 평양 창광거 리 에 30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경흥거 리 에는 40층

과 41층 아파트가 건립되었다. 이는 세계인들 앞에서 국제도시의 면모를 보 여주려는 것이었다. 1990년대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경제난으로 인해 배급제 가 끊기고 자체적인 시장화가 진전된 시기다. 하지만 평양 건설은 오히려

선택적으로 집중되었다. 북한은 1998년 ‘평양시관리법 ’을 제정해 평양시 관

리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갈 것을 명시했다. ‘나라의 얼굴’인 평양시 관리사 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전체 인민의 의무였다. 고층살림집이 들어 선 선택된 거리는 ‘도시의 경관’이 되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특권적 혜

택을 얻었다. 김정은 시기 들어서는 평양에 기념비적 건축물을 건립하는 대신 ‘인민’을

내세운 건축물이 많아진 것이 특징 이다. 초고층아파트가 늘어선 거리를 새

3

김성수,「북한 문학에 나타난 서울의 도시 이미지」,『북한연구학회보』제16권 제2호,

2012, 190쪽. 4

김정일,『건축예술론아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38~40쪽.

202 평양오디세이

평양 주택가 공원의 시민들 @느와11此61310(:10

롭게 조성해 인민을 배정했다. 빙상장, 로라스케트장(롤러스케이트장)과 같은 체육관광시설이 생겼고 병원이 올라섰다. 김정일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하던 평양시 10만호 건설사업을 이어받아 김정은 시기가 시작된 2012 년 6월 창전거리에 45층 초고층아파트가 완공되었다. 2013년에는 은하과학

자거리 와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이 준공되었으며, 2014년에는 위성

과학자주택지구, 2015년에는 평양 중구역에 미래과학자거리, 2017년 려명

거 리 초고층아파트 완공으로 이 어 졌다. 평양은 김정은 시대 목표인 강성국가건설의 첫 번째 대상이었다. ‘사회주 의문명국’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평양에 건설 역량이 집중되었다. 공간의 문명화는 우선 시각적으로 영향을 준다. 주민들이 사는 살림집은 ‘인민생활

향상’의 본보기가 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세계적 수준의 ‘사회주의 선경’을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베문화 고찰 - 박소혜 203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공간 안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의식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며 일상생활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주거소비문화 분 석의 근거이기도 하다.

2) 시장화와 소비문화의 변화

북한에서는 아직도 식량이나 물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걸까? 북한에 도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다. 주민들 사이에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인

‘장마당’은 경제난이 닥친 1990년대 본격화되었다. 이 때 배급제가 무너지고

장마당이 생기면서 주민들의 생활은 달라졌다. 나의 물건을 내다 팔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사면서 정보를 교환하게 되었고, 새로운 정보는 일상을 변화

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국가 배급제로 운영되던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화의 영향력은 점점 커

졌다. 이 에 북한은 시장을 통제하고 활용함으로써 대응해 나갔다. 1998년 에는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하고 개인 소유를 부분적으로 확대했다. 2002년 에는 7 ’ 1 경제관리개선조치 에 따라 부분적으로 시장을 제도화하면서 사유

화는 더욱 진행되었다. 농민시장은 확대되었고 2003년 종합시장이 상설화

되면서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시장이 탄생했다.

북한의 경제는 뚜렷한 이중구조로 바뀌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요소 를 담은 비공식경제가 북한의 공식경제와 함께 움직 였다. 시장의 자본주의 적 성격은 주거공간의 변화도 초래했다. 북한에서 주거공간은 개인 공간이

지만 공동체로서의 공적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시장화 이후 개인의 소비와

204 평양오디세이

욕망을 과시하는 공간으로도 바뀐 것이다.5 북한 지배층은 권력 유지를 위해 고위층에게 평양의 도시 공간을 재배치

하면서 계층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핵심 계층으로 분류되는 주민들은 외화 상점 사용을 허락받아 새로운 소비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6 이들의 바 뀐 옷차림과 외제품 사용은 도시의 외양과 색채를 변화시키는 요소였다. 시 장으로 사람들의 소비 경험은 불평등해졌지만 이러한 풍경은 소비 욕구를 더욱 자극하며 가치관을 변화시켰고, 부에 대한 욕망은 고위층에서 서민층 으로 확산하였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농촌 지붕개량 사업으로 다채로운 원색 지붕들이

농촌의 풍경을 이루자 이 러한 시각적 변화가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우며 주 거공간의 인테리어 꾸미기로 이어진 바 있다.7 이때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전축과 같이 시청각적 감각과 관련된 제품들을 앞다투어 구매했는데, 주거

공간은 새로운 상품들의 진열장 역할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는 도농 간 격차나 계층 불평등을 줄이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북한 경제의 이중구조는 사회주의의 계획경제 시스템보다는 시장경제 시스템을 강화해 나가며 평양을 초기자본주의 도시공간의 모습으로 변화시

키는 요인도 되었다.8 시장화가 가져온 사회문화적 변화는 필요에 의한 소

5

박희진,「북한의 시장화와도시공간의 변화 연구一공적-사적공간과의 관계』,『북한학연 구』제 14권 저|2호 2018, 67-100

6

이시효,「시장도입 초기 평양 공간의 재배치一1984~2003년을 중심으로」,『북한학연구』

제12권 제2호, 2016, 65~91쪽.

7

김성조, '’1970년대 농촌 주거공간의 변화와 소비자 농민 一 인테 리 어 공간과 텔 레 비 전 소

비를 중심으로」,『한국사연구』제184집, 2019, 307~343쪽.

8

곽인옥 우 문형남,「북한 경제구조변화에 따른 평양지역 도시공간의 재구조화」,『생산성

논집』제32권 제2호, 2018, 183~216쪽.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05

비보다는 소유를 통한 개인의 상징적 소비문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자본 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소비과정에 개인의 기호가 개입되면서 주민

들의 가치관이 사상보다는 경제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거공간과 소비문화의 관찰이 필요하다. 또한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과 변

화는 북한의 지향을 가늠하게 해줄 것이다.

3,

김정은 시기 평양의 주거공간

1) 주거공간에 배치된 입체적 도시경관

평양의 거리는 김정은 시기 들어 두드러지게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해마

다 새로운 거리에 조성된 초고층살림집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재구성했

다. 그런데 건물들은 모두 높게만 지은 것은 아니다. 높은 건물 주변에 높낮

이를 두어 조화로운 입체감을 살리고자 한 것이 특징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1월 70층짜리 초고층살림집이 건설되고 있는 여명거리 건설장을 현 지지도 한 자리에서 평양의 경관을 이렇게 표현했다.

금수산태양궁전 방향에는 정중성의 원칙 에서 건축물을 높지 않으면서도

보기 좋고 아담하게 건설하였으며 룡흥네거리의 영생탑 방향에는 상징성의

원칙 에서 초고층건물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웅장화려한 건축군이*

9

김신,「북한체제내부 경제주체의 등장과 소비문화의 이행과정분석一생존에서 기호로』,

『통일문제연구』제31권 2호, 2019, 359~402쪽.

206 평양오디세이

형성되었다背

이는 김정일이 수령을 중심으로 대기념비적 건축물을 웅장하게 만들어

인민의 충성심을 강조한 것과는 결이 달라진 것이다. 김정일은 평양 문수지 구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만수대의 정면 대동강건너편의 문수지구에는 만수대 기념비의 중심축과

일치시켜 넓은 거 리를 뽑고 그 량옆에 동평양대극장과 청년중앙회관, 고층 살림집을 건설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만수대주변공간에서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흥성거리게 되였으며, 늘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인민들과 나라일을 의논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령도풍모에 맞게 중심부를 꾸릴 수 있게

되였다.11

즉 김정은 시기에는 수령보다는 인민들이 주거하는 살림집을 높게 두어

강조하고 주변을 조화롭게 조성하는 것으로 도시경관을 형 성하고자 했다. ‘ 인민’을 중심에 놓는 정책은 김정은 시대 이념 인 ‘ 인민대중제 일주의 ’로 표 현되는데, 이는 국가정책의 근거이자 정당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양의 초 고층살림집은‘인민대중제일’을 보여주는 물리적 실체이자 가시적인 성과

물에 속한다. 따라서 도시경관의 입체성은 ‘인민대중제일주의 ’를 상징하는 배경이 된다. ‘수령과 주체사상’이 강조되는 김정일 시대의 북한식 사회주 의 도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초고층살림집에 거주하는 인민의 눈높이를

‘세계적 수준’에 두어 평양을 ‘세계적인 도시’로 과시하겠다는 의지이다.10 11

10

「로동신문으 2017년 1월 26일자.

11

김정일, “’건축예술론』,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47쪽.

평양의 문화

드라마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 박소혜 207

평양 경상유치원 정면 거울유리창에 비친 고층아파트《X연합으

북한 드라마에서는 초고층살림집의 구체적인 일상 속에 입체적인 도시

경관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시경관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구성

물로서 초고층살림집이 존재할 뿐 아니라 주거공간 안에 도시의 입체성이 배치된다. 이는 주거공간을 통해 보여주려는 국가의 지향과 지배의 경관이 된다.

평양 창전거리 고층살림집의 일상을 보여주는 드라마 ‘기다리는 아버지’ 에서 주인공 집 거실에 놓인 IV에서는 고층건물 부감 화면이 상영된다. 이 러한 장면은 대사나 내용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고층건물 외부 경관이 마치

이 주거공간에 속한 것처 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고층건물 풍경은 평양 경상유치원 내부의 피아노방과 놀이방에서도 등

208 평양오디세이

장하는데, 통유리 창밖으로 창전거 리의 고층살림집을 비추는 것이다. 이는 주거공간 내부로 입체적 도시경관을 들여왔음을 말해준다. 고층살림집이

도시경관을 형성할 뿐 아니라 도시경관이 주거공간에 반영되며 이곳이 평 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경상유치 원 건물 외관의 거울유리창은 맞은편 고층

건물이 거울처 럼 비 친다는 것이 특징 이다. 거울유리창은 한 화면 안에서 유

치원의 반짝이는 건물 외관과 맞은편 고층건물을 함께 나타내는 효과적 인

소재다. 고층건물들은 서로를 비추며 평양의 경관을 입체적이고 빛이 나도 록만들어준다.

드라마에서 는 거리를 지나는 주민들의 시선도 고층건물 높이의 하늘을 향하고 있다. 경상유치원 어린이들이 국제피아노경연대회에서 수상하는 장 면은 평양 중심가의 대형 전광판으로 중계되고, 시민들은 거리에 멈춰 선

채 이를 지 켜본다. 화면은 전광판을 향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담으며 양옆

고층건물과 함께 수직으로 뻗어 가는 도시의 입체적 경관을 보여준다. 주거공간에 도시의 입체성을 담는 장치로 드라마 ‘우리 이웃들’은 주인공

직업을 승강기 운전공으로 설정했다. 승강기는 고층아파트의 정 체성을 도 드라지게 만드는 소재다. 평양 중구역 고층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 마의 주인공 가족과 이웃은 10층 2호와 3호에 산다. 또 다른 등장인물들이

사는 집은 21층이다. 드라마의 사건들은 승강기가 오르내리는 가운데 승강 기 운전공을 매개로 전개된다. 고층살림집 승강기는 높이 뻗어나가는 수직

적 발전을 상징하고 있다. 김정은 시기 도시경관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또 다른 장치는 조명이 다. 김정 일도 ‘고난의 행군’을 마무리하며 ‘불장식 ’ 설치를 지시하여 새로운

시대를 나타내려 했는데, 김정은 시기에는 ‘직관불장식지도국’을 신설하고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09

‘선경불장식연구소’를만들어 여명거리 건설에 활용한다.12 빛은 시각적 경

관의 강조이자 ‘보여주기 ’ 수단이다. 평양의 야경을 꾸미는 것은 평양시관

리법에서 규정한 의무이다. 2014년 수정된 평양관리법 제27조는“기념비적

건축물과 거리의 곳곳에는 불장식을 하여 수도의 밤거리를 아름답게 장식 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평양의 전시적 효과를 드러내도록 했다.

평양 중심가가 배경인 ‘기다리는 아버지’와 ‘우리 이웃들’에는 밝게 빛나 는 야경이 등장한다. 불장식으로 꾸며진 화려한 평양의 밤거리를 보여주는 가 하면, 야간 개장한 평양의 유희장인 ‘개선청년공원’에 아이들을 데려가

화려한 놀이기구를 타고 신나게 노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때 고층건물은 빛을 담는 그릇이 된다. 불야성을 이루는 현대 적 도시 풍경은 전기에너지가 부족한 북한의 경제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경관이 다. 북한의 전력난과 경제적 낙후성은 미국 나사?船% 등이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찍은 위성사진에서 북한지역이 까맣게 보이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다. 북한이 빛을 중시하고 도시에 총천연색을 입히는

것은 이 같은 평판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야경은 평양의 입체적 경관 을 구성하는 상징 적 요소이다.

도시는 밤에 빛나지만, 낮에도 마찬가지다. ‘기다리는 아버지 ’의 경상유 치원은 낮에 빛나는 평양의 경관을 보여준다. 유치원의 중심 공간은 커다란

거울을 두어 실내가 넓 어 보이게 하고, 천장의 조명은 하얀색과 주황색 등

여러 개를 배치해 환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낮에도 밤에도 밝게 빛나는 도시의 경관은 주거공간에 입체감을 부여하며 ‘인민의 행복과 웃음’

12

홍민,『김정은 정권의 통치 테크놀로지와 문화정치一김정은 정권 5년 통치전략과 정책 실태 心 서울 : 통일연구원, 2017, 90쪽.

210 평양오디세이

을 상징한다.

2) 개별공간의 분리와 사적공간의 탄생

평양의 주거공간에서 개인의 사생활은 보장될 수 있을까? 북한 살림집은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집단주의에 기반을 둔 주거공동체이다. 따라서 국가 와 사회의 기초 단위이지만 사적공간의 성격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 게 열려 있다.

북방지역 자강도의 농촌문화주택이 배경인 드라마 ‘북방의 노을’에 등장 하는 살림집이나 영화 ‘우리 집 이야기’의 배경인 평양 위성도시 강선의 살 림집을 보면 낮은 담장과 낮은 울타리, 잠금장치 없는 대문이 특징 이다. 이

곳의 살림집은 자연과 어우러져 수평적 경관을 보여준다. 그런데 김정은 시 대 평양의 고층아파트도 자본주의 도시 에서 보이는 담장은 없다. 건축물 사

이 경계물을 두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주거공간이 공적 기획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초고층살림집은 수직으로 확장되어 외부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구조다. 거주자 역시 국가로부터 배정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특권을

가진 인민이다. 이러한 비공개성과 폐쇄성은 고층살림집의 주거공간을 ‘개 별화된 사적공간’으로 만들었다. 특히 주거공간을 개별공간들로 분리하면 서, 열린 공간을 상징하는 기존의 ‘낮은 울타리 ’ 풍경을 ‘굳게 닫힌 방문’이

라는 폐쇄된 풍경으로 이동시켰다. 농촌 살림집은 방문이 없는 대신 문턱 정도로 공간을 구분한다. 드라마

‘북방의 노을’에서 아내와 남편이 주로 머무르는 공간은 다르지만, 주거공 간은 전체가 한눈에 훤히 보이는 개방된 구조다. 책장과 책상, 옷장과 IV

평양의 문화

드라마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11

2015년 10월 완공된 평양 미래과학자거리 살림집 주거공간 @七연합丄

같은 가구들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전체 살림집을 통째로 부수고 다시 짓는데, 새 살림집에는 붙박이장이 설치된다. 붙박이장은 물건을 쓰임새별로 구분하여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다. 주거공간이 개인별로 나뉘면서 물건도 정해진 공

간에서 용도별로 구분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김정일이 2008년 1월 현지지 도한 광산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김정일 시대가 지향한 새 살림집 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정은 시기 평양 인근 강선시 화석동의 농촌주택을 보여주는 영화 ‘우

리 집 이야기’에서도 주거공간의 쓰임새가 섞 여 있다. 하지만 극 후반부에 주인공이 모범청년훈장을 받으면서 나라에서 내려준 살림집으로 이사하는 데, 새 주거공간은 침대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부엌과 아이들 방이 따 로 갖춰져 있다. 용도별 공간의 분할은 북한이 만들어가는 주거공간의 지향 을 나타낸다. “인민의 요구에 맞게 현대식”으로 짓는 살림집은 개인의 공간 을 보장하는 설계가 포함되는 것이다.

212 평양오디세이

개인화된 개별공간은 ‘방문’으로 구별된다. 현대화, 표준화된 아파트에서

는 침실과 어린이방, 베란다와 거실, 부엌 등 각각의 공간에 방문이 설치되 고 용도별 가구와 집기들이 놓인다. 여기서 거실이 생겼다는 것은 모두가

모이는 공간이 생겼다는 의미 이다. 즉 용도별로 나뉜 개별공간이 있으므로 공동공간인 거실도 형성되는 것이다. 주거공간의 물리적 구분은 개인의 공간이라는 일상을 만들어준다. 특히

부엌과 공부방의 ‘독립’이 가능하다. 기존 북한의 살림집에서는 대개 남편 이나 아버지에 해당하는 ‘세대주’가 중심 공간을 점유했는데, 이는 구성원 서열에 따라 중심과 주변 공간이 나뉘는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

을 보여준다.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부엌은 ‘북방의 노을’에서 보듯 방보다 바닥이 낮으며, 학생의 책상은 작은 상을 옮겨가며 사용하거나 방과 방의

연결부분에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양의 초고층살림집 주거공간은 여

성과 아이들에게도 독립공간을 보장한다. ‘기다리는 아버지 ’의 유경네 부엌 은 다른 방과 평등하게 구획되었고, ‘우리 이웃들’의 주인공 아들 경일이도

자기만의 방이 있다. 일상생활이 개인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은 계획된 도시를 통해 인민의 편

의를 구상한 북한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 물리적이고 획일화된 아파트는 겉으로 평등해 보이지만, 초고층살림집 주거공간이 특정 집단에 배치되면서 개인은 독립화된 개별공간에서 개인주의를 체득하는 기회를 얻

는다. 개별화된 공간의 분리는 북한의 주거소비문화를 변화시키는 물리적

환경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평양의 문화

드라마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13

3) 입식 주거공간에 혼재된 좌식문화

김정은 시기 평양 초고층살림집의 또 다른 특징은 ‘입식 ’양식을 갖췄다 는 것이다. 전통적 인 생활문화 양식은 온돌방에 앉아서 생활하는 좌식문

화다. 북한 정권 초기 에는 좌식문화를 변화시킬 요인이 거의 없었다. 김일

성도 침대가 아닌 온돌방이 “우리 인민들의 생활풍습”에 맞는다고 강조했 고,13 김정일도 “빼치카(벽난로) 난방형식은 서서 생활하는 서양사람들의 풍

습”이며 “살림집의 온돌난방형식은 앉아서 생활하는 우리 인민의 풍습”으 로 발전했다면서 건축을 우리 식으로 창조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14 하

지만 김정은 시기 평양의 초고층살림집은 입식 형태의 주거공간에서 좌식 문화가 혼재된 형태를 보여준다.

주로 서서 생활하도록 구성된 입식 생활양식은 주거공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입식 형태의 주거공간은 좌식문화와는 다른 가구와 집기가 필

요하다. 이 에 새로운 소비를 불러오게 된다. 좌식문화에서는 ‘상’이 중심자

리 에 놓이며, 바닥에 앉은 채 손이 닿는 곳에 일상적인 물건을 두게 된다. 하지만 입식 형태 주거공간에서는 각각의 공간마다 필요한 가구나 집기가 놓이는데, 두 발로 이동하면서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입식 형태의 주거공간도 개별공간으로의 분리가 그랬듯 사물을 용도별 로 분리하는 개별화 기능을 한다. 추가적인 소비를 일으키면서 개인주의로 의 변화를 가져오는 주거 양식이다. 주거공간이 입식 형태로 바뀌면서 새로

13

김일성,『당의 건설정책을 관철하는데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一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각상무회의에서 한 결론(1957년 8월 26일자)」, 厂김일성 저작집』11권, 평 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81,282쪽.

14

김정일,1'건축예술론丄, 평양 :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54쪽.

214 평양오디세이

2012년 평양 창전거리 살림집의 노동자 가정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 부부

연합으

운 경험이 이뤄지고 시선의 높이가 달라지면서 주거소비문화 역시 주거공 간과의 조율을 거쳐 형성된다.

입식은 북한에서 ‘새 시대’의 상징이다. 드라마 ‘북방의 노을’에서 자강도 광산마을이 살림집을 통째로 새로 지으며 내세운 설명은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입식으로 건설”한다는 것이다. 좌식생활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현대적

인 것은 ‘ 입식 ’이라고 말하고 있다.

드라마‘우리 이웃들’의 고층살림집 부엌에는 입식 형태의 가구인 의자 있는 식탁이 놓여 있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대부분의 식사는 거실에 낮은

상을 편 뒤 앉아서 한다. 가구 구성원들이 의자 있는 식탁에 앉는 장면은 분

석대상 드라마에서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소파 있는 거실에 상을 따로 차려 놓고 바닥에 앉아 전통적인 좌식문화에 익숙한 생활양식들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 박소혜 215

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2013년 영상작품을 대상으로 해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식사하는 장면만이 나왔지만, 최근 북한이 제작한 영상물에는 입식 의자와 식탁에서 식사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정은 시기 평양의 초고층살림집 주거공간은 현대적인 입식 형태를 갖

췄지만, 구성원들은 아직 좌식생활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입식 형 태의 주거공간은 통치 차원에서는 현대적이면서 인민의 편의성을 높인 ‘번영’의 양태로 설명할 수 있지만, 공간과 소비가 구성하는 개별적 자아의 의식은 개 별화된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주의의 성격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4, 평양 초고층살림집 주거소비문화의 특징 1) 물질적 소비 욕망

북한이 김정은 시기 평양에 초고층살림집이라는 주거공간을 조성한 것 은 ‘인민생활향상’을 내세우면서 ‘평양의 경관’을 형성하려는 의도였는데,

인민들에게는 잠재돼 있던 소비 욕망이 발현되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주거공간의 개별공간으로의 분리는 소비의 개인화와 가족 중심화 를 가져왔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징후로는 ‘물대접 ’을 대신한 ‘물컵 ’ 사용을 들 수 있다. 기존 주거공간에서 부엌은 취사와 난방을 맡아 각 공간으로 전

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주로 여성이 가사노동을 하는 장소로서 다른 공간과

평등하지 않았다. 부엌의 구조조차 다른 공간과 출입문으로 가려지며 외 벽

216 평양오디세이

‘헬로 키티’ 아동복을 입은 북한의 세쌍둥이 @느연합구

에 면하도록 배치되었다스으5

드라마 ‘북방의 노을’에서는 문지방을 사이 에 두고 부엌 에서 물대접을 건 네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밥이나 국을 담는 대접 에 물을 따라 건네는 것은

부엌과 거실의 거리가 가깝고 물건의 용도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우리 집 이야기 ’에서는 세면대 바닥에서 쌀도 씻고 음식도 손질하고

쪼그려 앉아 국수를 말기도 하는데, 이사 간 새 집 에는 부엌 이 여 러 방 중 하

나가 되는 변화를 보인다. 이 때 물대 접은 투명한 물컵으로 바뀐다.

드라마 ‘우리 이웃들’의 고층살림집 에서도 보듯 주방용품과 구분되어 거 실 공간에 걸맞은 ‘물컵 ’이라는 새로운 소비 아이템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사용가치를 중시하는사회주의적 속성이 아니라 상품이 용도별로 다양화된 자본주의적 속성을 나타낸다. 주거공간의 변화가 물질적 소비를 일으키는

15

권영걸,「남북한 주거공간의 공간조직과 이용패턴에 관한 비교연구」,『서울대통일연구 소 통일학연구보고서』, 2008, 47쪽.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17

것이다. ‘우리 이웃들’에서는 아버지가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끼고 부엌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엌이 거실이나 방과 같은 바닥 높이로 올라오면서 여성만

이 아니라 남성도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의 평등화를 가져왔다. 높이의 평등 이 곧 기존 권력의 평등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공간이 분리되면

서 부엌과 거실은 가족 모두의 공동공간이라는 성격을 갖게 되고, 구성원의 편의와 가족의 취향이 반영된 주거소비문화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개별공간의 분리는 어린이가 개별 존재로 두드러지는 효과도 가져왔다.

드라마‘기다리는 아버지’의 주인공 장혁 어린이 침대 위 장식은 일본산 브

랜드의 캐릭터 ‘헬로키티’이다. 유경이네 집에도 피아노 위에 헬로키티 인

형이 놓여 있다. 이는 어린이의 방이 기존 주거공간과는 달리 개별적으로 분리되었기에 가능해진 소비다. 공부방은커녕 잠자리조차 온 가족의 공간이 섞여 사적공간이 없었던 살

림집에서는 어린이 취향이 반영된 소품을 갖추기 어려웠다. 어린이 취향의

소비 아이템들은 주거공간을 개별공간으로 분리할 수 있는 경제력에서 가 능하다는 점 에서 자본이 힘을 갖는 물질적 소비를 의미한다. 고층아파트 주거공간은 이사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드라마 ‘북방의 노을’ 에서는 이사할 때 광산마을 모든 주민이 파란 용달차에 짐을 싣고 이동한

다. 보따리와 밥상 등 이삿짐은 하나하나 손으로 날라야 한다. 온 마을과 온

가족이 동원되는 공동의 행사다. 이에 비해 드라마‘기다리는 아버지’에서는 평양에 있는 장혁네 가족이

아버지가 있는 삼지연의 발전소로 이사를 할 때, 가족 구성원이 모두 각각 의 캐리어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공항으로 향하는 모습이 나온다. 모든

물건은 개별화된 가족 구성원 개인의 짐이 된다. 이 역시 개별화된 주거공

218 평양오디세이

간이 만든 개별적 주거소비문화의 '풍경 이다.

개별공간의 분리는 자기 가족을 우선으로 챙기는 소비문화도 만들었다. 북한은 철저히 집단주의 원칙을 강조하며 국가나 집단의 이 익을 개 인의 이

익보다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이와 달라졌다. ‘우리 이웃들’에서 주인공 길수는 아들 경일이 아파트 10층까지 승강기를

타는 대신 계단으로 오르내리도록 한다. 아들이 불만을 내비치자 아버지는

튼튼한 몸을 위한 것이라면서 사람들한테 “살까기운동을 한다고 말하라”라 고 얘기한다. 아들 경일은 또래보다 몸집이 크고 통통한데 ‘살을 빼는 것’, 즉 다이어트가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핑계’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다. 건강을 위해 외모를 가꾸고 살을 빼는 것이 주거소비문화가 된다.

의사네 집에서는 딸이 어머니에게 “어머니, 아버지 보약!”이라고 말을 건 네고, 아내가 잊고 있었다는 듯이 남편에게 작은 유리통에 든 약을 숟가락 에 퍼서 먹여준다. 이 아파트에 사는 여교사 딸과 부위원장 아버지네 집에

서도 딸이 아버지에게 가루약을 챙겨 준다. 물론 가족관계에서 ‘세대주’ 중 심의 가부장적 구조는 지배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전 시기 작품들에서 는 환자에게나 약을 챙겼다면 평양의 고층아파트에서는 가족 단위로 건강 을 위해 살을 빼고 몸을 보신하며 치료 목적 외의 약을 챙기는 것이다. 건강 을 강조하는 것은 ‘국가 건설’에 참여하는 ‘인민’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개 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주거공간의 개별공간화에 따라 내부 장식도 달라졌다. 이전 시기 살림집

벽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북방의 노을’ 살림 집에는 ‘장군님 식솔’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 흐]‘지만 ‘우리 이웃들’이나

‘기다리는 아버지’에서는 이 러한 초상화나 현판이 없다. 대신 벽에 걸린 액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박소혜 219

자에는 꽃그림, 풍경화 등이 담겨 밝은 이미지를 연출한다. 액자 속에는 수 령의 얼굴이 아니라 가족사진이 들어 있다. 이는 가족 단위의 행복을 추구 하는 개별화된 가족 중심의 취향을 보여준다. 세계지도를 벽걸이로 장식해

놓은 인테 리어에서는 김정은 시대의 ‘세계’를 향한 지향이 살림집에서 구현 되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입식 형태의 주거공간은 가족 중심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빵을 주식으로

대체할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비교를 위해 식생활에서 빵이 차지하는 의

미를 한국 사례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는 도시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 제과제빵업이 생겨났다. 이때 밀가루로 만든 라면이 등장하고 밀

가루 위주의 분식이 국가 차원에서 장려되었다. 당시 쌀값 상승으로 인한

농업경제 위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근대화와 산업화, 서구화 의 변화가 개인화와 가족 중심의 주거소비문화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나

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16 북한에서 “쌀은 공산주의다”라고 할 정도로 쌀은 근본을 의미한다. 하지 만 분석대상 영상에서는 쌀보다 빵이 강조된다. 드라마 ‘기다리는 아버지’ 의 경상유치원 식사 시간에는 밥과 빵이 함께 올라온다. ‘우리 이웃들’에서

승강기 운전공인 어머니는 아들의 아침을 챙기며 ‘빵 봉지’를 건네준다. ‘기 다리는 아버지’의 장혁네 집에서는 어머니가 아침 식사로 빵을 준비한다.

이 집은 시아버지가 같이 지낸다. ‘우리 이웃들’에서 잔칫상 차림에는 평양 맥주, 랭천레몬사이다와 함께 빵이 수북이 쌓인 접시가 있다. 이는 쌀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식문화 대신 개인이 중시되고 가족끼리의 편리

16

정영희,『1960년대 대중지와 근대 도시적 삶의 구성- 여성지 여원을 중심으로」,『언론

과학연구』제9권 3호, 2009, 488쪽.

220 평양오디세이

함이 중시되는 현대사회 에서 간편하게 빵으로 대신하는 주거소비문화를 보 여준다.

이상의 사례에서 초고층살림집이 사적 영역을 만들어주면서 물질적이면

서 개인적인 소비 욕망이 주거소비문화에 반영되고 있는 장면들을 보았다.

북한은 주거공간에 사회주의의 지향을 새기며 이념을 선전했지만, 지역주 의와 복고주의가 담겨 있는 절충주의적 건축양식에 따라 다양한 경관을 창

출하면서 소비 지향성이라는 특성 또한 나타나고 있다.17 하지만 드라마 ‘우리 이웃들’에서는 이웃의 살림집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간부들과 이들에게 당연한 듯 상을 내놓으며 접대하는 가정주부 모습도 등

장한다. 사적공간이면서도 주거는 여전히 사회적 공동체 공간의 기능을 담 당하고 있다. 이는 김정일 시대를 보여주는 드라마 ‘북방의 노을’에서 이웃

사람들이 남의 집 마당까지 들어와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는 공동체 적이면서 공적 성격의 주거문화가 여전히 혼재된 경계적 성격을 보여준다.

2) 사회주의 우월성 과시와 상징소비

평양 고층아파트 건설은 북한이 압도적인 규모와 입체감으로 사회주의 우월성을 과시해 세계화와 상업화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지 역과

계층 간 격차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원은 평양에 집중되었고, 그중 에서도 고층아파트 주거공간에 몰렸다. 평양에서 계층 불평등은 시장화 이

후 상업적 공간이 들어오면서 이미 심화하고 있었다. 생산이 아닌 공간의

17

임형백,「북한 공간구조와 이념적 표현의 도시 계획」,『통일문제연구』제31권 1호, 2019,

191~192쪽.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21

재배치로 계층 간 격차와 갈등이 진행된 것이다.1819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

파트가 사적공간을 보장하지만, 자본이 비슷한 계층이 모여 집단을 이루며 계급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1’과 같은 결과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교육자나 과학자처럼 같은 직장 사람들을 같은 아파

트에 배치함으로써 특정 신분의 계급적 공동체를 형성했다. 북한은 ‘인민

대중’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주거공간에 재배치하고 전체 인민의 행복이라

는 목표로 나아가고자 했지만, 특정 계층을 선택하는 순간 ‘차별화’ 혹은 ‘구 별 짓기’가 발생한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본’에 따라 주

거공간을 이동하면서 주거공간별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면, 북한에서는 ‘국가’의 시혜가 미치는 계급에 따라 주거공간이라는 상징이 주어지는 결과

를 낳았다.

북한은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이나 사업 등을 만들어 이를 확산시키는

것으로써 당정책을 시행한다. 이러한‘본보기’는 다른 지역과 계층이 따르 고 배워야 할 기준이므로 현재의 불균형 이나 불평등은 정당화되며, ‘본보

기’ 건설로의 선택과 집중을 독려한다. 건설의 속도와 질을 강조하는 이유 다. 북한은 선택적 본보기의 확산을 통해 ‘인민대중제일주의 ’를 실현하고자

했지만, 선택된 계층의 공동체가 그들만의 주거소비문화를 만들어내고 있 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닮아있다. 국가의 상징적 공간을 선물로 받아 그들만의 주거소비문화를 이루며 특

혜를 누리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모두 자본에 대한 인식은 더욱 중시되

18

이시효,「시장도입 초기 평양 공간의 재배치一 1984~2003년을 중심으로」,『북한학연구』

19

강정석,「자본주의적 공간 형성에 대한 단상一독점과 일상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

제12권 제2호, 2016, 66쪽.

『문화과학』제73호, 2013, 76쪽.

222 평양오디세이

었다. 국가가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점은 국가의 통제권을 강화했지만, ‘자본’ 의 힘은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적용된 셈이다. 평양 고층아파트에서 발생하

는 주거소비문화는 내용 면에서 물질적이며 개인적인 소비이지만, 북한이

이를 ‘사회주의 우월성 ’으로 선전한다는 점에서 상징적 소비가 발생한다. 한편 살림집의 배정 순위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 국가의 시혜이면서 공개

적인 계층 구분과도 같은데, 살림집법(2014년 수정보충)에서는 살림집을 우선

으로 배정할 대상을 규정해 놓았다. 우선 “혁명투사, 혁명렬사가족, 애국렬 사가족, 전사자가족, 피살자가족, 영웅, 전쟁로병, 영예군인, 제대군관, 교

원, 과학자, 기술자, 공로자, 로력혁신자” 등에게 배정하도록 했다. 그다음 으로는 “탄부, 광부, 용해공, 먼바다어로공, 철도기관사 같은 힘든 부문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문화적이고 충분한 휴식조건이 보장된 살림집을 배정하

여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아파트에 같은 직업과 같은 생활 능력을 갖춘 사람 들만이 모여 사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우리 이웃들’의 고층살림집에 배정

된 주민들은 의사, 지배 인, 해외주재원 등의 직업을 가졌다. 그런데 이 아파

트에 ‘운전사’ 직업을 가진 주인공 남편이 이사 올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의 누나가 해외주재원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층에 사는 이 아파트의 의사 부부는 자녀들이 “롤러스케 이트 사

달라”고 하니 바로 다음 날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깔로 골라 사주었을 뿐 아 니라 가족이 함께 안전모를 쓰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간다. 하지만 운전사 아들 경 일이네는 사정 이 다르다. 경 일은 동생이 롤러스케 이트를 갖고 싶다 고 하자 아버지의 돈을 훔쳐 동생에게 스케이트를 사준다. 스케이트 구매력 은 그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에 따른 것으로서 이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것 이 된다.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 박소혜 223

평양 만수교 청량음료점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연합으

상징적 주거소비문화의 장면들은 생활필수품 외의 물건 소비 에서 드러 난다. ‘우리 이웃들’에서 의사인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하는 부인은 승강기

앞에서 남편에게 향수를 뿌려주며 “소독약 냄새보다는 이 향수 냄새가 더 좋지 뭘 그래요?”라고 말한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장혁 어머니도 한 손에는 명품 스타일의 핸드백을 들고 한 손에는 손전화(휴대전화)를 들었다. 여성의 옷차림 변화는 시장화 이 후 비공식경제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이 소비를 주도하게 된 경향과도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20 시장화는 교통과 통신 발달과 함께 이뤄지는 데, 사회 전반적으로 자본을 가진 계층을 선망하게 되면서 소비 욕망도 확

20

곽인옥 우 문형남,「북한 경제구조변화에 따른 평양지역 도시공간의 재구조화」, ''생산성 논집 丄 제32권 제2호, 2018, 206쪽.

224 평양 오디세이

대되는 면이 있다. 북한에서 손전화는 사회적 관계망의 확장과 이동성을 보

여준다. 고층살림집 주민들은 시장화의 산물을 저마다 하나씩 들고 경제력

과 지위를 상징하며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있는 것처 럼 보인다. 평양의 야간 소비도 상징적 소비문화를 보여준다. ‘우리 이웃들’에서 등 장인물들이 맥주를 마시는 만수교 청량음료점은 김정은이 ‘본보기’ 청량음 료점으로 언급한 곳이다. 야간 소비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특권이 있

으니 누린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평양의 특권은 도농 불균형 사례가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의 본보기’로 정당화된다. 하향평준화가 일어나는 평등한 사회주의적 계급화보다는 인

민에 대한 선택적 불평등을 통해 일부 계층의 소비수준을 상향시켜 보여주 는 것으로써 국가의 경제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지배의 전 략으로 볼 수 있다. 즉 평양 고층살림집의 주거소비문화는 개별화된 물질적

소비로 보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인민생활향상’,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세계

적 수준’을 보여주려는 국가의 기획이 된다.

그런 면에서 주거공간의 소비 아이템들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국가의 취 향과도 연결된다. 드라마에서 가족들이 보약이나 약을 챙기는 것은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강조하는 북한의 정책을 보여준다. 아파트 거실의 중심을 차 지하는 !V는 영상매체 시대에 영상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기다리는 아버지’

의 유치원에서 어린이가 ‘의사’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은 개인의 기호로 비치 는 동시에 국가의 기획에서 움직이고 있는 인민을 나타낸다. 꽃그림으로 장

식된 인테 리어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면에서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지 만 ‘국가’가 지향하는 풍경 이기도 하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목소리는 영상물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국가의 말을 대신 전하고 있다.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박소혜 225

3) 소비욕망에 대한 갈등과 한계

평양 고층아파트에서 발생하는 계층 격차는 사람들 사이 갈등이나 사회 적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우선 주거공간과 소비 에 대한 욕망은 개인과

국가 차원에서 각각 작동하며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갈등과 한계를 보여

준다. ‘북방의 노을’에서 아들의 혼사를 앞둔 금철의 어머니는 “집 한 칸 늘 려달라”고 요청하지만 관철되지 않고 파혼까지 당한다. 주거와 관련한 갈 등의 발단이 ‘개인의 사적 욕망’에서 시작한다는 데 있어서 갈등의 씨앗을

내포한다. 금철의 어머니는 “동네 부끄러워 못 다니겠다”라며 눈물을 흘리 고, 금철의 아버 지는 “제 집 에나 신경 썼다”라며 얼굴을 들지 못한다. 개 인 의 욕망과 집단주의 사이의 갈등이 개인의 일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거 문제는 일상생활의 공간을 넘 어 생활력과 생존력을 보여주 는 상징 이다. 금철네 파혼 사건 이후 지배인은 ‘인민을 받들자’라고 마음을

바꾸며 광산마을의 모든 살림집을 허물어버 리고 새집을 건설하는 계획을

세운다. 지배인은 “살림집 건설을 단순한 건설이 아니라 국경에서 조국의 위상을 떨치기 위한 한 차례 전투로 생각하고 사생결단의 의지로 떨쳐나서 자는 것을 호소합니다”라고 말한다.

광산마을이 있는 자강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국가적 차원의 소명을 띠는

데, ‘좋은 집 ’은 개 인의 욕망뿐 아니라 국가의 욕망을 동시 에 만족시키는 것 을 지향하고 있다. 새 살림집은 생활의 편의성을 향상할 뿐 아니라 나라의

위신을 세우고 사회주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북한에서 살림집은 자본에 의한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시혜와 은덕으로 배정된 ‘향유’의 대상이다. 하지만 주거소비문화는 개별화된 소비 욕망을 드러낸다. 고층살림집 배정은 사적 욕망의 분출 공간이 제공된 것과도 같

226 평양오디세이

다. 국가의 시혜를 받은 계급이라는 자부심은 개별화된 주거공간에서의 소 비 욕망을 부풀게 하고, 그들이 가진 자본력은 소비 욕구를 분출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욕망이 모여 개인 기호가 담긴 주거소비문화가 형 성되는 것 으로 보인다.

개 인주의와 집단주의의 갈등 외에 계층 격차는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발 생하고 있다. 집단적 주거공간의 밀집성은 기호와 취향의 확산 가능성을 가

져오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의 경제적 불균형은 일탈이나 저항의 가능성도

내재하는 것이다. ‘우리 이웃들’의 경일이가 아버지의 돈을 훔쳐 동생에게 스케이트를 사주 는 장면이 그렇다. 개인의 소비 욕망을 내적으로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일

탈로써 대응하는 현실로 해석된다. 어른들은 경일의 행위를 ‘형제애와 가족

애’로 받아들이지만, 경 일에게 돈을 훔치도록 감정을 건드린 것은 분명 이 웃집의 소비문화, 그리고 스케이트장이 있는 도시경관 때문이다. 북한은 ‘세계적 수준’과 ‘본보기 ’, ‘ 인민의 행복과 편의 ’를 최고의 가치, ‘최 우선 절대시’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이념 차원의 선전선동은 개인 들의 자본 능력에 대한 실체를 가려주는데, 이념이 절대적 가치가 될 때 수

단은 부차적으로 되어 버 린다. 주변 이웃들이 누리는 행복과 편의를 똑같이 누리기 위해 ‘자본’은 필수지만, ‘자본’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일은 돈을훔

친다.

‘자본’에 대한 교육과 평등하지 않은 ‘소비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경일의 행위가 조금 달랐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주거소비문화는 드러난 현 상을 넘어선다. 북한이 시혜 직업군에게 고층살림집을 배정할 때 주거공동 체 구성원들은 같은 물리적 조건과 환경에 연대감을 느껴야 했지만, 개별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구성원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우리’ 공동체의 연대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 박소혜 227

감에 균열의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다.

평양 초고층살림집의 주거소비문화는 겉으로 드러난 일상의 갈등만 보 아서 체제의 균열이 나타난다고 확언하긴 어렵다. 오히려 한동안은 경제적 풍요와 번영을 추구하는 국가의 지배가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새로운 주거공간에서 마주치는 소비 욕망에 대한 갈등과 소비격차, 경제적 소외감 등이 개인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의식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에서 주거소비문화를 지속해서 관찰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5,

변화의 잠재력과 가능성

지금까지 김정은 시기 평양 초고층살림집의 주거공간 변화와 주거소비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드라마를 통해 본 특징을 정 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주거공간의 변화된 특징 첫 번째는 입체적 도시경관이 주거공간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김정일 시기에는 수령을 상징하는 대기념비적 건축

물을 중심으로 평양의 경관을 꾸리면서 북한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나타 내려고 했다. 그런데 김정은 시기에는‘사회주의 문명국’을 목표로 인민의 행복과 번영을 내세워 초고층살림집을 비롯해 유희장과 체육관광시설 등 인민과 관련된 건설이 평양의 입체적인 도시경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변화된 특징이 있다.

입체적 도시경관은 자본주의 사회 에서 초고층아파트가 자본을 상징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데, 북한에서는 이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주의 북한의 상징도시 평양과‘인민대중제일주의’의 성과물로 설명하

228 평양오디세이

는 것에 차이가 있다. 입체적인 도시경관은 IV와 거울 등을 통해 주거공간

안팎으로 적절히 배치되면서 북한의 지향과 지도자의 지배를 함께 보여주 고 있다. 주거공간의 두 번째 특징은 개별공간의 분리이다. 초고층살림집의 비공

개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은 이곳에 배정된 특정 계층에게 개별화된 사적공

간의 기능을 한다. 현대화와 표준화로 지어진 살림집은 집단주의 가치에 따 라 설계된 개방적이며 공적인 용도의 주거공간에 비해 개인적이고 개별적

이며 용도별 구획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방마다 문을 굳게 닫아 놓은 드라마의 장면들은 이 러한 변화를 상징한다. 농촌 살림집들은 이웃에게 열려 있는 ‘낮은 담장’이 특징이었다면, 초고

층살림집은 개인의 독립적인 공간 구획이 ‘굳게 닫힌 방문’을 통해 나타난 다. 2020년 9월 김정은 위원장은 수해 지역인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를 찾

아 피해복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면서 “살림집을 건설자재 소요량이나 부

지절약 측면을 고려하지 말고 1동 1세대로 지어주라”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21 이는 개별세대의 독립공간 보장이 평양에서 지방으로 확산하는 추

세를 보여주는 사례 이다. 주거공간의 세 번째 특징은 입식 주거공간에서의 좌식문화 혼재이다. 현 대적이면서 편의성을 고려한 고층살림집 주거공간의 일상생활에는 전통적 인 좌식문화가 섞여 있다. 그러면서도 입식 형태의 주거공간은 개별화와 가

족 중심 주거소비문화로의 진행 가능성을 가져오는 구조라는 점 에서 사회

변화의 잠재력이 있다. 다음으로 주거소비문화의 특징은 물질적 소비 욕망의 측면, 사회주의 우

21

우조선중앙통신』, 2020년 9월 12일자.

평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잘 - 박소혜 229

월성 과시와 상징적 소비 측면에서 나타난다. 먼저 고층살림집의 주거공간은 개별공간의 분리와 입식 문화로의 이행 을 통해 개별적 이고 물질적인 소비 욕구가 담긴 주거소비문화를 만들어내 고 있다. 개별공간의 분리는 ‘인민생활향상’이라는 국가의 목표와 함께 공

간별, 용도별, 개인별, 가족별 소비 수요를 다양하게 발생시킨다. 이는 부엌과 공부방의 독립, 즉 여성과 어린이의 존재가 개별화되는 효 과를 내며 소비의 개인화를 수반한다. 가족 중심 생활이 강화되며 가족주의

로의 변화도 내 재하는데, 공급이 아닌 수요 중심 사고를 불러온다는 점 에서 욕망의 구체적 구현을 보여준다.

또한 주거소비문화는 사회주의 우월성 과시와 상징적 소비의 특징도 나

타난다. 같은 고층살림집 에 살더라도 구성원의 변화와 그들의 경제력 차이 에 따라 소비의 격차가 있는데, 드라마 속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사

회주의적 고민보다는 상징적인 소비를 그대로 드러낸다. ‘ 인민생활향상’을 나타내는 평양의 경관과 현대화된 초고층살림집, 경제 력에 따른 ‘보여주기 ’식 상징적 소비는 다른 지역과 계층으로 확산하는 ‘본 보기’이므로 사회주의 우월성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나온다. 본보기 확산 의 속도를 높이려 건설의 속도와 질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김정은 시대의 구

호인 ‘자력갱생, 자강력제일주의’가‘인민대중제일주의 ’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주거소비문화는 개인의 소비 욕망에 대한 갈등도 발생시키는데, 집단

주의 사회에서 소비격차를 경험하며 분출되는 개인적 욕망을 어떻게 처리 하느냐가 북한 사회 에서의 한계이자 과제가 된다. 이 글은 김정은 시기 특징적인 경관 변화인 평양 초고층살림집에서 공간

과 소비의 관계를 통해 북한 사회의 일상과 문화를 살펴보려 했다. 체제는

구성원들을 구속하지만,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속성들은

230 평양오디세이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인식과 정체성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변화하는 북한의 도시경관이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목적이 더라도 그 속에서 변화하는 주거공간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는 새

로운 사회문화로의 변화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잠재력의 가능성을 확인 하고 그 방향과 함께 크기를 가늠해 나가는 것은 앞으로 과제가 될 것이다.

평 양의 문화

드라마 속 평양의 주거소비문화 고찰 , 박소혜 231

IV 서울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이민규.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

시외교 전략과 정책』(서울 : 서울연구원, 2021)과 이민규, 「6.15 남북공동 선언과 지자체 남북교류협력一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박명림 편,『6.15 남북공동선언과 한국사회

의 변화」, 서울: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20),그리 고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력 추진전략一지방자치단

체 역할 중심으로서서울 : 서울연구원, 2이8)의 일부 내용 을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이민규

1.

다시 찾아온 서울 - 평양 교류의 기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는 평화와 번영의 염원을 담은

희망의 불꽃을 쏘아 올렸다. 남북은 냉전 종식 이후 화해 분위기 조성과 대 화 채널 복원에 큰 역할을 했던 ‘스포츠 외교8@듀8 %1011130乂’를 다시 가동하 여,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냉각되었던 관계를 해동하기 시작했다.

2018년 한해에만 각 분야에서 총 36회의 고위급 남북회담이 개최될 정도 로 3.8선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는 듯했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개

성공단 폐쇄 조치로 급감했던 인적 우 물적 왕래도 다시금 증가하면서 남북 한 관계는 활기를 되찾았다. 2017년 11명 에 불과했던 인적 왕래는 2019년

9,835명으로 증가했고, 교역액 역시 2017년 100만 달러에서 2018년 3,100만 달러 규모로 확대되었다.1

한반도 정세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됨에 따라 서울시를 포함한 지방자치

1

통일부,『2020년 통일백서 3 서울 : 통일부, 2020, 270~274쪽.

서울-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35

단체(이하 지자체) 역시 약 10년 간 중단되었던 도시 간 교류 . 협력 재개의 희

망을 다시금 품게 되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 에서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

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는 문구가 삽입되면서 함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 린 것이다.2

지방정부 간 남북교류협력의 장점을 살려 중앙정부의 대북정책을 측면 지원,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대두되었다.3 이

러한 우호적 분위기 에 발맞추어 서울시는 대한민국 수도로서 조속한 시 일 내에 도시 단위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서울시는 그동안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서울 - 평양 포 괄적 도시협 력방안」을 다시 꺼내들게 된다. 한반도 정세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날을 기대하며 준비해 놓았던 계획안을 실행시 킬 준비를 본격적으 로 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서울시의 남북 수도 간 교류협력 발자취를 살펴보고 향후 나아가

2

4.17 판문점 선언의 주요 내용은 청와대,『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丄 \〜\\丄印6%16⑴音己1〈1721#:168/3138(검색일: 2021,10, 5) 참고 바란다.

3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의 장점은 크게 내적통합과 사업 실효성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

다. 내적통합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①시민 참여형 교류협력 사업 추진이 용

이하다는 점과 ②통일 우 평화에 대한 사회적 공론과 합의를 크게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자는 남북한 주민들 간 상호이해 증진과 이를 통한 민족적 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음을, 후자는 정부 대북정책 공론화에 기여하여 사회적 큰 합의를 형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업 실효성 같은 경우는 ①비정치 분야 교류협력으로 다양한 분야 기능적 연계와 사업의 지속성을 상대적으로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점, ②지 역 맞춤형 정책 추진으로 실질적 행정 지원과 함께 이질성과 격차 해소를 기대할 수 있

다는 점, ⑥행정력 동원과 남북교류협력기금 활동 등으로 민간단체 대비 안정적으로 사

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력 추진전략一지방 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애 서울 : 서울연구원, 2018, 2~3쪽.

236 평양오디세이

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19년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에 ‘도시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고자 한다. 어렵게 찾아온 한반도 평화 무드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 - 평양 도시교류 현황과 특징을 지자체 남북교류협 력의 큰 틀에서 과거, 현재, 미 래의 세 단계로 구분하여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의 특징, 특히 제도, 거버넌스 그리고 사업 세 가지를 기준으로 서울시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봄으로써, 서울 - 평양만이 아닌 다 른 지자체를 선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려 하였다. 수도에 걸 맞는 ‘큰형 님 ’ 역할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2,

서울과 평양이 맺어온 과거의 흔적

1)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제도화의 추진

남북 도시 간 교류협 력의 장은 6,15 남북공동선언(이하 6.15 공동선언)을 계

기로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6.15 공동선언 제4항에 “남과 북은 경제 협 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우 문화 - 체육 우 보건

-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 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 기로 하였다”가 포함되면서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위한 정치적 명분과 기회

가 생긴 것이다. 당시 남한의 지자체는 변화된 남북관계에 발맞추어 남북교 류협력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크게 조례 제정과

기금 마련 두 측면에서 이루어지는데, 지속 가능하고 ‘합법적’인 사업 추진

서울-평양교류

서울과평양의도시교류,과거,현재,그리고미래-이민규 237

을 위한 ‘바닥 다지기 ’를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서울시를 포함한

지자체들의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제도화는 어떠하였는지 배경과 목적 그리 고 주요 현황을 조례 제정과 기금 마련이라는 두 측면에서 살펴보자.

(1) 남북교류협력의 기초, 조례 제정

2000년대 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제정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6.15 공동선언이었다. 6.15 공동선언으로 지자체의 남북교류협 력 사업 추

진이 활발해지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관련법과 규정을 마련하기 시 작하였다. 우선 중앙정부는 2000년 7월「남북자치단체 간 교류협 력 업무 처

리지침」을 수립하였는데, 이를 통해 지자체 차원의 남북교류협 력 효율성 제 고를 위한 지침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03년 5월에는 한발 더 나아

가 지자체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좀 더 보장한「자치단체 남북교류협 력사업 추진 지원지침」을 새로 규정하였다.‘ 지자체 역시 중앙정부의 관련 지침이 마련됨에 따라 조례를 본격적으로

제정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들어 기존 강원도뿐만 아니라 경기도를 시 작으로 14개 광역지자체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경기

도와 전라남도 조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자체의 조례는 “정부의 남북교류협 력 및 통일정책을 … 뒷받침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토대가 되었

다. 더욱 직접적으로는 광주광역시 조례가 규정한 것처럼 “북한지역을 포

함한 전 지역과의 상호교류협력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근거가 되었다.

서울시 역시 2004년 “서울특별시와 군사분계선 이북지 역(이하‘북한’이라 한

4

이한희,『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 촉진을 위한 법적 제도 개선에 대한 연구一경기

도 사례를 중심으로」,『지방행정연구丄 제31권 제 1호, 2017, 224쪽.

238 평양오디세이

다) 간의 교류협 력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厂서울특별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시행 2004.7.2(1)를 강원도, 경기도, 광주시, 전라남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제정하였다. 서울시는 조례에 문화 체육 우 학술 및 경제 분야 등에 관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음을 규정함으로써

정책 추진의 법적 근간을 마련하게 된다.

(2)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기금의 설치

지자체는 남북교류협 력 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실질적 교류협 력을 추진 할 수 있는 기금도 조성해 나갔다. 2000년대 기존의 강원도를 포함 총 10개

광역지자체가 남북교류협 력기금을 설치하게 된다. 2000년대 조례 제정 후 기금설치를 하지 않았던 대구시, 경상북도 그리고 대전시도 2010년대 들어 기금을 설치하였다.

주요 지자체의 남북교류협 력기금 설치 목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크 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서울시, 부산시, 광주시 등은 남북교류

협력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주요 설치 및 운영의 목적이자 이유로 명시하였 다. 예를들어, 2004년 서울시의「서울특별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시

행 2004.7.20,)에 의하면,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하여 서울

특별시남북교류협력기금(이하‘기금’이라 한다)을 설치 ’ 운영”함을 밝히고 있 다. 반면,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등은‘남북교류협력’과‘통일정책’두

측면을 모두 강조하였다. 대표적으로 2001년에 제정된「경기도 남북교류협 력 조례」(시행 2001.11.9.)에 의하면, 경기도는 “남북교류협 력 및 통일정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하여” 도에 남북교류협 력기금을 설치 우 운영한다고 명시 하였다. 참고로, 각 지자체는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설치 및 운영 목적을 수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금의 용도도 변경하고 있다.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39

2)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

2000년대 들어 지자체의 효율적인 남북교류협력 사업 추진을 위해 중앙

정부 - 지자체 - 민간단체 3자 간 거버넌스 관계가 구축되기 시작한다. 중앙 정부는 지자체의 예산, 전문 인력 그리고 정보 부족 등으로 추진 사업 이 연

이어 무산되자 지침을 마련하는 등 관리 우 지원에 들어갔다.5 앞서 진행된 법률 재정비와 함께 관리 및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다른 한편, 지자체는 장기간 북한과 관계를 맺어온 대북지원민간단체와 협 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비용 절감은 물론 위험부담을 감소시키며 남북교류

협 력의 경험을 축적해 나갔다. 그렇다면 2000년대 지자체의 남북교류협 력 3자 거버넌스는 어떠한 형태로 구축되었는지 살펴보자.

(1) 중앙정부의 지침 마련과 심의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 거버넌스와 관련하여 중앙정부는 ‘관리와 지원’

역할에 치중하였다. 중앙정부는 6.15 공동선언 이후 급증하는 지자체 남북 교류협 력 사업의 공정하고 체계적 인 관리를 위해「남북자치단체 간 교류협 력 업무 처리지침」마련과 함께 행정자치부 산하에 ‘남북교류 우 협력사업 심

사위원회 ’를 설치하게 된다. 심사위원회는 자치행 정국장을 위원장으로 민 간관계 전문가를 포함한 여섯 명으로 구성이 되는데, ①사업의 실현 가능

성, ②사업의 중복추진,(3)사업의 적정성과 실효성, ④사업추진능력, ⑤국

익 부합 여부 등을 심사하였다.6

5

성태규 - 유병선,『충청남도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 연구3 공주 : 충남발전연구원, 2008,

41~45쪽. 6

양현모 외,『한반도 평화 우 번영을 위한 로컬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一지방자치단체 남북

240 평양오디세이

통일부에서 개최된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협의체 회의

연합구

다만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지자체의 자율성 침해 논란과 함께 절차 상의 중복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심사위원회는 2000년 8월 24일 1차 위원

회를 시작으로 20이년 8월 23일까지 총 6회 개최 되고 중단되는 위 기 또한 발생하였다.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당시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대부분의 행사들이 성사되지 못한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 이 에 대한 조치로 중앙정부는 2003년 5월 지자체의 남북교류협 력 담당 업무 를 통일부로 이관하고, 7월에는 앞서 언급한「자치단체 남북교류협 력사업

추진 지원지침 丁을 새롭게 마련하였다.

(2) 대북지원민간단체와 협력관계 구축으로 경험 축적

지자체와 대북지원민간단체의 협력관계 구축은 남북교류협력 사업 경험

교류를 중심으로% 서울 : 통일연구원, 2007, 40쪽.

서울-평양교류

서울과평양의도시교류,과거,현재,그리고미래-이민규 241

축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북한 내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고, 대 북사업 경험이 풍부한 민간단체는 지자체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동안 지자체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의욕 대비 경험 부족 문제

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무적인 것은 남북교류협 력 경험이 축적됨 에 따라 지자체의 장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자체의 남북교 류협력 사업은 초기의 단순 지원에서 공동 추진 단계를 걸쳐, 후반에는 지

자체가 주도하고 민간단체가 실무적 지원을 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지자체는 다양한 형태의 대북지원민간단체와 협력관계를 맺게 되 는데,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지자체가 주도해서 설립한 대북지원민간단체가 있다. 일종의 반관

반민半官半民 기관으로 지자체가 주도 및 참여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대 표적인 단체로 남북강원도협 력협회와 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가 있다. 남

북강원도협 력협회는 2000년 5월 8일 남북 강원도 간의 실질적인 협 력사업

추진을 통해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민족의 화해와 공조 및 평화통일에 기 여 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설립된다. 협회는 사회문화 분야 교류뿐만 아니라,

연어 치어 공동방류사업, 금강산 솔잎혹파리 공동방제, 못자리용 비닐지원 등을 포함한 강원도의 다양한 농 . 축 - 산림 분야 사업을 추진하였다. 전남

도민남북교류협의회 같은 경우는 2003년 4월 28일 22개 시 우 군의 기초자치 단체와 의회가 주축이 되어 민간과 기업을 포괄하는 범도민 성격의 기관으 로 설립되었다. 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 역시 아래에서 살펴볼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과 함께 전라남도의 다양한 농 . 축 . 산림 분야 사업을 실행하 였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대동군 농기계 수리공장 건설, 평양 남새비닐온실

친환경 시설원예 기술 지원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지역 기반의 풀뿌리 대북지원민간단체이다. 지역사회에 기반

242 평양오디세이

을 둔 단체들로 지자체의 경험 부족과 민간단체의 자금 부족 문제를 상호

보완하는 상생 관계를 구축하며 운영되었다. 대표적 인 단체로는 경남통일 농업협 력회와 남북협 력제주도민운동본부가 있다. 경남통일농업 협력회는

2005년 9월 25일 창립한 농업분야 중심 단체로 경상남도의 대표적 인 성공 사업 중 하나인 평양 강남군 장교리 협동농장과 평양시 순안구역 천동국영

농장 등을 추진한 바 있다. 남북협 력제주도민운동본부 같은 경우는 제주도 의 대표적 사업인 감귤과 당근 지원 등을 담당하였다.

마지막으로, 전국적 인 대북지원민간단체가 있다. 우리겨 례하나되기운동

본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이 대표적인데,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두고 있 는 등 일정 규모 이상의 단체들이다. 당시 우리겨 례하나되기운동본부는 인

천시, 경상남도 그리고 부산시 등과 교류협 력 사업을 진행하였다. 우리 민족서로돕기 운동은 경기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그리고 전라북도 등 지자체와 협 력을 같이 한 바 있다. 한 가지 확인 가능한 사실은 각 지자

체들이 대북지원민간단체의 유형 에 상관없이 협 력관계를 구축해 사업을 진

행했다는 점 이다. 7

(3) 북한 지방정부와 자매결연 추진

유사한 성질을 가진 북한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는 것 역시 눈에 띄는 거 버넌스 특징이었다. 자매결연은 지자체의 전통적인 국제교류협력 형태로

7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 력 추진전략- 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丄 서울 : 서울 연구원, 2018, 11~12쪽; 홍양호,「지방자치단체의 대북 교류협력 현황과 추진 방향」,

『으01 북한경제리뷰』8월호, 2007; 양현모 외,『한반도 평화 우 번영을 위한 로컬 거버넌 스 활성화 방안一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를 중심으로유 서울 : 통일연구원, 2007, 48-52

쪽; 성태규 우 유병선,「충청남도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 연구, 공주 : 충남발전연구원,

2008, 33~34쪽.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I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43

익숙한 방식을 남북교류협 력에 적용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 통일

전 동 . 서독 지방정부 간 자매결연 형식의 교류협력이 추진되었다는 사실

이 일정부분 영향을 끼 쳤다고 할 수 있다.89 비록 북한 정치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자매결연 방식은 실효를 거두 지 못했지만, 당시 지자체의 대북 접근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시 규모와

여건의 유사성으로, 포항시가 청진시를, 군산시가 해주시를 선정한 것이 대 표적이다. 서울시가 서울 - 평양 교류협 력을 꾸준히 추진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분단 전 행정구역의 동일성으로, 철원군이 북한 철원군을, 고성군이 북한 고성군을, 그리고 옹진군이 북한 옹진군을 선정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셋째, 실향민의 고향이 기준으로, 충청남도가 황

해도를, 태안군이 해주시를 선정한 것이 해당 된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유 사성인데, 경주시가 개성광역시를, 서울시 관악구가 구성시 혹은 의주시를 교류 대상으로 선장한 사례가 대표적 이다. ’

3) 남북교류협력 사업 유형과 시기별 특징

2010년 5.24 조치가 단행되기 이전, 약 10여 년 동안 추진된 지자체 남북 교류협 력 사업은 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지원 그리고 농 . 축 . 산림 등 세

분야에서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업 추진의 경험이 축적되고 상황이 변

8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력 추진전략一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丄 서울: 서울연 구원, 2018, 8쪽.

9

최대석 오],「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백서」,『2009년 통일부 연구용역 보고서아

2009, 54쪽.

244 평양오디세이

2017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서울 공연 모습 @스연합丄

함에 따라 시기별 중점 사업이 달라지는 양상 또한 나타났다. 서울시의 사

업 역시 이 세 분야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는데, 눈에 띄는 차이점은 다른 지 자체 에 비해 사회문화 교류와 인도적 지원에 더욱 치중했다는 점이다.

(1)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 사업들

사회문화 분야는 교류의 물꼬를 트는 차원에서 초기 에 적극적으로 추진

되었다. 비정치적 특성으로 인해 추진이 용이하다는 장점 외에 언론의 주목 을 받을 수 있는 점이 부각되면서 대부분의 지자체에 의해 선호되었다. 서

울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지자체의 이러한 인식은 2000년 5월 평양학생

소년예술단의 서울공연, 6월 평양교예단의 서울공연 그리고 8월 조선국립 교양악단의 서울공연 등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영향이 컸다. 당시 지자체는 사회문화 교류를 통해 동포애와 민족적 동질성을 자아내어 향후 타 분야 교

서울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45

류협 력을 위한 감성적 신뢰관계 구축을 기대하였다.1011

2(X)0년대 초반 지자체의 남북 사회문화 교류는 대부분 지자체 주최 국내 ’ 외 행사에 북한 대표단이 참여하는 형 식으로 추진됐다. 남북한이 함께 행사 를 기획 및 추진했다기보다는 초청의 의미가 강하였다.11 사업 추진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와 경험이 부재한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형태 였다 할 수 있 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당시 지자체의 경험과 준비 부족 문 제에 더해 북한의 소극적 태도, 그리고 남한 내 과열 경쟁 등이 일어나면서

대부분의 행사들이 승인은 받았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12 결국

2000년 1년 동안 부산시 에서 추진한 제81회 전국체전 금강산 성화 채화 사 업만이 성사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게 된斗. 지자체의 사회문화 교류는 2000년대 초반 연이은 무산과 일회성 이벤트,

그리고 남북 간 우열 비교 조장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행사 지원에서 공 동 개최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서울시 역시 2005년을 기점으로 ‘지원’의 형식으로 남북 도시 간 사회문화 교류에 동참했다. 눈에

띄는 특징은 다른 지자체들이 체육 행사에 치중한 반면, 서울시는 역사 ’ 문

화 교류에 방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2005년 서울시는 남북공예대전, 고구려 유물전시히, 서울통일한마당 행사들을 지원하였다. 2006년에는 평양 고구

려 안학궁터 공동발굴에 연구비를, 금강산 윤이상 음악회에 행사비를 지원 하는 등 상호 이해 증진과 감정적 교감 증대를 위해 노력했다.

10

이민규, 厂서울시 남북 교류협 력 추진전략一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丄 서울 : 서울연

구원, 2018, 9쪽.

11

양현모 오I,『한반도 평화 - 번영을 위한 로컬 거버넌스 활성화 방안一지방자치단체 남북

교류를 중심으로』, 서울 : 통일연구원, 2007, 40~41쪽.

12

최대석 외,「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백서丄『2009년 통일부 연구용역 보고서요

2009, 58~60쪽.

246 평양오디세이

2000년대

서울시 사회문화교류 주요 추진 실적

2005년

지원 내용

사업명

연도

‘ 고구려 유물전시회 전시품목 : 일 . 중 . 북한 소재 고구려 유물 200여점

관계 단체

행사비

남북역사

지원

학자협의회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고려대박물관 -남북공예 대전

전시작품 : 남북 공예작품 300점

행사비

남북전통

지원

공예교류전 운영위원회

장소 : 덕수궁 석조전 -서울통일한마당 지원

참가 : 6.15 공동위 서울본부 소속 56개 단체 및 회원,

행사비

615공동위

지원

지역본부

서울시민 등 장소 : 종로2가 4거리, 월드컵야외무대

2006년

- 평양 고구려 안학궁터 공동발굴 참여기관 : 고구려연구재단, 김일성종합대학 등 끼명

- 금강산 윤이상 음악회

연구비

고구려

지원

연구재단

행사비 지원

윤이상 재단

장소 : 금강산 문예회관 출처: 이민규 - 박은현, ''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 서울 : 서울연구원, 2021, 51~57쪽.

(2) 인도적 지원 사업들

2000년대 초반 사회문화 교류 사업이 연이어 무산되자 지자체들은 북한 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인도적 지원 사업으로 방향을 전

환하였다. 사회문화 교류가 남한의 정치적 의도가 많이 투영된 것이었다면,

인도적 지원은 북한의 사정을 더욱 고려한 사업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식량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 에 놓여 있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70와 세계식량계획뗴’의 보고에 의하면, 2000~2001년 약 219.6만 톤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한 낮게 측정하더라도 56.4 만 톤이 부족한 실정 이었다. 이는 1995〜1996년 연간 4077만 톤 생산되던

것이 2573만 톤으로 떨어진 결과였다. 이로 인해 2002년 국제기준 대비 저 체중 북한 어린이는 약 20%(만성영양장애 39.2%)을 차지했고, 약 1/3의 가임기

여성이 영양실조와 빈혈에 시달렸다. 결핵환자 역시 1999년 인구 10만 명

서울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47

당 80명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었다.1314 실제로 2000년부터 남한의 대북 인도 적 지원은 급증한다. 1999년 정부와 민간 차원 합계 562억 원에 불가하던

무상지원은 2000년 1,364억 원으로 증가하였고, 2006년에는 2,982억 원 규 모로 확대되었다소 뉴

2000년대 지자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아래에서 살펴볼 농 . 축 - 산림 분야 농기구와 자재 지원 외 에 식량, 의류 그리고 의약품 등이 주를 이루었

다.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히 추진된 식량지원과 보건의료 분야 실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자체의 대북 식량지원 사업의 시초이자, 대표사 업은 ‘비타민 0 외교’로 불렸던 제주도의 감귤 지원이었다. 제주도는 1999 년 1만 박스 분량인 100톤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매년 약 4,000여 톤의 감

귤을 북측에 지원하였다. 2007년에는 지원 규모가 확대되어 11,340여 톤을 지원했으며, 2000년부터는 감귤과 함께 당근도 보내기 시작해 2005년에는 7,000톤규모로 증가하기에 이르게 된다.

식량 지원과 관련하여 한 가지 눈여겨 볼 특징은 2005년을 전후로 방식 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단순 식량 제공이 아닌 식량 생산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경기도는 2005 년 당면 식품 가공공장 건설을 지원했다. 전라남도의 경우는 2005년 영양

빵 공장 지원을 시작으로 2007년 평양 발효콩 공장 협 력사업과 2008-2009 년 평양 발효콩 빵공장 협 력 사업을 추진했다. 대구시도 2006~2007년 북

한 어 린이 돕기 빵공장 건립 기금을 조성하였다. 그 외 에 울산시는 2005년

13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히,『대북지원 10년 백서心 서울 : 도서출판 늘품, 2005, 177~183쪽.

14

정부는수송비 및 부대경비 포함, 민간은수송비 및 부대경비 미포함 한다. 통일부,「대북 지원 현황’」,

2020, 5, 20)

248 평양오디세이

아).1幻/砂0네/11=111/23(:11011?우606네.心0?!己久丄己그2784(검색일 :

과 2007년 모란봉 국수공장 설비 및 재료를 지원하는 사업을 성사시켰다. 서울시 역시 남북교류협력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경기도, 전라남도, 제주도,

대구시 등에 비해 늦긴 했지만, 2005년 북한 아동 제과원료(설탕과 밀가루 등) 를 지원했으며 2009년과 2010년 교류협 력 이 중단되기 직전 옥수수 알갱 이

2,500톤과 밀가루 500톤을 각각 북한에 보냈다. 보건의료 분야는 식량 지원과 함께 대표적으로 추진되었던 인도적 지

원 사업 이었다. 이 분야도 2005년을 전후로 지원 방식 에 변화가 생기는데, 2004년 룡천역 폭발사고가 참여 확대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서울시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2005년을 제외하고 매년 의료장비 와 의약품 등을 지원하였다. 특히, 2006년부터는 평양조선종양연구소에 지

속적으로 의약품은 물론 위내시경, 유선암 진단 설비, 만능수술대, 디지털 乂-유 그리고 수액제조설비 등을 지원하였다. 평양조선종양연구소를 주

요 대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함으로써 연구소의 기능 강화와 함께 지속가능 한 서울 - 평양 보건의료 협 력관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밖에도 부산시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항생제 공장건립 자재를 지원했으며, 2007년 준공 식 에는 대표단이 직접 참석하기도 하였다.

인천시 또한 2008년 평양 치과병원 리모델링 사업에 의료기기와 건축자 재 등을 지원함으로써 단기적 물자 지원이 아닌 북한 보건의료 환경 개선에

일조하였다.15

15

구체적인 내용은 최대석 오],「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백서」(『2009년 통일부 연구

용역 보고서』, 2009)를 참고 바란다.

서울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49

2000년대 서울시 인도적 지원 주요 추진 실적 지원액 연도

2004년

사업명

- 용천재해지역(열차폭발사고) 지원

370

운동

특이사항: 직원 성금

- 북한아동 제과원료 지원

1,030

- 평양조선종양연구소 의료기자재 지원

남북민간 교류협의회

지원내용: 설탕, 밀가루, 분유, 콩기름, 버터 등

2006년

우리민족 서로돕기

지원물품: 소방, 속옷, 양말, 담요, 운동복, 구급약등

2005년

관계 단체

(백만원)

349

장미회

200

장미회

496

장미회

297

장미회

790

장미회

배경: 북한병원 현대화사업

지원물품 : 전자 위내시경, 디지털 乂-1쎠乂, 유선암 진단 설비 등 11종

- 북한수해구호 의약품 지원 지원물품 : 항생제, 수액, 연막소독기, 구급의료세트 등

2007년

- 평양조선종양연구소 의료장비 지원

지원물품 : 만능수술대, 무영등, 흉강경, 복강경 수술기 구, 전신마취기, 혈압계,

자동인공호흡기, 청진기 둥 62종 - 북한수해구호 의약품 지원

지원물품 : 항생제 피부질환치료제, 진해거담제, 진경제, 제산제, 해열제 등 특이사항 : 아리수 5만병(1.8 리터) 지원

2008년

- 평양조선종양연구소 의료장비 지원

지원물품 : 의료장비, 디지털 乂-피乂, 병리검사시약, 수액 제조설비 등

2009년

- 대북 옥수수 지원

1,000

- 평양조선종양연구소 의약품 등 지원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지원물품 : 옥수수 알갱이 2,500톤

306

장미회

6

장미회

지원물품 : 의약품, 수액, 의료소모품

2010년

- 09년도 평양조선종양연구소 지원 모니터링 지원내용:경비지원 등 - 북한 수핵지역 구호물품 지원

지원물품:밀가루

235

새누리 좋은 사람들

출처: 이민규 우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 서울 : 서울연구원, 2021, 54쪽, 서울시 내부 자료를 참고로 저자 작성.

250 평양오디세이

다른 한편, 2000년대 후반 대표적 인 보건의료 분야 성과 중 하나로 경기 도의 말라리아 공동방역사업을 꼽을 수 있다. 이 사업은 남북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동이익’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기도는 파주, 연

천과 북측의 개성 지역에서 매년 발생하는 말라리아 매개모기 퇴치를 위해

2008년 3월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공동방역사업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합

의서 에 의해, 경기도는 2008년 북측에 방역차량 7대, 방역장비와 약품 등 13종을 지원하였다. 2009년에는 살충제 3종, 유충구제약품 1종, 진단키트

5,000개 그리고 모기향 60,000박스 지원을 통해 사업을 이어나갔다. 2010년 에도 유충구제약품 1,000〔8, 임산부 예방약 45천정, 진단키트 12만개, 모기 장 122,0001112 그리고 모기향 15천개를 북측에 전달하였다. 가시적인 결과

로, 2008년 경기도 말라리아 환자 발생 수는 485명으로 2007년 1,007명 대 비 51.8% 감소율을 보였다.16

(3)농

축 -산림분야의교류 사업들

농 - 축 . 산림 분야는 2005년 이후 지자체의 대표적 인 남북 교류협 력 사

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농 . 축 . 산림 분야 사업은 초기의 인도적 지원 을 넘어 개발지원 차원의 시범사업이 실시되는 등 진일보한 형태를 보였다. 2004년 전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긴급구호 차원의 지원이 북한 내 열악한

식량 및 보건의료 환경과 조건 개선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내 우 외부의 비 판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17

16

김동성 외,『남북평화협력시대 경기도 남북교류협력 기본구상과 전략 연구너 수원 : 경 기연구원, 2018, 58~59쪽.

17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력 추진전략一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3 서울 : 서울연

구원, 2018, 16쪽; 최대석 외,「지방자치단체 대북교류 10년 백서」『2009년 통일부 연구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51

농 . 축 . 산림 분야 대표적 사업으로 경기도의 당곡리 농촌현대화 사업과

경상남도의 장교리 협동농장 농업교류를 들 수 있다. 이중 경기도가 2006년

부터 2008년까지 3년 간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 에서 추진한 종합적 인 농촌 현대화사업은 다음 두 가지 즉면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18

1990~2000년대 서울시 농 - 축 . 산림 분야 주요 추진 실적 연도

사업명 - 토종동물 종보전 및 복원

1999 — 2006

지원액

관계 단체

407

신흥시너지

: 서울-평양 동물원 동물교류

추진기간 : 1999, 1-2006, 12(총 7차) 추진내용 : 동물 19종 43수 반입 동물 24종 59수 반출

출처: 서울시 내부 자료를 참고로 저자 작성.

하나는 남측이 기술과 자재를 지원하면 북측이 인력과 시공 및 관리를 책 임지는 공동협력 방식으로 지원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일방적 남측 지원

형식을 지양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2006년 초 북한 전국의 도 단위 농업담당자들이 참여하는 기계 영농

관련 토론회가 개최될 만큼 북한 당국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생산량도 기 대 이상의 성과를 내게 되는데, 남북이 공동 경작한 10아仏에서 정보당 평균

5.12[을 수확했다. 이는 당시 한국의 평균생산량을 능가하는 것으로 2007년

북한은 당초 합의 된 200113를 400^ 늘린 공동경작 의사를 제안하기 까지

용역 보고서 丄, 2009, 72~74쪽.

18

경기도는 2005년 평양시 룡성구역의 북한 농업과학원 시범포전에서 3뇨 규모의 벼농사

시범사업을 전개한다. 김동성 외,『남북평화협 력시대 경기도 남북교류협력 기본구상과

전략 연구소 수원 : 경기 연구원, 2018, 52쪽.

252 평양 오디세이

평양중앙동물원에서 서울대공원으로 이사 온 동물들

연합으

하였다.1,

서울시의 농 . 축 - 산림 분야 교류협 력은 농업 기반이 약한 도시 특성으 로 인해 다른 지자체와는 다른 형태로 추진됐다. 서울시는 1999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서울 - 평양 동물원 간 토종동물 종보전 및 복원 사업을 꾸 준히 추진하였다. 사회문화 교류에서 보였던 우리 문화와 역사를 공동으로

지키는 활동을 농 ‘ 축 - 산림 분야에서도 실행한 것이다. 서울시 기록에 의하면, 당시 총 일곱 차례에 걸쳐 19종 43수가 반입되었 고, 24종 59수가 반출되는 등 활발한 교류와 학술연구가 진행 되었다.

19

김동성 외,『남북교류협력과 경기도, 수원 : 경기연구원, 2016, 87~98쪽.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I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53

3-

서울 - 평양 교류 재개의 냉혹한 현실

1) 포괄적 도시협력 방안 마련과 체계 구축

(1)「서울 - 평양 포괄적 도시협력방안」수립과 재구조화의 과정

서울시는 2015년 5월 중앙정부의 민간 - 지자체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 발

표를 계기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도시 단위 남북교류협 력 방안을 구상하 게 된다. 남북관계 개선이 요원한 상황임 에도 불구하고, 언젠간 찾아올 평

화구축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2015년 5월부터 서울시는 시장과 정무부시장 주재 하에 각각 3회와 5회에 걸친 회의를 통해, 2016년 11월 10일 3대 분야 10대 사업으로 구성된「서울

- 평양 포괄적 도시협 력방안」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서울시는 북한의 연이은 핵 - 미사일 실험과 그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및 남북관계 악화 상황에서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마음으로 방

안을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갔다. 2017년 2월과 6월 사이, 10개 사업 소관부 서장 및 전문가 간담회 등을 통해 내용을 수정 우 보완한 후에 7월 통일부와

실무 간담회를 개최하였다.20 국내 우 외 부정적 요인으로 남북교류협 력 사업을 추진할 수 없었던 서울

시는 겨울의 끝자락에 열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따 뜻한 봄기운이 드리우기 시작하자 조속한 시일 내에 구체적인 사업이 추진

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 1월부터 통일부장관, 국가

20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 력 추진전략一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丄 서울 : 서울연

구원, 2018, 38~39쪽.

254 평양오디세이

정보원장,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의 면담을 통해 지자체 남북교류협 력 활성

화와「서울 - 평양 포괄적 도시협 력방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등을 논 의하였다. 그리고 국내 - 외 체육행사를 통해 북측 고위인사에 친서를 전달

하는 등 교류협 력을 적극 제안하였다. 서울시는 2017년 6월 무주국제태권도대회,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2018년 7월 평양 통일농구, 2018년 8월 남북 노동자축구대회, 2018년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방북 등을 통해 서울시가 준비한 계획과 추진 의지를 북측에 전달하였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행동은 지난 3년 동안의 체계적인

준비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는 국제사회의 대 북제재와 사업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존 사업을 우선 과제와 중 우 장기과제로 구체화하였고, 2018년 5월 24일에는 실행방안 보고회를 개최하 여 신규 사업과 현행화 등을 논의하였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정 세가 다시금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는 상황에서도 서울시는 ①사업의 단계

별 추진, ②평화 우 통일과 남북교류 필요성에 대한 인식 강화, ⑥남북교류

역량과 통일기반 강화 등을 주요 추진방향으로 남북교류협 력추진 꾸를 구 성하였다. 서울시는 2019년 6월에서 7월 사이 총 3회에 걸친 '正 운영으로 10개 사업 이행 검토와 현행화 논의, 그리고 지속적 인 신규 사업을 발굴하

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였다.

2020년 2월에는 3대 분야 10대 과제 혁신 및 실행력 강화계획을 수립하 고, 외부전문가와 해당 실 . 국 . 본부가 참여하는 과제별 분과위원회(10개 분

과)를 구성 - 운영하였다. 서울시는 분과위원회를 통해 기존 과제의 사업 실 행 에 대비한 상세 추진전략 및 로드맵 작성, 그리고 신규 사업 발굴과 우선

집중 추진 과제와 방법 등을 검토하였다. 3월부터 7월까지 분과위원회를 통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I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55

해 세부 과제를 보완하고 신규과제를 발굴하였으며, 8월부터 10월까지 총 괄분과위원회에서 추진전략과 집중과 제를 검토하였다. 11월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변화된 국제정세와 남북관계를 반영한 4대 분야

16대 과제로 구성된「서울 - 평양 전략적 도시교류협력 추진계획(안)」수립

을 내부적으로 점검하였다.2122

2) 3대 분야 10대 과제의 주요 내용

「서울 - 평양 포괄적 도시협 력방안」은 기본적으로 3대 분야 10대 과제로

구성되어 있다(후에‘포괄적’삭제됨). 3대 분야는‘도시 인프라 협력’, ‘경제 협 력(후에 ‘경제개발 협력’으로 변경)’, ‘시민교류(후에 ‘사회문화교류’로 변경)’로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의 대표적 사업인 사회문화 교류, 인도적 지원, 농 . 축 . 산림 분야 교류뿐만 아니라, 도시의 특성, 특히 개발과 거버넌스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도시 안전과 환경 개선 분야, 그리고 중 - 장기적 형태인 개발지원 까지 포괄하는 구상이다. 10대 과제의 경우 앞서 살펴본 재구조화 과정에서

지속적오 조정되었으며, 세부 과제 역시 수정 우 보완되어 왔다. 2020년 6

월 기준, 3대 분야 10대 과제 현황은 아래와 같다.2그

(1)사회문화교류과제



‘사회문화 교류’는 기존의 ‘시민교류’로 1대 과제 8개 세부사업으로 구성

21

이상의 내용은 서울시 남북협 력추진단의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업무보고 자료를 바 탕으로 저자가 작성한 것임을 특별히 밝힌다.

22

이하의 내용은 서울시 남북협 력추진단의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업무보고 자료를 바 탕으로 저자가 작성한 것임을 특별히 밝힌다.

256 평양오디세이

되어 있다. ‘보건의료 협력’과제가‘경제개발협력’과제로 재조정되면서 ‘문 화 우 체육 - 역사 - 학술 교류’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주요 사업으로 문화본 부 소관의 ①서울 - 평양 역사도시 학술대회, ②역사 문화재 세계유산 등재

협력, ③서울 - 평양음악. 미술 - 미용 등 교류, ④언론 우미디어 분야 교류 등이 있고, 관광체육국 소관의 ⑤서울 - 평양 체육 교류, ⑥서울 - 평양 관광

루트 ‘평화의 길’ 개척, 그리고 남북협 력추진단 소관의 ⑦2032년 서울 - 평

양 하계올림픽 공동유치, ⑧서울 - 평양 도시협 력 포럼 개최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20년

버전「서울 - 평양 도시협력방안」시민교류 세부 사업

1대 과제 8개 세부사업

분야 사회문화

소관실국

문화 . 체육 . 역사 . 학술 교류

교류 ’ 서울 - 평양 역사도시 학술대회

문화본부

- 역사 문화재 세계유산 등재 협력 - 서울 - 평양 음악 . 미술 우 미용 등 교류 ‘ 언론 우 미디어분야 교류 관광체육국

- 서울 - 평양 체육 교류 - 서울 - 평양 관광루트 ‘평화의 길’ 개척

- 2032 하계올림픽 공동유치

남북협력

- 서울 - 평양 도시협 력 포럼 개최

추진단

출처: 이민규 우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 서울 : 서울연구원, 2021, 44~46쪽과 서울시

내부 자료를 참고로 저자 작성.

(2) 경제개발 협력 과제

‘경제개발 협력’은 기존의 ‘경제 협력’으로 8개 실 . 국 . 본부 및 관련 기 관이 참여하는 가장 큰 규모의 사업으로 5대 과제 19개 세부사업으로 구성

되어 있다. 5대 과제는 ‘산업협력’, ‘전자정부’, ‘산림협력’, ‘환경 분야 협력’,

‘보건의료 협 력 ’으로 각각 다음과 같은 세부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산

서울-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민규

257

업협력은 경제정책실 소관으로‘경제교류 확대’를 핵심으로 한다. 사업은

애니메이션 분야와 기업교류 두 분야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①서울 - 평

양 국제 영화제 개최, ②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및 마케팅 협력, 그리고 중 우 장기적으로 0(가칭)평양 애니메이션센터 건립 지원을 목표로 한다. 후자의 경우는 ④평양 진출 국내중소기 업 자금지원, (⑤서울 - 평양 기업교류 및 서

울 진출 지원, ⑥평양산産 제품 판로 지원 및 해외시장 공동 개척을 추진한

다는 계획이다.

다음으로, 전자정부 협 력은 스마트도시정책관 소관으로 ‘기술표준 통합 을 위한 공동사업단 구성’을 통해 ①평양 ^60 가입을 통한 전자정부 전

파, ②평양 스마트시티 구축 협력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셋째, 산림협력 같은 경우는‘산림자원 공동이용 및 식생 . 동물 자원 교 류’를 목적으로 세 가지 세부 과제로 구성된다. 우선 푸른도시국 소관으로

①산림자원 공동이용 토대를 마련하고, 서울대공원과 서울식물원 공동 소

관으로 ②남북한 식생 . 동물 종자교환 및 기술교류협 력을 한다는 계획이 다. 그리고 푸른도시국과 기후환경본부 공동소관으로 ⑥평양 나무심기 및

탄소배출권을 확보한다는 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에 있다. 넷째, 환경 분야 협 력으로 기후환경본부에 의해 5개 과제를 추진한다는

방안이다. 세부 사업을 살펴보면, ①평양 유휴공간 태양광 설치, ②서울 -

평양 간 ‘태양의 길’ 조성, ⑥평양형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 등 친환경에너지 인 태양광 분야 협 력을 구상하고 있다. 이 밖에 ④평양시 공공부분 正0 보

급과 ⑤대기오염측정망 평양 설치 및 남북 대기질 개선 협력사업 추진 등을

기획 우 준비 중에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는 시민건강국과 서북병원이 주축이 되어 보건의료

협력 분야 세 가지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시민건강국은 ①결핵제로

258 평양오디세이

화 사업과 ②영 우 유아 건강 지원 사업을, 서북병원은 ③난치성 다제내성 결

핵 치료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훈련 지원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2020년

버전「서울 - 평양 도시협 력방안」경제개발 협 력 세부 사업

분야

경제개발

5대 과제 19개 세부사업

소관실국

산업협력

협력

- 서울 - 평양 국제영화제 개최

경제정책실

-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및 마케팅 협력 ’ ‘(가칭)평양 애니메이션센터’ 건립 지원 - 평양 진출 국내중소기업 자금 지원 - 서울 - 평양 기업교류 및 서울진출 지원

- 평양産 제품 판로지원 및 해외시장 공동개척

전자정부

‘ 평양 ^600 가입을 통한 전자정부 전파 - 평양 스마트시티 구축 협력 사업

스마트도시

정책관

산림협력 - 산림자원 공동이용 토대 마련

푸른도시국

- 남북한 식생 우 동물 종자교환 및 기술교류협 력

서울대공원 서울식물원

- 평양 나무심기 및 탄소배출권 확보

푸른도시국 기후환경본부

환경 분야 협력

- 평양 유휴공간 태양광 설치

기후환경본부

- 서울 - 평양 간 ‘태양의 길’조성 흐 평양형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

- 평양시 공공부분 正0 보급 - 대기오염측정망 평양 설치 및 남북 대기질 개선 협력 사업 추진

보건의료 협 력 - 결핵 제로화 사업

시민건강국

- 영 - 유아 건강 지원사업 - 난치성 다제내성 결핵 치료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훈련

서북병원

지원 사업

출처: 이민규 우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서울 : 서울연구원, 2021, 43~46쪽과 서울시 내부 자료를 참고로 저자 작성.

서울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I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59

(3) 도시 인프라 협력

‘도시 인프라 협 력 ’은 4대 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4대 과제는 ‘도시재생 ’

계획 ’, ‘도로 우 교통’, ‘도시안전과 재난분야 공동 협력’, ‘상하수도’로 총 15개 세부 사업을 포함한다. 먼저, ‘도시환경 개선’이 목적인 도시재생 - 계획은

도시재생실과 주택건축본부 공동 소관으로 ①서울 - 평양 관련 도시전 우 심

포지엄 개최, ②살림집 수리 시범사업 시행 그리고 ⑥평양형 시민주택 모델 개발 및 소단위 도시재생 협 력기구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도

시계획국이 주축이 되어 ④서울 - 평양 공간계획 및 교류도 준비 중에 있다. 다음으로, 도로 - 교통 분야는 ‘대중교통 운영체계 및 도로관리 방안 협 력 ’을 핵심으로 총 다섯 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도

시교통실 소관으로 ①평양시 교통체계 종합 컨설팅 지원, ②버스정보시스 템 설치 및 운영 협 력, ⑥교통신호시스템 설치 및 운영 협 력, ④서울 - 평양

공공자전거 간 디자인 교류 및 행사 추진 등이 검토되었다. 그리고 안전총 괄실이 주축이 되어 ⑤최적의 도로계획 및 도로포장 관리방안 마련을 지원

한다는 계획 이다. 셋째, 도시안전과 재난분야 공동협 력과 관련해서는 안전총괄실에 의해 ①도시안전 우 안전점검 분야 기술 - 인력 교류, 소방재난본부에 의해 ②서울 형 재난관리 인프라 지원을 바탕으로 중 우 장기적으로 ⑥재난대비 장비 및

재난관리시스템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에 있다. 마지막으로, 상하수도 분야 같은 경우는 ‘대동강 수질개선과 평양 상하수

도 개량’을 구체적인 목표로 총 세 가지 사업 추진 계획을 수립한 상태이다. 물순환안전국이 담당 부서로서 ①평양 하수처리장 개량 지원 사업을 기반

으로 중 - 장기적으로 ②민관 합작 투자협력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상수도사업본부는 ③상수도 수질개선 지원 및 기술 지원 협력 사업

260 평양오디세이

을 담당할 예정 이다.

2020년

버전「서울 - 평양 도시협력방안」도시 인프라 협력 세부 사업

분야 도시 인프라

4대 과제 15개 세부사업

소관실국

도시재생 우 계획

협력 ’ 서울 - 평양 관련 도시전 우 심포지엄 개최 - 살림집수리 시범사업 시행

도시재생실 주택건축본부

- 평양형 시민주택 모델 개발 및 소단위 도시재생 협력기구

구성

- 서울 - 평양 공간계획 및 교류

도시계획국

도로. 교통 - 평양시 교통체계 종합 컨설팅 지원

도시교통실

- 버스정보시스템 설치 및 운영 협력 - 교통신호시스템 설치 및 운영 협력 - 서울 - 평양 공공자전거 간 디자인 교류 및 행人)‘ 추진 - 최적의 도로계획 및 도로포장 관리방안 마련지원

안전총괄실

도시안전과 재난분야 공동 협력

‘ 도시안전 우 안전점검 분야 기술 우 인력 교류 ’ 서울형 재난관리 인프라 지원

안전총괄실 소방재난본부

- 재난대비 장비 및 재난관리시스템 지원

상하수도 - 평양 하수처리장 개량 지원

물순환안전국

- 민관 합작 투자협력사업 ’ 상수도 수질개선 지원 및 기술지원 협 력사업

상수도 사업본부

출처: 이민규 우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규 서울 : 서울연구원, 2021, 42~46쪽과 서울시 내부 자료를 참고로 저자 작성.

3) 서울 - 평양 교류협력을 위한 노력과 한계 봉착

서울시는 체계적인 준비를 바탕으로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다각적으로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문화 교류와 보건의료 협 력에서의 일부 성과

서울-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61

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성적표를 받게 된다. 3대 분야 10대 과제가 조정되

기 전, 보건의류 협력이 ‘시민교류’ 과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민교류 분 야의 사회문화 교류와 인도적 지원이 다른 두 분야로 확장되지 못했다. 사 업 추진 형 태를 냉정한 시각에서 들여다보면, 사회문화 교류와 보건의료 협

력 대부분 간접적 교류로 ‘지원’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드러냈다. 문 화 우 체육 분야 교류는 국제 스포츠 행사 혹은 중앙정부와 민간단체가 개최

하는 행사를 지원 혹은 후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역사 - 학술 교류 역시

제3국을 통한 간접적 협력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인도적 지원 또한 주로 국

제기구와 대북지원 민간단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2000년대와 비교하여 한 가지 달라진 부분은 다양한 기반 조성 사업을 통해 서울시 내부 공감대 형성과 인식 전환을 꾀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함

께 다른 지자체와 함께 남북교류협 력 사업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 한 점 또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통제가 어려운 외부 변수의 긍

정적 변화를 기대하는 동안 언제든지 사업 재개가 가능하게끔 준비를 단단 히 한 것이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결과물을 정 리하면 다음과 같은

아쉬움 가득한 노력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1)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행정적 - 제도적 기반 마련

① 행정조직 확대와 기금 확충 서울시는 2018년 11월 1일 평창 동계올림픽의 평화 기운이 지속될 수 있

도록 남북교류협 력 사업을 총괄 기획 및 추진하는 조직을 기존의 팀(남북협

력팀)에서 국(남북협력추진단)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2019년 4월 기준, 남북협 력추진단은 1단, 2담당관, 6팀 체제로 23명 이 관련 업무를 담당할 정도로

262 평양오디세이

규모를 확대하고 조직적 체계를 갖추게 된다. 주요 업무를 살펴보면, 남북 협 력담당관은 남북교류협 력사업 총괄 및 조정,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 력 추

진 그리고 평화 우 통일 교육 등 기반조성사업 추진을 담당한다. 개발협 력담 당관 같은 경우는 개발지원협 력사업 총괄 및 조정, 도시 인프라 분야 기획

및 조정 그리고 민간단체 협력사업 검토와 지원 업무를 맡게 된다. 이와 함 께 서울시는 2005년 1월에 설치된 남북교류협력위원회를 재정비하고 시의 남북교류협 력사업 총괄 조정과 촉진 기능을 강화시켰다. 2016년까지 6회 이하로 개최되었던 회의는 2017년 9회로 늘어났고, 2019년부터 10회 이상 (2019년 14회) 개최되고 있다.

확대 및 강화된 조직과 함께, 서울시는 남북교류협 력기금도 확충하였다.

2017년도 말 기준 17,542백만원 이던 조성액은 2019년도 말 기준 32,391백 만원으로 증가했으며, 2020년도 말에는 34,747백만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2020년도 말 조성액 기준 경기도 다음으로 많은 기금으로, 지속 가능한 도 시 간 남북교류협 력 사업을 위한 재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23

② 주체 논란종식과 법 우 제도 개정

서울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정부 및 다른 지자체와의 협의 등 을 통해 남북교류협 력 사업 ‘주체 ’ 논란 해결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

다. 남북 관계를 단순히 중앙정부 간의 사무로 인식하는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은 다음과 같은 가시적 인 성과를 내게 된다. 우선, 2019년 7월 24일 대

23

2019년 남북교류협력기금 운용계획서에 의하면, 기금운용의 기본방향(목표)을 남북교 류 및 평화 ' 통일 시민공감대 확산, 서울 - 평양 간 지속가능한 교류를 통해 한반도의 공

동번영 및 평화 - 통일 선도로 설정한다. 남북교류협력 기금 운용 관련해서는 서울특별시, \川\列\匕86011130丄17!11血1/伍心6시8砂(검색 일 : 2021,10, 6) 참고 바란다.

서울-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누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63

2018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태권도 합동 시범 무대 @스연합丄

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와 통일부 간의「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약문」 체결을 이끌어 낸다. 협약문에 지자체를 교류협력의 중요한 주체로 인식하 며, 통일부 - 지자체 - 민간단체 간 포괄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임

이 명시된다.24 2019년 10월에는「인도적 대북지원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지자체가 대북지원사업자로 지정되고 국제기구 를 통해 대북지원을 추진할 경우 통일부 장관과 사업 계획을 사전에 협의할

24

구체적인 내용은 통일부, “통일부 - 시도지사협의회,「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약문」 체 결 ”, 따夕8啓). 丘/111止01’63/0아5/1'이6096/?130*11己난)68—0000000000000004^1110

(正프厄小&거기I己#54613&0가正801’广及砂쪼이成늬검색일 : 2021,10. 6) 참고바란다.

264 평양오디세이

수 있게 된다.25

2018년

이후 서울시 남북교류협 력 기반조성 주요 사업 현황

연도

실적

2018년

13 건

주요 사업

- 6.15 남북정상회담 18주년 기념 학술회의 우 기념식 지원 - 늦봄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의 밤 지원

‘ 2018 서울 평화 - 통일 원탁회의 개최 - 2018 서울시민 남북협력 의식 조사 2019년

32 건

- 시민 참여형 평화 우 통일 교육 공모사업

-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 판문점 디오라마 전시 / 학술회의 개최 / 기념행사 지원

-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특별 다큐 제작 지원

‘ 2019 한국학 세계학술대회 지원 - 서울시 평화 우 통일 청년리더 양성사업 추진

‘ 2019 평화음악회 지원 -10.4 남북정상선언 12주년 기념행사 지원 - 평화 . 통일 공감 특별 기획전시 개최

‘ 서울시 평화 우 통일 가족캠프 추진

2020년

21 건

흐 585 평화 . 통일 방송 프로그램 제작 지원 - 서울청년평화경제 오픈랩 프로젝트 추진

’ 세계 어린이 평화 합창제 지원 - 통일염원 대중음악 경연대회 추진

- 원코리아 통일시니어 양성 프로젝트 추진 - 한반도 평화 공감 온라인 토론대회 지원

출처: 이민규 우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4 서울 : 서울연구원, 2021, 46쪽.

관련 법 개정도 잇달아 단행 이 된다. 2020년 10월 1일 시행된「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2020년 3월 31일

일부개정)

제16조 공무원의 파견에

지방자치단체가 포함된다. 2021년 3월 30일 개정안(2020년 12월 29일

일부개정)

에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 되었던 제14조 남북관계발전위원회에

25

구체적인 내용은 통일부, “「인도적 대북지원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규정」일부개정 알림 ”, 1기1砂8://\夕\\八\110^01-63,30,1《17\101^01‘63/116早/5/11011(:6/?1X)=(11(1=558—0000000000000

001&1110(16그切6~及01(1(1드54939及줴仁8017그如3응61成그(검색 일 : 2021,10. 6) 참고 日!'란다.

서울-평양교류

서울과평양의도시교류,과거,현재,그리고미래-이민규 265

「지방자치법」에 따라 설립된 협의체가 추천하는 사람이 위원으로 임명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된다.「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역시 2021년 3월 9일

부터 시행되는 개정안(2020년 12월 8일)에서 지방자치단체를 남북교류협력 주

체로 인정한다. 제24조의 2(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의 지원)를

신설하여, 지자

체가 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통일부에 남북교류협력 정책협의회를 둔 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제5조 남북교류협 력 추진협의회에 지방

자치단체가 추천한 사람 1명 이상이 위원이 된다는 조항 역시 추가된다.26

(2) 남북교류협력의 주요 실적과 특징

①사회문화교류의 성과 2018년 이후 서울시의 사회문화 교류는 다음 두 가지 방면에서 추진되었 다. 하나는 국제 스포츠 행人]‘ 지원이었다. 2018년 서울시는 평창 동계올림

픽 우 패럴림픽 성공 기원 삼지연 관현악단 특별공연과 세계태권도연맹%!’ -

국제태권도연맹II? 태권도 합동 시범공연을 지원하게 된다. 평창 동계올림 픽을 계기로 재개된 직접적인 남북 문화 우 체육 행사의 성공적 개최와 지속

성을 위해 서울시도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태권도 합동 시범공연의 경우, 2 월 12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개최되며 지자체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이밖에 서울시는 8월 11일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개최된 ‘판문점선언 이

행을 위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를 지원하였다. 이는 전국민주노동조합 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선직 업총동맹중앙위원회 등 민간이 주최한 남북 스포츠 행사를 지원한 것으로 시민 간 교류 기회 창출과 강화가 주된

26

국가법 령정보센터, \\%짜」21\\三呂0丄1/1匕0013!1丄1기1111(검색일 : 2021. 10. 7)

266 평양오디세이

목적이었다. 2019년 11월에는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동북아 국제 친선탁구대회를 지원하였다. 이 대회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서 개최된 친선 탁구대회로 서울, 평양, 모스크바, 베이징, 도쿄 등 동북아 5 개국 약 130명(선수단, 감독, 심판 등)이 참여한 스포츠 행사였다. 남북 간 직접

적인 문화 - 체육 행사 개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제3국에서 개최된 행사를 지원함으로써 2018년 재개된 도시 간 사회문화 교류를 이어나간 것이다.

2018년

이후 서울시 사회문화 교류 실적

연도

실적

2018년

4건

주요 사업 - 평창 동계올림픽 우 패럴림픽 성공 기원 삼지연 관현악단 특별공연 지원

斗^ - II? 태권도 합동 시범공연 지원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지원 - 안중근의사 의거 109주년 남북공동행사 지원

2019년

2건

- 나선 - 녹둔도 이순신 장군 유적 남 . 북 . 러 공동발굴 조사 - 동북아 국제친선탁구대회 지원

2020년

2건

- 나선 - 녹둔도 이순신 장군 유적 남 . 북 . 러 공동발굴 조사 - 동북아 국제친선탁구대회 추진

출처: 이민규 우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서울 : 서울연구원, 2021, 47쪽.

다른 하나는 역사 우 학술 분야로 역사유적 공동발굴이라는 성과를 냈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남북이 함께 기리는 이순신 장군의 나선 - 녹둔도 유

적남. 북-러 공동발굴을 추진한다. 서울시는 공동발굴을 통해 민족동질성이라는 기본목적뿐만 아니라, 제 3국을 통해 사업 추진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고, 간접적인 방식이라

도 남북 간 교류 채널을 확보 우 유지하고자 하였다.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서울시는 2019년 12월 녹둔도 주변 옛 조선인 마을을 답사하고, 남러 / 북

러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으며, 녹둔도 발굴조사에 대한 북측의 참여 의

서울-평양교류

서울과평양의도시교류,과거,현재,그리고미래-이민규

267

사를 확인하였다. 2020년 4월과 5월에는 러시아 촬영조사팀에 의해 눅둔도

발굴조사를 위한 촬영이 이루어졌고, 그해 6월에는 남 . 북 . 러 유적 발굴사 업을 합의하기에 이른다.

②보건의료협력 실적 서울시는 인도적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민간단체와 국제기구를 통해 북 한에 식량과 방역물품 등을 제공하였다. 만성적 식량 - 의약품 부족 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 영유아 등 취약계층을 돕고, 코로나 19 확산 우려와 대규모 수해 등으로 더욱 열약해진 보건환경 개선에 일조함으로써 국제사회와의 연대는 물론 북한과 신뢰관계를 형 성하기 위한 목적이 었다.

2018년

이후 서울시 보건의료 협 력 실적

연도

실적

2018년

2건

주요 사업 - 월드비전 대북 인도적 사업 지원 - 북민협 대북 인도적 사업 지원

2019년

3건

- 월드비전 대북 인도적 사업 지원 - 북민협 대북 인도적 사업 지원 - 유엔 세계식량계획 공여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2020년

1건

- 유엔아동기금 공여 통한 코로나 19 방역물품 지원

출처: 이민규 우 박은현,『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서울 : 서울연구원, 2021, 48쪽.

그동안의 지원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시는 2018 년 월드비전을 통해 밀가루 300톤과 농업용 비닐 24톤 등을 북한에 지원했 으며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하 북민협)를 통해 2,460톤 규모의 밀가루를

지원하였다. 2019년에는 월드비전을 통해 밀가루 500톤과 콩기름 70톤을 추가로 지원했으며, 북민협을 통해서도 밀가루 500톤 중 2억 원 상당을 부

담하였다. 여기에 더해, 유엔 세계식량계획따?에 영양 강화 시리얼과 비스

268 평양 오디세이

켓 100만 달러 상당을 공여 방식으로 지원했으며 2020년에는 유엔아동기금 을 통해 코로나19 방역물품 30만 달러 상당을 공여했다.

4,

서울 - 평양 교류의 미래 징검다리 놓기

1) 달라진 국제환경과 조건 바로보기

내부적 기반 마련과 역량 강화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서울 - 평양 교류 협력 프로젝트는 북한과의 짧은 만남과 의사를 전달하였다는 것에 만족해 야 했다. 이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스포츠 외교의 갈등 국면 해소와 화

해 분위기 조성, 국가 간(지도자 간) 대화 채널 구축 등의 단기적 효과는 나타

났지만, 미중관계를 포함한 복잡한 동북아 상황의 구조적 악재 요인을 제거 하지 못한 결과였다. 한반도 이슈가 민족 문제이자 국제적 이슈인 만큼 우 호적 인 국제환경 조성과 관련국의 복잡한 이익 방정식을 풀지 못하면 한계

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향후 남북교류협 력 재개의 열쇠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렇다면 남북교류협 력의 문을 열지 못하게 막고 있는 주요 외부 변수가 무엇 인지 한번 살펴보자.

(1)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유지 2000년대와 비교해 달라진 가장 중요한 외부 요인 중 하나는 북한의 핵 보유와 이로 인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이다. 2006년 제1차 핵 실험을 시작으로 북한의 실험 빈도수와 강도가 증가함에 따라 국제사회의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I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69

대북제재 수준 역시 강화되었다. 유엔 안보리는 총 10회에 걸쳐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50 그리고 일본 등 개별 국가와 지 역도 독자 제 재를 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현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6년 제4 차 북핵 실험을 계기로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수위 가 높아져 왔다. 2021년 말 기준 유엔의 10개 결의안 중 6개가 2016년 이후

에 채택되었을 정도이다. 실제로 2016년 3월 2일 채택된 2270호 결의안은 70년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군사 조치로 평가될 정도의 포괄적 제재이 다. 무기 금수 중심의 맞춤형 제재(1718호에서 2094호)에서 포괄적 제재로의 전

환은 불특정 전체를 제재 대상으로 무역 관계와 상품거래 등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교류협력을 규제함을 의미한다.27 유엔 안보리는 ‘무기와 물자 등 공급, 판매, 이전 금지’, ‘기술훈련, 자문,

서비스 지원 등 금지’, ‘금융제재’, ‘입국과 경유 방지’, ‘화물검사’에 더해 2013년 3월 7일(2"호)부터는 ‘선박 및 항공기 제재’와 ‘개인 및 단체 제재’

를 추가하고, 2016년 11월 30일(2321호)부터는 ‘북한 근로자 해외 파견’ 등까 지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였다.2829 이러한 대북제재의 핵심은 각각이 독립된 조항이 아닌 서로 연결되어 상호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2018년

이후 북한의 대미 협상 조건이자 국내에서 많은 논의와 연구가 진행되었던 ‘부분 해제’ 혹은‘완화’가 현실성이 낮은 이유이다.2,

27

이민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하의 서울시 남북 문화 우 체육 교류 전략과 방안소 서울 :

서울연구원, 2018, 8~12쪽.

28

2021년 3월 기준, 개인과 단체 제재 대상은 각각 80명고)’ 75곳이다. 이민규, 匕유엔 안보 리 대북제재하의 서울시 남북 문화 - 체육 교류 전략과 방안소 서울 : 서울연구원, 2018,

12~14쪽. 29

대북제재 완화와 비핵화 관련 연구는 임수호, ’’미국 대북제재의 체계와 해제요건丄 (서

270 평양 오디세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합의사항으로, 회 원국은 이를 준수해야 할 ‘정치적 의무’가 있다.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 같은 경우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떠나 국제관계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정치

적 고려’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포괄적 대북제재 상황에서 남북 교류협력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부분 해제’ 혹은 ‘완화’ 역시 북

한의 실질적인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 등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현실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2) 미중관계 악화와 한반도 이슈 성질 변화

미중패권 경쟁의 전면화는 한반도에 드리워진 가장 짙은 국제관계 먹구 름이다. 미중패권 경쟁의 성질과 결과에 따라 국제관계의 구조적 변화뿐만

아니라 한반도 이슈의 향방 또한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① 갈등 일변도의 미중관계

2017년 도널드 트럼프00=1己 1九땨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중관계는 1979년 수교 이 래 유지해 왔던 ‘협 력 속 갈등(갈등과 협력 공존)’에서 ‘갈등 일변

도’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중 양 국 간 국력 격차가 줄어들면서 갈등이 점차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전후 ‘굴기’보다는 ‘평화’를 강조한 ‘화평발전"#展’ 노선을 천명

했던 중국은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016 0‘386內 0? 이631 @쪠' 1501*8’을 재현

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18); 서보혁 외, '’대북 제재 현황과 완화 전망』(서울 : 통일연 구원, 2018); 정형곤 외,『비핵화에 따른 대북경제제재 해제一분석과 시사점 ,(세종 : 대외

경제정책연구원, 2018); 이민규,『유엔 안보리 대북제재하의 서울시 남북 문화 - 체육 교 류 전략과 방안』(서울 : 서울연구원, 2018) 등을 참고 바란다.

서울-평양교류

서울과평양의도시교류,과거,현재,:1리고미래-이민규 271

하는 듯한‘공세적휴血또’대외정책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국가 핵심이익8家核心利益을 자국의 마지노선0이자 레드라인&徒으로 규정하고

다른 국가로 하여금 존중해줄 것을 요구함과 동시 에 그렇지 않을 경우, 상응 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게 된다.30 국가 핵심이익과 관련된

이슈에 관해서는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31 실제로 시진핑刀近平 집권 시기에 들어 중국이 천명한‘중국의 꿈中0쵸’으로 대변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半民族쑤大해 선포는 ‘탈현상유지 국가’

로 비쳐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지속적으로 사고 있다.3233

중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이 심화되는 와중에,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 령이 집권하면서 미중관계는 급변하게 된다. 버락 오바마&『" 유요 집권

시기의 관여60838001601 중심과 달리 트럼프 정부는 봉쇄匕00(3101!1601 일변도의 전략을 채택한다. 중국에 대한 관여 전략이 중국의 부상을 오히려 부추겼 다고 판단한 조치 였다.33 40여 년 동안 유지해 왔던 ‘협 력 속 갈등’ 기조와의

‘ 거대한 결별卽631 (政。」目血音’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의 일대 일로 전략을 자유 - 민주주의 서방체제에 ‘대항’하는 것

30

중국의 국가핵심이익 개념, 구성요소, 관련 이슈 그리고 시기별 특징에 대해서는 이 민규,『국가핵심이익一중국 화평발전노선의 내막을 읽는 키워드』(서울 : 서울연구원,

2020)를 참고 바란다.

31

이민규,「인민해방군, 중국 국가핵심이익 수호의 한 축一역사적 사명과 강군 건설의 필 요성 丄 허성균차이나브리프丄 5권 4호, 2017, 52~56쪽. 중국의 경제보복 현황과 특징에 대해서는 이민규,『중국의 유럽 선진국 대상 경제보복

특징과 통합적 위기관리 전략』(서울 : 서울연구원, 2020)을 참고 바란다.

32

‘운명공동체’에 대해서는 우완영 - 이희옥,「중국의 아시아운명공동체 담론과 외교적 투

사」(『중국연구」! 73권, 2017, 340~356쪽)를 참고 바란다.

33

미중수교 이후 양국관계는‘건설적 전략동반자관계’, ‘비적비우(非故非友)’, ‘전략적 경

쟁자 겸 이익 상관자(5*61101正!')’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종호,『뉴노멀시대 미중관 계 변화와 한국의 대북 우 통일전략3 서울 : 통일연구원, 2019, 35쪽.

272 평양오디세이

으로 인식함으로써 국제질서를 이끌어갈 규범과 제도 경쟁이 본격화되었 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양국 갈등은 전방위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34

② 한반도 이슈의 성질 변화와 남북관계 재경색 미중갈등의 전면화는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이슈의 성

질을 변화시켰다. 협력 대상에서 갈등 혹은‘비협상’ 이슈로 변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결정적인 계기로 2016년 7월 사드배치 발표로 인해 한반도 이 슈가 ‘결국에는’ 미중경쟁의 종속변수가 되어 버 리면서 그간의 우려가 현

실이 되었다.35 2017년 10월 한중 양국 합의문에서 거론된 것처럼, 미국과 한국 정부의 공식적 인 ‘부정 ’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此0 구축, 사드 추가 배 치, 한미일 군사협력 ‘금지’를 세부 조항에 포함시켰다. 중국이 사드배치를 미중경쟁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그 결과로

2018년 이후 한반도 이슈를 둘러싸고 북미정상회담 2차례, 북중정상회담이

5차례 개최되는 동안, 한반도 이슈는 미중 협상 테이블에 주요 의제로 올라 가지 못했다.

34

주 바이든006 81*0)집권 이후에도 미중 양국 관계는 봉쇄 전략의 유지 속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차이점은 ①다자주의를 통해 중국과 의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은 줄이고, ②외교적 교섭으로 갈등을 해결하며, ③기후변화와

공중보건 등 비전통안보 분야에서의 협력 추구로 관여와 협력 채널을 확보하고자 하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시대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와 대중정책

평가 및 전망에 대해서는 1^111-3X11 I후 311(1 311118601《: 比6, “(〕0111:21!1111161기: \\4止1 8이6(:1〒\/6 日11易22601601 —8旧60’8 2幻乂。6己 01103 ?011仁7”(|?’세계지 역 연구논총山 39집 1 호, 2021)를

참고 바란다.

35

구체적인 내용은 이민규,「협력과 갈등의 기로에 선 한중관계」(이희옥 우 강수정 책임편

집,『전환기 동북아 질서와 한중관계의 재구성一한 우 중 학계의 시각』, 서울 : 도서출판 선 인, 2020, 102~103쪽)을 참고 바란다.

서울-평양교류

서울과평양의도시교류,과거,현재,그리고미래-이민규 273

한반도 이슈의 관련 당사국이자 핵심 국가인 미중관계가 악화되는 상황 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까지 실패로 막을 내 리게 되자, 남북관계 역시 다 시금 경색되고 만다. 2018년 남북한 간《4.27 선언》과《夕 19 공동성명》등

에도 불구하고, 합의 이행 에 진전이 없자 대화 채널이 중단되는 역사적 악

순환이 다시금 반복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자제하던 북한은 2019년 5월 4 일을 기점으로 미사일 발사를 다시금 자행하고 있다. 2019년 한해에만 13

회의 초대형 방사포를 포함한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2017년 상황(12회)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증했던 남북 인적 우 물적 왕래도 2019년을 정점으로 다시금 급감하였다. 통일부의 통일 백서 에 의하면, 남북 왕래 인원은 2019년 9,835명까지 증가한 후에 2020년 613명으로 줄어들었

다. 눈여겨볼 부분은 방남 인원이 2018년 809명에서 2019년 0명으로 줄어 들었다는 사실이다.

남북 간 교역 역시 2018년 3,200만 달러(699건)로 2017년 백만 달러(4건) 대 비 약 30배 이상 증가했지만, 2019년 다시 700만 달러 규모(434건)로 축소됐

으며, 2020년에는 400만 달러(45건) 규모까지 급감하였다.36 2020년 6월 16 일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단기적으로 남북관계의 종점을 찍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36

통일부,『2021년 통일백서 山 서울 : 통일부, 2021,250~278쪽.

274 평양오디세이

2) 기울어진 징검다리 바로 세우기

역사적으로 남북관계는 화해 와 갈등을 반복해 왔다. 2019년 이후 교착 상태 에 빠져 있지만, 언제 다시 남북한이 함께 하는 순간이 우리 곁에 다가

올지 모른다. 서울시를 포함한 지자체의 남북교류협 력도 약 10년의 교류와 10년의 중단이라는 과정을 거쳐 2018년 다시 한 번 교류 재개의 기회가 찾

아왔었다. 남북관계가 중단된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착오 없이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상황과 여건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준비하는 자세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잘되고

있는 내부 기반 다지기는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제약 요인으로 부각된 외부

요인은 제거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두 개의 축인 남북관계 회복과 국제환경 개선이 균형 있게 추 진될 수 있도록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도 나설 시기가 되었다.

(1) 역량 강화를 위한 다층 거버넌스 구축과 사업 체계화

지자체의 주도적인 남북교류협 력 사업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관련 법 개정 등을 통해 마련이 되었다. ‘주체 ’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관련법이 개

정되었고, 협의 우 심의 주체에 포함이 되면서 인식의 전환 역시 이루어졌다.

서울시를 주축으로 한 여러 지자체들이 노력한 결과이다. 제도적 기반이 마 련된 현 상황에서 서울시가 다른 지자체와 협력하여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역량 강화와 현실성 있는 사업 구성을 꼽을 수 있다.

① 중앙정부와 협 력관계 강화,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 기조 유지

먼저 한 가지 명확히 할 것이 있다. 지자체의 ‘주체’ 논란 해소가 독단적

서울-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서거, 현재, 그리고미래 - 이민규 275

으로 남북교류협 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의 미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약문」의 기본입장과 같이, 지자체는 중

앙정부와 한반도 평화 - 번영과 지역경제 선순환을 위해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6.15 공동선언이 표방한 남북 화해와 평화 우 통일 기조 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 이다. 물론 이는 정권의 대북정책에 따라 상

호작용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당위적인 측면 외에, 현실적으로 서울시는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지속적

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먼저, 앞서 살펴본 두 법률뿐만 아니라「자 치단체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지원지침」에서도 지자체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사업 초기단계부터 통일부와 협의하여 추진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다

음으로, 유엔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한 중앙정부의 승 인 없이는 국제기구와 대북민간단체를 통한 사업 추진이 어려운 것이 현실 이다. 2018년 8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공표한 ‘대북 인도적 지원 을 위한 면제 취득 지침’에 따르더라도 중앙정부와 협의 없이 추진하는 것

은 위험 부담이 매우 크다.37 다른 한편,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민감성 역시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남북교류협 력에 관한 법률」제 17조가 규정한 것 처럼 협력 사업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과 질서 유지 그 리고 공공복리를 해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앙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38

37

이민규,『유엔 안보리 대북제재하의 서울시 남북 문화 - 체육 교류 전략과 방안% 서울 : 서울연구원, 2018, 68~69쪽.

38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 력 추진전략一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山 서울 : 서울연

구원, 2018, 45~46쪽.

276 평양오디세이

②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통한 지자체 간 협력관계 구축, 사업 중복과 경험

부족 문제 해결 다음으로 경험 부족으로 인한 무리한 사업 추진과 지자체 간 사업 중복

은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이다. 서울시의「서울 - 평양 (포괄적) 도시협력방

안」역시 다른 지자체와 중복되는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서로의 경험 을 공유할 플랫폼과 거버넌스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문

제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18년 12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에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가 구성되었다. 2019년 1월에는 전담부서인 ‘남북

교류지원부’를 신설하여 북한 지방행정체제 조사 우 연구, 정보교류, 유관기 관 협력 체계 구축 그리고 위원회 안건 발굴 등의 역할을 수행토록 하였다.

주요활동을 살펴보면, 2021년 10월 기준 총 여섯 차례 남북교류협 력특별위 원회가 개최되었다. 이와 함께, 남북교류지원부는 역대 지자체 남북교류협

력 사업을 통합 정리하고, 시 우 도별 담당 조직과 위원회, 그리고 희망사업

조사 등을 통해 사업 중복으로 인한 예산 우 행정력 낭비 방지를 위한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역대 남북교류협 력은 국내 정권의 대북정책과 지도자 성향 등 내부요인

의 영향을 받아 왔다. 이는 지자체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요인에

의한 지자체 남북교류협 력 사업 중단을 미 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대한 민국시도지사협의회와 같은 거버넌스 기능 강화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서울시는 남북교류지원부가 제 역할을 원활하게 수

행할 수 있도록 긴밀한 협 력관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북지원민간단체 ③

및 국제기구와 협력관계 구축, 사업 지속성과투명성 확보

2000년대 초반 지자체는 대북지원민간단체와 협 력관계를 구축하고 남북

서울-평양교류

서울과평양의도시교류,과거,현재,그리고미래-이민규

277

2018 서울 평화 - 통일 원탁회의에서 색카드로 의견을 모으는 참가자들《X연합丄

교류협 력 사업을 추진하였다. 대북지원민간단체는 지자체의 경험 부족 문

제 해 결과 초기 사업 개척과 추진에 큰 도움이 되었다.39 안타까운 현실은

2018년 정세 변화 이후 모든 지자체가 2000년대 축적된 경험과 인적 네트 워크를 다시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하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문제에 도 봉착하였다. 이 런 조건 하에서 지속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해 온 대북지

원민간단체와의 협 력은 당장 북한과의 교류협 력을 위한 물꼬를 트는데 매 우 중요한 창구가 될 수 있다.

2019년 11월 11일 서울시는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대북 인

39

전영옥 우 김연근,「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의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一다차원적 분석

모형을 적용하여」,『한국자치행정학보』제31권 제2호, 2017, 392쪽.

278 평양오디세이

도지원사업 등을 할 수 있는 ‘대북지원 사업자’로 지정되었다. 과거 대비 자 율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서울시의 책임감과 부담

감은 더욱 커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 자체와 교류 방식 등에 대한 이해 가 더욱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대북지원민간단체와의 교

류협력이 더욱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전국적으로 1999년에서 2016년 기간 100억 이상의 지원 규모를 가진 곳만 14개 단체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축적

된 경험은 단기간에 획득할 수 없다는 점을 서울시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시는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사업 역시 지속적으로 추

진하여야 한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사업은 현재 상황에서 가장 현실성이 높은 방안일 수 있다. 국제기구는 국제규범, 원칙 그리고 절차에 따른 대북 지원으로, 원조의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 많은 논란을 줄일 수 있고 북한 내

부 사정과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 직접적인 장점 은 2020년 1월 기준 서울에 준정부(혹은 도시) 간 기구와 국제 日60 포함 총

38개 국제 다자기관이 상주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 유엔세계식량계획 땨?, 유엔아동기금1水100 그리고 국제백신연구소IV! 등은 실질적인 대북사 업이 가능한 곳이다.4。대북사업을 함께 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서울에 있 는 것이다. 남은 관건은 서울시의 입장과 노력이다.

④ 우선과제와 중 우 장기과제 구분, 선별적 우 단계적 추진

20년 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가장 중요한 내 우 외부 요인은 북한의 핵 보유 와 이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이다. 2018년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도 불

40

이민규,『서울시 남북 교류협 력 추진전략一지방자치단체 역할 중심으로』, 서울 : 서울연

구원, 2018, 49~54쪽.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수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79

구하고 남북교류협 력을 제약한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 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향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지

속적인 영향을 받을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합의사항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정치적 의무’가 있다.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 사업 역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정신을 훼손

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진되어야 하고, 서울시는 추진 가능 사업을 지 속적으로 발굴하는 작업을 해 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서울 - 평양 (포

괄적) 도시협력방안」중 ①인도적 지원, ②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와 안전에

기여, ⑥외교 우 영사 활동, ④비 영리 공공인프라 사업 등 예외 사항으로 사 전 승인이 가능한 분야의 관련 사업을 우선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41

상호주의 ⑤

원칙에 입각한공생과 공영 추구, 우선 과제 패키지 추진

지속가능한 교류협력이 되기 위해서는 신뢰관계 구축과 함께 필요성에 기반 한 실질적 이익 추구가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단 2000년대 초반 북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 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무산된 일

이 재발되지 않도록 기획 우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한 간 상이한 정치 - 문화 특성과 교류를 개방과 연결시켜 사고하는 북한의 경향을 숙지하여야 한다

는 의미이다. 이와 함께, 긴급구호와 개발구호 차원을 넘어 개발지원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런 관점 에서 서울시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하에 시도 가능한 사회문

41

이민규,『유엔 안보리 대북제재하의 서울시 남북 문화 - 체육 교류 전략과 방안丄 서울 :

서울연구원, 2018, 59~63쪽.

280 평양 오디세이

화교류와 인도적 지원, 그리고 비영리 공공인프라 사업을 패키지로 동시 추

진하는 안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세 가지 분야의 사업을 종합적으로 기획

및 추진함으로써 각 사업이 가진 장, 단점을 상호 보완시킨다는 전략이다.42 그중, 비영리 공공인프라 사업의 경우 중 우 장기적으로 다른 분야 경제개발

협력 및 도시 인프라 사업과 연계되도록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2) 우호적 국제환경 조성을 위한 ‘평호수’ 도시외교 전개

남북교류협 력을 제한하는 요인이 외부에 있는 만큼 서울시는 도시외교

어젠다를 ‘평화구축’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 영 역으로 확대시키는 안을 검 토할 필요가 있다. 평화 이슈는 도시외교 6대 어젠다 중 하나로, 전 세계 약 8.5%의 도시 간 국제기구(±乂 06*)1'스가 주요 어젠다로 다룰 만큼 지방정부

국제교류협력의 주요 대상이다.43 시민의 안전, 건강 그리고 행복을 책임져

야 하는 지방정부로서 평화 이슈가 도시외교의 어젠다인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2021년 말 기준, 서울시는 총 기개 도시와 친선 - 우호협력도시 체결과 23

개 도시 간 국제기구 가입을 통해 다양한 양 우 다자외교를 펼쳐오고 있다. 서울시는 도시외교의 발전추세에 맞게 전통적인 양자외교의 틀에서 벗어

나 다자외교로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과

42

사회문화교류는 ①화해 분위기 조성, ②대화채널 구축, ③긍정적 이미지 형성 등의 장점 이 있지만,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단발성 이벤트일 뿐 아니라 남북한 간 현격한 사회

경제적 차이가 쉽게 드러나면서 체제경쟁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인도적 지원 같은 경 우는 대북제재 예외 사항으로 인정받기 용이하고 국제적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자체 특색을 부각시키기 힘든 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인프라 사

업은 ‘도시’ 특성을 부각시킬 수 있고 중 - 장기 사업과의 연계가 가능하지만, 대북제재 하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43

이민규오],『포스트코로나 시대 서울시 도시외교丄, 서울 : 서울특별시, 2021,33~35쪽.

서울-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민규

281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는 서울시의 ‘평화’도시외교의 중요한 자산이자 이미 갖추어진 조건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서울시가 활용할 의지가 있느냐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① ‘평화구축’ 국제기구 중심 다자외교 추진

국제기구 중심 다자외교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평화’, 구

체적으로 ‘평화구축’을 서울시 도시외교의 주요 어젠다로 설정해야 한다. 2021년 7월 기준, 서울시는 도시외교 6대 어젠다 중 ‘평화(혹은 평화구축)’을 제외한 5개 분야에서 국제교류협 력을 진행 중에 있다. 남북협 력추진단에서

소통과 연구 중심의 ‘서울평화구상560111 ?63匕6 1011131176’ 정책을 구상 및 구체화

하고 있지만, 도시외교 차원에서 추진 중인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평화외교의 주요 플랫폼인 국제기구 활동은 고려되 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곧‘평화’ 이슈가 도시외교 주요 어젠다 중 하 나라는 것에 대한 인식 부족과 국제기구 담당 부서가 없음을 방증한다. 이

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호卜 이슈를 국제기구협력팀 주요 어젠다로 설정하여 국제기구 활동을 포함한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명확히 할 부분은 ‘평화’는 남북협 력추진단과 직결된 업무라는 것이다. 남

북교류협력 중심의 남북협력추진단 정책과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 록 평화 도시외교를 기획하고 추진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시는 우선적으로 ‘ 평화시장회의!%乂% 1^05

활동을 기반으로 평

화 구축을 위한 다자 활동을 점진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평화

시장회의는 1982년 히로시마 시장 다케시 아라키파6% 슈의 제2차 유엔 군축 특별회의 발언을 계기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가 주도하여 설 립한 도시 간 국제기구이다. ‘핵 없는 세계’를 핵심 목표로 시민의 안전에

282 평양오디세이

영향을 끼치는 각종 비전통안보 이슈(기아와 빈곤, 난민, 인권 탄압, 환경 악화)를

다루고 있다. 도시 간 국제기구로서 평화시장회의가 가지고 있는 이점은 다음과 같 다. 첫째, 한반도 평화-안보 이슈와 직결된 비핵화를 주요 어젠다로 삼고 있

다는 점이다. 평화시장회의는 ①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631126 3 '따01'버 하1*01: 0*1631 163目008, ②안전하고 회복 가능한 도시 실현!'631126 83& 3116 히11601 01108,

(3)평화 문화 증진)X0010(6 3 011111-6 0오 目6306을 핵심 목적으로 도시 간의 연대와 협 력을 중시하고 있다.

둘째, 큰 규모의 국제 단위 국제기구로 한반도 평화-안보 실현을 위한 국

제적 도시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2021년 8월 1일 기준, 165개국과 지

역의 8,043개 도시가 회원으로 참여 중에 있다. 이중 아시아와 유럽이 각각 38개국(지역) 3,282개 도시, 41개국(지역) 3,125개 도시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 고 있다. 셋째, 한국의 타 도시와 연대를 통해 국내적 평화 역량을 집결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2006년 제주를 시작으로 15개 도시가 회원 으로 활동 중에 있다.44 이와 함께 적극적인 평화시장회의 활동은 향후 서울 시 주도 국제기구 창설과 운영에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서울시

가 평화시장회의 가입과 적극적인 활동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② ‘플랫폼’기반 국제 다층 인적 네트워크구축 다층 인적 네트워크 구축의 주요 일환으로 전 세계 주요 싱크탱크 한반 도 연구자와 정책 기반 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서울클럽’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국외 전문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책

44

^2^058 501-

&66, 硏江\八\; 1)1370厂81?01丁)63仁就 01'응/611311아1/111(10冬 1111111(검색 일 : 2021. 8, 7)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I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83

홍보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해 국제회의를 적극 활용 중에 있다. 2019년 기준,

서울시(산하기관 포함)는 총 41건의 국제회의를 주최 - 주관(36건) 및 후원(5건) 하였다. 주최 우 주관 국제회의 중 약 91%가 정기 회의로 1년 혹은 2~3년 주

기로 개최되는 등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제회의 논의 주제가 매 회 상이할 뿐만 아니라 외국인 참석자(전문가 외 인사들 비중 높음) 규모 역시 차

이가 있어 지속적인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 어려운측면이 존재한다. 외국인

참석 규모가 90명 이상인 국제회의가 약 21%로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45 국제회의를 통한 국제적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의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 해 다음 두 가지가 고려될 수 있다. 첫째, 전 세계 주요 싱크탱크 한반도 이 슈 연구자 및 그들의 기본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반도 연구자를 대상

으로 하는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서 핵심은 ‘전문성’이다. ‘명성’에 기댄 관계

대상 설정이 아닌, 실제로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인 전문가와 인적 네트워크 를 형성해야 한다. 둘째, 인지적 유대를 넘어 정서적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해

‘소속감’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서울클럽 구성원을 확대 및 체계화하는 방안이 있다. 서울클럽은 서울 거 주 혹은 유학 경험이 있는 인사를 주요 대상으로 ‘서울’이라는 정체성;己6!#7 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서울클럽에는 2018년 말 기준, 전 세계 10개 도시 총

141명 인사들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주요 활동의 대표적인 예로 중국 내 서울클럽 인사 같은 경우는 온라인 단체방을 개설하여 수시로 정보 공유 등의 교류를 하고 있고, 서울시의 중

45

36건 국제회의 중 구체적인 내용 파악이 가능한 34건을 기준으로 분석한 것임을 특별히 밝힌다. 문인철 외,「서울시 주최 국제회의, 기획 - 설계 가이드라인 마련 중장기로 ‘국제

회의 통합관리 시스템 ’ 구축 필요丄, '’1881正 1%?0(丄 2020-08-02, 2020, 7~12쪽.

284 평양 오디세이

국 도시 순방기간 동안 좌담회 등을 개최하여 유대 관계를 강화해 왔다. 서

울시는 서울클럽 대상을 서울 거주(혹은 유학) 경험자에 국한시키지 않고, 분 야를 구분하여 ‘전문성’ 기반 교류와 협력이 가능하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

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싱크탱크의 한반도 연구자 역시 서울클럽 회원으로 임명하여 온 ’ 오프라인 상시 교류를 가능케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서울연구원이 주도해 운영 중인 서울국제평화연구협의체—01 ?63足 11111131^ (立요#"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상호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

도록 기획하는 것 역시 고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서울국제평화연구협의체 연구자도 서울클럽 회원으로 임명하고, 서울클럽의 다른 한반도 연구자도

서울국제평화연구협의체 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전문성 제고와 함께 지 역 평화 우 안보 이슈를 주요 어젠다로 설정하여 지 역 현안을 논의하고 도시 간 연대를 통해 평화를 진전시키는 방안 역시 연

구되어야 한다. 2021년 현재 서울시는 지 역 단위 국제기구 활성화에 발맞추

어 주요 주변 지역인 동북아와 동남아 지 역에 수도 시장회의를 신설하는 방

안을 검토 중에 있다.46 동북아와 동남아 지역에 수도 간 다자협의체를 신설 하여, ①미중경쟁시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도시 차원의 다자주

의를 추진하고, ②비 전통안보 이슈 공동대응과 상호이해 기반의 사회문화 교류 등을 통해 ‘아시아 패러독스比#6’를 극복한다는 계획이다.47 서울시는 수도 시장회의 창립 과정 에서 다음 두 가지를 잊지 않아야 한 다. 하나는 ‘평화’ 이슈를 포함한 6대 어젠다 모두를 포함하는 종합적 인 도

시 간 다자협의체 구성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

46

이민규 외,『포스트 코로나 시대 서울시 도시외교丄 서울 : 서울특별시, 2021,35쪽.

47

이민규 오],『포스트 코로나 시대 서울시 도시외교山 서울 : 서울특별시, 2021,106쪽.

서울-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85

중경쟁 시대 미중간‘군사적’충돌 가능성이 제일 높은 지역이 남중국해, 한

반도, 대만해협이라는보편적 인식을 인지하는 것이다. 특호], 이 세 지역 관

련 이슈 모두 시민의 삶과 행복에 ‘파괴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명심하여 야한다.

③‘정책형 ’평화 . 안보 공공외교 추진

서울시는 한반도 평화 우 안보를 위한 ‘정책화’의 하나로 미국 의원을 대상

으로 하는‘ 연대 ’와 ‘설득’의 공공외교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 행정부와의 협력적 관계 못지않게 의회와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과 협력이 중요하다. 특히, 남북교류협력 재개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대북제재 해제(혹은완화)와 관련하여 미국 의회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미국 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의 필요성을 대북제재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의회는 미국 행정부의 대對 의회 보고의무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 및 제정하면서 행정부의 대북제재 절차와 과정에 대한 의회의 관여를 확대시키고 있다.4849 둘째, 대북제재 관련 법안과 결의안의 초당적 합의가 빈 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소수 의원에 의해 발의된 이후 의원들 간 네트워크

를 통해 공동발의를 하게 되고, 본회의 표결 시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형태를 빈번이 보이고 있다.4, 이는 대북제재를 포함한 북한 관련 법안(결의

48

박선춘,「대북 압박에 한목소리 내는 미국 의회」『국회보』통권615호, 2018, 44~45쪽; 송인호 우 박민,「미국 대북 제재법의 최근 동향 및 전망丄『법학논총』43권 4호, 2019,

191~224쪽. 49

구체적인 내용은 황일도,「‘세컨더리 보이콧’ 칼갈이 미 우 중 치킨게임 시작됐다」(『신동 아애 2016년 12월 20일자); 송인호 우 박민,「미국 대북 제재법의 최근 동향 및 전망」(『법

학논총』43권 4호, 2019, 191~224쪽)을 참고 바란다.

286 평양오디세이

안) 통과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무게감과 영향력 증대를 의미한다. 셋

째, 간과할 수 없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의회는 법안의 제출, 심의, 통

과 등 모든 입법권을 독점하고, 예산 심의, 수정을 비롯한 편성 권한까지 보 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법과 재정적 측면에서 행정부, 특히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북한 관련 법안 - 결의안은 다양할 뿐만 아니라 공동발의 의 원의 규모도 적지 않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대부분의 법안 우 결의안이 초당적으로 발의된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들에 의해 발의되는 경우 가 다수인 점 또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미 의회에서 평화 증진

과 제재 우 규탄 중심의 법안 우 결의안들이 모두 발의되고 있다. 전자 같은 경

우는 이산가족 상봉, 북한 인권 개선, 한반도 평화를 강조하고 있고, 후자 는 대북제재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 유린, 북핵 우 미사일 위협, 대북 정보 보 안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비록 대북 유화와 강경 두 가지 입장 모두 견

지하고 있는 의원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법안 . 결의안 내용을 바탕으로 ‘연

대’ 혹은 ‘설득’이 필요한 의원을 추려낼 수 있다. 명확히 할 부분은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은 서울시의 이념적 - 정책적 입장에 따라 바뀔 수 있

다. 즉,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이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증진시킬 수 있다

는 것이 서울시의 기본입장이라면, ‘연대’의 대상이 ‘대북 강경’ 법안과 결의 안을 발의한 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시의회를 통한 의원외교와 남북협 력추진단에서 기획 중인 ‘비핵 우 평화, 인도주의 실현을 위한 국제 연대’ 사업과의 연대 및 확대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서울시 의회는 2019년 12월 남북교류 및 협력 사업 의 내실 있는 시행을 지원하기 위해 남북교류협 력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 하여 활동 중에 있다. 이와 함께, 남북평화교류위원회도 구성하여 정책 지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민규

287

원과 교류 기능을 강화해 왔다. 서울시는 시의회 남북교류협력지원 특별위

원회와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여 도시외교 차원에서 대미 의원외교(시의회 차원의 국제교류)

추진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 남북협 력추진단는 대북

인도협력 등을 위한 국제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국제 토론회, 주요국 대사

간담회, 가이드북 제작 등을 기획 중에 있다. ‘ 연대’와 ‘설득’ 측면에서 초청

의원을다원화하고, 의원외교와 연계하여 온라인 회의 개최 등을 통해 공공

외교 대상을 점차 확대시키는 방안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평화 수 안보 교육 및 교류 프로그램 대상을 국내 우 외 외국인으 로 확대하는 방안이 적극 논의되어야 한다. 서울시 남북협 력추진단은 시민 을 대상으로 하는 평화 우 통일 교류와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추진 중에 있다. 2018년 이후 추진 성과를 살펴보면, 연평균 약 22건의 관련 사업을 추 진하고 있고, 시민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평화 ’ 통일 교육을 진행

중이다.50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대상이 한국인에 국한되어 있고, 국외적으

로는 해외도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우선, 서울 거주 외국인은 한반도 평화 - 안보 상황과 필요성을 국외로 전 파시키고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공공외교 인적 자원이다. 2019 년 기준 총 465,885명(한국국적

50

비취득자 390,177명, 취득자 42,208명, 외국인주민자녀

남북협력추진단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고려하여 온 - 오프라인 결합 프로그램을 기획

및 추진 중에 있다. 교류 프로그램 차원에서 ①시민이 함께 만드는 평화 - 통일 사회적 대화, ②평화 상징공간 스토리텔링을 통한 통일문화 명소화, ③세대 간 소통 - 공감의 장 '평화 - 통일 가족캠프’, ④분단 오프(0助 평화 온(00)평화교육 온라인 박람회, ⑤평화

소재 창작음악 경연대회 및 합창제 개최 등 참여 마당 등을 검토 및 추진 중이고, 교육 차

원에서 ‘일상에서 배우는 평화’의 맞춤형 평화 - 통일 교육을 확대하고자 노력 중에 있다.

288 평양오디세이

33,500명)의 외국인이 서울에 거주 중(총 인구 대비 약 4.8%)이다.51 이들의 인식

은 비단 본인뿐만 아니라 국외 가족, 친척 그리고 주변인들의 한국(서울)과

한반도 평화 우 안보에 대한 인식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①단기적으로 여성가족정책실과 협력하여 평화 - 안보 교

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외국인 주민정책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52 ②중 - 장기적으로 외국인 관련 업무를 국제교류담당관 소관으로 하여 평화

구축을 포함한 국내 우 외 국제적 업무를 도시외교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도 록 한다. 그리고(3서울 소재 유학생 ‘지한파’ 육성 차원에서 서울시 립대와

연계하여 ‘서울학’ 프로그램을 체계화하고, 프로그램의 일부로 한반도 평 화안보 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교육 내용 과 관련하여 북한에 대한 설명과 평화 . 통일 ‘필요성 ’만을 주로 강조하는 기

존 방식이 아닌, 한반도 이슈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주요 국가의 정책 그 리고 현황 등 종합적이고 국제적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친선도시와 우호협력도시 시민, 특히 청소년을 중점 대상으로

한반도 평화 우 안보 이해 및 관련 정책 홍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종합 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의 외국 도시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

공외교와 관련 행사는 문화와 관광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서울)의 문 화 홍보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목적(가시적

성과)이

내포되어 있

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책 ’공공외교 정책

51 52

국가통계포털, 11띠?8:%:0518丄0710(九乂/111己6公己0(검색일 : 2021.8.7) 여성가족정책실 외국인문화담당관에서는 ‘외국인주민정책’으로 ①서울시 중도입국 청 소년 지원 사원, ②중국동포 사회통합 지원 사업, ③서울시 세계인의 날 행사, ④문화 다

양성 이해교육 등을 주진 중에 있다.

서울 - 평양 교류

서울과 평양의 도시교류. 고누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민규 289

수립이 필요하고, 한반도 평화 - 안보 이슈를 어젠다 중 하나로 단독 혹은

다른 분야와 연계하여 추진하는 정책이 중 - 장기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①서울교육청, 서울시립대, 서울연구원 등과 연계하여 친선 도시와 우호협 력도시의 다양한 계층을 초청하여 이미 실행 중인 프로그램 에 함께 참여시키는 것과, ②해외 현지에 전시회 개최, 박물관 교류 등의 방

식으로 한반도 평화 우 안보 필요성, 현황, 관련 정책을 알리는 행사를 기획 해볼수 있다.

290 평양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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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인터뷰 자료

탈북자 인터뷰 대상자 인적사항

구분

성별

나이

거주지역

직업

가족 구성원

김영 0

이성

47세

평천구역

주부

할머니, 부부, 자네명, 4인 가족

김미 0

여성

50 세

중구역

주부

할머니, 부부, 자녀2명, 5인 가족

이씨

남성

55세

대동강구역

특수기관

할머니, 부부 자녀2명, 5인 가족

한씨

남성

28 세

대동강구역

전문장사꾼

부부, 형제, 4인 가족

최씨

여성

47세

역포구역

주부

부부, 자녜명, 3인 가족

김명 0

남성

49 세

선교구역

러시아

부부, 자녀3명, 5인 가족

건설노동자

조씨

여성

55 세

은정구역

주부

부부, 자녀2명, 4인 가족

강씨

여성

31 세

은정구역

주부

부부, 2인 가족

노씨

남성

53 세

대동강구역

특수기관

부부, 자녀2명, 4인 가족

정씨

남성

56 세

중구역

특수기관

부부, 자녀2명, 4인 가족

김한 0

남성

60 세

중구역

요식업

할머니, 부부, 자녀2명, 5인 가족

여씨

여성

28세

평천구역

학생

할머니, 부부, 자녜명, 5인 가족

서씨

남성

55 세

서성구역

설계사업소

부부, 자녀2명, 4인 가족

소장

한성 0

남성

45 세

선교구역

러시아

부부 자녀2명, 4인 가족

건설노동자 맹씨

여성

49세

낙랑구역

주부

할머니. 부부, 자녜명, 4인 가족

채씨

여성

60세

평천구역

주부

본인, 자녀2명, 3인 가족

302

" 정일영「一榮,比0이0II70010

I 허선혜 許善惠,너20 81水印正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전북대학교 국제 융복합연구소 연구교수

성균관대학교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북한학 박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산하 평화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 통일교육위 원

나눔연구소 연구위원

13으기업은행 북한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전)

저서 『북한의 현실과 통일 한국의 미 래』(2021),“01

저서

8(2001568 0(1 ±6 1、1기:11131 月11\41’0111716111: 111 I幻01

『한반도 스케치北』(2021),『북조선 일상다반사』

止1 으01’63: (가1午1아11응 氏6홍11116 0^2111108 1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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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오창은 吳利銀, 0日 0日人이0 피끼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및 다

I 박소혜 朴素慰, ”I히네

빈치교양대학 교수

국회도서관 관장실 비서관

중앙대학교 문학박사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박사

(사)한국작가회의 비평분과 위원장(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심 연북한연구소 객원연구

‘문화/과학’ 편집위원(전)

위원 (전)

저서

저서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생활』(2020),『나눔

「현지지도 기록영화로 본 김정은 이미지 연구

의 그늘에 스며들다』(2017),『절망의 인문학니

」(2021),「북한의 ‘낮은 단계 련방제’ 영문 표기

(2013),『모욕당한 자들을 위한 사유』(2011) 등

변화에 관한 고찰」(2020) 등

I 채 수란 蔡洙關, 01오 80

I 이민규 李頓編%쏘 671)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경제전략연구본부 북방

서울연구원 도시외 교연구센터 연구위원

극지 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베이징대학교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북한학 박사

여시재 부연구위원(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위촉연구원(전)

마카오대학교 사회과학학원 박사후연구원(전)

저서

저서

“1\4乂51:61’10118 ?乂00呂乂211呂:(〕05111611仁8,1362니(乂

『서울시 평화구축 도시외교 전략과 정책』

0±111’6 3116 凶01111 1〈01‘63”(2020)등

(2021),『국가핵심이익一중국 화평발전노선의 내막을 읽는 키워드서2020),“(가110거'8 1)0811006

88오111 01131111 - ----------- 8011(11 ^01'&308 I 정은이 鄭恩、伊, )0010 21水 I』正 통일연구원 인도협 력 연구실 연구위원

일본 東北大學 경제학 박사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책임 연

구원 (전)

저서 「중국과의 연계를 통해서 본 북한 비공식 송금 시스템의 생성과 발전」(2018),「북한의 대중국 철광 무역에 관한 연구一무산광산의 개발현황 을 중심으로」(2017) 등

11276 \46\\化(:1 仕16 1186 05 0111113 0\化厂 #16 砂久引 己6(%16”(2018)등

평양 오디세이 초판1쇄 발행 2022년 9월 1일 기획 서울시 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평 잉학연구센터

글쓴이 정일영 우 오창은 우 채수란-정은이

허선혜 우 박소혜 우 이민규 펴낸이 홍종화 편집 디자인 오경희 우 조정화 우 오성현 우 신나래 박선주 우 이효진 우 정성희

관리 박정대 우 임재필

펴낸곳 민속원

창업 홍기원

출판등록 제199⑴000045호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25길 41(대흥동 337-25) 전화 02) 804-3320,805-3320,806-3320 (代) 팩스 02) 802-3346 이메일 11±1501《1@仁11011^11.061,11伍1501冬夕00@11시!‘.0001 홈페이지 모#811±1506011 (。11

1881^ 978^9-285-1745-9 94340 827 978*28547442 @ 서울시 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평양학연구센터 , 2022 @ 민속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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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서울 학연구 소 평양학연구 센터 평양학연구센터는 서울시립대학교가 2022년 6월 서울과 평양간 의 인문학적인 소통으로 남북한 도시간 하나됨의 온전함을 이루

어 가기 위해 서울학연구소 내에 설치한 전문연구조직이다.

이는 서울시립대학교 개교 100주년이 되던 2018년에 남북대학

간 교류협력 비전을 선언하고 구체적인 사업실행을 위해 개설한 바 있는 한반도산학협력연구센터를 지속적인 학문 발전과 효과 적인 남북도시교류 컨텐츠 개발에 기여토록 하기위해 발전적으

로개편한 것이다. 동 센터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위상과 지역으로서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서울학’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의 도시 평양을 연구대상

으로 특정화하여 장소인문학 관점에서 ‘평양斗을 정립하기 위한 연구기반을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국내 일반 지역학과는 달리 ‘평양학’은 서울에서 바라보는 타

자연구로의 특수성을 보유 하고 있어 서울학과의 비교연구를 통 해 평양의 역사, 문학, 지리, 건축, 경제, 도시 등 여러 학문간 학제 적 연구를 기획, 수행하게 된다.

참고로 서울학연구소는 1993년 서울 정도 600년에 ‘서울학’을 육성, 확산시키기 위해 설립된 서울시립대학교 부설연구소로 국

내 지역역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전문연구기관이다.

도이 뼌:?는 살마 뭄지미는 '도이,를 빤나旧 이작된다.

평양학 교양총서

眠眼

01

북한의 도시를 연구하는데 그곳에 갈 수 없다면 이것보다 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도시 연구는 포기할 수 없는 북한 연구의 과제이다. 특히 평양 연구는 우리가 반드시 정복 해야 할 연구 분야이다. 평양은 단순히 북한의 수도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평양은 북한이 마 지막까지 지켜야 할 ‘사회주의 혁명의 심장’이며 북한 사회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실험실이다.

평양을 안다는 것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과거와 현재, 미 래를 볼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2011=05

않다. 이 책은 열려 있지만 달혀 있고, 멈춰 있지만 변하고 있는 평양을 7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평

양 연구이자, 평양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은 평양의 공간, 경제, 문화, 그리고 서울과 평양 교류라는 시각에서 7편의 글로 구성되

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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